강승수 요셉 신부의 ‘환경과 생태계’
노은동 사회교리학교 7강. 6월 2일(금) 저녁 7시 40분
노은동 성당 사회교리학교 일곱 번째 강의가 2023년 6월 2일(금) 저녁 7시 40분 성당 지하 다목적실에서 개최되었다. 이번 강의 제목은 <환경과 생태계>이며, 대전가톨릭농민회 담당신부이며, 생태환경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강승수 요셉 신부가 맡아서, 2시간 동안 진행했다. 강의는 지구를 위한 기도를 시작으로 저녁 7시 40분부터 약 110여분 간 진행되었다. 다음은 강의내용이다.
우리의 지구를 위한 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하느님께서는 온 세계에 계시며 가장 작은 피조물 안에 계시나이다.
하느님께서 존재하는 모든 것을 온유로 감싸 안으시며 저희에게 사랑의 힘을 부어주시어 저희가 생명과 아름다움을 보살피게 하소서.
또한 저희가 평화로 넘쳐 한 형제자매로 살아가며 그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게 하소서.
오, 가난한 이들의 하느님, 저희를 도와주시어 저희가 하느님 보시기에 참으로 소중한 이들, 이 지구의 버림받고 잊힌 이들을 구하게 하소서.
저희 삶을 치유해 주시어 저희가 이 세상을 훼손하지 않고 보호하게 하시며 오염과 파괴가 아닌 아름다움의 씨앗을 뿌리게 하소서.
가난한 이들과 지구를 희생시키면서 이득만을 추구하는 이들의 마음을 움직여 주소서. 저희가 하느님의 영원한 빛으로 나아가는 여정에서 모든 것의 가치를 발견하고 경외로 가득 차 바라보며 모든 피조물과 깊은 일치를 이루고 있음을 깨닫도록 저희를 가르쳐 주소서. 하느님, 날마다 저희와 함께해 주시니 감사하나이다. 비오니, 정의와 사랑과 평화를 위한 투쟁에서 저희에게 힘을 주소서.
아멘.
(「찬미받으소서」 2015. 교황 프란치스코 회칙, 제6장 참조)
지구를 위한 기도로 시작했습니다. 교황 프란치스코의 회칙 「찬미받으소서」(2015)는 오늘날의 세계를 그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다라고 이야기할 만한 귀한, 시대를 가르는 가르침입니다. 그리고 지구를 위한 기도를 잘 살펴보면 「찬미받으소서」를 잘 요약했다고 볼 수 있는 기도입니다.
이 책의 부제는, 《찬미받으소서, 공동의 집을 돌보는 것에 관한 프란치스코 교항 성하의 회칙을 중심으로》인데요. (시기적으로) 「간추린 사회교리」에는 「찬미받으소서」가 포함되어 있지는 않지만, 환경과 생태계에 대한 이야기를 집대성한 책이 바로 이 책 「찬미받으소서」입니다. 이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규칙으로 삼아서 살아가야 할 말씀이지요. 우리는 그리스도왕이심을 고백하는 사람들이잖습니까? 하느님께서 과연 이 세상의 창조주이시고, 이 세상의 가장 으뜸이시라고 고백한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진정 그리스도를 이 세상의 으뜸으로 고백한 사람들인가?
정말 그렇습니까? 여러분? 현실 사회에서,,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그리스도께서 왕 맞으십니까? 그렇게 이야기하면, ‘아니요, 돈이요.’라고 이야기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솔직하신 것인지, 현실적이신 건지, 실질적인 왕은 돈인가요 여러분? 사실 우리가 섬기는 왕이 누구인지, 오늘 이시간은 아프지만 확인하는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돈을 섬기고 살고 있으며, 그 결과가 어떻게 우리에게 결론맺어지고 있는지, 들여다볼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간추린 사회교리는 새로운 사태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1800년대 서양에서 산업혁명의 시대를 지내면서, 교회는 새로운 사태에 직면해서, 교회의 입장, 하느님의 뜻을 밝힌 문헌이 바로 최초의 교황의 사회교리 회칙인 「새로운 사태」(1891)입니다. 그래서 지금 역시 교리를 배우는 시간입니다.
1988년 유엔에서 IPCC(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라는 정부간 협의체를 결성하면서, 그 즈음부터 많은 학자들이 환경과 기후의 심각성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우리 교회는 바티칸 공의회를 지나서 최초로 1990년도에 요한바오로2세께서 세계평화의 날 담화를 발표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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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1990년 1월 1일 담화를 통해서 생태계의 위기는 공동 책임이라고 하셨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께서 (지난 1984년 5월 3일 한국교회 창립 200주년을 축하하고 한반도의 평화를 기원하기 위해 4박5일 일정으로 방한) 1984년 우리나라에 오셨던 때가 기억납니다. 제 고향이 논산인데, 새벽 12시인가부터 버스를 타고, 성체대회 올라가던 기억이 납니다. 그당시 관광버스들이 줄을 지어 올라가던 게 얼마나 신이 나던지 ... 그러던 시절 처음으로 생태계 위기에 대해서, 지구는 공동의 집이라는 메시지를 내십니다. 세계 평화의 날에 창조주 하느님과 모든 피조물을 보호하기 위해서 우리 교회는 구체적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담화를 발표하셨던 겁니다. 그리고 2000년이 얼마 남지 않던 1997년 12월 일본 쿄토에서 쿄토의정서(Kyoto Protocol)라는 지구 온난화의 규제 및 방지를 위한 국제 협약인 기후변화협약의 수정안이 채택됩니다. 즉, 온실가스 배출 55%를 차지하는 선진 38개국이 각자의 감축 목표에 따라 배출량을 줄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2015년 12월에 (2020년부터) 모든 국가가 참여하는 신기후체제의 근간이 될 파리협정(Paris Agreement)이 맺어지기 직전에 「찬미받으소서」가 반포됩니다. 그해 5월에 있었던 일이죠.
12월에 있을 파리기후 정상들의 모임에서, 제대로 해라 라는 메시지를 주기 위해서 교황님께서 미리 5월 24일에 찬미받으소서를 반포하시기에 이르른 겁니다. 「찬미받으소서」는 사실상 생태환경과 기후위기에 본격적으로 대응하는 교회의 첫 번째 가르침이며, 그 즈음에 우리 대전교구는 현재 유흥식 라자로 추기경님에 의해 교구 내에 생태환경위원회가 꾸려집니다. 교회가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2020년도까지 「찬미받으소서」를 5년동안 열심히 실천하고 회칙으로 삼으라고 했지만,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지내고 보니까 그렇게 만족스럽지 못하셨던 거 같아요. 그래서 2020년을 「찬미받으소서」 선포 5주년의 특별 기념의 해로 삼으셨습니다.
「40주년」, 「100주년」 등을 들어보셨듯, 회칙의 정신을 새롭게 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상기하고 실천하자는 의미로 2020년에 5주년 기념회를 반포하며, 우리나라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차원에서는 회칙을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사목지침서를 냅니다.
2020 추계 주교회의에서 회칙 ‘찬미 받으소서’ 반포 5주년 후속 장기 사목 계획을 위한
‘특별 사목교서 실천지침’을 만들어 가정과 본당, 교구의 구체적 실천과 연대를 강조하였다.
