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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미 강연

[20151214] 박래군 강연, 인권을 다시 묻다 (정세미62차, 온양풍기동)

by 편집장 슈렉요한 2016. 12. 29.

박래군 소장의 인권을 다시 묻다


정세미(62차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을 위한 미사) 강연

박래군 '인권중심 사람' 소장

온양 풍기동 성당 2015-12-14(월) 저녁 7:45~9:00




600만명이 서명한 세월호 특별법


세월호와 관련해서 진상규명위원회와 특별법이 만들어진 거 아시죠. 작년에 600만명이 서명을 했어요. 서명운동을 해보면 사실 1년 내내 해도 100만명이 서명하기가 어려운 데, 600만명이 몇 개월 만에 서명을 해주셔서 특별법 제정하는 운동을 벌였고요. 그래서 많이 미흡하지만 작년 11월 7일 특별법이 통과가 되었습니다. 


7개월을 까먹은 까닭


그리고 특별법이 올해 1월 1일부터 법이 시행되도록 한 것인데, 위원이 17명으로 되도록 되어 있는데 위원 임명장 준 것이 3월 9일입니다. 그런데 법은 1월 1일 시행되었다고 하니 2개월을 까먹은 것입니다. 그리고 한시적인 국가기구죠. 특별조사위원회가 일을 할 수 있으려면 예산과 인력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갖추어 진 것이 8월부터입니다. 결국 7개월을 까먹은 겁니다. 게다가 예산도 최소로 주고, 인력도 최소로 주고, 그래서 어떻게든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밝히는 것을 방해하는 느낌이 있습니다. 


법 위에 시행령이 있나


지난 4월 광화문에서 격렬하게 싸우고 그랬던 게 그런 배경이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3월에 갑자기 발표한 시행령안 입법예고가 있었는데, 그 시행령은 특별법 내용도 무력화시키는 것이고 특별조사위원회가 아무 것도 못하게 만드는 거였습니다. 


천주교 대전교구 정의평화위원회에서 주최하는 정세미(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을 위한 미사와 강연)의 제62차 강연이 <인권중심 사람>의 박래군 소장님을 초청하여 온양 풍기동 성당에서 2015년 12월 14일(월) 저녁 7시45분부터 9시까지 열렸다. 


보상금 8억 2천만원에 숨은 거짓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거기에 항의하고 광화문에서 농성하고 있었는데, 그 당시 주장했던 것 중에는 사고현장에 가라앉은 세월호를 인양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까지도 인양계획을 확정해서 발표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세월호를 인양하라고 하였고, 법을 무력화시키는 시행령을 폐기하고 다시 만들자고 요구하는 데, 거기에 특별법이 또 하나 만들어집니다. <피해자 구제와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있어요. 여기에서 보상 등에 관한 내용이 있는데, 이 첫번째 회의를 3월 30일 열고, 4월 1일 대대적 보도를 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내용이란 것이 단원고 희생자 8억 2천만원씩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두 번에 걸쳐 보도자료를 냈습니다. 1차적으로는 4억 2천만원을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많아 보이지만, 사고가 났을 때 보통 교통사고, 화재 등 사고가 났을 때 계산되는 기준에 따른 보상액이 4억 2천만원 정도 인 겁니다. 그런데 이게 너무 적은 거 같아. 그래서 4시간 만에 2차 보도자료를 냅니다. 4시간 만에 8억 2천만원이라고 발표하는 데, 한시간 만에 일억씩 뛰었던 셈입니다. 


성금과 여행자 보험까지 다 합산하는 게 맞나


그러나 여기에는 거짓말이 숨어 있습니다. 거기 1억은 여행자 보험 들었던 것입니다. 배를 타고 가던지, 비행기를 타고 가던지 여행자 보험을 들어야 하는데, 학생들이 다 여행자 보험에 들었던 것이죠. 이게 숨어 있고, 나머지 3억은 국민성금으로 모아졌던 겁니다. 이건 절대 N분의 1로 나눠주지 않는다고 했는데, 국민성금을 갑자기 나눠준다고 4시간 만에 바꾸어서 결국 8억 2천만원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돈까지 다 주고 그러니까 세월호는 이제 잊자고 하는 게 정부의 의도로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부분에 대해서 유가족들은 너무 격분을 했습니다. “돈 갖고 떨어져라!”라고 하는 것 아니냐. 우리를 돈으로 모욕하지 말라고 하면서 삭발 등을 하면서 거센 항의를 투쟁들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시민들도 함께 한다는 마음으로


제가 4-16 연대 상임운영위원으로서 저희가 주도하거나 그런 게 아니라 피해당사자인 유가족들, 생존한 화물기사 등 피해자들과 함께 한다는 게 원칙입니다. 검찰 등에 따르자면 저희가 집회를 주도하고 시위를 주도하는 것처럼 되어있는데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 분들과 함께 한다는 것과 시민들도 마음으로 함께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박래군, 인권중심 사람 소장. 소개말


저는 박래군입니다.「인권중심 사람」은 제가 속해있는.「인권재단 사람」에서 2013년 4월에 만든 센터입니다. 이 센터를 서울에 만들었습니다. 집을 조그맣게 지어서 인권을 위한 공간을 만든 겁니다. 인권중심이라고 하면 어색하고 인권센터라고 하면 익숙하시죠? 그런데 ‘센터’는 영어식 표현이고, 그런데 지방자치단체 등 곳곳에서 인권센터를 만들어요. 그래서 그것과 달리 민간에서 운영하는 인권센터란 의미를 두려고 그렇게 만든 겁니다. 중국에서는 ‘중심’이 센터입니다. 


