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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미 강연

[20160620] 최병성 목사의 쓰레기 시멘트의 비밀 강연 ② (송촌동 성당)

by 편집장 슈렉요한 2017. 1. 3.


초록별 생명평화 연구소 최병성 목사 강의 (2) 


길 위의 예수와 세상과 소통케 하는 그리스도인



정세미(72차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을 위한 미사) 강연

대전 송촌동 성당 2016.6. 20(월) 저녁 7:40~9:00

천주교 대전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주최



천주교 대전교구 송촌동 성당에서 천주교 대전교구 정의평화위원회가 주최하는

정세미(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을 위한 미사) 제 72차 강연이 열렸다.  


세상에서 가장 놀라운 두 개의 단어


세상에서 가장 놀라운 두 개의 단어가 뭔지 아세요. 첫번째는 구약에 나오는 창조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창세기 1장 1절입니다. 그리고 두번째는 바로 '복음'입니다. 


내가 믿는 하느님은 온 우주를 만드신 창조주 하느님이십니다. 그러면 과연 여러분은 창조주 하느님을 믿고 계십니까? 성경에 써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겠죠. 우리 개신교에서의 논란은 개신교의 창조학회라고 하는 데서, 성경대로 보면 그것이 젊은 지구인가 아닌가에 대한 논쟁입니다. 한 쪽에서는 지구가 6천년 밖에 되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해요. 


    개신교 인터넷신문 뉴스앤조이 [지구나이 논쟁 관련 보도]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우리가 노력해야 하는 일은 지구를 지키려는 노력이란 점입니다. 하느님이 언제 만들었는가에 대해 싸우는 것도 지구를 소중하게 지키며 싸우려는 것인데 말입니다. 마태오 4장 17절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여러분은 회개하십니까, 반성하십니까?

 

그때부터 예수님께서는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기 시작하셨다. (마태 4,17)


여러분은 주로 어떤 내용으로 회개하십니까? 기도 조금 밖에 못한 거, 조금 불평한 거 그런 겁니까? 그런데 그런 것들은 회개가 아닙니다. 반성입니다. 예수님이 오늘 말씀하시는 회개는 우리의 삶의 가치관을 하느님의 나라의 방향으로 바꾸라는 겁니다. 내 삶과 가치관을 예수님의 가치관 하느님의 가치관으로 바꾸라라는 것입니다. 


  해방신학에 대한 탄압으로 신부직을 포기하고 평신도가 된 레오나르도 보프 


해방신학자 레오나르도 보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회개란 경건한 종교의식에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 앞에서 새로운 존재양식에 있는 것이다." 성경 지식을 더 많이 알고 있다는 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공부를 더 많이하거나 적게 하거나 하는 게 아닙니다. 더 많이 갖고 더 높아지려고 싸우는 게 아니라는 것이죠.  


 독일 신학자 몰트만(Jurgen Moltmann, 1926-?)은 희망의 신학이라는 종말론을 제창했다.


희망의 신학자 몰트만은 말하길, "현대 문명 가운데서 '성화'란 무엇보다 모든 피조물 안에 있는 하느님의 신비를 재발견하는 것으로서, 폭력에 의해 생명이 마음대로 조작되고 지구가 파괴되는 것을 막는 일"곧 인간의 무책임한 파괴로부터 하느님의 피조물들을 지키는 것이 성화라고 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오늘날의 거룩한 삶입니다. 하느님은 오늘의 우리에게 거룩한 삶으로의 동참하라고 초대하고 계십니다. 몰트만은 또, "교회가 피조물의 대변인으로 이해한다면, 약한 피조물의 고통을 공적 저항을 통해 함께 외쳐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어요. 


