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을 기억하는 특별한 방식

한국전쟁 - 대전전투 70년 기록展

테미오래에서 10/8(목) 오프닝 강연, 전시회는 9/29부터 10월말까지 열려



70년 전에 일어난 한국전쟁(6.25)을 생각하면서, '대전전투'를 머리 속에 떠올리는 사람은 별로 없다. 대전의 시민이라 할지라도, 70년이 지난 6.25 전쟁을 회상하면서 대전 전투를 가장 먼저 떠올릴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사실 6.25 전쟁 하면, <인천상륙작전>이나 <낙동강 전투> 혹은 <백마고지 전투> 등을 떠올리게 된다. 그런데 여기 한 사람, 한국전쟁 하면, 바로 대전전투를 떠올리는 사람이 있다. 


그는 바로 오늘의 주인공 임재근이다. 대전의 시민단체 <평화통일교육문화센터> 교육연구팀장으로 활동 중인 그는 최근 박사님이 되었다. 지난 7월 논문 <한국전쟁기 대전전투에 대한 전쟁기억 재현연구>를 발간하면서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학위를 받은 것이다. 그리고 그런 그가 <한국전쟁 - 대전전투를 기억하는 사진/영상 기록전>을 개최했다. 전시회는 10월 말까지 열린다. 


전시회 이름은 전쟁기억, 그리고 사라진 사람들


전시회가 열린 곳은 '테미오래'[각주:1] 상상의 집(6호 관사)이다. 전시회 제목은 <한국전쟁 - 대전전투 70년> 기록展 "전쟁기억, 그리고 사라진 사람들" 

임재근은 9월 29일 시작한 기록전시회의 오프닝 강연 행사를 10월 8일(목) 오후 6시30분, <시민의 집>에서 개최했다. 그리고 그는 약 30명 남짓한 사람들이 참여한 가운데 <시민의 집> 야외정원에서 약 80분 간 강연회를 가졌다. <시민의 집>은 옛 충남도지사 관사이며, <상상의 집>에 이웃한 곳이다. 


대전 테미오래 시민의 집(옛 충남도지사 관사) 정원에서 전시회 오프닝 강연회가 열렸다. |10/8(목) 저녁 6:30~8:00


강연회는 다음 순서로 준비된 기록전에서 본격적으로 보게될 사진과 영상들을 슬라이드로 보여주면서, 70년 전 대전전투의 다양한 장면들을 설명하거나, 어떻게 입수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런 미군이 남긴 기록들이 얼마나 중요한 지에 대해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강연은 10월 8일(목) 오후 6시 40분에 시작하여 7시 54분에 끝났다. 다음은 강연의 주요 내용이다. 


전시회를 열게 된 사연, 오프닝 강연의 요약


(임재근) 제가 이 전시를 개인적으로 목표한 건 아니지만, 자료에 대한 갈망은 십수년전부터 있었습니다. 처음 접한 사진들은 해상도와 품질 떨어지는 것들이었는데, 여기 보시면, 대전전투 장면이나 적군이 포위하기 직전의 대전 역사(驛舍) 장면이 있습니다. 궁금했던 건, 이게 정말 적군에게 포위되기 직전의 대전역 모습일까? 이런 궁금증, 이후에도 비슷한 여러 품질의 사진들을 보면서,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적군에게 포위되기 직전 대전역>이란 설명에 비해 행인들이 한가해보인다는 데 임재근은 의구심을 품었다고 한다. 


사람들 행동에서 다급함이 느껴지지 않는 거예요. 이상하다. 제가 접할 수 있는 한계. 이런 자료에만도 감사하고 찾아보았어도,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은 들었던 거죠. 그래서 원본을 찾고자 하는 갈망이 있었고, 그러면서 원본사진 접하게 되었고, 그걸 보면서, 딱 보면, 뭔가 쫓기는 장면은 아닌 듯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미군들은 사진 촬영 후, 세세한 설명과 그 일자를 작성한다지만, 과정상의 오류가 생길 수 있다고 임재근은 말한다. 


