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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평강론과글

[20150415] 수원교구장 이용훈 주교, 세월호 1주기 추모미사 강론

by 편집장 슈렉요한 2016. 12. 26.

2015년 4월 15일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한 특별위령미사

안산 화랑유원지 야외 제단. 2015.4.15.수.20:00

 

수원교구장 이용훈 주교, 세월호 1주기 추모미사 강론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은혜로운 사순시기를 보내고 주님의 부활하심을 경축하는 시기를 맞았지만 우리는 주님 부활의 환희와 기쁨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의 1주년 기일을 맞고 있습니다. 이 시간 우리 사회의 부조리와 부정부패로 인해 어이없이 세상을 떠난 295위 희생자들과 9위 실종자 등 304위의 영원한 안식을 비는 위령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너무나도 어처구니없게도 작년 4월 16일 성주간 수요일 오전 8시 48분에 세월호는 좌현으로 기울기 시작하여 10시 17분 전복되었고, 10시 30분에 침몰하였습니다. 4.16일 그날이 역사에 없었기를, 꿈이었기를 바랐지만, 이토록 아픈 현실이 되어 우리는 4월 16일 그날에 시계가 멈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이 일을 통해 무엇을 원하시는지, 이런 충격적인 이별을 통해 희생자들은 무엇을 세상에 호소하는지를 냉정하게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전대미문의 이 비극적 참사는 결국 이 땅에 사는 우리 사회의 전반적이고 구조적인 부정부패와 안전 불감증, 그리고 물질만능주의가 빚은 총체적 인재(人災)였습니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생명경시 풍조와 조직적인 비리가 무고한 학생들과 가족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아 간 것입니다. 우리 사회의 양심과 윤리를 외면하는 현상은 우리에게도 일단의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정부와 정치인을 선택하고, 국가산하에 있는 수많은 공공기관의 운영과 관리를 위임하였기 때문입니다. 유권자로서의 의식을 바르게 갖고 정부감시기능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세월호 참사로 안전한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아직도 좌표를 잃은 채 방황하고 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작년 11월 7일 국회에서 <4.16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안>이 통과되었습니다. 이 법안은 특별조사위의 수사권과 기소권, 유가족의 특별검사추천권이 빠진 반쪽짜리 법안으로 미진한 내용이 포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족대책위는 그동안의 합의과정을 존중하여 수용하였습니다. 정부는 작년 11월 11일에 세월호 수색 중단을 선언하였고, 11월 19일 ‘세월호 특별법’을 공포하였습니다. 그러나 세월호 특별조사위 설립준비단에 대해 정부여당은 세금 낭비론으로 맞서며, 특위 예산과 관련하여 온갖 시비를 걸며 특위구성을 방해하고 있던 차, 지난 3월 27일 세월호 특위 시행령을 예고하였습니다. 정부는 세월호특위에서 보낸 시행령 안에 답을 유보한 채 침묵만을 지키다가 특위활동을 전면 부정하는 일방적인 입법예고를 하였습니다.

 

정부의 시행령 안에는 세월호 특별조사위의 업무와 기능을 무력화 시키고, 행정부의 하부 조직으로 전락시키겠다는 의도가 깔려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진상규명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겠습니까? 정부는 즉시 입법예고안을 폐기하고 특위측 의견을 존중하여 합리적 시행령을 다시 만들어야만 합니다. 다시 정부가 유가족들과 시민들을 상대로 기약 없는 망국적 싸움을 하려는 것입니까. 국론분열에 큰불을 놓아 핏빛으로 이 나라를 물들일 작정입니까? 언제까지 우리 사회가 보수와 진보, 정치진영 논리에 갇혀 정신적 노예생활을 해야 합니까? 이렇게 정부와 정치권이 무기력하고 안이한 태도를 취한다면 그 갈등과 증오로 인해 우리는 엄청난 사회적 비용과 손실을 지불하게 될 것입니다.

게다가 유가족과 상식을 갖고 있는 많은 국민은 세월호 선체인양을 통한 실종자 수습과 진상규명이 먼저이고, 그 후 보상 문제가 논의되어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음에도, 정부는 지난 1월 28일 공포된 <세월호 참사 피해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을 먼저 시행하겠다며, 지난 4월 1일 배상. 보상액을 제시하며 유가족을 처절한 고통 속에 몰아놓고 있습니다. 해경과 정부기관 책임자, 선박회사와 직원 등 일차적 참사책임자에 대한 법적 판정도 내려지지 않은 상황인데다가, 선체인양, 실종자 수습, 진상규명 없는, 특위시행령안 폐기 없는, 유가족과의 협의 없는 일방적 발표였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 사회는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이 1주기를 맞으며, 희생자들의 추모에 힘을 쏟아야 하는 이때, 정부가 돈 문제를 들고 나오는 것은 유족과 인간에 대한 도리와 예의가 아닙니다. 작년 6.4 지방선거와 7.30보궐선거를 통해 자신감을 얻어 태도를 바꾼 것입니까. 우리 정부와 사회는 어찌하여 유가족들과 선의의 수많은 사람들이 1년 내내 팽목항에서, 안산분향소에서, 광화문에서, 청운동에서 삼보일배, 고난의 도보 행군, 촛불시위로 울부짖고 있는데도, 결국 자식을 원통하게 잃은 부모들이 죽음을 각오한 삭발을 하며 영정을 들고 빗속을 뚫고 행진을 하는데도 보고만 있는 것입니까. 유가족과 시민들을 이토록 계속 절망의 구렁으로 계속 몰아붙이는 이유가 무엇인지 너무나도 한탄스럽습니다.