골프장 건설은 4대강 사업이나 핵발전 사업에 버금가는 환경파괴다. (사진출처. 강원도 골프장 범대위)



새로운 노아가 필요한 자리


오늘날 이 시대에 새로운 노아가 필요한 자리는 어떤 자리일까요? 숲에 있는 나무들이 잘려나갔습니다. 왜 잘렸습니까? 뭐 만들려고? 골프장을 만들려고 잘랐어요. 하느님이 만드신 운동 중에 가장 기뻐하지 않는 운동은 골프라고 합니다. 골프장 건설은 숲을 파괴하고 수많은 생명이 사는 창조와 생명의 공간을 오염시킵니다. 골프장에는 잔디를 심지만, 농약을 뿌리지 않으면 지렁이가 올라와 잔디 가꿔지지 않는다고 해요. 게다가 가물면 물을 뿌려야 하는데요. 생명의 숲을 파괴하고 수질을 오염시키는 것입니다. 골프장 건설은 생명적 관점에서 옳은 게 아닙니다. 


참고 `골프장 건설 전면 중단' 선언할 후보 없습니까?  2012-12-11 한겨레 김성만



후쿠시마 원자력 사고 이후에 전세계는 탈핵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현재 원자로 43기를 가동 중이며 2기를 건설 중이고, 후쿠시마 제1원전 6기를 포함해 16기 원자로를 영구폐쇄 했으며, 1기는 장기 폐쇄한 상태이다. 가동 원자로만 놓고 본다면 미국 99기과 프랑스 58기에 이은 일본 43기. 핵발전에서 일본이 세계 3위이다. 출처. IAEA 자료) 우리나라 3위인가 4위 정도인데요. 25개 정도를 보유하고 있다고 합니다. 미국은 99기를 가동중인데요. 그러면 미국이 약 4배 정도 많습니다. 그러면 미국 땅이 우리나라 땅 면적보다 4배가 더 큰건가요? 




단위면적당 가장 많은 핵발전소를 가진 나라


단위면적당 전 세계 핵발전소 가장 많은 나라가 대한민국입니다. 일본은 땅이 길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전 국토가 오염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같은 나라의 살 곳은 어디일까요? 그런데 지금도 원전을 더 짓겠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 전기가 부족한가요? 남아돌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더 지으려고 할까요?


핵발전소는 지으면 위험하니까 이 땅에서 가장 먼 곳에 건설하게 됩니다. 그래서 영광, 부산 등지에서 송전탑으로 도시로 끌어옵니다. 그것 또한 국토를 파괴하는 것이죠. 재작년에 제가 싱가폴 한인 교회의 부흥회에 간 적이 있어요. 그런데 그 나라에는  송전탑이 하나도 보이지 않아서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국토를 보존하기 위해 그렇게 하는 것이랍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전부 송전탑으로 휘감고 있어요. 


참고사이트. 전국송전탑 반대 네트워크  http://jeonsongnet.tistory.com/



100만년 걸리는 핵 폐기물 처리


쓰레기 처리 문제는 더 심각합니다. 다른 쓰레기는 1백년 간다고 해도, 핵쓰레기는 10만년에서 100만년 정도 걸립니다. 지금도 위험한 그걸 처리할 데가 없어요. 경주 방폐장(방사성 폐기물 처리장)이 지금도 얼마나 심각한 지 아십니까? 그곳에서 하루에 물이 3천톤이 나와요. 그곳에 동굴을 파고 시멘트를 쳐바르고 거기 방사능 폐기물 묻지만 시멘트가 안전합니까? 특히나 시멘트의 석회석은 물에 조금 약한 편입니다. 거기에 조금만 물이 스며들어간다고 생각해보세요.  고작 1~2년 가동에 불과한데도 벌써 물을 퍼내는 모터가 고장이 났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거 끝나는 60년 뒤는 어떠하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건 그나마 덜 위험한 겁니다. 고준위 폐기물은 처리할 데도 없다고 합니다. 


여러분, 송전탑이 지나가는 곳에서는 형광등을 그냥 들고만 있어도 불이 커진다는 것 아십니까? 



송전탑 아래선 전기 없이 형광등 켜진다 ... 당진시대 2014.1.17

환경단체 “지속적인 전자파 노출 인체에 유해”





송전탑이 생기면 한 집 건너 암 발생


신당진선 건립후 100미터 인근 거주자 중 한 집 걸러 한 사람씩 암 발병자가 생겨나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것은 왜 그럴까요? 


