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차 대전 전국사제시국기도회 강론
강론 황용연 신부님(법동성당 주임)
9월 27일은 빈첸시오 아 바오로 성인의 축일이었습니다. 한국교회에서 사제들이 교우들에게 빈첸시오 성인의 성덕을 가르칠 때 그분은 사회적 약자로 통칭되는 가난한 이들에게 사랑을 실천한 성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이해하는 이유는 빈첸시오 성인이 1885년 레오 3생에 의하여 '모든 자선단체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분의 삶은 가난한 이를 돕는다는 자선의 개념을 뛰어넘는 더 큰 삶이었습니다. 그분은 가난한 이의 슬픔과 고통에 동반하셨고 밥 한그릇, 물 한 모금, 옷 한 벌의 나눔에 머무신 것이 아니라, 인간의 고통과 비참을 경감시키기 위하여 일생을 바쳤으며, 그러한 인간악과 구조악을 유발하는 인간환경과 사회환경을 제거하는데 적극성을 내보인 탁월한 사제이셨습니다.
그저께인 27일자 가톨릭신문은 고 김수환 추기경님을 추모하는 국제 학술 심포지엄에 대한 전면기사를 6페이지나 실었습니다. 기사 내용에는 공의회 정신을 구현코자 한 평생을 바치셨고, 가난한 이와 함께 하시고자 한 평생을 바치셨고, 인간의 존엄성을 구현코자 한평생을 보내셨으며, 공동선을 외면하는 사회의 구조악을 시정하시고자 한평생을 보내셨다는 글들이 실렸습니다.
강우일 주교님은 '약자편에서 사회정의를 지킨 참 목자'라고 하시면서 어려운 이를 위한 보호자, 대변자 역할에 앞장서셨다고 하셨습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첫 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에서 교회의 세 가지 본질적인 요소로, '말씀의 선포'와 '성사거행' 그리고 '사랑의 섬김'이 있음을 말씀하시면서, 특별히 가난한 이와 동반하는 '사랑의 섬김'에 소홀해서는 안된다고 말슴하셨습니다.
교황님은 오늘날 사회환경에서 '사랑의 섬김'의 다양한 구조를 언급하시면서 역대 교황님들의 사회교리를 지침으로 제시하시고, 특별히 선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회칙 '하나 되게 하소서' 43항의 말씀을 인용하십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가난하고 비천하며 보호받지 못하는 이들의 권리와 요구를 존중"하려는 노력으로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21세기 벽두의 이 땅, 우리 조국 대한민국을 바라봅니다. 눈 깜빡할 찰나의 순간에 우리 조국 대한민국을 뒤덮어 암흑천지를 만든 신자유주의의 망령이 보입니다. 촛불이 보이고, 용산이 보이고, 눈물이 보입니다. 삶과 죽음이 교차했던 그날의 현장을 보존하고 있는 용산에는 아직도 벽은 시커멓게 그을렸고 유리창은 깨진 채 텅빈 건물만이 음산한 그 몸뚱어리를 드러내고 있는데, 그것을 바라보며 지나가는 버스 속 승객들의 무표정한 얼굴 모습이 보입니다. 그리고는 한편에서 슬픔을 넘어 서러움의 눈물을 보이는 소위 가난한 이들에게 무심한 이 땅의 성직자들이 보입니다.
오늘 우리는 용산 참사 진실규명을 위한 시국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이 미사에서 저는 총리 후보자 정운찬씨가 거론한대로 용산도 해결되어야 하고, 잃어버린 3000쪽도 찾아야 하고, 시국미사도 계속되어야하지만, 그와 더불어, 함께 기도해야할 것이 있으니, 이 땅 우리 조국 대한민국에 하느님 나라를 전하고자 한평생 봉헌의 삶을 사시는 모든 성직자들이 정말로 2000년 전 예수 그리스도를 닮을 수 있는 은총을 청했으면 좋겠습니다. 가톨릭 신문의 강우일 주교님 말씀처럼 한국천주교 모든 주교님들이, 전국의 모든 신부님들이, 500만 천주교 신자들이 모두 김수환 추기경님처럼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고통과 비참을 경감시키기 위하여 일생을 바쳤으며, 그러한 인간악을 유발하는 인간환경과 사회환경을 제거하고자 노력 하였던 사제 빈첸시오 성인처럼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역대 교황님들의 사회교리를 몸으로 사는 그런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500만 천주교 신자들 중 절반이상이 쉬고 있습니다. 이 땅의 그리스도인 절반 이상이 가난한 이들에게 무심하고, 용산의 불행에 무심합니다. 왜일까요? 많은 신부님들이 사회의 구조악과 용산의 비참함에 그리고 가난한 이들에게 무심하시기 때문입니다. 어느 분은 자조적인 말씀으로 자본주의가 사람을 망쳤다고 하십니다. 정말로 그럴까요? 아닙니다.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연옥이든 지옥이든 그곳이 인간이 존재하는 곳이라면, 아비가 무심한 일에 자식도 무심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저는 많은 신부님들이 불쾌해 하시고 자존심 상해하실 제언이지만, 이 미사가 한국 천주교회 모든 성직자들의 회개를 위한 미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신부님들은 신학교에서 '교회는 가난한 이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한다'고 배웠습니다. 서품 때 제대 앞에 엎드려 예수 그리스도처럼 살 은총을 청했습니다. 9월, 순교자 성월도 단말마의 시기에 도달했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 땅의 순교성인처럼 복음의 진리를 위해 생명을 바치는 열정으로 가난한 이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할 때, 정말로 서품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처럼, 김수환 추기경님처럼, 빈첸시오 성인처럼 살자고 결심하고 노력할 때, 이 땅의 가난한 이들이 비로소 우리의 벗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그분들의 삶에 예수님처럼 공감하고 동반할 때, 그날이 오면 용산의 그을린 건물은 새 빛으로 단장될 것이며, 갈아 끼운 유리창은 아침햇살을 찬란하게 반사할 것입니다.
주님! 이 땅의 모든 성직자들이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삶을 살아가도록, 서품 때 주께서 허락하신 그 은총을 새롭게 내려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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