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4일
천주교 대전정평위 위원, 조세종 박사 번역출간
『카스트로, 종교를 말하다』
혁명가와 사제가 종교와 정치를 놓고 벌인 세기의 대화
천주교 대전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중인 조세종 박사가 최근 외국 서적을 한 권 번역 출간했다. 책의 제목은 『카스트로, 종교를 말하다』이며 부제는 「혁명가와 사제가 종교와 정치를 놓고 벌인 세기의 대화」이다.
2016년 12월 22일 우리말로 소개된 이 책은 미국과 맞장을 뜨며 한 시대를 풍미한 쿠바의 혁명군 사령관 피델 카스트로가 남미 브라질의 수사신부와 벌인 종교적이면서도 정치적인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그런 까닭에 인구 1,200만명의 쿠바에서 무려 100만부가 넘게 판매되었으며, 전 세계 32개국에 번역되어 소개되기도 했다.
카스트로, 종교를 말하다 - 혁명가와 사제가 종교와 정치를 놓고 벌인 세기의 대화
피델 카스트로 루즈 (지은이) | 조세종 (옮긴이) | 살림터 | 2016-12-22 |
원제 Fidel & Religion: Conversations with Frei Betto on Marxism & Liberation Theology (1985년)
정가 21,000원 | 반양장본 | 420쪽 | 223*152mm (A5신) | 621g | ISBN : 9791159300271
다음은 출판사와 인터넷 서점에 소개된 소개글들이다.
요약
도미니코회 수사신부 프레이 베토 사제와 쿠바 혁명군 사령관 피델 카스트로가 삶과 신앙, 종교와 정치, 쿠바 혁명에 관해 말하고 있는 책이다. 전 세계 32개국에서 번역 출판된 화제의 대담집이다.
목차
제1부 방문 일지
1985년 5월 10일, 금요일 | 1985년 5월 13일, 월요일 | 1985년 5월 14일, 화요일| 1985년 5월 18일, 토요일 | 1985년 5월 19일, 일요일 | 1985년 5월 20일, 월요일| 1985년 5월 21일, 화요일 | 1985년 5월 22일, 수요일
제2부 인터뷰
1 어린 시절 | 가족과 종교적 배경 | 피델이라는 이름으로 세례 | 산티아고 데 쿠바에서 보낸 초기 몇 년 | 가톨릭 학교에서의 교육 | 종교적 가르침 | 첫 번째 윤리적 가치들 | 마르크스주의 입문
2 몬카다 공격 | 체포 | 투옥과 전쟁 | 길레르모 사르디나스 신부 | 가톨릭교회와 혁명 | 가톨릭교회와의 첫 긴장관계 | 그리스도인들과 공산당
3 미국 가톨릭 주교들과의 대화 | 신앙 교리와 혁명 사이의 조화 | 교회와 신자들의 현재 역할 | 라틴아메리카의 가톨릭교회와 혁명운동 | 해방신학 | 가톨릭교회와 사회정의에 관한 성찰
4 요한 바오로 2세와 쿠바 | 혁명가 예수 그리스도 | 그리스도인과 공산주의자 | 공산주의와 종교 | 혁명의 요건인사랑 | 계급투쟁과 증오 | 쿠바 민주주의와 유산자계급 민주주의 | “혁명을 수출하기” | 라틴아메리카의 외채 위기 | 브라질과의 관계 | 체와 카밀로
저자
피델 카스트로 루즈 (Fidel Castro Ruz)
1926년 8월 13일, 쿠바 올긴 주의 비란에서 태어났다. 산티아고와 아바나에 있는 명문 사립 가톨릭 학교에 다녔으며, 1950년 아바나 대학교 법학부를 졸업했다. 대학 시절 반(反)정치부패 학생조직에 가입해 정치활동을 했다. 1947년 도미니카공화국의 트루히요 독재에 저항하는 무장 원정에 자원했으며, 1948년에는 콜롬비아 보고타 민중봉기에 참여했다. 1952년 바티스타 독재에 저항해 무장투쟁 혁명세력을 조직하기 시작했으며, 1953년 7월 26일 몬카다 무장 수비대를 공격했으나 실패하여 체포되었다. 재판 당시 변론을 담은 책 『역사는 나를 용서할 것이다』는 수만 부가 배포되어 7월 26일 운동의 실행 프로그램이 되었다. 15년형을 선고받았으나 사면을 위한 대중 캠페인으로 1955년 5월 석방된 후 멕시코로 망명, 게릴라 수비대를 조직했다. 1956년 12월 동생 파울, 체 게바라, 카밀로 시엔푸에고스 등과 그란마호를 타고 쿠바 해안에 상륙했다. 이후 2년에 걸쳐 시에라 마에스트라 산맥에서 쿠바 전역으로 투쟁을 확대한 끝에 바티스타 정권을 타도하고 쿠바 혁명을 성공시켰다. 1959년 2월 신정부의 총리가 되어 토지개혁을 실시하고 외국 자본을 몰수하는 등 사회개혁을 단행했다. 1976년 국가평의회 및 각료회의 의장이 되었다. 1965년 쿠바 공산당 중앙위원회를 설립한 이래 제1서기를 맡았다. 2008년 국가평의회 의장직을 사임했으며, 2016년 11월 25일 세상을 떠나 산티아고 데 쿠바에 묻혔다.