오마이뉴스 2014.1.20   암 환자와 송전선로, 관계가 없다?

[당진은 밀양의 미래다①] 전원 없이도 형광등 켜지는 당진 교로2리

 

당진시대 2014.8.15  “암 환자 11명…송아지도 기형”


산업용 전기는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최고로 저렴합니다. 대한민국이 100원이면, 일본 244원, 독일 214원, 영국 174원, 프랑스 166원 등입니다. 그런데 가정용 전기를 쓰는 국민에게는 누진세까지 적용하면서, 기업에는 원가 이하로 제공합니다. 그러면 공장들이 다른 대체에너지 개발할 필요 없어 그냥 전기를 사용합니다. 심지어 당진 현대제철에서는 고철을 녹이는 용광로를 전기로로 사용합니다. 당진 현대제철 하나가 핵발전소 하나의 전기를 씁니다. 전기값이 싸니까 그런 거죠.


하느님은 태양빛을 공짜로 주시지만


일본은 후쿠시마 사고 이후, 모든 핵발전을 중단했었죠. 그런데 전기 없다고 나라가 난리기 나지는 않았습니다. 왜냐면 대체에너지를 개발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대기업들에게 헐값 전기를 주려고 또 핵발전 시설을 지으려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한전의 감사결과 2013년 5월에 대기업에 적용되는 산업용 전기요금을 원가 이하로 책정해 한전이 입은 손해는 지난 2008년부터 2011년까지 5조 23억원에 이른다는 보고서를 내놓게 됩니다. 제조업 등에서 OECD 국가에 비해 현저하게 저렴한 산업용 전기를 과다하게 소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것이 한전 재무구조가 악화된 주요 원인이라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태양빛을 공짜로 주고 계시는데 그건 생각하지 않고 미래를 저당잡는 핵발전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4대강 살리기는 강을 재탄생시킨다는 궤변론자 이명박


이명박 전 대통령은 국토파괴범죄를 저질렀습니다. 4대강 사업 이후 영산강 동섬! 이곳을 찾는 사람은 없어요. 홍수예방 수질개선, 이런 식의 모든 게 다 거짓이었습니다. 4대강 사업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지금까지 30조를 쏟아부었으며, 앞으로 복원에 얼마나 많은 돈이 들어갈까요? 앞으로 4대강에 대해서 저는 한편으로는 걱정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다 시간이 해결해줄거니까요. 4대강은 우리 곁에 수만년을 흘렀어요. 앞으로 또 수백년 수천년 수만년 그렇게 또 흘러갑니다. 이명박이 만든 시간은 그 시간의 작은 점에 불과합니다. 이제는 수문을 열 수 밖에 없습니다. 강이 썩고 있기 때문입니다. 낙동강 바닥에 생명 살 수 없을만큼 산소가 없고 썩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4대강의 진실이란 홍보책자에서 낙동강이라고 게재한 사진은 사실 하수종말처리장의 사진입니다. 그것도 거짓말로 올려놓은 것이죠. 


‘총체적 사기’로 드러난 4대강의 민낯 [리뷰] SBS스페셜 ‘4대강의 반격’

미디어스 2013.9.30


지난 겨울, 추운 겨울이었는데, 물고기들이 떼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왜 죽었을까 하고 배를 갈라보니, 뱃속에서 기생충이 한 무더기로 나왔습니다. 내장이 아니고, 물고기 내장이 아니고, 물고기 속에서 오염된 물 속에 듣도보도 못한 기생충이 나온 겁니다. 이게 4대강 사업의 진실입니다. 그 썩은 물을 누가 먹어요? 물고기 다음 우리가 먹죠. 국민을 병들게 하고 죽게 하는 재앙입니다. 이것은 국민에 대한 도전이며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성경에 4대강 사업하지 말라고 구약에 한번 신약에 한번 써있는거 아시나요?