인권중심 사람 소개 (출처: 인권중심 사람 홈페이지)

인권과 인권을 엮고 문턱이 없어 누구나 찾아오기 쉬운 공간을 만들기 위해 2010년 10월 인권센터 설립운동은 출발했습니다. 정부와 기업의 도움없이 시민들의 십시일반으로 10억을 모아내겠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어떻게 보면 무모해보일 수 있는 이 계획에 많은 사람들이 ‘과연 잘해낼 수 있을지’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큰 돈, 작은 돈 할 것 없이 형편껏 참여하는 주춧돌들이 하나 둘 모이다보니 그 수가 3,000명이 되었습니다. 마포구 서교동에 세워진 인권중심 사람은 시민들과 인권활동가들의 ‘놀터’이고 인권활동을 엮는 ‘이음터’이자 인권활동을 더 크게 만드는 ‘힘터’입니다. 


이름 '래군'에 얽힌 에피소드


제 이름 특이합니다. 올 래(來)자에 무리군자. 사실 이름에 ‘무리 군(群)’자를 쓰는 경우를 못보고, 대부분 임금 군(君)자를 쓰죠. 제 아버님이 데모하며 살라고 이렇게 하신 게 아닌가? 제가 학생운동하다 구속되고 그럴 때 아버님이 화를 내시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정색을 하고 “제 이름을 누가 지었습니까?” 하면, 아버님이 “내가 지었다 이놈아!” 그러면 제가 “아니, 이름에 올래 자에 무리 군자를 쓰는 경우가 어디 있습니까?” 아버님이 어처구니 없어 하시는거죠. 아무튼 아버님 뜻대로 살고 있습니다. 


천주교 대전교구 정의평화위원회에서 주최하는 정세미(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을 위한 미사와 강연)의 제62차 강연이 <인권중심 사람>의 박래군 소장님을 초청하여 온양 풍기동 성당에서 2015년 12월 14일(월) 저녁 7시45분부터 9시까지 열렸다. 


2015년에는 무슨 일이 있었나


2015년에는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먼저 지난 해 우리는 세월호 참사로 국가 전체가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나서 작년 11월 19일에 안전한 사회를 만들고 국가를 대개조하자고 하며 만든게 국민안전처입니다. 그 당시 국민안전처가 만들어졌는데, 메르스 사태가 일어났을 때 국민안전처가 한 게 하나도 없지 않았나요? 메르스가 전국을 휩쓸었죠. 그리고 남과 북이 전쟁 직전 상황까지 갔어요. 만일 남북 전쟁 일어나면 끔찍합니다. 전쟁 걸핏하면 북을 어떻게 공격한다는 데 북은 가만히 있겠습니까? 우리나라 사람들도 많이 죽어요.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친일과 독재를 위한 역사교과서 국정화 시도가 있습니다. 이것은 국민을 바보로 만들려는 겁니다. 2017년이 박정희 대통령 탄신 백주년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아버지 명예를 회복하려는 목적의식이 너무 강해요. 2017년에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한 역사교과서를 탄생시키고 싶은 겁니다. 그래서 2017년도부터 쓰겠다고 하잖아요. 그러면서 국론을 분열시키고 있습니다. 


캡사이신 물대포 직사의 불법성과 과격 진압


2015년 11월 14일에 민중총궐기가 있었습니다. 거기에 차벽, 물대포, 캡사이신이런 것들이 있었고, 많은 분들이 다쳤습니다. 그리고 한달 째 사경을 헤매는 백남기 어르신이 계십니다. 그리고 노동개악을 추진하고 있어요. 더 쉽게 가자는 겁니다. 지금도 일자리가 불안한데, 더 쉽게 해고하자는 겁니다. 평생 비정규직으로 살게 만들려는 것입니다. 그러면 노동자들이 즉 국민 대다수가 정부와 기업의 방침에 굴종해야 합니다. 거기에 대들었다가는 바로 탈락자가 됩니다. 거기에 저항하는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구속이 있었죠. 


유엔의 권고 - 인권 후진국으로 전락?


그리고 12월 5일에 유엔의 시민정치적 권리라는 국제조약이 있습니다. 인권 관련해서 중요한 조약입니다. 그걸 다루는 위원회가 자유권 위원회입니다. 거기에서 우리나라 인권상황이 너무나 후퇴했다는 권고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국제 대망신을 사고 있는 상황입니다. 너희 나라는 국제조약에 비추어 인권상태를 회복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민주주의 국가로 인정할 수 없다는 강도높은 권고였습니다.


국가는 어디 있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디 있나? 국가는 어디 있나?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국가가 제대로 바로 서서 국민들 평안히 살게 해야 하는데, 정부는 하는 족족 거짓말을 하면서 대한민국이 엄청난 위기에 빠져있고, 우리나라의 대다수 많은 국민들 모두가 힘들어하는 상황이 이르른 것입니다.


백남기 어르신에게 쏘아대던 물대포


(2015-11-14 민중총궐기 당시 백남기 농민에게 쏘아대던 캡사이신 물대포)

이 사진을 보시면 백남기 씨가 쓰러질 때 상황입니다. 직사포를 싸서 69세 노인이 쓰러졌습니다. 그 물대포에 캡사이신과 최루액을 얼마나 많이 섞여 있습니까. 쓰러져 있는 노인을 구하려고 보조하는 사람들이 구하는 순간에도 직사포를 쏘아대고 있는 겁니다. 심지어 다른 경우인데 구급차에 싣고가는 순간에도 물대포를 쏘고 그랬습니다. 정신이 나간 거 같습니다. 


왜 11월 14일의 큰 시위가 있었나? 그것이 궁금하다


그렇다면 11월 14일에 왜 큰 시위를 했을까요? 언론에서는 불법폭력시위라는 것만 강조해서 왜 그런 큰 시위가 일어났는지를 잘 모릅니다. 11월 14일에 13만명이나 모여서 그렇게 큰 시위를 했냐면, 그것은 워낙 정부가 들어주지 않으니까 이런 주장들을 한 겁니다. 