[참고] 프레이 베토 Frei Betto
브라질의 사제. 1944년 벨루 오리존치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가톨릭 학생 청년회에서 활동했다. 언론을 전공하는 대학생이던 1964년 군부 독재에 의해 투옥되었다가 이듬해 도미니코 수도회에 입회했다. 철학과 신학 공부를 병행하면서 저널리스트로 일하며 브라질 군부 체제 반대운동을 전개했다. 파울로 프레이리와도 함께 일했다. 1969년 다시 투옥되었다가 1974년 석방되면서 가난한 노동자인 이웃들 사이에서 그리스도교 기초 공동체를 조직하는 데 가담했다. 1980년대에는 니카라과, 쿠바, 중국, 소련,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종교와 국가 문제에 대한 자문 일을 했다. 그 후 무토지농민운동(MST)과 포르투 알레그리에서 열린 세계사회포럼에서 널리 알려졌으며,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실바 정부의 사회 정책과 기아퇴치(Zero Hunger) 프로젝트에서도 자문을 했다. 제3세계 신학자들의 국제 에큐메니컬 협회 회원이며, 해방신학에 관한 열두 권이 넘는 책의 저자로 폭넓은 인정을 받았다.
성균관대 통계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 경영대학원과 충남대에서 철학을 공부했다(철학박사). 협동조합 운동가로 민들레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대전사회적기업협의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소셜경영연구소 소장, 천주교 대전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 대전·세종 희망새물결 공동대표 겸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다. 지은 책으로 『사회적경제의 발견』(공저), 『참 좋은 의료공동체를 소개합니다』(공저), 옮긴 책으로 『평화에 이르는 길』, 『간디, 그리스도교를 말하다』, 『피터 모린, 20세기에 살다 간 예언자』 등이 있다.
책 소개
도미니코회 수사신부 프레이 베토 사제와 쿠바 혁명군 사령관 피델 카스트로,
삶과 신앙, 종교와 정치, 쿠바 혁명에 관해 말하다
-전 세계 32개국에서 번역 출판된 화제의 대담집-
『카스트로, 종교를 말하다』는 브라질의 도미니코회 수사신부 프레이 베토 사제와 쿠바 혁명군 사령관 피델 카스트로의 대담집이다. 1985년 5월, 쿠바의 수도 아바나 혁명궁전에 있는 카스트로의 사무실에 마주 앉은 두 사람은 네 번에 걸친 인터뷰를 통해 삶과 신앙, 종교와 정치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피델 카스트로는 예전에는 결코 이야기한 적이 없는 자신의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를 자세히 들려주었다.
이 책의 영향력
이 책은 인구 1,200만 명의 쿠바에서 100만 부가 넘게 판매되었으며, 유럽 등 전 세계 32개국 이상에서 출판되었다. 처음 쿠바의 산티아고에서 이 책을 팔기 시작했을 때 약 1만 명의 사람들이 책을 파는 광장에 모였다. 높은 가격으로 되팔려는 사재기꾼을 막으려고 경찰이 동원되었을 정도라고 한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혁명과 마르크스레닌주의의 나라, 사회주의 국가의 수반이 종교를 주제로 독점 인터뷰를 허락한 것은 역사상 처음’이었기에, 그것은 쿠바 사회주의에서 종교의 자유를 상징했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현직 공산주의 지도자가 종교에 대해 긍정적으로 말했고, 종교 역시 현실을 변화시키고 국가를 혁명하고 압제를 전복시키며 정의를 구현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음을 시인했던 것으로 세계적인 이목을 집중시켰던 것이다.