 

정부가 보상을 서두르는 이유가 물질적 보상을 통해 진상규명을 덮으려하는 사악한 의도라면 이는 도저히 수용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온 국민이 눈을 크게 뜨고 정치, 사회 개혁에 나서야만, 세월호 희생자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을 것이며, 유가족들도 지울 수 없는 분노와 슬픔 속에서도 평온을 유지하며, 치유와 회생의 길을 가게 될 것입니다. 건강하고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 신앙인들이 먼저 나서야하겠습니다. 가족들과 형제들, 친구들이 304위의 사랑하는 혈육과 가족을 가슴에 묻었습니다. 그러나 참사의 이유와 과정, 진실은 결코 묻혀서는 안되며 반드시 밝혀져야 합니다. 우리 사회가 부정부패, 온갖 비리를 지향하는 사회가 아니라, 인간의 생명과 존엄성을 가장 우선적으로 보호하고 수호하는 사회, 이웃에게 예의와 도리를 다하는 사회, 정직과 양심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는 사회로 대전환을 이루어야 할 때입니다.

우리는 희생자들이 무슨 이유로, 어떤 구조적이고 조직적인 관행과 잘못으로 어떻게 세상을 떠났는지, 배의 침몰과 구조작업 등의 진상을 낱낱이 규명하고, 안전한 사회, 하느님께서 주신 인간의 생명과 존엄성을 최우선으로 삼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을 포기 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무력하고 죄 없이 죽어간 학생들을 모욕하며, 유가족들을 보상금에 눈먼 이들로 매도하고, 단식하는 이들 앞에서 폭식투쟁을 벌이며 온갖 조롱과 야유를 퍼붓고 있습니다. 학생들의 영혼과 유가족들을 위로해야 하는 이 절박한 시점에서도 편 가르기를 하며 증오의 전투를 벌이고 있습니다. 이런 갈등과 논란을 정치권이 부추기고 있음을 부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는 우리 사회가 결코 안전하고 평화로운 앞날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고 있는 시점에서 비명에 간 희생자들의 합동영결식 조차 치르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비정함과 불일치, 무력함을 어떻게 이해하고 풀어야 할지 통탄스럽습니다.

지난 8월 15일 우리나라를 방문하신 프란치스꼬 교황님께서는 우리나라의 그리스도 신자들이 올바른 정신적, 영성적 가치와 문화를 짓누르는 물질주의의 유혹에 맞서서, 그리고 온갖 이기주의와 분열을 일으키는 무한 경쟁의 사조에 대항하여 싸워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대전 월드컵 경기장 성모승천대축일 미사) 교황님께서는 고통 받는 이들 앞에 결코 중립은 없다고 하시면서 지금도 세월호 사건을 통해 우리 사회가 건강한 사회로, 하느님의 평화가 깃드는 나라로 성숙하길 기도하고 계십니다. 우리 교구와 교구민은 남아있는 선체인양을 통해 실종자를 모두 찾고, 참사의 진실이 밝혀지는 그날까지 함께 기도하며 십자가의 길을 갈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성자 그리스도를 세상에 파견하셨지만, 세상의 악한 세력이 그 분을 십자가형에 처하고 죽이는 모습을 지켜보셨습니다. 또한 하느님께서는 세월호의 어두운 선체 안에서 우리 가족들이 고통 중에 떠나는 모습을 가슴 저리게 지켜보셨습니다. 304위 희생자들은 세상의 죄와 부패를 외치고 고발하며 정의가 살아 숨 쉬는 안전한 세상을 염원하며 떠났습니다.

 

그리고 성모님께서는 당신 아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온몸으로 견디시는 처참한 모습을 지켜보셨습니다. 성모님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신 예수님의 몸을 가슴에 안으시고 통곡의 기도를 바치셨듯이, 이 천진무구한 어린 학생들을 꼭 껴안고 애통해 하셨습니다. 성모님께서는 고통당하는 이들의 어머니, 근심하는 이들의 어머니이시고, 모든 위로의 원천이고 하늘의 문이시며 평화의 모후이시기 때문입니다. 304위 희생자들이 단말마의 고통으로 스러져갈 때 성모님께서도 피눈물을 흘리시며 사랑하는 당신 자녀들을 주님께 맡기셨습니다.

오늘 저녁 304위 세월호 희생자들과 그 가족들을 위해 기도하여 주시는 모든 형제자매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리며 어둠과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주님의 사랑과 은총이 풍성하게 머물기를 빕니다.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304위에게 영원한 안식을 베풀어 주시기를 빕니다. 평화의 모후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