일자리, 쉬운해고, 비정규직이 많은 데 해고를 쉽게 하고 평생 비정규직을 만들겠다는 데 반대하고 일자리와 노동을 보장하라는 주장이었고, 농민들은 쌀값과 농산물을 보장하라는 주장, 공약을 지켜라 등등 이러한 여러 가지 주장들을 해왔던 겁니다. 그런데 이런 것을 언론은 보도하지 않고 오로지 시위 폭력성만 강조한 것입니다. 그래서 왜 13만명이나 모여서 왜 분노하고 싸움하는지는 잘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언론의 문제가 매우 심각한 상황입니다.


천주교 대전교구 정의평화위원회에서 주최하는 정세미(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을 위한 미사와 강연)의 제62차 강연이 <인권중심 사람>의 박래군 소장님을 초청하여 온양 풍기동 성당에서 2015년 12월 14일(월) 저녁 7시45분부터 9시까지 열렸다. 


서울 구치소 110일


제가 서울구치소에서 110일 있었습니다. 제가 5년 전에 용산 참사 해결하려고 하다가 또 10개월 수배생활하다가 구속이 되었어요. 그때도 딱 110일만에 보석으로 나왔습니다. 참 희안합니다. 저는 독방에 있었습니다. 독방이 5.04평방미터, 1.5평 정도 됩니다. 저같은 사람이 두 사람 정도 누울 수 있는 곳이에요. 거기에 누우면 머리가 벽에 닿는 정도입니다.  거기에 조그만 화장실 하나 있습니다. 독방만 있는 곳에 있었고, 맨 끝방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루종일 조용한 곳에 있었던 것이죠. 그런데 독방에 있는 사람은 하루에 한시간 혼자서 시킵니다. 어떻게 운동을 시키냐면 콘크리트로 둘러진 벽 사이에 운동장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곳에 수용된 이들은 피자판이라고 해요.


감옥 안에서도 꽃과 생명은 자란다


그곳에서 제가 예전에는 못 보았는데, 그 안에도 풀이 살고 생명이 살고 꽃이 피어요. 어느날 뛰고 그러다 보니까 거기에 분꽃이 있습니다. 조그만 나팔같이 생긴 빨간 분꽃이 피어나더라고요. 그것이 너무 예뻐요. 그런데 보니까 까만 씨가 맺어서 떨어지는데, 이건 그대로 바람에 날라가지 못해요. 감옥 밖으로 날라갈 수가 없어요. 그래서 거기서 또 떨어져서 피어나는 겁니다. 감옥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안에서만 자라나는 불쌍한 꽃인 겁니다. 그래서 그 꽃씨가 더 넓은 세상에서 꽃을 피워줬으면 좋겠다. 그래서 제가 꽃씨를 모았어요. 그리고 여름 끄트머리가 되니까 코스모스가 피어나더라고요. 그런데 거기서 자라는 코스모스는 보통 코스모스가 아니에요. 뭔가 키도 잘달막하고 비리비리합니다. 그래서 그 꽃씨도 갖고 나왔습니다. 제가 ‘자유의 씨앗’이라고 이름을 붙여서 지난 주 재단 후원의 밤에서 20개로 나눠서 20군데 나눠드렸습니다. 


갇혀 있을수록 자유의 소중함을 안다


갇혀있던 사람들은 갇혀있을수록 자유의 소중함을 압니다. 독방에 갇힌 사람. 바깥에서 문을 열어줘야지만 밖을 나갈 수 있어요. 그래서 진정한 문이 아니에요. 문이 있다고 해서 스스로 열고 닫을 수가 없죠. 그렇게 자유가 속박되어 있는 것. 갇혔다는 것. 그것은 일상적인 걸 못한다는 겁니다. 사람을 만나고 싶은데 못 만나요. 단 십분 만납니다. 면회 십분 뿐인데. 면회온 사람과는 그 사이에 견고한 유리벽을 두고 대화를 나눌 수 밖에 없어요. 제 아내와 딸들이 와도 악수를 하거나 끌어 안을 수가 없어요. 그저기계장치 마이크를 통해서 대화를 할 수 밖에 없어요. 그리고 10분이 지나면 전 다시 독방으로, 제 가족은 집으로 돌아갑니다. 이것이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이것이 소소한 일상들이 빼앗는 겁니다. 신체의 자유를 구속하는 것이죠. 


자유를 잃은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


자유를 잃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자유를 잃은 사람들이 굉장히 많아요. 갇혀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해고되어 지금도 고공농성 중인 노동자들도 그런 일상을 빼앗긴 사람들입니다. 세월호 유가족들. 사실 그들의 일상을 빼았겼습니다. 그분들이 참사 이전의 생활과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어요. 사람들은 말합니다. “이제 다 잊고 일상으로 복귀하라.” 안됩니다. 한번 그런 일을 겪으면 상황이 달라져요. 자유를 빼앗긴 겁니다.