“만일 누군가 나를 신자로 만들 수 있다면, 그것은 프레이 베토이다”
인터뷰는 1985년 5월 23일부터 5월 26일까지 4일 동안 주로 밤 시간을 이용해 진행되었다. 어떤 경우에는 밤을 새워 새벽까지 계속되었다. 그 내용은 피델 카스트로의 신앙에 대한 이해와 혁명 과정, 혁명의 승리 이후에 종교에서 비롯된 역사적인 사건과 신앙 의식을 보여준다. 또한 종교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역사, 사상에 이르기까지 그가 생각하고 경험한 내용을 진솔하고 힘 있게 피력하고 있다.
인터뷰가 끝난 후 카스트로는 ‘7월 26일 운동’ 포스터를 베토 신부에게 선물했는데, 포스터 위에 그가 남긴 말이 두 사람의 대담에 담긴 진정성을 대신해준다.
“어떤 사람도 아직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만일 누군가 나를 신자로 만들 수 있다면, 그것은 프레이 베토이다. 나는 이 혁명 초기 포스터를 그에게 바친다. 형제로서, 피델 카스트로.”
카스트로는 무엇 때문에 인터뷰에 동의했을까?
베토 신부가 인터뷰를 기다리며 아바나에 머물고 있을 때 ‘미국의 소리’ 방송이 시작되었다. 미국으로 건너간 쿠바인들이 미국의 지원 아래 쿠바 정부를 공격하는 내용을 담아 방송을 시작한 것이다. 더욱 바빠진 쿠바의 지도자는, 베토 신부가 자신에게 묻고자 하는 질문 내용을 듣더니 한참 후로 미루어질 뻔했던 인터뷰를 위해 기꺼이 시간을 내주었다.
“피델은 무엇 때문에 동의했을까? 나는 질문의 내용이었음을 확신한다. 내가 한 질문들은 이론적인 것이 아니었다. 즉 마르크스주의나 종교에 관한 사변적인 것이 아니었다. 포이어바흐와 레닌에 관한 질문은 없었다. 나의 질문들은 친근했다. 나는 피델의 삶에서 핵심적인 가족들, 교육 및 정치적 사건들에 관심이 있었다. 10년 동안 가톨릭 기숙학교에서 교육을 받던 가톨릭 지주 가정의 아들이 어떻게 공산주의 지도자가 되었나?”
그리하여 두 사람은 종교와 정치는 물론, 요리 얘기부터 라틴아메리카 외채 문제까지 모든 것에 대한 방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신학자의 날카로운 통찰과 정치가의 탁월한 경륜을 주고받다
-“그리스도인과 마르크스주의자 사이의 대화는 신앙의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해방의 실천, 정의의 요구, 공동체적 삶을 위한 이타적인 봉사의 차원에서 열려야 합니다.”(베토)
-“그날 일한 누구에게라도 한 데나리온을 지급하는 것은 전형적인 공산주의 공식대로 필요에 더 합당한 분배를 의미합니다.”(카스트로)
-“가난한 이와 소원해진 사람은 그리스도와 소원해진 사람이라고 이전에 당신이 말했습니다.”(베토)
-“일찍이 당신은 ‘가난한 이를 배신하는 자는 그리스도를 배신한다’고 말했습니다.”(카스트로)
-“우리는 한 사람이 신앙인이면서 동시에 일관된 혁명가일 수 있으며 그 둘 사이에 극복할 모순은 없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베토)
-“‘너의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연대를 실천한다는 의미입니다.”(카스트로)
두 사람의 대화를 읽어나가다 보면, 옮긴이의 말대로 “누가 혁명가인지, 누가 신학자인지 모를 정도로 이해와 화해 그리고 상호 존중이 서로에게, 독자들에게 전달”된다.