그래서 그때부터, 원자료를 찾겠다는, 대전에 관련 모든 자료를 찾겠다고 하면서, 누가 찍었는지 필요한데, 7월 6일 사진인데, 포위 직전이라고 쓴 것은 오해할 수 있는 것들과 이상한 점들을 찾아보니, 오류가 생길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쨌든 미군의 사진병들은 사진을 촬영하고, 세세히 설명하며, 작성한 촬영일자를 남겨놓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진들에 쉽게 접근하기 어렵고, 미국 내셔널 아카이브에 소장되어 있지만, 이 건물에 직접 방문한다는 게 쉬운 건 아닙니다. (특히 코로나 때문에 미국 현지 방문이 더 어렵기도 하다는 ...)


워싱턴 DC 소재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tional Archives and Record Administration, NARA) 건물을 보여주고 있다. 



다만 다른 이들이 발간한 걸 간접적으로 접근하게 되던 차에, 국내 많은 기관들이 이런 자료들, 특히 국사편찬위에서 온라인으로 제공하고 있고, 스마트폰으로도 찾아보는 다양한 사진들이 생기게 되었던 겁니다. 국사편찬위원회 전자사료관이 있습니다. 


미군 통신부대에는 사진병들이 있습니다. 한국 전쟁에 관련된 사료는 미국 레코드 그룹 RG111에 속한 것들이 있고, 그 중 국사편찬위에서 7천건의 자료를 확보수집했습니다. 그걸 우린 온라인 접속으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본격적으로 6개월 전, 논문을 쓰면서 찾아보게 되었고, 제가 확인한 것들을 논문에서는 다 소개하지 못해서, 이번 전시를 통해 공유하게 되었습니다. 


(이후의 강연 내용은 기록전시회의 내용과 비슷하여, 생략함)


임재근은 강연을 마무리하면서, 미군들이 찍은 사진들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물었다. 그러면서, 그것이 역사적인 사료로 가장 그리고 대단히 중요한 이유는그것밖에 남은 게 없기때문이라도 말했다. 결국 우리의 무관심으로 그런 남아있는 자료마저 확보하는 데에 게을렀던 것은 아닌가 하고 자문자답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임재근이 강조한 가장 중요한 전시회의 기획의도는 전쟁 중에 민간인 학살의 새 증거들을 찾아보고 싶었다는 점이다. 특히 대전 사람들이 한국 전쟁 중 피난가면서 쫓겨나고, 죽어나가고, 그리고 그 와중에 전쟁이 활발한 찰라에 억울한 민간인들, 골령골에서 사라져버린 사람들. 그리고 전쟁 발발 70년이 지나면서 목격자들도 거의 사라져가고 있다는 것.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점점 더 사라지는데, 그 전에 뭐라도 더 기록하고 기억하고 남겨야 한다는 것이 그의 바램이었다. 


결과적으로 그가 전시회를 하며 전쟁을, 특히 대전 전투를 기억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전쟁에서 싸워 이기자는 게 아니었고, 전쟁을 막자는 주장을 하기 위함이었다. 전쟁은 너무 많은 걸 파괴하고, 특히 아무 저항도 못하는 민간인의 피해가 너무 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임재근은 마지막 장면으로 1950년 9월 30일 쑥대밭이 된 대전시가지의 모습을 슬라이드에 보여주었다.


임재근은 마지막 장면으로 1950년 9월 30일 쑥대밭이 된 대전시가지의 모습을 슬라이드에 보여주었다. 그는 멀리 배경처럼 펼쳐진 산 등성이들의 굴곡을 설명하면서, 그 당시 폐허가 된 사진이 바로 으능정이의 당시 모습이라고 말했다. 임재근은 그 사진을 특별히 기억하기 위해, 70년이 지난 오늘날 비슷한 위치에서 찍은 사진을 전시회에 함께 소개했다. 


그가 말하길, "70년 전 모습과 지금의 모습은 확연히 비교가 됩니다. 70년 사이 같은 지역 두 사진의 모습으로 전쟁의 결과와 그 피해 속에서 우리 삶을 돌아보며,평화의 소중함, 인권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70년이 지난 이야기를 왜 지금 할까요? 전쟁의 승리가 아니라 전쟁을 막고 평화를 지키자는 겁니다. 비록 오늘 전시회 소개 사진/영상 자료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한계는 있지만, 그것들이 보여주는 행간 속에서 평화의 의미를 찾아보았으면 합니다."



임재근 박사가 가장 먼저 기록전 장소인 상상의 집 입구에 도착해서 대기 중이다. 