성경에서도 4대강 사업을 반대했다


  • 에제키엘 47,9
     강이 흘러가는 곳마다 온갖 생물이 우글거리며 살아난다. 이 물이 닿는 곳마다 바닷물이 되살아나기 때문에, 고기도 아주 많이 생겨난다. 이렇게 이 강이 닿는 곳마다 모든 것이 살아난다.

  • 개신교 에스겔 47,9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 가므로 바닷물이 소성함을 얻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이건 정말 놀라운 과학적 사실입니다. 물만 흘러가는 게 아니라, 대륙붕 강 하구에 까지 이르러 생겨나는 것들을 묘사하고 있는데, 그런 강에 댐을 세우면 육지의 영양물질 안 흘러가면서, 강 하구에 댐을 세운 곳마다 물고기의 50~60%가 감소된다는 사실이 전 세계적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신약에서는 예수님이 직접 말씀을 하셨어요. 


  • 마태오 7,26
    그러나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지 않는 자는 모두 자기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 

  • 개신교 마태복음 7:26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낙동강 어디에 댐을 지었나요? 모래 위에 댐을 지은 겁니다. 모래 위에 지은 거지, 암반 위에 댐을 세운 게 아닙니다. 낙동강에는 암반이 없습니다. 그래서 다 파여나가 정말 심각한 상황입니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그런 재앙들이 깊어져 가고 있는 겁니다. 

2016-6-20-8:35pm


독일 뮌헨시는 운하를 없앴다





독일 뮌헨시 이자르 강의 모습입니다. 원래 이랬을까? 100년전 운하였는데 강에 홍수가 났습니다. 그래서 재자연화 작업으로 복원을 한 겁니다. 뮌헨시 홈페이지에 가보면 나옵니다.


강바닥 깎고 둑 쌓았던 이자르강 ... 20년 후에 이렇게 복수당했습니다

오마이뉴스 2010.9.8 [현지보고] '4대강 사업'은 독일이 이미 후회한 길


4대강 사업 때 학자라는 많은 전문가들이 침묵하거나 찬성을 했습니다. 물론 언론이나 방송도 찬성을 했습니다. 그렇다고 그것이 다 진실은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강은 흘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강은 갇혀있기를 거부합니다. 4대강은 어마어마한 물폭탄이 되어, 우리는 언젠간 큰 홍수를 겅혐하게 될 것입니다. 강은 흐르면 스스로를 치유합니다. 그래서 강의 생명은 흐르는 역동성입니다. 강은 흐른다는 사실 그 자체입니다. 그래서 4대강도 흘러야 해야 하고, 흘러가면 5년이나 10년이 지나면 점점 더 나은 모습이 됩니다. 



녹조라떼 드실래요 - 4대강에 찬동한 언론과 者들에 대하여 

환경운동연합 | 대한하천학회 (지은이) | 주목 | 2016-04-11 | 정가 17,000원



녹조라떼 드실래요? 


이명박 씨는 물이 더 많아지면 맑아진다는 그럴듯하지만 해괴한 논리를 폈습니다. 물이 많아져도 왜 녹조라떼가 없어지지 않았을까요? 그것은 흐르지 않기때문입니다. 흐르지 않아서 썩는 것이죠. 오늘날 우리 나라에 교회가 많습니다. 수만명씩 모이는 교회들이 정말 많아요. 그런데 왜 세상은 아파하고 있을까요? 교회가 없어서일까요? 교회는 많지만, 세상을 향해서 흐르지 않기때문입니다.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 잊어버려서 그런 겁니다. 


우리는 지금 모두가 두 눈에 안대를 감고 맹인을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오로지 한쪽 방향으로 향하는 화살표를 따라갑니다. 그곳의 끝에는 절벽이 있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눈을 가리고 있는 안대를 풀어야 합니다. 그냥 "믿습니다."가 아니라 안대를 풀고 바르게 바라봐야 합니다. 정말 이것이 하느님 말씀인가 고민하며 걸어가야 합니다.