사목지침서는 정말 완벽합니다. 우리 본당공동체에서 어떻게 실천해야 할 것인가? 본당의 각 분과들의 역할, 성가대의 역할에 이르기까지 완벽한 지침서를 만들어서 배포한 바 있습니다. 다만 이 존재에 대해 아시는 분이 별로 많지 않습니다. 그런 현실이다보니, 그것가지고는 안되겠다고 싶어, 그 다음인 2021년부터는 우리 7년동안 아주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찬미받으소서를 살아보자라고 7년 여정을 선포하십니다.
보편 교회가 5월 24일 공동의 집 지구를 위한 ‘찬미받으소서 7년 여정’에 돌입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날 영상 메시지를 내고, 지난해 기념한 교황 생태회칙 「찬미받으소서」 반포 5주년에 이은 ‘찬미받으소서 7년 여정’을 위한 보편 교회의 행동 지침을 발표했다. 교황은 “다음 세대를 위한 지구 자원의 관리인이 되자”며 회칙이 제시한 통합 생태론의 정신을 계승하자고 당부했다.
우리 교구에서는 개막미사 기억나시나요? 9월에 개막미사를 하고, 그 다음해 5월에는 세상에서는 탄소중립을 선언했는데요. 우리는 10년을 앞당겨서, 모든 성당과 가톨릭 기관에서 2040년까지 탄소중립을 실현해보자고 선언하시고, 이렇게 나아갑시다. 라고 우리를 독려하셨습니다. 그리고 작년 2022년 11월달에 올해(2023년) 사목교서를 내시면서, 구체적으로 2040까지 어떻게 탄소중립 달성할 것인가에 대한 간략한 로드맵까지 발표하셨어요. 주요한 것은 2030년까지 전기에너지를 자립해보자. 즉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죠. 그리고 2040년까지는 전기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에너지 사용, 가스와 자동차와 먹고 버리고 하는 것들까지도 모두 다 탄소중립하자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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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중립의 첫 걸음, 진단
탄소 중립을 위해 필요한 첫걸음은 진단하는 것입니다. 혹시 노은동성당은 진단을 신청하셨나요? 탄소중립을 하려면 측정이 되어야 하죠. 그래서 진단하는 프로그램이 생태위원회에 있습니다. 불휘협동조합 태양광발전소에서 봉사자들을 양성해서, 본당과 교구 지원금을 통해서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첫단추를 꿰는 의미도 있고, 진단을 통해서, 얼마나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고,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알게 됩니다.
성당의 전기사용 고지서를 들여다보면 ...
고지서 들여보시나요? 관리비를 들여다보면 생활을 보게되듯이, 성당에서도 깜짝 놀랄만한 일들이 많습니다. 아니 세상에 이렇게 돈이 줄줄 새고 있었네?라는 겁니다. 그래서 걷어내고 다 리모델링하자는 본당도 있고, 한달에 1천만원이 넘어가네라는 공동체도 있었습니다. 비합리적인 냉난방시스템때문이란 걸 본당신부와 사목위원들이 인지하기 시작한 겁니다. ‘돈이 많이 들어가네?’라고만 생각했던 것을 ‘당장 개선하지 않으면 안되겠네’라는 식으로 중지가 모아진 겁니다. 얼른 당장 신청해서,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에너지를 통해서, 우리 삶을 통해서, 우리 공동체에서 얼마나 많은 탄소가 배출되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줄이는게 중요합니다. 태양광을 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절전도 중요합니다. 즉 탄소중립을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2가지는 바로 절전과 발전입니다.
발전소 건설도 중요하지만, 절전도 중요
발전소의 건설도 중요하지만, 절전도 되어야 합니다. 기본 7년 여정을 시작하면서, 2040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30% 이상 절전을 전제로 합니다. 이게 이뤄지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 됩니다. 왜냐하면 대전의 모 성당에서 태양광을 다 올렸어요. 그리고 신자들이 “와 이제 태양광도 올렸겠네.”라고 했다가 누진세를 더 낸 경우가 있었습니다. 먼저 해야 될 것이 절전이라는 사실. 이게 100%를 쓰고 있다가, 사실 절전을 하지 않으면, 지구 입장에서는 탄소가 더 생기게 되는 일이 됩니다. 재생에너지 설비 역시 탄소배출을 합니다. 그래서 30%를 절감하고, 그래도 남아있는 70%를 재생에너지로 절감하는 것이죠. 사실 이런 활동에는 여러 가지 제약이 있을겁니다. 성당 마당이나 건물이나, 50%밖에 어렵다면, 20%를 다른 차감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나무를 많이 심던지, 여러 가지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탄소 중립이 이뤄집니다.
교황 레오 13세의 최초의 사회교리 회칙 「새로운 사태」(1891)가 반포된 이후, 가톨릭 교회는 사회의 정의와 평화를 강조하고 있었는데요. 이후 JPIC(Justice peace Integrity of Creation), 즉 통합생태론(Integral Ecology)의 관점으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교황청에서는 온전한 인간발전부(Integral Human Development)라는 부서를 신설했습니다. 사회복지, 정의평화, 이민(이주사목)등을 다 통폐합해서, 우리가 통합생태적으로 앞으로 살아야 한다고 하면서, 교황청에 부서를 통폐합하십니다.
온전한 인간 발전 촉진을 위한 교황청 부서(라틴어: Dicasterium ad integram humanam progressionem fovendam)는 2016년 8월 31일 교황 프란치스코의 자의교서 《인간 발전》(Humanam Progressionem)에 의해 설립이 발표되어, 2017년 1월 1일부터 공식 업무를 시작했다. 교황청 정의평화평의회, 교황청 사회복지평의회, 교황청 이주사목평의회, 교황청 보건사목평의회 등 4개의 평의회를 통합한 이 부서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사회 교리를 전파할 뿐 아니라 취약계층, 특히 전쟁 희생자와 난민, 병자들의 합당한 보호를 위해 노력한다.
우리 대전교구는 사회복음화국이 교구에 있고, 그 안에 생태환경위원회, 민족화해위원회, 정의평화위원회가 있습니다. 교황청에는 사회복지, 이주까지 포함시켜 2016년도에 생겼습니다. 통합생태론에 따른 것인데, 그것이「찬미받으소서」(2015)의 핵심이고, 이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우리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요약됩니다. 이 사실이 우리 머리를 거쳐서 가슴으로, 그리로 아랫배로 내려왔으면 좋겠습니다. 다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이 지구인들에게 와 닿았으면 좋겠습니다. 국경도 갈라져있고, 민족도 갈라져 있는데, 우리가 죽이고 있는 적군, 우리가 빼앗고 있는 그 누군가가 바로 나 자신이라는 인식에 닿아야 한다는 점을 「찬미받으소서」를 통해 이야기하고 계십니다.