기록전 개최 장소인 <상상의 집>으로 이동


임재근 박사는 <가을 추워지는 날에 함께 해줘서 고맙다.>는 말로 오프닝 강연을 마치면서, <시민의 집>에 이웃한 <상상의 집>에 준비된 기록전 장소로 참석한 이들과 함께 이동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앞서 강연회에서 소개된 슬라이드의 내용들을 좀 더 체계적으로 구획 전시한 내용들에 대해서 한 차례 더 설명하면서 행사는 8시 30분 경 마무리되었다. 참고로 이번 기록전은 온라인으로도 전시된다. 아래 유튜브 동영상을 링크해놓았다. 좀 더 자세한 이야기는 유튜브 영상에서 임재근 박사의 진행과 설명으로 직접 들을 수 있다.


기록전 온라인 전시회(유튜브 영상)







기록전 촬영 사진 모음







강연자는 1950년 9월 30일 쑥대밭이 된 대전시가지의 모습을 슬라이드에 보여주었다. 그는 멀리 배경의 산 등성이를 설명하면서, 폐허 사진이 바로 대전 으능정이 주변이라고 말했고, 70년이 지난 오늘날 비슷한 위치에서 찍은 사진을 위 아래로 비교하는 사진을 전시회에 소개했다. 




70년 전 모습과 지금의 모습 비교 확연히 비교됩니다. 70년 사이 같은 지역 두 사진의 모습으로 전쟁의 결과와 그 피해 속에서 우리 삶을 돌아보며,평화의 소중함, 인권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기록의 오류. 애초의 미군 사진병은 단순하게 <강 건너편 산마루와 교량을 겨누고 있는 기관총 진지>라고 기록을 남겼지만, 미국의 유명한 군사역사가 로이 애플맨(Roy Appleman)은 <South to the Naktong, north to the Yalu>(1961)라는 한국전쟁서를 발행하면서, 이 사진을 갑천 전투로 기록했다. 결국 1963년 육군본부가 발행한 책 <유엔군 戰史 - 낙동강에서 압록강까지> (제1집)은 애플맨의 기록을 그대로 옮겨오는 중복 오류를 범했다. 

  • 최초의 사진 설명
    강 건너편 산마루와 교량을 겨누고 있는 기관총 진지

  • 애플맨의 책에 잘못 기록된 설명(1961)
    Machine Gun Emplacement in the Yusong position overlooking the Kap-ch'on River and the main highway. View is southwest over the bridge.

  • 육군본부 발행 책(아래 이미지 참조, 1963) 86쪽에 소개된 중복 오류
    갑천강과 주도로를 감제하는 기관총 진지


  








기록전 전시장에 들어가면 바로 만나는 잡지들의 모습이다. 미국의 시사화보잡지 <라이프> 1950년 7월 31일자 표지는 미국 24단의 모습을 소개하고, 실종된 딘 소장의 특집기사를 게재한 모습이 보인다. 사진을 통해서도 대전을 찾아볼 수 있는데, 이를 더 확실히 볼 수 있는 잡지가 바로 영국의 시사화보잡지 <픽쳐 포스트>였다고 한다. 편집도 비슷한 <픽쳐 포스트>는 2명의 기자를 한국전쟁에 파견보냈고, 그들은 대전전투에 앞서 취재를 하고 11페이지에 걸친 특집기사를 소개했다. 그리고 그 중 한 페이지가 대전역 등의 장면들이었다고 한다. 


임재근은 외국인들 카메라에 담긴 서글픈 모습들을 보던 중에 그 배경의 익숙한 건물들을 발견하고 대전의 장면인 걸 알게 되었다고 한다. 결국 여기 저기에서 대전에 관련된 여러가지 사진들을 찾게 되었다고 하면서, 한 가지 아쉬운 것은 <픽쳐 포스트>가 공주의 민간인 학살 등을 비롯한 민감한 장면들을 담았다가 편집장이 해고되는 등 우여곡절 끝에 폐간되었다는 에피소드로 전해주었다. 










  1. 충남도지사관사촌을 중심으로 형성된 문화마을(대전 중구 보문로 205번길, 대흥동) [본문으로]
Posted by 대전정평위뉴스 편집장 슈렉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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