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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서와 문헌/대전정의평화위

[20150501] 대전교구장 노동절 담화문. 내 아버지께서 일하고 계시니 나도...

by 편집장 슈렉요한 2016. 12. 26.

2015년 5월 1일

2015년 대전교구장 주교 노동절 담화문 

내 아버지께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요한 5,17)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자신과 가족을 위해 힘든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노동자 여러분, 취업을 희망하며 오늘도 구슬땀을 흘리고 있을 청년 여러분, 갑작스러운 실직으로 인한 아픔으로 힘든 발걸음을 재촉할 취업희망자 여러분께 창조와 육화, 부활로 우리를 향한 사랑을 보여주시며 창조 완성 과정에 우리를 불러주신 하느님의 사랑과 위로가 함께 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1. 노동의 신성한 가치


성모님의 달을 시작하는 5월 1일은 ‘노동자의 날’이며 노동자 ‘성 요셉 축일’입니다. 교회가 세계 노동자의 날에 응답하며 성 요셉 축일을 제정한 것은 1955년의 일이지만, 노동의 신성한 가치에 대한 교회의 확신은 하느님의 계시에 근거를 둡니다(「노동하는 인간」 4항 참조). 하느님의 모습대로 남자와 여자로 창조된 인간이 자식을 낳고 번성하여 “온 땅에 퍼져서 땅을 다스려라”(창세 1, 28)는 하느님의 말씀을 받는 순간, 인간은 땅을 다스리는 노동을 통해 창조주 하느님을 닮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께서는 “내 아버지께서 언제나 일하고 계시니”(요한 5,17)라고 증언하셨으며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까지 힘든 고통을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은 노동의 땀과 고통을 통하여 세상을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에 참여하는 것입니다(「노동하는 인간」 27항). 교회는 노동의 목적은 인간이며, 노동은 생산의 원인이지만 자본은 생산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노동하는 인간」 12항)고 가르치며 노동에서 인간이 그 독특한 존엄성을 얻는다(「노동하는 인간」 1항)고 천명합니다.

 

2. 암울한 우리의 현실


이러한 교회의 가르침에 입각하여 암울한 한국 현실을 바라봅니다. 교육과 직업 훈련을 마치고 일을 하려는 진지한 소망과 공동체의 발전에 책임 있게 이바지하겠다는 각오를 지닌 청년들이 높은 실업률 앞에 희망을 잃어갑니다. 결혼을 미루거나 포기하는 청년이 급증하며, 출산율은 급감합니다. 늘어나는 부채 앞에 신음하는 청년들은 정규직 진입을 꿈꾸며 비정규직의 차별을 감내하지만 상황은 더욱 악화되어 갑니다. 

오랫동안 노동을 생산의 원인이 아니라 생산의 도구로 여겨 온 정부의 경제 정책과 기업의 태도는 노동의 존엄성을 훼손할 뿐 아니라 고용의 기회를 감소시키고 있습니다. 개인 존엄성과 가정생활의 기반인 노동의 기회를 잃은 가장의 깊은 한숨과 고뇌가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비정규직과 정규직 간 임금 및 처우의 극심한 차별이 인간 존엄성을 실현하고 공동선을 증진시켜야 할 노동의 본질을 훼손합니다.

 

3. 연대성과 공동선을 향하여


고용기회의 축소, 대량 해고 등을 통하여 많은 노동자들이 교회가 재앙이며 죄악으로 선언하는 실업이라는 참으로 암담한 비극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회는 사회 전체를 향해 연대성의 정신을 촉구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사랑하는 것처럼 너희도 서로를 사랑하라”(요한 13,34)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교회는 사회 경제적 문제들은 연대성의 형태로 제시되는 도움을 통해서만 해결이 가능하다고 가르칩니다. “사회 경제적인 문제들은 모든 형태의 연대성의 도움에 의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 가난한 사람들 사이의 연대성,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 사이의 연대성, 기업에 속한 근로자들 사이의 연대성과 고용자와 피고용자 사이의 연대성 등이 그러한 것이다.”(「가톨릭 교회교리서」 1941항)

노동조합은 공동선 증진을 위한 중요한 연대활동입니다. 노동조합은 사회정의와 공동선을 증진시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또한 지나온 시간 속에 노동조합의 헌신적 활동이 노동자들의 근로환경을 개선하고 노동의 신성한 가치가 실현될 수 있도록 많은 기여를 했습니다. 노동조합의 활동이 노동이 지닌 사람들을 결합시키는 힘-노동을 하는 사람과 생산수단을 경영 또는 소유하는 사람들이 모두 결합된 공동체를 건설하는 사회적 힘-을, 자신만의 이익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공동선 증진을 위해 긍정적으로 드러내기를 기대합니다. 