「찬미받으소서」(2015)의 목차
제1장 공동의 집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까?[17-61항]
Ⅰ. 오염과 기후 변화[20-26항]
Ⅱ. 물의 문제[27-31항]
Ⅲ. 생물 다양성의 감소[32-42항]
Ⅳ. 인간 삶의 질의 저하와 사회 붕괴[43-47항]
Ⅴ. 세계적 불평등[48-52항]
Ⅵ. 미약한 반응[53-59항]
Ⅶ. 다양한 의견[60-61항]
제2장 피조물에 관한 복음[62-100항]
Ⅰ. 신앙이 주는 빛[63-64항]
Ⅱ. 성경적 설명의 지혜[65-75항]
Ⅲ. 세계의 신비[76-83항]
Ⅳ. 창조의 조화 안에서 모든 피조물이 전하는 메시지[84-88항]
Ⅴ. 보편적 친교[89-92항]
Ⅵ. 재화의 보편적 목적[93-95항]
Ⅶ. 예수님의 눈길[96-100항]
제3장 인간이 초래한 생태 위기의 근원들[101-136항]
Ⅰ. 기술: 창의력과 힘[102-105항]
Ⅱ. 기술 관료적 패러다임의 세계화[106-114항]
Ⅲ. 현대 인간 중심주의의 위기와 영향[115-121항]
제4장 통합 생태론[137-162항]
Ⅰ. 환경, 경제, 사회의 생태론[138-142항]
Ⅱ. 문화 생태론[143-146항]
Ⅲ. 일상생활의 생태론[147-155항]
Ⅳ. 공동선의 원리[156-158항]
Ⅴ. 세대 간 정의[159-162항]
제5장 접근법과 행동 방식[163-201항]
Ⅰ. 환경에 관한 국제 정치적 대화[164-175항]
Ⅱ. 새로운 국가적 지역적 정책을 위한 대화[176-181항]
Ⅲ. 정책 결정 과정의 대화와 투명성[182-188항]
Ⅳ. 인간 성취를 위한 정치와 경제의 대화[189-198항]
Ⅴ. 과학과 종교의 대화[199-201항]
제6장 생태 교육과 영성[202-246항]
Ⅰ. 새로운 생활 양식을 향하여[203-208항]
Ⅱ. 인류와 환경이 맺은 약속에 대한 교육[209-215항]
Ⅲ. 생태적 회개[216-221항]
Ⅳ. 기쁨과 평화[222-227항]
Ⅴ. 사회적 사랑과 정치적 사랑[228-232항]
Ⅵ. 성사의 표징과 주일의 휴식[233-237항]
Ⅶ. 삼위일체와 피조물들의 상호 관계[238-240항]
Ⅷ. 모든 피조물의 모후[241-242항]
Ⅸ. 태양 너머[243-245항]
기도 제안[246항]
우리의 지구를 위한 기도
그리스도인들이 피조물과 함께 드리는 기도
이유 없는 불임이 25%
원천적으로 생명살이를 못하게 하는 생명들이 현재 부지기수라는 점이 정말 가슴아픕니다. 현재 이유없는 불임이 25%라고 합니다. 엄마 아빠가 건강한데, 아무리 애를 써도 임신되지 않는 비율이 4분의 1이라고 합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원천적으로 오염이 되어 있기 때문에 이 세상에 태어나지 못하는 인구가 수만명 이상이라는 겁니다. 이미 태아에게서 미세플라스틱이 검출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제가 안면도에서 좋은 식용수로 먹던 음용수가 제가 안면도를 떠날 즈음에는 못먹는 물이 되었습니다. 음용할 수 없는 물로 판명이 되어서, 나올 때는 상수도 연결하고 나왔습니다. 농약때문이겠죠. 유명한 생물학자며, 동물생태학자인 최재천 교수는 인류멸종이 금세기에 일어날 일이라고 얘기합니다. 이스라엘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와 대담을 했는데요. 유발 하라리가 인류멸종이 300년 쯤 남은 거 같습니다라고했을 때, 최 교수님은 100년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겁니다. 생물학자들에게는 그런 위험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uyMvOecvVC8
저는 가톨릭농민회와 일하는데, 조그맣게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논 2천평을 합니다. 농사 사이클이 도무지 맞지 않습니다. 그리고 벌이 뭉텅이로 사라졌습니다. 미국 얘기인 줄 알았더니, 미국도 3분의 1이 사라졌다는데, 지난 겨울 지나면서 꿀벌들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벌이 사라진 이후에 4년 후에 인류는 멸종한다는 가설을 아인슈타인이 밝혔다고 하는데요. 이 말을 연결을 하자면, 꿀벌이 수분의 60%를 담당한다고 겁니다. 그래서 벌이 없어졌을 때의 엄청난 재난 ... 시골에서 할머니들이 붓을 들고 다닌답니다. 과수원의 열매 등에게 수분을 제공하려고 그러는 거죠. 사실 인류의 문명으로 말미암아 200여종의 생물종이 사라졌다고도 합니다.
미국의 유명한 과학자 제러미 다이아몬드(1937~ )는 인류문명이 붕괴하는데,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앞으로 우리의 세상에서 기후재난이 없어질 것 같습니까? 아니면 늘어날 것 같습니까? 다들 말씀은 늘어난다고 하지만, 실제 자신의 삶을 전환하려하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이미 너무나도 물신의 손아귀에 바짝 녹아있는 거 같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Onz6kNRlsIs
세계적 불평등은 더욱 심해지고 있습니다. 가난한 나라는 기후 재난에 더욱 큰 위기에 빠집니다. 우리나라는 그래도 기후재난이 닥쳐온다손 치더라도, 복구할 여력이 있겠지요. 그러나 돈 없는 나라에서는 정말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상황 자체가 파괴됩니다. 작년 2022년에 파키스탄에서는 큰 물난리를 겪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ElDYtbSNeRk
사실 파키스탄 국민들이 전 세계의 기후 온난화에 기여한 몫은 0.3%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그 나라에서는 수천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하고, 수천 명이 죽었습니다. 정말 불평등한 상황이죠. 그럼에도 너무 반응은 미약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교황님은 그래서 대화하자 라고 초대하고 계십니다.
2022년 6월 14일부터 파키스탄에 쏟아지고 있는 폭우 및 홍수 사태. 전국토의 1/3이 잠겨 지형이 바뀌는 수준이었다. 피해는 2010년 파키스탄 홍수보다도 컸으며 2021년 독일·베네룩스 폭우 사태, 2022년 중부권 폭우 사태 등과 마찬가지로 기후위기의 일환이다. 이재민이 무려 3천만명이 발생했다.
50년 안에 모든 문명이 폭망할 것이라는 점에 대해 수많은 학자들이 자연스럽게 이야기했습니다. 최재천 교수님 역시 그런 말씀을 하시지요. 다르게 말하면, 결국 우리 손주들, 조카들은 앞으로 계속해서 이 재난 속에서 살 수밖에 없다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건 우리 인류가 만들어낸 결과이기에, 우리가 변하면 일말의 희망이 있다고 합니다. 물론 변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래프로 확인해보면, 서기 0년부터 GDP, 탄소배출, 인구의 그래프를 보여줍니다. 산업혁명 이후로 급격하게 올라갑니다. 탄소배출에 따라서 온도역시 급상승하고 있습니다. 지금 1.2도 정도 높아져 있어요.
https://www.korea.kr/multi/visualNewsView.do?newsId=148864920
방화 역시 심각합니다. 지구의 허파라는 아마존에서 멈추지 않는 방화가 일어납니다. 브라질은 내정간섭이라고 주장하며 계속 태웁니다. 영구동토층이 녹아내리는 것 역시 심각합니다. 되먹임현상이라고 하죠. 마이크를 스피커에 갖다대면 증폭이 되죠. 되먹임현상인데, 그런 현상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기후학자들이 이야기하기를, 동토층이 녹아내리면 메탄이 나오면서 불이 붙죠. 이산화탄소보다 30배 온실효과가 크다고 하죠. 녹아내리면 가스가 나오고, 더 뜨겁게 되고, 그러면 더 빨리 녹고, 그런 악순환입니다. 그런데 인구와 GDP와 탄소배출 곡선을 보면, 지구로서는 감당할 수 없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긍정적으로 이야기하는 학자들을 못봤습니다. 제러미 다이아몬드 당연히 이야기하죠. 50년 안에 우리가 누리는 문명이 더 이상 기능을 못한다라고 합니다. 이건 보통일이 아니거든요. 물론 개인적 실천을 전제로 해야 하지만, 그런 차원에서 해결되기 어렵다는 겁니다. 교황님도 찬미받으소서에서 이야기합니다. 개인적 해결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겁니다.