감동적인 에피소드


감동적인 사례도 있습니다. 제가 4천원 영치금을 받은 적도 있습니다. 제가 경희대학에서 5학기동안 인권강의를 했습니다. 그 제자들이 온 겁니다. 한번에 다섯명씩 밖에 안되는 데 다섯명이 왔습니다. 그 아이들이 말하길 저희가 가진 돈이 1만원이 있다고 하는 겁니다. 뭐 사드리고 싶은 데 먹고 싶은 거 있냐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필요없다고 너희들 쓰라고 하니까, 자기들이 알아서 하겠다고 하더니 1만원 중 6천원씩 과일 같은 거 먹을 거 사서 넣고, 남은 돈 4천원을 영치금으로 넣어준 겁니다. 영치금이 들어오면 얼마 들어왔다고 표를 주거든요. 그런데 제가 그걸 받고 먹먹해졌습니다. 제가 5학기동안 아이들을 가르치며 했던 말은 이런 거였습니다. “사는 건 굉장히 힘든데 영혼마저 팔지 말자.” 아이들이 그걸 기억하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독방에서 차린 추석 차례상


그리고 그곳에서 저는 추석날에 차례상을 차렸습니다. 어떻게 차례상을 차렸나면, 벽에다 세월호로 돌아가신 분 기억하려고 304명을 기억하자고 해서 이름 써놓은 건 아니지만 기억하자고 하고, 아직 수습되지 않은 아홉분 이름은 써놓고 세월호 참사에서 구조하시다가 돌아가신 민간잠수사나 자원봉사하다 돌아가신 어떤 목사님 등 제가 기억하는 열한분 정도 되는 데 이분들 이름을 써붙여 놓고, 독방이니까 매일 보는거죠. 24시간 보는거죠. 그리고 추석이 돌아왔을 때 저도 차례를 지내야 하잖아요. 그래서 그곳에서 구매할 수 있는 것 구매하고  아침 배식나오니까, 밥을 지을 수는 없으니까 상을 그렇게 차리고, 작년에 돌아가신 아버님, 3년전 장모님 그리고 세월호 참사로 돌아가신 분들을 생각하며 절을 올렸어요. 


세월호 참사의 혼령이 위로를 받기 위해 찾아온다면


그리고 물러나서 눈감고 벽에 기대어 앉으니 세월호 참사로 돌아가신 분들이 제게 오신 거 같아요. 위로받고 싶은 것 같았어요. 그런 경험도 있고 그렇습니다. 그래서 자유가 소중하다는 걸 다시 한번 느끼고 세상으로 돌아왔는데, 다시 보니까 이 세상도 감옥입니다. 더 큰 감옥입니다. 제가 감옥에 있을 때 쓴 편지가 있습니다. 



한겨레21 - 박래군의 끝나지 않은 편지  제1086호 2015.11.09

유의 뜰로 나온 박래군 - 보석으로 석방된 그의 마지막 편지 ‘110일의 여행을 마치면서’…

 ‘더 큰 감옥’에서 다시 나서는 여행길, 당신과 만나길



2015년. 세계인권선언 제정 67주년


기본적인 인권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올해가 세계인권선언이 제정된지 67년이 되었습니다. 세계인권선언은 현대에 들어와서 매우 소중한 선언입니다. 인권이 무엇인지를 알려면 세계인권선언을 봐야 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나라에서 세계인권선언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독재국가라고 해도 세계인권선언을 부정하지는 않는다는 것이죠. 1948년 12월 10일 유엔에서 채택했고, 매년 12월 10일에 인권선언 기념행사를 하고 있고, 천주교에서도 12월 10일이 있는 한 주를 인권주일로 기념하고 있잖아요. 


인류가 한 약속! 잘 지켜지고 있나?


세계인권선언은 전문과 30개 조항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것은 인류가 한 약속인데, 사실은 잘 안 지켜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인권이란 무엇일까요? 인류가족 ‘일부’ 구성원의 타고난 존엄성이 아니고, 인류가족 ‘모든’ 구성원의 타고난 존엄성입니다. 가톨릭에서도 우리 모두 하느님의 모상으로 하느님의 딸아들입니다. 예전에는 왕이나 귀족이나 성직자 같은 특권층들이 있었습니다. 이들만이 특권을 누렸던 것이죠. 여기에 시민들이 저항하여 시민혁명이 일어나면서 인권이 발전해 왔습니다. 그래서 인권은 “왜 너만 특권을 누리냐! 다 같이 특권을 누리자!”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인권은 특권을 부정합니다. 다. 그래서 근대 이후 중요한 사상으로 인권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이 인권은 평등합니다. 양보할 수 없는 권리입니다. 왜냐하면 타고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야기의 배경에는 2차 세계대전 때 너무 많은 사람이 죽은 걸 보았습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고, 이 양보할 수 없는 타고난 권리를 무시한 결과로 당시 엄청난 재앙이 왔고 다시는 그러지 말자는 다짐을 한 것입니다.


무엇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이어야 할까?


그리고 인권이 지향하고 만들려고 하는 세상이 있습니다. 그것은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는 세상, 신앙과 사상의 자유가 보장되는 자유로운 세상 그리고 이것에 더해서 두가지가 더 있습니다. 첫 번째는 국가의 공포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무엇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일까요? 


궁핍하지 않을 권리가 가장 중요하다


인권은 무엇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이라고 하는 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생각 못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억압이나 공포 등을 생각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겁니다. 바로 궁핍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입니다. 가난하면 인권을 보장받기가 어렵죠. 그걸 생존권이라고 합니다. 당연한 겁니다. 먹고사는 의식주의 권리, 노동권리, 그리고 사회적 권리, 교육받을 권리, 건강에 대한 권리 이런 걸 다 인권이라고 힙니다. 무엇보다도 궁핍으로부터의 자유가 가장 중요합니다. 사람들은 폭정과 억압에 대한 마지막 수단으로 반란을 일으킵니다. 그래서 반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법과 제도로 인권을 보장하도록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세계인권선언입니다. 


3세대 인권까지 누리는 세상이 되어야


1세대 - 자유권(시민.정치적 권리)

이처럼 인권은 3세대로 구분할 수가 있어요. 1세대는 시민 정치적 권리입니다. 바로 자유권입니다. (인권선언 3~21조) 이것은 신체의 자유(생명의 자유, 노예제도의 금지, 고문의 금지, 영장주의 공정한 재판, 사생활의 보호, 거주이전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사상, 양심, 종교적 자유, 집회 결사 언론의 자유 등), 그리고 정치적 자유(선거권, 피선거권, 정당 가입 등)로 나눠볼 수가 있고요. 