강이 흐르면 스스로 치유되듯, 건강한 교회로 회복하기 위해서는 세상으로 흘러가야 합니다. 세상과의 소통을 회복해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 물이 흐른다는 것의 비결은 딱 하나입니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에서 흐른다는 사실, 바로 여기에 놀라운 비밀 숨어있다. 흐른다는 건 낮아진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소통의 비밀은 낮아짐


여기에 왜 놀라운 비밀이 숨어있을가요? 가톨릭의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많은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잘 생겨서일까요? 그건 이 분께서 잘 생겨서도 아니고 키가 커서도 아니고, 낮은 곳으로 내려오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교황이라서 높은 곳에 있겠다고 하는 게 아니라, 낮은 곳의 아픈 이들에게 귀를 기울이고 있기 때문인 겁니다. 그렇다면 이분의 삶이 특별한가요? 아뇨! 이미 2천년전 예수님 말씀을 그냥 삶으로 살아가고 있을뿐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에게 새롭게 들릴까요? 교회가 그렇게 살지 않는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교황님은 낮은 곳으로 내려와 예수님이 하신 말씀처럼 살아가려고 하십니다. 그렇게 예수님의 성육신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이 하늘에서 낮고 추한 곳으로 내려오신 사건입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의 종교의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성육신입니다. 하느님이 하늘에 있는 게 아니라, 인간이 되어 이곳으로 찾아오셨다는 것, 그래서 성육신의 기초 위에 서있는 교회 그러나 현재 우리는 성육신의 삶을 살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의 삶처럼 낮은 곳으로 내려가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린 그렇게 살고 있지 못하다는 게 크나큰 아픔입니다. 


예수님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소통케 하는자


  • 예수님의 세상 소통 선언 (루카복음 4,18~19)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 개신교. 누가복음 4, 18~19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예수님은 한 마디로 '소통케 하는 자'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소통하는 자의 삶을 살기 위해서, 거룩한 성전이 아니라 세상이라는 길 위에 서신 겁니다. 그래서 길을 가다 눈먼이를 만나고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만나고 길을 가다 그렇게 사람들을 만나고 그 아픔을 치유하고 하느님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길에서 태어나셨으며, 길에서 사람을 만나고 치유하고, 골고다 언덕이란 길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신 예수님. 그래서 길 위의 예수님을 단 한마디로 표현하면 이렇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성전으로 오라 하지 않고 우릴 찾아오셨다. 


길 위의 예수님. 오늘 교회는 길 위의 예수를 잃어버리고, 하느님과 예수를 화려한 교회 안에 가두었습니다. 소통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세상으로 달려나가기 보다 세상과 담을 쌓았습니다. 그래서 목사의 한 사람으로 성당에 올 때마다 창피한 마음도 듭니다. 성당에서는 오늘도 새터민을 위해 기도하는 모습, 세월호를 위해 기도하고, 정말 세상 아픔들을 위해 기도하는 성당의 모습을 보며, 개신교의 모습 안에서 부끄러운 목사의 모습을 반성하며 슬픈 마음, 안타까운 심정을 갖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예배하라?


성경 어디에도 이런 말은 없습니다.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시면서 제 십자가를 매고 오라고 하십니다. 과연 모든 그리스도인을 통틀어서 예수님처럼 교황님처럼 낮은 곳에서 살아가는 교인들이 있나요? 예수님께서는 바로 내 삶 속에 내 십자가를 지고 예수의 길을 따라오라는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따를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알아야 따르겠죠. 우린 예수님의 어떤 모습을 따라갈까요? 지난 주에 『길 위의 십자가』라는 책을 냈습니다. 



길 위의 십자가 - 오늘 낙심한 그대에게 건네는 기쁨과 소망의 메시지 

최병성 (지은이) | 이상북스 | 2016-06-20 | 정가 13,000원


책소개(알라딘)

섬세하고 예민한 영성과 감성의 소유자인 저자 최병성은 어느 날 길을 가다 우연히, 사람들이 무심코 밟고 지나가는 보도블록 틈새에서 십자가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날 이후 돌계단에서, 바닷가 바위에서, 숲의 나무와 꽃에서 수많은 십자가를 만났다. 그는 "예수님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내 눈길이 머무는 모든 곳에서 십자가를 보여 주셨습니다"라고 고백한다. 그리고 이렇게 만난 수많은 '길 위의 십자가'를 사진으로 담았다.


