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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평위 창고

[동아일보 1961.1.19 목] 한국원자력은 살아있다 (기사전문)

by 편집장 슈렉요한 2017. 7. 13.

韓國原子力은 살아있다.

동아일보 | 1961.1.19.(목) 석간 4면. 1.20(금) 조간 4면



朴益洙氏의 『韓國原子力의 苦悶』을 駁함

李昌健


昨年十月頃 우리 原子力硏究所를 다녀간 美國 「아모아」 原子力硏究所의 物理部長 「파이훼ㄹ」 博士가 韓國科學界와 우리 原子力硏究所에 대한 自己의 見解를 報告書로 써놓고간 것이 訛傳曲解되어 그間 世人의 耳目을 集中시키고 뜻있는 사람들의 걱정을 사게한 것은 매우 유감된 일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이 誤報는 舊臘에 都下各新聞의 「톱」 記事로뿐만 아니라 某新聞에서는 社說로도 크게 취급하여 마치 原子爐導入에 어떤 黑幕이라도 介在하는 것처럼 떠들썩하였으나 그後 事必歸正格으로 漸次 事理가 判明되어 자못 잠잠하였었다. 그런데 지난 一月七日字 東亞日報 夕刊四面에 朴益洙氏가 다시금 「韓國原子力의 苦悶」이라는 題의 評論을 써서 鎭火後에 또다시 불장난을 하는 느낌을 주게 되었다. 


此際에 氏의 評論을 吟味하고 아울로 疑惑의 대상이 된 다른 問題들에 대한 正確한 解答을 주고자 한다. 


氏의 論旨에 全혀 一理가 없는 것은 아니나 몇가지 도무지 納得되지 않을뿐만 아니라 歪曲된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우선 「파이훼ㄹ」 博士는 「아모아」 原子力硏究所의 物理部長임에도 불구하고 그를 同 硏究所 所長으로 昇格시켜 그의 身分과 그의 權威를 내세워 「파」 博士의 報告書引用에 (그것도 誤傳된) 加一層의 比重을 준 것만 보더라도 그間 連鎖反應的으로 論議된 原子力硏究所의 內幕이 얼마나 歪曲되게 傳하여졌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筆者가 보기엔  「파이휄」 博士의 報告書原文을 正確하게 읽은 사람은 거의 없는 것같다. 例컨대 그의 報告書 첫 페이지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本人은 韓國原子力硏究所에 滯在하는 동안 서울에 散在한다음 四個處의 大學硏究室 및 硏究機關을 訪問하였던 바 (大學과 硏究機關名은 省略-筆者) 大體로 어려운 處地에서 苦戰奮鬪하는 젊은科學徒들의 硏究熱은 무척 높았지만 아쉽게도 그들이 갖고 있는 器具는 極少數이고, 或 있다고해도 대부분은 舊式이거나 또는 지금 쓰고있는 것일지라도 겨우 現狀維持에 汲汲할 程度이다.』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報告書原文에는 他機關의 器具로 되어있는데 그것이 途中에서 原子力硏究所의 施設로 誤傳되었고 다시 進展하여 究極에 가서는 『기껏 導入했다는 게 舊式廢物 或은 古鐵云云의 厚子爐』(朴益洙氏의 말은 아니고)로 轉落해버린 것 같다. 이것은 굉장한 論理의 飛躍이다. 


둘째로 『原子爐에 關한 實際經驗者가 없다.』는 評을 解明키 위함과 아울러 우리의 實情을 얘기하지 않을수 없다. 


우리는 海外의 大學과 原子力硏究所를 거쳐 우리 原子爐의 製作會社인 「제네랄•아토밐」 社에서 正規訓練을 받아 正式免許證을 갖춘 사람들이고 또한 現在 製作會社의 技師들과 함께 爐를 組立하고 있다. 이 原子爐의 建設쯤은 우리의 손으로도 充分히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밖에도 現在 많은 同僚들이 南子爐附隨器具의 設計와 製作에 汨沒하고 있다. 


百步를 讓해서 우리에게 經驗이 없다고 假想해보자. 그러기 때문에 實際 經驗이 있는 者만이 原子爐를 建設 或은 運用할 資格이 있다고 한다면 後進된 이나라 科學界는 언제 어떻게 活路를 찾아야 할 것인가? 


셋째 『旣成化된 原子爐導入問題는 그것이 專門的인 科學技術者에 屬한 問題가 아니라 오히려 社會學者 經濟學者 및 여러 政策家에 屬한 問題였음에도 不拘하고 그것이 몇 意慾的인 專門科學技術者의 一方的인 打算에 의해 決定 …』 云云한 것도 웃으운 이야기이다.


그럼 原子爐의 型과 크기와 그 導入時期의 決定은 政策家中의 名政策家였던 自由黨의 張暻根政策委員長이 했어야 옳았단 말인가? 


朴益洙氏의 글은 科學振興에 貢獻될 만한 評論이 아니라 그속에는 科學者와 技術者를 일부 政治家나 이 方面에 아무런 조지도 없는 人士에게 隸屬시키려는 危險性이 豊富히 內包되었다고 본다. 


어째서 科學者는 科學自體의 問題를 解決지을 수 없으며 또 무슨 理由로 原子爐의 導入問題는 이 方面의 專門的인 科學技術者가 담당해서는 안되고 오히려 社會學者 經濟學者 및 여러 政策家들이 決定해야 한단 말인가?


다음 『新刊雜誌와 藏書가 全無하다』는 말도 역시 中間에서 造作된 것이 分明한데 그 證據는  「파이훼ㄹ」 博士의 報告書에는 

『現在 圖書館의 書籍들은 대단히 잘 選擇되었으나 定期刊行物은 거의 없다』고 되어 있는 것을 보아도 能 히 알수 있다. 勿論 우리에게 책이 부족하고 雜誌도  「파」 博士말대로 거의 없으나 우리의 能力이 不足해서가 아니라는 것은 再言을 요하지 않는다.


또한 報告書에는 『不足한 人員은 長期的으로 海外에 派遣하여 訓練시킬 것이며 短期的으로는 外國專門家를 招聘할 수도 있을 것이다』라는 뜻을 이야기하였는데 왜 何必이면 그밑에 있는 句節만을 拔萃해서 外國人이 招請되지 않으면 原子力硏究所의 運營이 全的으로 不可能한 것같은 印象을 주려고 試圖하였는지 그 理由를 알수 없다. 좀더 健全한 評論을 하기 위하여선 次後로는 原文쯤은 入手해서 精通한 然後에 붓을 드는 것이 옳을줄로 믿는다.


끝으로 合理的인 길을 찾으랴고 漠然한 얘기만을 하지말고 그것이 무엇인지를 한번 提示하는게 評者의 態度가 아닐가?


何如間 누가 무어라던 우리에겐 하나의 信念이 있다. 보리 한알이 죽어야만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이야기와 같이, 過度의 放射能에 被曝되면 生命이 短縮되고 病身이 되고 甚至於는 後孫에게 까지 影響을 미친다지만 우리는 가늘고 긴 生보다는 짧더라도 차라리 굵직한 삶을 指向하며 또 過度의 放射能에 照射되는 것 때문에 結婚後 子孫에게 影響을 주는 限이 있어도 自慰받을 하나의 커다란 구실이 있다. 卽 그것은 – 우리는 原子 씨앗의 아버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實로 『韓國原子力의 苦悶』 중에서는 門外漢들이 事實을 處僞傳達하는 것 때문에 생기는 惡影響이 가장 크고 뼈저린 苦悶이다. 


(筆者 • 原子力硏究所硏究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