2세대 - 사회권(경제.사회.문화적 권리)

2세대 권리는 경제 사회 문화적 권리입니다. 이른바 사회권입니다. (선언 22~27조). 이것은 노동의 권리, 의식주의 권리, 건강권, 교육권, 사회보장권, 문화권 등이 있습니다. 


3세대 - 연대권 또는 집단권

3세대 권리는 연대권 또는 집단권입니다. 발전권과 평화권 등으로도 설명할 수가 있어요. 


우리나라 현실은 어떻습니까? 우리나라는 사회권도 잘 인정하지 않고 있어요. 이명박 정부에 들어서는 더 후퇴해서 요즘은 1세대 권리조차도 보장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비정규직 같은 경우에는 아무리 정치적 권리, 선거권을 준다고 해도 투표할 시간을 주지 않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자살율 OECD 1위의 나라


요즘 페이스북 같은 걸 보면 우리나라가 1위 한게 50개 정도 된다고 하면서 안 좋은 것들만 죽 나열한 것도 있던데요. 그 중에서 자살율이 있습니다. 자살율이 점점 올라가다가 2012년도에 조금 수그러들었어요. 그런데 2009년~2011년 사이에는 인구 10만명당 자살율이 30명이 넘습니다. 그러면 하루에 42.6명이 죽는 겁니다. 자살하는 사람만 그렇습니다. 이것이 2013년도에 인구 10만명당 28.5명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러면 하루에 39.5명이 죽는 통계입니다. 그래서 2013년도에 자살로 사망한 인원이 1만 4천 427명입니다. 


매일 30명씩 자살한다


반면 OECD 국가의 자살율 평균은 인구 10만명당 12.1명입니다. 우리나라가 거의 3배에 가깝습니다. 어마어마합니다. 그러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우울증적인 기질 때문에 자살하는 것일까요? 이런 게 아닙니다. 예를 들어 1997년 이전에는 이 OECD 국가와 비슷했습니다. 그러다가 1997년에 갑자기 자살자 비율이 뜁니다. 사람이 준비 안되었을 때 갑자기 구조조정으로 일자리에서 내몰린 IMF때와 2008년 금융위기가 올 때 사람들이 많이 죽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시대의 경제정책이 사람들의 삶의 의지를 꺽은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잘 볼 수가 있어야 합니다. 여기도 10%대에서 보면 2003년에 보면 22%대 이상으로 뜁니다. 노무현 정부가 들어와서도 비정규직 법안이 도입되고 하면서 사람들의 자살율이 커진 것이고, 이명박 정부때 더 심화되었던 겁니다. 그런데 노인층 자살율도 많습니다. 


경제정책이 자살율을 좌우한다


경제성장율이 높아지면 자살율이 떨어지고, 실업율이 높아지면 자살율이 올라갑니다. 직접 영향을 미친다는 겁니다. 빈부격차가 심화되면 자살율이 높아지고, 이혼율이 높아져도 자살율이 높아지고, 출생율이 높아지면 자살율이 떨어집니다. 즉 경제정책이 어떤가에 따라서 삶의 형태가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OECD 회원국 연평균 근로시간


우리나라가 최근에 근로시간 1위를 달리다가 다행히 멕시코 덕분에 2위로 밀렸어요. 다행인가요? 2013년 통계인데 2,124시간이 연평균 근로시간입니다. 그리스는 2,042시간입니다. OECD 평균은 1,770시간이고, 최저 근로시간인 독일은 1,371시간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독일보다  700시간 이상 더 일을 합니다. 노동시간이 짧은 나라, 일 덜하는 나라를 보면, 독일, 네델란드, 노르웨이, 덴마크, 프랑스 순서입니다. 잘 사는 나라일수록 일을 덜 합니다. 그러면서도 잘 삽니다. 왜냐하면 사회복지정책이 구조화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돈이 없어서 사회복지가 안되는 걸까


우리나라가 돈이 적어서 사회복지가 안되는 게 아니고, 돈이 소수에게 집중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회를 위해서 환원되어야 하는 데 그렇지 않습니다. 환원이 되려면 조세정책을 바꾸면 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조세정책은 거꾸로 갑니다. 부자일수록 덜 걷고, 가난할수록 더 세금을 내야하는 구조입니다. 그것도 한계에 다다르니까 담배값을 올린 것은 아닐까요. 조세정책을 선진화시키면 많은 부분 이 악화된 구조를 완화시킬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기득권세력과 재벌들의 이익을 보장해주려고 서민들에게만 세금을 부과하는 형국입니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는 불평등이 심화되어 갑니다. 


인권은 자유와 평등을 추구하고, 연대를 강조한다


인권은 자유를 추구합니다. 평등을 추구합니다. 그리고 연대를 강조합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평등이 무너지고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현실은 인권을 보호한다고 하면서 벽에 쓰는 데 사람 등 올라탄 이미지 설치미술이 있었습니다. 


인권이 필요한 사람은 누구일까?


인권이 필요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인권이 필요한 사람들은 약자들입니다. 인권이 필요한 것은 권력자의 힘을 막자는 겁니다. 약자들이나 부자나 정부의 권력자들과 똑같은 사람들이니까, 함부로 잡혀가지 않을 권리, 노동할 권리 등을 보장해주자는 겁니다. 그래서 인권이란 약자들이 사람답게 살고, 존중받게 하는 수단입니다. 그래서 인권이 제대로 실현되면 우리 사회는 다른 사회가 되겠죠. 