필기자주. 

강사는 보도블록 십자가 관련 사진을 십여장 보여주면서 설명을 이어갔다. 거기에 갓 나온 책에 대한 감성이 묻어있던 탓인지 강연은 에세이를 낭독하는 분위기처럼 이어졌다. 위의 책 소개에 등장하는 예민한 영성과 감성을 유감없이 발휘했던 것이다. 최병성 목사의 보도블록 틈새의 십자가 사진은 매우 아름다웠지만, 아쉽게도 이 지면에서는 소개하기 어렵겠다. 강연 당일 소수의 사진(1~3장?) 정도 실어도 된다는 허락을 받기는 했으나 아직 자료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이다. 


(다시 최병성 목사)

제가 내년에 쓰고 싶은 책은 「길 위의 예수」에 대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종교개혁자였습니다. 사람중심의 경제개혁가이며, 여성주의자이며, 목수이고 또 노동자였습니다. 결코 제사장으로 오신 분이 아닙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최고의 설교가, 최고의 의사, 최고의 생태주의자, 떠돌이 집시 걷기 예찬자입니다. 예수님이 오셨을 당시 이스라엘은 어마어마한 종교국가였죠. 그런데 예수님은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


(마르코 2,27)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마가 2,27)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예수님의 정치적 발언 - 돌로 맞아죽을만한


이건 있을 수 없는 발언이었죠. 돌로 맞아 죽을 발언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죄를 누가 용서할 수 있으며, 그게 어디서 가능한 일이었겠습니다. 그것은 오로지 제사장이 성전에서만 가능한 일이었죠. 뭘 통하죠? 바로 제사를 통해서입니다. 그런데 시골뜨기 청년이 제사장도 아닌 허름한 청년이 길 위에서 아무나 붙들고 네 죄를 사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그것은 종교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이죠. 바로 이것이야말로 복음인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은 죽을 수 밖에 없었던 겁니다. 


또한 예수님은 사람 중심의 경제개혁가입니다. 오늘날 산업사회는 돈이 우선입니까, 사람이 우선입니까? 사람이 우선인가요? 돈이 우선인 세상입니다. 그저 사람은 돈의 부속물이며 경제의 부속물입니다. 그래서 비정규직 문제가 등장합니다. 그런데 예수 눈으로 바라보면 비정규직을 뭐라고 했겠습니다. 그게 성경에 나와있습니다. "진짜냐?"라고 말씀 하셨어요. 예수님은 사람 중심 경제개혁가입니다. 사람이 중요하다 말씀하셨죠. 


인간중심 경제학자 예수


예수님께서 첫번째로 길을 가다가 미치광이를 만나요. 쇠사슬로 묶여있는데, 그 사람 보며 쓸모없다고 말씀하셨나요? 아니죠. 그 사람 안에 든 군대귀신을 나오라고 합니다. 그걸 어디로 들어가게 합니까? 돼지 2천마리에게 들어가게 하는 데 그걸 값으로 치면 얼마나 큰 돈이었을까요? 엄청 큰 돈이었겠죠. 만약 사람이 아니라 돈이 먼저라면 어떠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이 우선인  분이셨어요.  


두번째 예수님은 포도원 비유를 통해 사람의 중요성을 말씀하십니다. 거기서 일꾼들을 시간대로 계산해서 삯을 줍니까? 아뇨. 넉넉히 필요한 만큼 주셨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대한민국은 내가 일한 만큼도 똑같이가 아니라, 일한 댓가도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 비정규직 현대판 노예제도의 나라가 되어버렸어요. 최대한의 악이 벌어지고 있는 겁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똑같은 그리스도인들


교회에서도 이런 강의를 합니다. 600~800만에 이르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교회나 성당을 다니면서 비정규직으로 힘들게 일한 돈으로 봉헌하고 헌금을 한다면, 오늘날 우리 교회는 이 잘못된 사회제도에 대해 침묵해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예수의 가치기준을 제시하며 고치라고 이야기해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 교회가 이 문제에 침묵하고 있을까요? 모든 것을 예수 가치관으로 바라보고 이 사회를 치유해 가는 게 교회 사명인데 말입니다. 