“두 사람의 대담은 일반적인 인터뷰를 넘어섭니다. 신학자의 날카로운 통찰에서 나오는 질문과 정치가의 탁월한 경륜에서 나오는 대답으로, 칼과 방패가 마주쳐 불꽃이 튀듯 대화가 오갈 때도 있습니다. 프레이 베토 신부님의 ‘종교가 아편이라고 생각합니까?’라는 송곳 같은 질문에 피델 카스트로의 혁명가다운 답변이 이어집니다. ‘특정한 역사적 조건에서 그 말은 참됩니다. 하지만 종교는 그 자체로 아편이나 기적의 치료제가 아닙니다.’ 그리고 ‘쿠바에 민주주의가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긴 설명과 함께 피델 카스트로는 ‘우리 체제가 훨씬 더 공정하고 훨씬 더 민주주의적이라고 믿습니다’라고 답변합니다. 그들의 말을 따라가다 보면 쿠바의 종교문화와 정치 현실에서 등장한 쿠바 사회주의를 이해하게 됩니다.”
피델 카스트로의 성장
피델 카스트로는 이 책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에 대해 본격적으로 들려준다. 비란의 시골집에서 보낸 어린 시절과 가족 이야기, 피델이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던 일, 가톨릭 학교생활은 마르크스주의에 입문한 대학 시절로 이어진다.
“나는 종교적인 소명이 넘치는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더 많은 능력을 요구하고, 더 나은 교육을 하는 학교에 있었습니다. 나는 스포츠와 지금도 여전히 즐기는 시골여행을 통해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특히 배구, 축구, 야구 등 스포츠를 많이 좋아했습니다.”
“아버지의 땅은 미국인 소유인 대농장들에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설탕 수확 후 비수기에 많은 사람들이 우리 집에 왔습니다. ‘일이 필요해요. 일을 주세요.’ 다른 사람들이 농장의 잡초를 한 번 뽑는 동안 아버지는 두세 번의 잡초 뽑기를 준비해서 일이 필요한 사람에게 일을 주었습니다. 방학 때마다 나는 일을 해야 했습니다. 청소년 시기에 아버지는 나를 사무실에 데려가거나 가게에서 일을 시켰습니다.”
“나는 혁명 이념을 가지고 마르크스 저작들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빈부차이를, 엄청나게 많은 토지를 소유한 가족과 전혀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 사이의 차이를 이미 자세히 알고 있었습니다. 누가 나에게 계급들로 나뉜 사회와 인간의 착취를 설명해주었습니까? 나는 그 일들을 모두 직접 보고 어느 정도 겪기도 했습니다.”
쿠바 혁명 이야기 속으로
피델 카스트로는 베토 신부에게 몬카다 무장 수비대 공격 당시를 비롯해 쿠바 혁명 전후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려준다.
“나는 바닥에 엎드리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나를 죽이려고 한다면, 그대로 총을 쏴야 할 것입니다.” 몬카다 공격 당시 체포되었을 때도 피델은 엎드리지 않고 이렇게 외친다. “쏘지 마. 생각을 죽일 수는 없어”라면서 피델과 동료들에게 향한 총구를 막아주었던 장교 페드로 사리아는 훗날 혁명에 의해 임명된 대통령의 첫 번째 경호대장이 되었다.
시에라 마에스트라 부대에 가입한 사르디나스 신부에 관해 말할 때, 그는 혁명의 동기에 공감한 사제를 동지로 받아들인 지도자이자 수많은 대자를 둔 인자한 대부의 면모를 보인다.
“사르디나스 신부는 군인이 아니라 사제로 가입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매일 함께 목숨을 나누고, 같이 살며 군대와 함께했습니다. 그는 모든 군대들을 따뜻하게 받아들였습니다. 많은 가족들이 나에게 아이들의 대부가 되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것은 쿠바에서는 두 번째 아버지가 되어달라는 말입니다. 사르디나스 신부는 거기서 수십 명의 아이들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나는 시에라 마에스트라에서 많은 대자들을 두었습니다. 농민들은 우리와 매우 밀접한 유대를 맺었습니다. 그것은 우정 이상이었고, 가족 관계와 더 흡사했습니다.”
혁명 동지인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와 카밀로 시엔푸에고스에 대한 애정 어린 회상도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다.
피텔 카스트로, 종교를 말하다
피델 카스트로는 ‘왜 사회정의에 대한 생각이 종교적 신념과 충돌해야 하는가? 왜 그리스도교와 충돌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이런 대답을 했다고 한다.