내가 하는 말이 아니라, 유엔이 하는 말이다


제가 지금 말씀드리려는 것은 유엔에서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제가 이야기를 하면 걸핏하면 종북좌파라고 합니다. 그러나 제가 하는 모든 얘기는 유엔에서 권고, 논평 같은 것들입니다. ‘국가보안법을 철폐하라’고 말하면 저를 종복좌파라고 하지만, 그게 유엔에서 하는 말이고, 국제적 상식입니다. 국가보안법 7조가 생각할 자유까지 억압합니다.


국가보안법 제7조(찬양·고무등) ①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의 활동을 찬양·고무·선전 또는 이에 동조하거나 국가변란을 선전·선동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혹시 유엔도 좌빨인가? 


유엔에서 차벽은 인권에 반하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물대포를 쏘지 말라고 합니다. 물대포가 상당히 위험하다는 것이죠. 독일에서도 물대포를 쏘아대다가 사람이 맞아서 다친 적이 있어서 그 뒤로 금지하고 영국도 따라서 금지를 했습니다. 물대포는 인명을 살상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청와대 앞에서도 집회시위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백악관 앞에서 대통령 궁 앞에서 시위들을 합니다. 그런 것을 유엔이 정하고 있는데다가 우리나라는 유엔 가입 당사국이니 유엔 기준대로 하면 엄청 인권후진국입니다. 그런데 제가 이런 얘기한다고 좌빨로 몰립니다. 


우리는 무엇을 보았는가?


이제부터는 세월호 얘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선원들을 미리 빼내고, 승객들은 구조하지 않았습니다. 6분이면 모두 탈출할 수 있다고 하는데 선원들만 구했고, 승객들은 죽었습니다. 유가족들이 정말 분노한 것은 함정 몇백척, 헬리콥터가 몇십대, 전문잠수사 백 몇십명 구조작업 벌인다고 언론에 나고, 전원구조 오보도 나왔어요. 최대 구조작전을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유가족들이 당시 실종자가족들이죠. 그분들이 배타고 가보니 아무 것도 없어요. 단 네 번 2014년 4월 16일날 잠수를 했어요. 그리고 민간 잠수사들 철수 시키면서 구조작업 못하게 했어요. 그리고 언딘이 와야 한다고 했어요. 가장 중요한 이틀을 허비하면서 수장을 시켜버렸습니다. 우린 그것을 생중계로 보았습니다.  


"축하한다"는 말에 담긴 서글픔과 참혹함


제가 사건이 났을 때 너무 힘이 들었습니다. 하루하루가 너무 힘든데, 열흘 쯤 지나 팽목항에 가보고, 진도실내체육관에 갔습니다. 거기서 기가 막힌 현장을 보았습니다. 아이의 시체를 건져올린 거잖아요. 그러면 그 아이를 수습해서 안산으로 올라와요. 그렇게 떠나요. 그러면 시신을 못찾은 아이 부모들이 축하한다고 합니다. 말이 됩니까? 축하한다는 것이.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2014년 5월 9일입니다. 5월 8일 KBS에서 엉터리 보도한 걸 항의하다가 KBS에서 안 들어주니까 청와대에 가서 농성을 했습니다. 이 분들은 평범한 직장인들입니다.  한번도 농성 같은 거 안해봤던 사람들입니다. 저희들은 그분들이 추울까봐 따뜻한 물과 담요 같은 걸 가져다 주었어요. 거기서 하룻밤을 꼬박 새고 5월 9일 낮에 생존학생들이 처음으로 유가족들 앞에서 인사를 합니다. 뭐라고 하는 줄 아십니까? 대표가 “저희만 살아와서 죄송합니다.” 


저희만 살아와서 죄송합니다


생존자가 그 지옥에서 탈출한 생존자가 유가족들 앞에서 죄송해서 고개를 못 들고 유가족들은 미수습자(실종자) 가족 앞에서 고개를 못들고. 그게 말이 됩니까? 사실 거기서 살아나왔다고 해서 그 트라우마가 평생이 갑니다. 


그리고 탑승자 476명. 이 탑승자도 몇번 수정이 되었습니다. 정확하게 관리가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안산 단원고 학생은 325명이었고 교사는 14명이었습니다. 이중 학생 250명이 죽고 교사 12명이 죽었습니다. 일반인 탑승자는 104명이고, 선원이 33명, 차량이 180대 그리고 화물 1,157톤이 있었습니다.


탑승자 476명

단원고 2학년생 325명, 교사 14명

일반인 탑승자 104명

선원 33명, 차량 180대, 화물 1,157톤


생존자 172명

사망자 295명

실종자 9명

안산 단원고 생존자 77명

안산 단원고 희생자 262명


실종자 9명을 포함해서 304명을 사망자로 볼 수가 있어요. 올해도 추자도 쪽에서 낚시배가 사고났습니다. 상황은 똑같습니다. 어디 가서 사고 난지도 모르는 엉터리같은 구조가 있었어요. 우리는 세월호 사건을 잊지 말자고 말합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우리는 304개의 사건으로 기억해야 합니다. 


304개의 참혹한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2만명이 죽은 하나의 사건으로 기억한다면 우리는 피해자의 고통을 전혀 헤아리지 못하는 것이다. 한 사람이 죽은 2만개의 사건으로 기억해야 한다.’ - 기타노 다케시 


위의 말처럼 우리는 세월호 참사를 304명의 그 한명 한명이 다 죽은 304개의 사건으로 기억해야 합니다. 기타노 다케시는 일본 영화감독 겸 배우로 굉장히 유명한 분입니다. 그러니까 단일한 하나의 사건 아니라 한 사람이 죽은 304개의 사건으로 기억해야 한다,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읽어보세요


『금요일엔 돌아오렴』이란 책이 있습니다. 한번 읽어보세요. 다 단원고 학생들이지만 다 다릅니다. 아이들과 맺었던 관계들, 그들이 가진 추억들이 다 달라요. 어떤 경우는 너무 속 썩혔는데, 잘 해주지 못한 채 떠나가게 된 것도 다 남는 거고요. 이런 304명을 각각 기억할 때 다시는 세월호 참사와 같은 비극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자식을 팔아서 돈을 번다고? 적반하장이 일상인 세상


그런데 우리 사회는 그렇지 않습니다. 주로 정부 여당 쪽 사람들이 세월호 참사로 가족과 자식을 잃은 사람들을 모독하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자식을 팔아서 돈을 더 벌려고 한다. 시체팔이다. 유족충이다.” 그런 말까지 들었습니다. 새누리당 의원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세월호 참사를 조류독감에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엄마부대봉사단의 엄마들은 정말 엄마 맞나?