예수님의 끊임없는 싸움


예수님의 삶은 관습, 문화, 제도 등등의 이름으로 사람의 가치를 억압하고 소외시키는 편견과 거짓들을 제거하는 끊임없는 싸움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 가치의 삶을 살도록 끊임없이 우릴 억압하고 소외시키는 것들과 싸워 나가셨습니다. 


창세기 1,31

하느님께서 보시니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이 참 좋았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엿샛날이 지났다. 



하늘이 좋았어요. 땅과 꽃과 나무와 모든 생명들이 다 보시기에 좋았어요. 그리고 마지막에 만든 보시기에 좋았던 게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특히 사람을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오늘날 우리 사람도 우주의 하나, 자연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보시기에 좋았던 그 환경이 파괴되는 현실에서 우리 인간의 삶도 아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사마리아 인의 비유 다 아시죠. 사마리아인이 강도만난 이웃을 여관에 데려가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과연 누가 이웃인 겁니까?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도와야 할 강도만난 이웃은 누구입니까? 길에서 강도만난 소수의 몇 사람이 아니라, 잘못된 제도들에 의해서, 잘못된 사회구조와 악에 의해서, 강도를 만난 비정규직 문제, 해고노동자, 세월호 유가족, 우리 곁에 수많은 아픔들이 너무나 가득합니다. 


천주교 대전교구 정의평화위원회가 주최하는 정세미(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을 위한 미사) 73차 강연이

2016년 6월 20일 월요일 저녁 송촌동 성당에서 열렸다. 강사는 환경운동가이며 목사인 최병성


오늘날 그리스도인이 누룩이 되어야 하는 이유


권력과 정부 잘못된 제도, 재벌에 의해 강도만난 우리 삶들, 우리 대한민국의 아픔들을 한번 보세요. 10대는 꿈이 있나요 점수의 노예입니다. 20대는 열심히 공부하지만 갈 직장이 없고요. 중년은 언제 해고될지 몰라 불안해하고, 노년은 갈 곳도 없습니다. 진정한 웰빙이 없습니다. 요즘 웰빙이란 단어 들어보셨나요? 반대입니다. '헬조선'이란 말이 유행을 합니다. 정말 지옥입니다. 얼마나 살기 힘들면 헬조선 지옥같은 대한민국이라고 말할까요? 누룩은 조금만 넣어도 전체 밀가루 반죽 을 부풀게 합니다. 


오늘날 기독교(개신교) 1천만입니다. 가톨릭은 5백만인가요? 그러면 온 국민의 3분의 1이 하느님 믿는데 왜 대한민국은 점점 더 아파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누룩이 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끝도 없는 1위 1위 1위 그런 현실에서, 좋은 1위가 아니라 거꾸로 안 좋은 1위만 잔뜩 차지하고 있는 게 우리가 살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단지 기도한다고 바뀌는 게 아니라, 우리가 함께 아파하고 기도하고 치유해나갈 대한민국 모습을 상상해 보세요. 


정치는 우리의 삶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소통케 하라는 사명은 그저 성탄절 누구 도와주는 구호사업에 그치는 게 아니라, 그렇게 한번 도와줄 아픔은 아파하는 사람이 나오지 않도록 사회가 치유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강의 다니다보면 사람들이 물어봅니다. '목사가 왜 이런 일을 하는가?' 제가 또 내일 모레 CBS 새롭게 하소서 프로그램에 1시간 나올건데요. 목사가 왜 교회에 있지 않고 왜 길을 돌아가니나 그걸 종종 물어봅니다. 신부가 왜 정치문제, 사회문제 관여하냐고 물어보는 겁니다. 그러면 그게 잘못인가요? 아니죠. 정치는 곧 우리의 삶입니다. 기독교처럼 정치적인 종교가 없어요. 성당이 하느님 마음에 드시지 않는다면 누굴 보내요? 사무엘 예언자를 다윗에게 보내요. 놀라운 사건이며 매우 정치적 사건입니다. 