“나는 그리스도가 위대한 혁명가라고 믿습니다. 그것이 내가 믿는 것입니다. 그의 전체 교리는 보잘것없는 사람, 가난한 사람에 대한 헌신입니다. 그의 교리는 인간에 대한 학대, 불의, 비하에 대항하는 투쟁에 헌신하는 것입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의 정신과 그 정수와 사회주의 사이에 공통점이 많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가 종교와 관련된 여러 사안에 대해 판단하는 관점은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가 어머니와 할머니를 떠올리는 대목도 인상적이다.
“많은 위험들이 따랐던 투쟁 내내, 어머니와 할머니는 우리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모든 유형의 서원을 하셨습니다. 나는 그분들의 신앙을 존중합니다. 그분들은 내게 자신들이 하신 서원과 깊은 신앙에 대해 말했습니다. 이것은 1959년 혁명이 승리한 후의 일이었습니다. 나는 늘 커다란 관심과 존경으로 그 말씀을 들었습니다. 비록 내가 서원의 세계를 나누지는 못할지라도, 나는 결코 이런 일에 대해 논박을 벌인 적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그분들이 종교적 정서와 믿음에서 얻은 힘, 용기, 위로를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해방신학자와 혁명가, 즉 베토와 카스트로는 “모든 사람들의 사회적 평등, 정의, 자유, 그리고 온전한 존엄성 등을 위해서 싸우는” 사람들에 대한 믿음의 길에서 만나고 있다.
“자신들의 해방을 위해 투쟁하는 사람들을 계몽하고 용기를 불러일으키며 신학자들에 의해 체계화되고 있는 신앙을 우리가 해방신학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나는 해방신학 덕분에 오늘날 나의 그리스도교 신앙이 더 깊어지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당신에 대한 나의 존경심이 가장 많이 고무되었던 것은 당신의 깊은 확신과 종교적인 신념을 내가 알아차렸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 혁명가들이 당신이 정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우리가 말한 어떤 것도 의미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참된 마르크스주의자는 거짓된 그리스도인을 신뢰할 수 없고 참된 그리스도인은 거짓된 마르크스주의자를 신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이러한 확신만이 굳건하고 지속적인 관계의 기초가 될 수 있습니다.”
“나는 당신이 들려준 개인사, 신앙에 관한 입장, 쿠바의 혁명과 세계의 여러 문제들에 대한 견해, 그 밖의 다양한 경험이 정치적인 참여를 하고 있는 신자들에게 용기를 주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사는 데 용기를 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이 책이 지금도 여전히 의미 있는 까닭은?
이 책이 나온 뒤, 쿠바 정부는 헌법을 수정했고 공산주의 지도자들은 정당의 법규를 고쳐 대중 정당으로 만들었다. 그에 따라 종교적 신념을 고백하는 사람들에게도 쿠바 공산당의 문호가 개방되었다.
이 책이 출간된 지 20년 후, 베토 신부는 카스트로와의 대담이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야 할 이유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비록 산디니스타 혁명이 실패했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지만, 이 저술은 사회정의를 추구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같은 것을 추구하는 모든 무신론자들과 공산주의자들을 위해서도 참고가 될 자료로 도움을 주었다.
이 책은 좌파들의 선입견과 그리스도인들의 두려움을 일소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그것은 궁핍, 가난, 압제, 불평등으로부터 인류를 해방시키는 것은 초월적인 신앙을 갖고 있든 없든 상관없이 모든 이들의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의무라는 것을 보여준다.”
종교제도와 체제를 넘어
『카스트로, 종교를 말하다』는 긴 시간 번역하고 책을 다듬은 역자의 노고에 힘입은 바 크다. 그의 고민과 추천사를 선사한 함세웅 신부의 묵상이 독서의 의미를 더해준다.
“사상이 울부짖음을 만들어내지 않습니다. 울부짖음이 사상을 만들어냅니다.”
“하느님은 멀고 우상이 더 가깝고, 우상이 더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나라에서 우리의 신학은 어떻게 전개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성경은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묻게 됩니다. 부디 이 책이 오래된 미래를 살아낸 쿠바와 쿠바 인민들을 이해하고 연대하는 데 작은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아울러 정치와 종교, 혁명과 신앙은 결코 둘로 갈라설 수 없으며, 삶 속에 서로 깊은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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