「찬미받으소서」와 관련해서 토머스 베리 신부님(1914~2009)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베리 신부님은 이 책에 영향을 가장 많이 주신 분입니다.
지구의 꿈
지구에도 꿈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토마스 베리 신부님 용어대로 <이웃과의 관계> 안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느님과의 관계에서도 살고 있습니다. 즉 영적인 세계가 있고, 우리는 그 안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200년 동안 여기까지만 생각하고 살았는데, 이것만이 전부가 아니었다는 겁니다. 지구와의 관계. 유전적인 관계에 대해서 고민해야 합니다. 우리가 《죄의 수요일》에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라."라고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생각해요? "앞으로 잘 살아서 잘 죽어야되겠네."라고 하지요. 그런데 뿐만 아니라 우리가 어디서 왔는가? 흙에서 왔어요. 흙은 지구죠. 지구는 역사가 있죠, 그 이야기가 우리에게 없었다는 겁니다. 얼마전에 사제연수 첫 번째 꼭지가 《우주 이야기》였습니다. 지구가 태양계의 일원으로 탄생한 게 45억년 전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이전 50억년의 우주. 그리고 태초의 세계. 과학자들이 발견한 빅뱅. 지금도 우주가 팽창하고 있는데, 그 팽창 속도가 빨라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래 전의 우주 역시 한 점에 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땅에서, 흙에서 왔다는 겁니다. 지구에서, 더 넓은 우주에서 바라봐야 하는데, 우리는 그런 관계가 없는 것처럼 살았더니, 결과는 50년 안에 우리가 누렸던 문명이 박살날 것이란 점입니다. 그래서 다시 이 지구와의 관계를 회복시켜야 한다는 겁니다.
S.C.(Spiritual Code)에서 C.C.(Cultural Code)로 연결되는 것은 교회생활, 성사생활, 성경읽기, 기도 등이 있겠습니다. 그리고 S.C.에서 G.C.(Genetical Code)로 연결되는 것은 생태환경위원회, 생태영성학교, 우리농 등을 들 수 있어요. 그 다음으로 C.C.에서 G.C.로 연결되는 것은 법(Ecocide, Biocide ...), 의학, 건축, 교육, 공업, 상업, 농어업 등을 언급할 수 있습니다.
인권에 기초한 법의 확장이 필요한 세상
우리의 법은 인권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바꿔야 합니다. 인권의 바탕을 넘어서는 차원으로 법도 바뀌어야 한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뉴질랜드에 가면 황거누이 강이 있습니다. 뉴질랜드 원주민인 마오리족이 신성시하는 강인대요. 마오리 족은 약 150년의 긴 싸움 끝에 강에 법인격을 부여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즉 강을 어머니로 여기는 그들의 전통이 이긴 겁니다. (뉴질랜드 의회는 2017년 3월 15일 북섬의 황거누이 강에 법적으로 인간의 위상을 갖게 하는 법률을 통과시켰음). 황거누이 강을 둘러싸고 오랜 세월 삶을 영위하던 마오리 부족은 몇 백년전부터, 뉴질랜드 정부에 요구하며 끊임없이 싸웠습니다. 황거누이 강은 우리 엄마이다. 그래서 그 권리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라고 요구합니다.
뉴질랜드 황거누이 강의 권리
그래서 지난 2017년에 인정이 되었습니다. 강이 법인격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처럼 강에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뭔가 침해받았을 때, 권리주장이 되는 식으로 사회가 법을 만든 겁니다. 그래서 강이 무슨 권리가 있을까요? 자유롭게 흘러야 하는 권리, 깨끗하게 유지될 권리가 있죠. 그래야 거기에서 사는 생명들이 살 수 있죠. 금강만 봐도, 평소에는 보의 문을 닫아놓으면, 새들이 와서 산란할 장소를 빼앗는 겁니다. 인간들이 그 주변에서 축제를 한답시고, 그 강을 막아놓으면, 그것은 생명을 죽이는 겁니다. 황거누이 강은 원주민 대표와 정부대표 한사람 씩 임명해서, 그들이 대표로 강의 권리를 대변할 수 있게 합니다.
신앙의 위기의 시대에 삽니다. 스피리추얼 코드도 작동이 되지 않습니다. 교회에서 젊은이들이 떠나고 있습니다. 생태영성학자들은, 우리가 자연과 단절되었기에 이런 결과를 빚을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꿀벌이 육각형에서 태어나는데, 그걸 익히고 또 물려준다고 합니다. 젊은이들은 우리 시절의 로망이 없습니다. 그들이 태어난 곳은 아파트이죠. 성경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이미지는 대부분 다 자연에서 왔습니다. 자연의 원리, 말하자면, 농사, 초원, 나무들, 하늘, 땅, 바다. 이것이 요즘 젊은이들은 스크린을 통해서 보기때문에, 자연스럽게 자연과의 단절이 생긴 것은 아닐까요?
지구법 차원의 변화가 필요
우리가 사는 인간 삶의 형태를 규정해주는 법도 사실은 지구법 차원으로 바꿔야한다는 겁니다. 지구법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우리나라에 지구법학회가 있습니다. 거기서 활동하는 변호사가 있는데, 실질적으로 법제정을 위해 국회의원도 움직이시고 그러니 그 변호사가 말씀하시길, "신부님이 더 열심히 해야 합니다. 성당에서 신자분들에게 계속 얘기를 해야 합니다."라고 합니다.
https://www.lawtimes.co.kr/news/163180
그래서 제가 농사를 지으면서, 참 작년 봄에 , 요때가 제일 중요한 때라고 합니다. 작년 이맘때 물대고 열흘이나 되었을까요? 논과 밭에는 온갖 생명이 바글바글합니다. 추운 겨울을 어떻게 났는지, "오매 찬미받으소서~" 그러다가 저희 옆 논의 논둑이 새카맣습니다. 제초제를 싹 뿌려서 그런 걱ㅂ니다. 이양기라고, 모내기해주는 기계가 있는데, 거기에는 제초제 통이 매달려 있습니다. 벼를 심으면서 동시에 농약을 뿌리는 거죠. 농약이 뿌려진 논을 보면, 거기에는 생명이 하나도 없고, 모만 있습니다. 이끼만 시퍼렇게 깔려있고, 그런 물을 먹고 벼가 크니 어떻겠습니다.