우리는 대통령의 7시간을 궁금해 합니다. 우리는 대통령의 사생활을 궁금해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죽어가는 재난 참사 때 정부가 정책을 가지고 착착 움직여야 하는데, 최고의 자리에 있는 대통령이 이 모든 부분을 지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다른 나라에서 비행기 재난 사고 같은 대형재난이 일어날 때 대통령이 거의 10분 안에 나타나서 국민들을 혼란에 빠지지 않도록 지휘하고, 정부의 역량을 총결집해서 재난 구조에 힘을 쏟는 겁니다. 그런데 7시간 동안 침묵하고 있다가 나타나지 않았다가 엉뚱한 소리를 합니다. “"학생들이 구명조끼를 입었다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이 드냐"라고 했어요. 이미 배는 다 기울었습니다. 그러니까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잘 따져서 다음에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해야 하는 데 그러지 않습니다. 게다가 큰 상처를 입은 유가족을 보호해야 하는데, 유가족들이 너무 힘든데, 엄마부대 봉사단이란 사람들이 (만평. 진상규명? 지겹다 ... 누가 죽으라 그랬어?) 이런 말을 진짜로 들었어요. 세월호 유가족들이 시위하는 현장에 와서 일베들이 와서 폭식투쟁 통닭먹고 피자먹고 하듯이 엄마부대 봉사단이란 사람들이 이런 말을 했어요. 엄마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겠습니까? 


세월호 유가족들이 진상규명을 포기한다면


만일 세월호 유가족들이 진상규명을 포기하고 책임자 처벌을 포기한다면 어떨까요? 이 분들이 다 토론해서 만드는 겁니다. 격론을 벌여서, 초기에는 회의도 잘 안되었지만 격론을 벌여서 정한 게 진상규명이고 책임자 처벌입니다. 그래야 다시는 우리 아이들과 같은 억울하게 죽을 아이들이 없어질 것 아닌가.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자는 겁니다. 도리어 그분들에게 우리 국민들이 감사해야 합니다. 그냥 보상만 받고 포기하면 혼자 편할 수도 있습니다. 거리에서 농성하며 조롱당하지 않아도 되지만, 그걸 모든 걸 감내하며, 아이들이 준 숙제라면서 농성하면서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안전사회 건설을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증언하도록 초대받고 있다


강우일 주교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오늘 세월호 희생자들을 기억하며 그들의 죽음을 둘러싼 불의와 의혹과 고통에 대해 침묵하지 말고 살아있는 증언을 하도록 초대 받고 있다. (세월호 참사 1주기 추모미사 강론의 마지막 부분)


불의에 침묵하는 것은 불의에 협조하는 것이다


불의에 침묵하는 것은 불의에 협조하는 것이다. 라고 하십니다. 우리나라 국민성을 말하기도 하죠. 냄비근성이라고, 울고 불고 하다가 옛날 이야기하듯이 한다는 거죠. 그렇게 하면 반복이 됩니다. 그래서 세월호 참사를 똑바로 기억하는 것, 불의한 세상을 똑바로 증언하는 게 중요합니다. 우리 사회는 매우 위험합니다. 핵발전소도 위험합니다. 울산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사는 도시. 국민소득 4만불인 잘사는 도시입니다. 그런데 거기 핵발전소 하나 터지면 살아남을 사람이 없어요. 언제 터질지 몰라요. 노후 원자로 계속 수명연장하며 쓰고 있는데, 계속 사고가 납니다. 또한 핵발전소 뿐만 아니라, 화학공업단지에 구미 불산가스 누출사고 때보다 더 독한 화학물질이 어떻게 보존되고 관리되는지 몰라요. 우리 사회는 안전을 도외시하고 있습니다. 지하철에서도 계속 사고가 났습니다. 지하철 승무원 한명만 배치하면 사고가 나는 겁니다. 세월호 참사도 안전관련 규제를 자꾸 완화해서 생긴 겁니다. 기업이 돈벌이를 하게 하려고 생긴 탓이죠. 


4.16 연대는 무슨 일을 하나


4-16연대는 유가족들, 피해자들과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작업이구요. 저는 이 모든 운동을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그리고 안전사회 건설을 4-16운동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4-16 운동은 우리 사회의 가치를 바꾸는 작업입니다. 지금 사회는 돈이 더 중요한, 돈을 떠받드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경쟁에 내몰리는 사회입니다. 경쟁에서 이기면 다 얻는다고 배웁니다. 세월호 참사에서 교훈을 얻어 이 세상을 바꿔야 합니다. 아래로부터 근본적으로 바꿔나가는 세상이 되었으면 합니다. 


