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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평강론과글

[20141207] 김유정 신부의 사회교리와 나 (대전주보)

by 편집장 슈렉요한 2016. 12. 24.

2014년 대림 제2주일(12월 7일)

대전주보

사회교리와 나

 김유정 유스티노

대전가톨릭대학교 영성관장

 

 

신자가 아니셨던 아버지의 엄한 반대를 무릅쓰고 신학교에 입학한 터라, 최선의 노력을 다해 열심히 살았습니다. 스스로의 성화와 완덕을 위해 계명과 규칙을 철저히 지켰고 기도 시간 빼앗기는 것을 가장 아까워했습니다. 어차피 멸망하고 말 세상에는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규칙을 잘 지키지 않는 동료 신학생들을 마음으로 판단하는 것이 가장 빈번한 고해성사거리였습니다. 성경에서저와 비슷한 인물들을 나중에야 발견했습니다. 바리사이였습니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여러 신학 수업들을 통하여 제가 ‘종말적 영성’만을 추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 세상을 죄와 고통의 장소로 보고, 구원을 천상적이고 종말적인 차원에서만 이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세상에 얽매이지 않기 위해서 세상사에 관심을 갖지 않았고 죄로 얼룩진 세상을 미워하고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요한 3,16)라는 말씀에서 아집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하느님께서 너무나 사랑하시는 세상을 내가 무슨 자격으로 미워해 왔는

가?’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어 태어나신 세상, 그분의 부활로 새로워진 세상이 하느님 나라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도록 협력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신 소명이라는 ‘육화적 영성’의 차원에 눈뜨게 되었고, 진정한 의미에서 두 영성은 서로 다르지 않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성유축성미사 때의 복음 말씀이 가슴을 두드렸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루카 4,18). 이것이 예수님의 첫 선포이자 평생의 선포였음을, 제가 뒤따라 걸어야 할 길임을, 세상에는 여전히 가난한 이들, 잡혀간 이들, 눈먼 이들, 억압받는 이들이 있음을 주님께서 일깨워 주셨습니다.

‘사회교리’는 예수님께서 목숨 바쳐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가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구체적 현실이라는 것과, 예수님께서 오심으로 인해 이미 시작된 ‘하느님 나라’의 완성을 위해 주님께 어떻게 협력할 것인지를 가르쳐 줍니다. “영원한 생명에 대한 인간의 소명은, 이 세상에서 정의와 평화에 투신하기 위해 창조주께 받은 힘과 수단을 유용하게 활용해야 하는 의무를 폐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화”(가톨릭교회교리서 2820항)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하느님의 참된 정의’와 ‘정의의 결과인 평화’를 선포하는 것을 불편하게 여기는 정치권과 대형 언론들은 종교의 영역이 개인들의 영혼 구원에만 국한되어 있다고 반복하여 주장합니다. 그러나 교황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우리의 구원은 사회적 차원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개별 인간뿐만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도 구원하시기 때문입니다”(복음의 기쁨 178항).

 

방한하신 교황님께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고 환호했지만, 정작 교황님께서 전하신 메시지는 급속도로 잊혀져가는 듯합니다. ‘물질주의의 유혹’과 ‘끝없는 경쟁의 영’과 맞서 싸우라고 하시며 ‘새로운 형태의 가난을 만들어 내고 노동자들을 소외시키는 비인간적인 경제모델’과 ‘죽음의 문화’를 거부하라고 하신 교황님의 말씀을, “사회교리를 공부하고 활용할 것을 강력히 권고”(복음의 기쁨184항)하신 바에 힘입어 실천해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