우리가 한우를 맛있게 먹지요. 그런데 그게 농약묻은 벼를 맛있게 먹은 소라는 거 아시나요. 그걸 한우라고 합니다. 그 한우를 포함해서,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우리나라 유통되는 붉은 고기, 즉 돼지와 소를 발암물질로 분류했습니다. 발암물질이 뭔지 아시죠? 검색 2군 발암물질, 'WHO 고기,를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면 압니다. 그런데 그 사이클을 보면 이해됩니다. 글리포세이트(glyphosate) 제조체, 이게 UN지정 발암물질입니다. 소의 세포를 파고든다고 합니다. 몸 속에 들어가면 어떻게 될까요. 왜 이런 일이? 애들은 환장하는 햄과 소세지는 가공육입니다. 발암 1군입니다. 아니 어째 이런 일이 ~~ 아이들 맨날 먹습니다. 없으면 안 먹는거죠. 그런데, 담배, 석면 이런 거나 마찬가지인 1군 발암물질입니다.
한 살림 이런데는 안 그렇습니다. 일반 마트에서 사다 먹이는 것들은 다 그렇습니다. 소 돼지들이 전부 GMO(유전자변형생물체, Genetically Modified Organism)를 먹습니다. 유전자가 조작된 것이죠. 그걸 왜 하죠? 많이 생산하려고, 쉽게 농사지으려고, 대량으로 100% 다 수입곡물 먹습니다. 100% 다 GMO입니다. 우리나라 GMO 표시는 제한적입니다. 선택권이 없습니다. 돈을 가지고 있는 대기업들이 버티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무리 소비자들이 표시해보라고 해봐야 법이 통과되지 않습니다. 수입하는 자들이 대기업이고 그들이 유통하고 돈벌이를 하기에 그렇습니다.
농사를 짓는 입장에서 저는 농약친 논을 들여다보며, "이건 학살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든 걸 다 우상숭배로 치환하는 거 같아서 죄송함 금치 못하겠으나, 그런 면이 분명히 있습니다. 이건 학살입니다. 관행이라고 하죠. 그러면서 제초제, 살충제, 화학비료를 칩니다. 눈에 보이는 건만 그렇지, 미시세계, 미생물의 세계는 더 기가 막힙니다. 이렇게 농사짓는 건 지속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붕괴를 이야기합니다. 제러미 다이아몬드같은 사람이 말입니다.
미생물에 대해 말씀드리면, 건강한 흙 한줌에 100억 마리의 미생물이 산다고 합니다. 그런데, 농약을 치면, 그 미생물들이 다 죽어버립니다. 그 안에서 미생물을 먹고 사는 조금 더 큰 생물들, 또 그걸 먹고 지렁이가 응가를 하면 그걸 또 빨아올려서 건강한 식물이 됩니다. 그런데 화학비료에 제초제를 칩니다. 그렇게는 지속할 수 없습니다. 그건 한계가 있어요. 땅에 있는 생물을 죽여버리면 생명 순환이 안되는 죽은 땅이 됩니다. 이런 생태학살은 평화에 대한 범죄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9년 11월 15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제20회 국제형법학회(AIDP) 총회에서 대기, 토양, 수질을 심각하게 오염시키고 동물과 식물을 대규모로 파괴하는 행위를 "생태학살"이라고 부르며, 그런 행위를 저지른 기업에 대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지적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생태환경에 대한 파괴 행위가 "평화에 반하는 범죄"라며, 행사에 참석한 형법 전문가들에게 모두의 공동체를 보호할 수 있는 적절한 법적 보호 방안을 마련해달라고 촉구한 바 있습니다.
저녁 8시40분 휴식, 8시50분 재개
사회교리를 배우는 이유
사회교리를 배우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러분은 왜 사회교리학교에 오셨어요? 저는 식별력을 키우려는 게 목적인 거 같아요. 사실 2000년 전에 예수님께서 당신이 세상 구원의 메시지를 우리에게 남겨놓고 가셨지만, 지금 우리가 어떤 게 하느님뜻인지 구분하기 어려워졌어요. 그래서 사회교리 원리에 따라서 세상을 살아보자 그런 원리가 있는데, 크게 4가지이죠. 인간존엄성, 공동선, 보조성 그리고 연대성입니다. 그러니까 선거나 투표할 때 어떤 기준으로 하십니까? 공동선 위주로 합니다.
과연 공동선이 투표의 기준인가?
그런데 정말 재미난 일은 그 놈의 투표를 우리는 너나할 것 없이 자기 욕망에다 투표를 한다는 겁니다. 그럴 때는 공동선이니 사회교리의 원리가 들어갈 여지가 없었다는 겁니다. 여태까지는 그랬었죠. 그러나 이제부터 그러시면 아니되옵니다. 사회교리학교를 수료하신 분이라면 그렇습니다. 어떤 후보가 더불어 살아보자. 함께 살자. 인간 뿐만 아니라 미생물까지도 들여다보며, 어떻게 지속가능하게 살 것인가 이런 게 중요해보입니다.
제가 여전에 본담 주임으로 사목할 땐데, 대통령 선거에서 사목회장님이 말씀하시기를 "신부님 저 OOO 찍고 왔어요."라고 하시는 겁니다. "아니 도대체 왜?"라고 물으니, "있잖아요 신부님. OOO보다는 OOO가 제 아파트 값을 올려줄 것 같더군요."라고 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신앙따로, 삶 따로구나 ... 선택의 기로에서는 신앙이고 뭐고, 공동선 인간존엄성 나갈 것 없이 그냥 내 아파트 값이구나라는 사실을 경험했습니다. 사실 농사꾼들도 쉽지 않은 결정을 해야 합니다. 이게 생명과 직결되는 것이지만, 이걸로 돈벌이를 할 수밖에 없으니까 오염에 대해 둔감해집니다. 우리 사회가 이미 돈을 섬기는 사회이기에, 유기농법으로 전환하는 게 쉬울까요? 그 좁은 길을 선택할 수 있겠습니까? 생태적 감수성을 회복하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데, 사실 생물을 죽이고 땅을 죽이는 농약은 그걸 뿌리느라 농부가 먼저 죽습니다. 게다가 그런 농산물을 아이들에게 아무 생각없이 주는 것으로부터 문제이겠으나, 어떨 때는 두 배도 비싸고, 세 배도 비싼 걸 계속 선택할 수 있을까요? 쉽지 않지만, 바꿔 나가야 합니다.
교구에 건축위원회라고 있습니다. 5천만원 이상 건축을 하려면 반드시 교구의 건축위원회에서 심의를 거쳐야 하는데요. 거기에 생태위원회 전문가들이 들어가야 한다고 봅니다. 그렇게 내가 일하는 일터에서 생태적으로 어떻게 전환할 것인가를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합니다. 교회생활을 함에 있어서도, 바꿔야 합니다.