스탠리 밀그램의 복종 실험


영상을 하나 보겠습니다. 스탠리 밀그램의 복종실험이란 것입니다. (제대로 실행되지 않음) 사람을 실험한 겁니다. 맨 처음에는 15볼트부터 시작하는가 그래요. 문제를 학생에게 주고, 학생을 실험하는 겁니다. 문제 하나 낼때마다 한단계씩 올라갑니다. 15볼트, 30볼트, 죽죽 올라가다가 200볼트 .. 나중에 450볼트까지 올라갑니다. 그런데 450볼트를 누르면 죽게되어서 안 누를 것 같은데, 거기 참가한 사람들 중 65프로가 누릅니다, 35프로가 거절한다는 겁니다. 


한나 그랜트의 명언 '악의 평범성'


독일 아히히만이 유대인들을 왜 가스실에 넣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것은 그게 법이고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실험에서도 그런 것입니다. 할 수 있다고 계속 말하는 겁니다. 그러자 망설이던 사람들도 누른 겁니다. 악의 시스템에 의해서 평범한 사람도 바뀐다는 겁니다. 그래서 한나 아렌트라는 정치학자는 ‘악의 평범성’이라고 말했어요.


나치가 유태인 600만명을 살해했습니다. 그런데 아히히만은 법대로 한 것입니다. 위에서 시켜서 한 것. 합법적으로 이렇게 하면 사람까지도 죽인다는 겁니다. 우리가 저것을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타인의 입장에서 판단 즉 공감해야 하는 겁니다.


마르틴 니믈러라는 독일 신학자 루터교 목사는 강제수용소에 갇혔다가 극적으로 풀린 분인데, “그들이 왔다”는 유명한 시가 있습니다.


남의 고통받는 것을 외면 침묵할 때, 결국 나도 그런 꼴을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게 아니고, 타인 고통이 나의 고통입니다. 오늘날의 신자유주의는 무서운 겁니다. 사람들의 생각을 완전히 바꾸어버렸습니다. 인간적인 정을 없애고 있어요. 남을 보살피고, 남을 돌아보고 도우면 넌 패배하고 경쟁에서 뒤쳐진다고 자꾸 강요를 하는 세상이죠. 사람들이 그런 것을처음에는 거부하다가 이젠 당연하게 받아들여요. 

비정규직 도입될 때 사실 모든 노동자들이 나는 여기서 제외되었으니까 나의 일이 아니지 이렇게 하다가 지금까지 온 겁니다. 내 일이 아니면서도 그 때 함께 연대하지 않아서 지금 비로소 나까지도 자리가 불안정해진 겁니다.


스데롯 극장이란 게 있습니다. 이스리엘의 스데롯이란 언덕입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이 내려다보이는 곳입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의 가자지구 같은 곳을 폭격하면 이걸 망원경까지 가져와서 보는 겁니다. 폭격이 목표에 명중하면 박수도 치고 환호도 합니다. 그런데 폭탄이 터지면 건물만 파괴되는 게 아니라 사람도 죽어요, 폭탄에 눈이 달린 게 아니어서, 죽이려는 사람 외에도 어린아이, 여성, 노인 할 거 없이 다 죽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인들은 그걸 보고 박수를 칩니다.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자기들은 2차대전때 유대인 학살로 600만명이 죽었는데 이제는 그런 식으로 팔레스타인인들을 죽이는 데 환호를 합니다. 그것은 자신들의 과거를 잊고 있는 겁니다. 잘못 기억하고 잇는 것입니다. 



우린 아프고 슬픈 사람들의 손을 잡아줘야 합니다. 그렇지 않는다면 힘들고 어려운 세상을 벗어날 수 없는 겁니다. 우리 가족이 언제 세월호 참사 같은 끔찍한 일을 당할지 모르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함께 하는 수 밖에는 없는 겁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도 작년에 방한하셔서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고 하셨습니다. 인권은 몫 없는 이들의 몫을 찾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위기사회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이걸 똑바로 봐야 합니다. 이걸 덮고 잊는다면 더 끔찍하고 더 슬픈 상황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래서 지금같은 상황일수록 세월호 참사를 고통스럽지만 더 기억하고 함께 할 길을 찾아봐야 할 것입니다. 정부 여당이나 종편이 말하는 데 속지 말고 함께 할 길을 찾아봐야 하겠습니다. (끝) 



위 기록은 필자의 기록을 재정리한 것이므로 강사의 말씀과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박래군 소장님의 특강은 2015.12.14(월) 저녁 7:45 시작하여 9경 끝났다.



충남 아산 온양풍기동성당 http://cafe.daum.net/DJpoongi 

온양 풍기동성당은 충남 아산시 외암로 1562-8번지(사무실 541-3070)에 자리잡고 있다. 2011년 온양 용화동성당에서 본당이 분리되었지만, 관할구역 내 적당한 임대건물이 없어 독립 미사를 봉헌하기가 어려워 모본당인 용화동성당 1층 강당에서 미사를 봉헌한 바 있다. 새롭게 건축된 성전은 2012년 4월에 신축공사를 시작해 같은 해 12월 23일 교구장 유흥식 라자로 주교님의 집전으로 입당미사를 봉헌한 곳이다. 


사진은 2012년 12월 23일 입당미사 봉헌 당시 사진 (출처: 대전교구 홈페이지 주교님 갤러리)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밤이었고, 온양 풍기동 성당은 아름다웠다. 그런데 성전 입구에 비치된 풍기동 주보 제248호(2015.12.13 대림 제3주일)를 보니까 본당부채현황은 9억5천6백30만원 정도였다. 또한 풍기동 성당의 평일미사는 월 새벽6시, 화-목 저녁 7시, 수-금 오전 10시였고 주일미사는 토요일 오후 4시(초등부) 7시(중고등부), 주일 10시(교중) 저녁 7시(청년) 등 1주일에 9번의 미사를 올리고 있었다. 성직자는 주임신부 권세진(알베르토)만 임직하고 계시는 작은 성당인 셈이다. 다음은 특강당일인 2015년 12월 14일(월) 저녁 7시 38분경 찍은 사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