한편, 일자리를 마련하고, 공정한 임금을 지불하며, 노동자와 그 가족의 존엄성을 증진시키는 정부와 기업의 노력은 연대성 증진의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기술의 변화로 새로운 일자리를 찾는 사람을 위한 기술교육을 강화하거나 정규직 직원의 수를 늘려 노동자들이 안정된 환경에서 기업과 자신의 발전을 위해 투신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일, 고용주의 부당한 횡포를 통제하는 법적 제도를 마련하는 일, 기업이 공동선의 지평에서 다소의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선택을 하는 사회적 제도를 모색하는 일, 스스로 일어설 힘조차 없는 사람들을 위한 자립 동기를 부여하고 여건을 조성하는 일, 미래 시대의 예비 경영자들에게 공동선의 가치와 의미를 교육하는 일 등에서부터 출발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고향을 떠나 우리나라 산업현장에서 성실하게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인종차별이나 인격 침해, 불리한 계약의 피해를 받지 않도록 그들을 지켜주는 연대성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것입니다. 


나아가 “국가의 주요임무는 노동자와 생산자가 동등하게 그들의 노동의 결실을 즐길 수 있고, 이렇게 효과적으로 그리고 정직하게 노동하도록 격려하기 위하여 안전하게 보장”(「백주년」 48항) 해 주는 데 있습니다. 더불어 국가는 “공동선이 요구하는 형태와 목적에 따라 노동의 공정분배와 배치에 간여할 의무”(「어머니요 스승」 44항)를 지닙니다. 고용과 실업 문제는 국가가 해결해야 할 임무로서 이는 자본이 주도하는 시장에만 의존해서는 해결될 수 없습니다. 정부가 노동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노동자들을 위해 시급히 대책을 마련하는 한편, 노동으로부터 배제되고 소외된 저소득층을 위한 적극적 보호정책과 사회복지 실현을 통해 이들의 삶에 희망을 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4. 가톨릭 기업인들에게


특별히 가톨릭 기업인들을 향해 촉구합니다. 교황청 ‘정의평화평의회’가 2012년 발간한 ‘기업리더의 소명’은 하느님의 창조사업에 동참하는 소명을 받은 기업리더가 인간 존엄성과 공동선에 입각한 경영을 실천할 것을 요청합니다. 세계화와 금융화, 통신기술의 발달, 문화적 변화 등으로 파급되는 전 세계적인 불평등과 자본의 지역화, 정보의 홍수, 이기주의의 심화 및 상대주의와 실용주의라는 윤리체계를 동반하여 공동선의 실현을 어렵게 만드는 현실입니다. 복음이 가르치는 덕과 사회, 윤리적 원칙들을 따라 기업을 경영하는 신자들이 이 시대의 등불이며 소금이 되어주셔야 합니다. 이 시대의 징표가 제시하는 도전과 기회를 분명하게 식별하고, 이를 인간의 존엄성과 공동선을 지향하는 윤리적 원칙에 따라 판단하고 자신이 처한 자리에서 신앙의 가르침과 일치하는 방식으로 원리를 실천하여 하느님과 세상에 봉사하는 기업인이 되어주시기를 바랍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부의 불평등은, 모든 악의 근원”으로서 “진정으로 이 문제들을 해결하기를 원한다면 불평등의 근원을 해결할 필요가 있으며, 이를 위해 시장의 절대적 자율성, 금융 투기 등을 포기하고, 부의 불평등 구조를 없애겠다는 결심을 먼저 해야 한다”(2015.2.7.)고 촉구하셨습니다. ‘부의 불평등 구조’에는 노동과 자본 사이의 심각한 불균형과 ‘노동에 대한 자본의 우위’라는 왜곡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가톨릭 기업인들은 ‘부의 불평등 구조’를 개선하기 위하여 노력하면서 일상의 삶과 기업 경영의 실천을 분리시키지 않고, 서로를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실천하는 경영, 노동자와 가족의 존엄성을 보장하며 노동자들이 자기 자신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데 앞장섭시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재화를 도구 삼아 노동을 통해 하느님을 닮아가는 노동의 인간화가 달성된 하느님 나라를 지금 여기에 건설합시다. 교회 내, 교회와 관련된 기관과 기업들도 가장 모범적인 자세로 이를 실천합시다. 

 

5. 도전 그리고 희망


저항하기 힘든 큰 파도로 밀려오는 시대의 흐름을 어떻게 거스르느냐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신앙이 우리에게 주는 희망과 사랑의 힘이 이기주의를 거슬러 공동선을 선택할 용기를 줄 것입니다. 교회는 이전보다 더 깨어있는 자세로 나눔과 섬김의 삶을 증거 하는 가운데 축적되는 영적 풍요를 여러분과 나눌 것입니다. 우리의 영적 풍요가 증거 하는 신앙의 열매가 시대적 문제인 물질적, 도덕적, 영적 가난을 헤쳐 갈 유일한 등불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카 6,36)는 말씀에 따라 ‘자비’를 주제로 특별희년의 시작을 선포하고, 특별희년 준비에 관한 칙서를 발표하셨습니다. 특별한 영적 은총이 주어지는 성스러운 특별희년의 해를 준비하며 우리 마음에 자비의 씨가 자라나서, 노동을 통해 인간 존엄성이 실현되며 하느님의 창조사업에 즐거운 마음으로 동참하는 사회로 한발 다가서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다시 한 번 연대의 마음으로 모든 노동자와 취업을 준비하시는 분들, 특별히 청년 취업준비생 여러분을 응원합니다. 절망이 여러분을 덮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사랑이 우리 모두를 선으로 이끌어 주시길 기도합니다.

 

 

2015년 5월 1일 노동자 성 요셉 기념일에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유흥식 라자로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