성전(聖殿)의 개념을 넓혀야 한다
성전의 개념을 생각해보면요. 예루살렘 성전만 성전(聖殿)입니까? 노은동 성당도 성전(聖殿)입니다.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은 두" 권의 계시가 있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는 성경이고, 하나는 자연입니다. 온 세상이 성전입니다. 그것을 인간이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습니다. 금을 딱 그어놓는 것, 이게 강도짓입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가장 많이 돈을 버는 집단이 있습니다. 미국 군사복합체입니다. 전쟁을 끝낼 이유가 없습니다. 계속 하면 할수록 돈은 쌓여가고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죽습니다. 이게 강도짓입니다. 성전의 개념을 넓힐 필요가 있습니다. 기도 역시 생태십자가의 길, 생태십계명. 그리고 대림때는 그동안 생각해왔던 주일미사 참례 뿐만 아니라, 지구와의 관계 안에서도 성찰하셔야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생태십계명 검색하면 나옵니다. 그걸 보며 성사생활 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찬미받으소서」 217항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 생태적 회개입니다. 이는 예수님과의 만남의 결실이 그들을 둘러싼 세상과의 관계에서 온전히 드러나도록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느님 작품을 지키는 이들로서 우리의 소명을 실천하는 것이 성덕 생활의 핵심이 됩니다. 이는 그리스도인 체험에서 선택적이거나 부차적인 측면이 아닙니다. 「찬미받으소서」 217항
무슨 소리입니까? 자연을 성전(聖殿)으로 봐야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피조물을 보호하는 일이 그동안 우리가 계속했던 수계 생활, 주일 성당 오고, 미사 참례, 아침저녁 기도하는 식으로 우리를 거룩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쉰들러가 구한 유태인이 천 몇백명이라고 합니다. (나치 독일에게 학살당한 유태인) 600만명과 비교하면 얼마 안되는 숫자라고 할 수 있지만, 그것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겠죠. 제가 농사를 짓고 있는 땅은 유성구 중세동이란 곳에 있습니다. 농사를 짓다보면, 자연의 대단함을 알 수 있게 되요. 사실 자연이 어떤 여건이 되고 조건이 맞아지면 다시 확 살아납니다. 물웅덩이만 파도 물고기가 생긴다는 데, 신기한 일입니다. 그 여건이 맞아지면 죽었을 것으로 여기는 생태가 살아납니다. 그래서 종자를 보존해야 합니다. 토종 종자가 멸종위기입니다. 우리 동네에서는 한걸음더 나아가서 유기농 뿐만 아니라, 유기농 종자를 유기농으로 재배하고 있습니다. 귀한 일입니다. 이런 일을 하는 미친 사람들, 아니 귀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찬미받으소서 61항
61. ... 종말론적인 예언은 차치하고라도 현재 세계 체제는 여러 관점에서 봤을 때 지속될 수 없는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가 인간 활동의 목적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을 멈추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우리 지구의 여러 지역들을 살펴본다면, 우리는 바로 인류가 하느님의 기대에 어긋났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현재 세계 체제는 여러 관점에서 봤을 때 지속될 수 없는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가 인간 활동의 목적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을 멈추었기 때문입니다.
찬미받으소서 67항
67. ... ‘일구다’라는 말은 밭을 경작하고 갈거나 밭일을 한다는 뜻이고, ‘돌보다’라는 말은 보살피고 보호하며, 감독하고 보존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인간과 자연이 서로 책임을 지는 관계를 의미합니다. 모든 공동체는 생존에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풍요로운 땅에서 얻을 수 있으면서도, 동시에 이 땅을 보호하고 후손들을 위하여 이 땅이 계속해서 풍요로운 열매를 맺을 수 있게 해야 하는 의무도 있습니다. ‘땅은 주님의 것입니다’(시편 24[23],1 참조). 그래서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신명 10,14)은 주님의 것입니다. 따라서 하느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면서 절대적 소유에 대한 모든 주장을 물리치십니다. “땅을 아주 팔지는 못한다. 땅은 나의 것이다. 너희는 내 곁에 머무르는 이방인이고 거류민일 따름이다”(레위 25,23).
‘일구다’라는 말은 밭을 경작하고 가는 것이고, ‘돌보다’라는 말은 보살피고 보호하며, 감독하고 보존한다는 의미입니다. 인간과 자연이 서로 책임을 지는 관계이지요. 산업혁명 이후로 인간은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면서 무분별하게 자연을 파괴하는 방식을 고수해왔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인간에게 “땅을 가득 채우고 지배”(창세 1,28)하라고 맡긴 임무는 곧 “그곳을 일구고 돌보게”(창세 2,15) 하신 명령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더 이상 “다른 피조물에 대한 (인간의) 절대적 지배를 정당화”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공동의 집인 지구는 인간이 아닌 하느님의 소유물이니까요. 결국 인간에게 맡겨진 임무는 하느님의 창조 질서를 회복하고 모든 피조물을 잘 다스리고 돌봐주라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후손들에게 아름다운 삶의 터전을 물려주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찬미받으소서 210항
210. 환경 교육의 목표가 점차 확대되었습니다. 환경 교육이 초기에는 학문적 정보, 환경 위기에 대한 인식 고취와 예방에 중점을 두었다면, 이제는 도구적 이성에 근거한 근대성의 ‘신화’, 곧 개인주의, 무한한 진보, 경쟁, 소비주의, 규제 없는 시장에 대한 비판을 포함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 다양한 차원의 생태적 균형 회복을 추구합니다. 곧 내적인 차원에서는 우리 자신과, 연대의 차원에서는 다른 이들과, 자연의 차원에서는 모든 살아 있는 것과, 영적으로는 하느님과 조화를 이루는 것입니다. 환경 교육은 신비이신 분을 향한 도약을 이루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신비이신 분께서는 생태 윤리에 가장 깊은 의미를 주십니다. 한편, 생태 윤리 교육 과정을 재정립할 역량이 있는 교육자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이 연대와 책임을, 그리고 함께 아파하는 마음에 바탕을 둔 배려를 길러 나가도록 효과적으로 도와줄 수 있습니다.
「찬미받으소서」는 생태교육의 목표를 확대 제시(210항)하고 있습니다.
1단계(의식화 단계). 정보공유, 의식화, 환경의식 고취와 위기예방
2단계(사회적 단계). 근대주의 신화, 개인주의, 무한한 진보, 경제만능, 소비주의, 규제없는 시장에 대한 비판
3단계(영성적 단계). 나와 이웃의 생태계와 하느님이 조화를 이루는 것, 생활의 변화
체르노빌 댄스라고 있습니다. 일명 '엘름 댄스(느릅나무춤)'이라고 합니다. 1986년 체르노빌 핵사고 당시 인간의 피해를 줄이려고 인공 구름으로 핵분진을 느릅나무 숲으로 이동시켜서 핵 비를 내리게 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 느릅나무와 뭇 생명들이 인간을 대신하여 죽어갔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를 기억하기 위해 만든 몸기도인 겁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48t20rQNh6Q
규제없는 시장에 대한 무비판이 교리가 되어 있습니다. 물신교회의 교리입니다. 그리스도교의 신자들이죠. 규제없이 시장에 다 맡겨라라고 많이들 이야기합니다. 그게 아니라는 거죠. 교황님이 정확히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면 안된다. 정부에서 규제해야 한다. 공동의 집이니까. 우리는 영성적 단계에서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나와 이웃 차원에서 하느님과 조화를 이루려고 애를 썼지만, 이제는 생태계와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게 쉽지는 않습니다. 근본적으로 바꿔야 하는 것이니까요.