왜 신부가 목사가 정치에 사회에 환경에 관여하지? 기도만 하고 교회에만 있으면 되는 거 아닌가? 아닙니다. 하느님은 아름다운 사회가 되길 원해요. 정치는 별개의 것이 아니라 우리 삶과 연관된 밀접한 것입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세상 일에 관심갖고 있어야 합니다. 


당신이 나와 무슨 상관 있습니까?


그가 예수님을 보고 고함을 지르고서 그분 앞에 엎드려 큰 소리로 말하였다.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 당신께서 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당신께 청합니다. 저를 괴롭히지 말아 주십시오.” (루카 8,28)


예수를 보고 부르짖으며 그 앞에 엎드리어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당신께 구하노니 나를 괴롭게 마옵소서 하니 (누가 8,28)


여기에 중요한 말이 나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물어봅니다. "신부, 목사, 당신이 무슨 상관이야!" 이에 대해 예수님은 상관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하느님의 형상을 해치는 악과 상관이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하시길 "나가라!"라고 하시는 겁니다. 치유되여야 햐고 변화되어야 할 악을 사회악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시며, 예수님께서는"나가라!"라고 외치십니다. 우린 상관이 있고, 예수님처럼 나가라고 외쳐야 되지 않나요?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목소리를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의 집에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 사람도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 (요한묵시록 3,20)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개신교 요한계시록 3,20)


Behold, I stand at the door and knock. If anyone hears my voice and opens the door, [then] I will enter his house and dine with him, and he with me.

(영어가톨릭성경 Revelation 3,20)



요한계시록(묵시록) 3장 20절 말씀에 '문 두드리며'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늘 문을 두드리며 계십니다. 'Hear I am, 내가 여기 있잖아.'하는 겁니다. 예수님을 멀리서 찾아요? 아뇨 내 믿음의 문을 열면 내 삶 속에서 모든 순간 속에서 내 발걸음을 붙잡고 내 마음을 붙잡는데, 우린 특별한 장소에서 기도원에서 성당에서만 예수님을 찾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모든 곳 내 발걸음이 가는 모든 곳에 예수님이 함께 하십니다. 눈물과 아픔이 있는 곳에, 억압으로 상처받은 이들이 있는 곳에, 소통이 필요한 이 세상의 모든 곳에 예수님이 함께 하십니다.


세상을 품은 그리스도인


그래서 세상을 품은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가족만이 아니라 내 이웃 이 나라 함께 치유하면 좋겠스니다. 예수님을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요? 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저는 십자가를 보도블럭에서 찾았어요. 십자가는 짐이 아니라 쉼이었습니다. 내가 지고가는 무거운 짐이 아니라 십자가 안에서 편안히 쉬어가는 쉼이었습니다.  보도블록 안에 나팔꽃이 피어있습니다. 예수님은 울라고 우리에게 십자가를 주신 게 아니라,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기에 기뻐 춤추라고 십자가를 주신 겁니다. 그리고 십자는 늘 낮은 곳으로 향합니다. 그것이 길 위의 십자가입니다. 예수님 멀리 계시지 않습니다. 내 발밑에서, 내 삶 곁에서 우릴 바라보고 계십니다. (끝



강사 최병성은 목사이면서 환경에 관심이 많아 4대강 등 생명이 아파하는 현장을 발로 뛰며 숨겨진 진실을 세상에 널리 전하고 있다. <복음에 안기다><강은 살아있다><알면 사랑한다> 등 다수의 저서가 있고, 지금은 신음하는 한국교회의 갱신을 위해 매월 첫째.셋째 목요일 저녁 7시, 월남 이상재. 씨알 함석헌 선생이 진행하던 100년 전통의 서울YMCA목요성서강좌를 이어받아 '세상을 깨우는 그리스도인'을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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