찬미받으소서 211항
211. 그러나 ‘생태 시민 의식’의 형성을 목표로 하는 이러한 교육은 종종 정보 제공에만 머물러 습관의 형성에 이르지 못합니다. 법률과 규범이 존재하고 심지어 효과적인 감독이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그릇된 행위를 규제하기에 불충분합니다. 법 규범이 의미 있는 지속적 효과를 거두려면,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적절한 동기 부여로 이를 받아들여 개인적인 변화를 이루도록 해야 합니다. 확고한 덕을 기르는 것에서 시작할 때에 비로소 사람들이 생태적 사명에 헌신할 수 있습니다. 경제적 이유가 있어서 더 많이 소비하고 지출할 수 있어도 난방을 하는 대신에 습관적으로 옷을 더 껴입는 사람은 환경 보호를 위한 신념과 태도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작은 일상적 행동으로 피조물 보호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은 참으로 고결한 일입니다. 교육이 생활 양식의 참다운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은 놀랍습니다. 환경에 대한 책임 교육은 환경 보호에 직접적이고 중요한 영향을 주는 다양한 행동을 고무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플라스틱이나 종이의 사용을 삼가고, 물 사용을 줄이고,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고, 적당히 먹을 만큼만 요리하고, 생명체를 사랑으로 돌보며,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승용차 함께 타기를 실천하고, 나무를 심고, 불필요한 전등을 끄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인간 최상의 면모를 보여 주는 관대하고 품위 있는 창의력에 속하는 것입니다. 뜻깊은 동기에서, 물건을 쉽게 내버리지 않고 재활용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존엄을 표현하는 사랑의 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11항에서 생태윤리교육과정, 생태시민의식, 생태적 사명을 말합니다. “플라스틱이나 종이의 사용을 삼가고, 물 사용을 줄이고,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고, 적당히 먹을만큼만 요리하고, 생명체를 사랑으로 돌보며,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승용차 함께 타기를 실천하고, 나무를 심자는 것이죠. 의식적으로 검소한 생활 양식을 선택하고, 생태윤리 교육을 통해 생활 양식의 참다운 변화를 이뤄내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서 매달 교구 내의 지구장 본당들을 순회하면서 불휘햇빛발전협동조합 홍보 미사를 할 때도 교육에 가장 신경을 많이 씁니다. 피조물 보호 임무를 수행하는 작은 일상적 행동들이 모여 커다란 변화의 물결을 만들 수 있으니까요. 그러한 행위들이 기도로 봉헌될 수 있다면 지치지 않고 계속 이어갈 힘을 얻습니다. 그러니 신앙인들이 먼저 사소한 일에 목숨을 걸면서 세상에 외쳐야 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생태적 회개를 공동체적 회개로 이어가야 합니다.
VIII. 모든 피조물의 모후 (찬미받으소서 241항)
241. 예수님을 돌보신 성모 마리아께서 이제 이 상처 입은 세상을 모성애로 함께 아파하며 돌보십니다. 성모님께서는, 꿰찔린 마음으로 예수님의 죽음을 애통해하신 것처럼 핍박받는 가난한 이들과 인간의 힘으로 황폐해진 이 세상의 피조물 때문에 지금도 슬퍼하고 계십니다. 완전히 변모하신 성모님께서는 이제 예수님과 함께 사시고, 모든 피조물은 그분의 아름다움을 노래합니다. 성모님께서는 “태양을 입고 발밑에 달을 두고 머리에 열두 개 별로 된 관을 쓴”(묵시 12,1) 여인이시며 하늘로 들어 올려지시어 모든 피조물의 모후가 되십니다. 영광스러운 몸이 되신 성모님께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함께 계시며, 피조물이셨던 분으로서 그 완전한 아름다움에 이르게 되셨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예수님의 온 생애를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셨을 뿐만 아니라(루카 2,19.51 참조), 이제는 모든 것의 의미를 이해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을 더 지혜로운 눈으로 볼 수 있게 우리를 도와주시도록 성모님께 간청할 수 있는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2015년 8월 6일,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 매년 9월 1일을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로 제정하셨어요. 그래서 교황청은 매년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 담화>를 발표하는데요. 천주교 주교회의 생태환경위에서도 매년 담화를 발표합니다. 교회는 연중 대림과 성탄을 매년 지켰는데요. 이제 그 사에 창조시기가 생겼습니다. '창조 시기(Season of Creation)'는 우리 공동의 집(지구)을 보호하기 위해 매년 기도하고 행동에 나서는 교회일치적 성격의 프로그램입니다. '창조 시기'는 오는 9월 1일(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부터 오는 10월 4일(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기념일)까지 열리는데, 그 시기 피조물을 보호하고, 실천하는 우리 모습도 성찰하고, 새롭게 할 수 있는 것을 도입하는 것입니다. 가톨릭 교회는 지금 찬미받으소서 7년 여정을 보내고 있는데, 내년에 우리 생태환경위원회는 7년 여정 하다라는 교육을 해보려고 합니다.
삼척 명사십리 사진입니다. 그 아름다운 바닷가, 지금 석탄화력발전소로 인해서 삼척맹방해변 거기를 아주 그냥 초토화시켜놨습니다. 발전소에 필요한 무연탄을 수입할 항구를 만든다고 박살을 냈습니다. 지구는 공동의 집입니다. 함께 누려야 합니다. 금을 그어넣고 내땅 네땅 할 게 아닙니다. 그런데 물신교회에서는 사유화, 민영화로 꼬드깁니다. '싸다'라고 합니다. 처음에만 그렇습니다. 그런데 민영화는 돈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자연환경, 삶을 고려하지 않습니다. 그 대표적 예가 삼척입니다. 삼척석탄화력발전소는 탄소중립의, 가장 큰 적입니다. 전체온실가스의 30%를 화력발전소에서 내뿝니다. 세계자원연구소(WRI)에서는 탄소중립을 위해서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을 석탄화력발전소를 닫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가 재생에너지입니다. 그런데 석탄발전소를 지금도 짓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물신을 섬기고 있어서 그래요. 물신교회에서 꼬드기는 이론 중 하나가 민영화입니다. 공공이 관리해야 할 부분, 대표적으로 물과 에너지 등을 민영화하려고 합니다. 옛날에 한전에서 공사를 할 때는 저렇게 무지막지하게 하지 않았다는 거에요. 자연환경을 파괴하고, 화력발전소 5km 안에 삼척시가 있습니다. 그 2~3km 안에는 분진 때문에 농사도 못지어요. 배추 사이에 분진이 낍니다. 그런데 가난한 동네라고, 그래도 5만명입니다. 안중에 없어요. 이명박 때, 에너지 사업을 민영화, 불하를 했습니다.그때 계약맺은 게 이도저도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정부에서 탄소중립을 향해서 죽도록 나가도 부족한데, 이런 게 만들어지면 어떻게 하나?라고 하면, 이거 민간에서 한거라서 어떻게 할 수 없다라고 합니다.
온 세상이 다 재생에너지로 생산된 물건을 구입해야 하는 세상이 다가옵니다. 26년부터는 탄소국경세라는 게 있어서, 저기 전기 기업체에서 갖다 못씁니다. 재생에너지로 물건 만드는 세상이 오고 있습니다. 송전탑도 대책이 없다고 합니다. 전기를 끌어와야하는데, 그래서 법을 만들어라라고 작년 9월 법을 국민이 5만명 한달동안 상정해버렸어요. 그런데 지금도 지금도 지지부진합니다. 결정적으로 물신당에서 가로막고 있습니다. 법이 무산되는데는 국회의원 한 명만 있으면 된다고 합니다.
탈석탄법 제정을 위한 시민사회연대는 6일 오전 11시 국회 정문 앞에서 ‘신규 석탄발전 철회를 위한 탈석탄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이렇게 요구했다. ‘신규 석탄발전소 철회를 위한 탈석탄법 제정’에 관한 국회 국민동의청원이 지난달 29일 5만 명의 동의를 얻어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회부되자, 국회 각 정당에 탈석탄법 제정을 본격 촉구한 것이다. - 2022.10.6자 한겨레 신문 기사 중
찬미받으소서 178항
178. 즉각적인 결과에 초점을 맞추는 정치적 계획은 소비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단기적 성장만을 추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는 선거권자들의 이해에 부응하여 소비 수준에 영향을 미치거나 해외 투자를 위협하는 조치로 국민들을 쉽사리 자극하려 들지 않습니다. 근시안적인 정권 수립으로 환경에 관한 장기적 안건들이 정부의 공공 정책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시간이 공간보다 위대하다.”는 것을, 곧 권력의 자리를 장악하는 것보다 과정들을 이루어 내는 데에 더 주의를 기울일 때에 언제나 더 풍요한 결실을 맺게 된다는 사실을 망각합니다. 정치적 위대함은 어려운 시기에 중요한 기본 원칙에 따라 국정을 운영하며 장기적 공동선을 배려하는 것에서 드러납니다. 국가적인 계획에서 정권이 이러한 의무를 다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욕망 때문에, 우리 욕망을 자극하는 4년짜리, 5년짜리 정치인들 ...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찬미받으소서 218항
218. 우리는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의 모범을 기억하며 피조물과 맺는 건전한 관계가 인간의 온전한 회개의 한 차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는 또한 자신의 잘못이나 죄, 악습, 태만의 인정, 그리고 참된 회개와 내적 변화를 요청합니다. 호주 주교들은 피조물들과의 화해라는 의미에서 회개를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이러한 화해를 이루려면 우리의 삶을 성찰하며 우리의 행위와 방관으로 어떻게 우리가 하느님의 피조물에 해를 끼쳐 왔는지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회개, 곧 마음을 바꾸는 경험이 필요합니다.”
찬미받으소서 219항
219. 그러나 개인이 더 좋은 사람이 되는 것만으로는 현대 세계가 직면한 매우 복잡한 상황의 해결에 충분하지 않습니다. 개인은 도구적 이성의 논리를 극복할 수 있는 능력과 자유를 상실하여 결국 윤리 없이 그리고 사회와 환경에 대한 인식 없이 소비주의에 굴복하게 됩니다. 사회 문제들은 단순히 개인적 선행의 총합이 아니라 공동체의 협력망을 통하여 해결해야 합니다. 이 임무는 “인간에게 엄청난 과제이기에 개인적 노력이나 개인주의적으로 자란 인간들이 연합하여 노력을 기울여도 완수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는 결집된 힘과 일치된 노력이 필요합니다.” 지속적인 변화를 이루는 데에 필요한 생태적 회개는 공동체의 회개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 공항이 15개 정도 있다고 하는데요. 대부분이 적자라고 합니다. 청주공항이 30억, 군산공항 30억 해마다 적자라고 합니다. 게다가 군산공항은 미군 소유라고 합니다. 임대료를 낸다고 합니다. 결국 1.3km 떨어진 곳에 새만금 공항을 건설하려는 데, 그 입지선정 미군이 했답니다. 이와 반대로 세계적으로 공항을 없애려는 추세가 있습니다. 유럽의 경우, 2시간 반 고속열차 이내 노선을 다 없애는 법을 프랑스에서 통과시켰다고 해요. 우리나라도 따지면, 인천과 부산, 김포 제주 빼고는 다 닫아야 합니다.
flight shame
비행기를 타고 다니는 것을 창피스럽게 생각하자(flight shame)라는 운동이 있습니다. 비행기를 타는 것이 윤리적으로 옳지 않다고 합니다. 탄소배출량이 기차보다 15배 이상 나온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전혀 반대로 가는 겁니다. 문재인 정권 말기에 우리나라에 10개 공항을 더 짓는다는 계획이 있었는데요. 새만금, 가덕도, 제주도 제2공항 등입니다.
새만금에는 그석에 마지막 남은 갯벌 순화갯벌 한 귀퉁이에 해수가 들어오면서 개벌이 살아나고 있어요. 그 갯벌에 활주로를 깔갰다는 겁니다. 우리나라 세금 들여서 미군공항 또 만들어주는 거에요. 미군하고 우리가 불평등한 협정때문에, 미군이 이거 줘 하면 예알겠습니다. 그래서 참, 거꾸로 가고 있습니다.
대전시청 앞에서 거리 미사를 봉헌하는데요. 대전시는 보문산을 아주 다 까뒤집어놓는다고 합니다. 첫째 셋째 금요일 11시 반에 미사를 봉헌합니다. 뭔가 세우고 부수고 해야 돈이 되고, 뭔가 우리의 욕망을 자극할 수 있기에 계속해서 까뒤집으려고 합니다. 그걸 들여다보고, 이게 정말 반드시 해야하는일인가를 봐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보문동 부근 대사동에서 24년 전에 살았는데요. 지금 아주 난장판입니다. 그곳에 이미 엄청난 콘크리트 건물이 있는데, 그걸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정리하지 않은채로, 또 150미터짜리 탑을 세운다고 합니다. 보문산이 140미터짜리인데 ...
피조물 보호에 대해서
217. “내적인 광야가 엄청나게 넓어져서 세계의 외적인 광야가 점점 더 늘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까닭에 생태 위기는 깊은 내적 회개를 요청합니다. 그러나 신심이 깊고 기도하는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일부는 현실주의와 실용주의를 내세워 환경에 대한 관심을 우습게 여기고 있음도 인정해야 합니다. 또 일부는 수동적이어서 자신의 습관을 바꾸려는 결심을 하지 않고 일관성도 없습니다. 따라서 이들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 생태적 회개입니다. 이는 예수님과의 만남의 결실이 그들을 둘러싼 세상과의 관계에서 온전히 드러나도록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느님 작품을 지키는 이들로서 우리의 소명을 실천하는 것이 성덕 생활의 핵심이 됩니다. 이는 그리스도인 체험에서 선택적이거나 부차적인 측면이 아닙니다.
244. 그날이 올 때까지 우리는 세상에 있는 좋은 것은 모두 하늘 나라의 잔치에도 받아들여질 것임을 인식하여 우리에게 맡겨진 이 집을 돌보는 데에 일치해야 합니다. 우리는 모든 피조물과 함께 하느님을 찾아 이 땅에서 걸어가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시작이 있다면 또 세상이 창조된 것이라면, 우리는 시작하신 분, 창조주이신 분을 찾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노래하며 걸어갑시다! 이 지구를 위한 우리의 투쟁과 염려가 결코 우리 희망의 기쁨을 앗아가지 못합니다.
나눔 주제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나의 노력은?
공동체가 함께 실천하고 있는 것은?
우리 성당에서 발전시켜야 할 분야는?
2023년 6월 2일(금) 밤 9시 30분 종료
노은동 성당 사회교리학교 7강 '환경과 생태계'
강승수 요셉 신부(대전농민회 담당, 대전교구 생태환경위원회 위원장)
찬미받으소서
https://www.bulhuisun.com/7-7.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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