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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평강론과글

[20150401] 의정부교구장 이기헌 주교, 세월호 1주기 추모미사 강론

by 편집장 슈렉요한 2016. 12. 26.

2015년 4월 1일

 

“세월호 특별법과 특별 조사 위원회를 

무력화시키는 시행령은 폐기해야”

 

 

2014년 4월 16일. 작년 성주간 수요일 아침이었습니다. ‘전원 구조’라는 소식에 무심코 넘겼던 그 소식이 참사로 바뀐 것은 그리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드러났습니다. 그리고는 참담한 소식을 안고 부활을 맞이해야 했습니다. 부활을 맞이했지만 부활이 아니었습니다.

 

내일 모레면 우리는 또 다시 부활대축일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쁜 부활을 맞이 하기에는 1년이라는 시간으로는 부족한가 봅니다. 세월호 참사를 정리해나가고 아픔을 함께해나가는 마음들을 바라보며 예수님의 부활의 선물인 새로움과 변화가 우리 사회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지기를 간구하며 오늘 이 미사를 봉헌하고 싶습니다.

 

희생자 가족들에게는 그 날 이후로 모든 것이 멈추어 버린 시계처럼 시간이 흘렀습니다. 시간이 멈춘 세상에서 맞이하는 모든 일상들은 그 사랑하는 이들이 없는 크나큰 아픔으로, 고문처럼 다가왔을 것입니다. 그리고 더 큰 고통은 사랑하는 이들이 왜 그렇게 떠나가야 했는지 밝히지 못하고 있다는 것일 것입니다.

 

얼마 전 한국 주교들의 사도좌방문 때 교황님께서 한국 주교들과 대화를 나누실 때 하신 첫 말씀은 “세월호에 관련된 일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라는 질문이셨습니다. 세월호 사고가 나고 1년이 지났지만 과연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리하여 우리는 오늘 다시 이렇게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무슨 이유인지도 모르면서 죽어간 희생자들, 꽃다운 나이에 그 꽃을 활짝 피워보지도 못하고 떠난 학생들의 못다핀 꽃의 넋들, 아직도 슬픔과 고통 속에 있는 유족들, 우리는 이들을 기억하고자 합니다. 단순히 이들을 기억만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아파하고 있는 이유를, 그 이유를 기억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위로하면서 연대하고자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성주간을 통해서 특별히 기억합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수난과 죽음을 통해서 구원을 가져다 주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적인 눈으로 보았을 때 불가능해 보이는 죄의 구조를, 어리석은 죽음으로 보이는 예수님의 희생을 통하여 인간에게 부활이라는 희망을 가져오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유다는 예수님을 팔아넘기고 그 사실을 가리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자신의 갈 길을 걸어가십니다. 진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진실을 가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진실은 하느님의 뜻을 찾고 따르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유다는 하느님의 뜻보다는 자신의 뜻을 따라 예수님과 길을 달리합니다.

 

우리 사회의 모습을, 오늘 복음을 통해서 다시 읽게 됩니다. 하느님의 뜻을 찾기 보다는 자신의 뜻을 찾는 유다의 모습 속에서 우리 사회를 보게 됩니다. 극도의 이기심과 물질만능주의로 치닫고 있는 모습입니다. 일상화된 불의와 비리로 진실을 감추는 모습입니다. 우리 사회는 1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리 변한 것이 없다고 느끼는 것이 저만의 생각은 아닐 것입니다. 그 이유는 진상조사가 되지 않고, 진실이 밝혀지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달라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면,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언제 어떻게 만나게 될지 모르는 참사에 대한 불안을 갖고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참사를 우리가 어떻게 해 볼 수 없다고 하는 무력감과 좌절감이 우리의 무의식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인 우리는 유다의 모습이 아니라 예수님의 모습을 따라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진실입니다.

 

세월호 가족들과 가진 인터뷰가 있었습니다.

기자가 묻습니다. “보상을 원하십니까?” 가족이 대답합니다. “아니오”

기자가 묻습니다. “의사자 지정을 원하십니까?” 가족이 대답합니다. “아니오”

기자가 묻습니다. “대학 특례 입학을 원하십니까?” 가족이 대답합니다. “아니오”

기자가 묻습니다. “그럼 무엇을 원하십니까?” 가족이 명확히 대답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왜 죽었는지 그것을 밝히는 진실을 원합니다. 다른 것은 필요없습니다.”

 

참사가 일어났을 때, 모든 언론, 정부를 비롯해서 대통령까지 나서서 한 이야기들을 들추어보면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모든 것”, “모든 것”이라고 한 마디로 정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모든 것을 밝히고, 지원하고, 바꾸고, 개조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차츰 그 말들은 용두사미가 되어 감추어지기 시작하고 진실도 점점 감추어지고 결국 진도 앞 바다에 세월호와 함께 가라 앉아 버렸습니다.

 

이에 대해 정부와 정치권에서 한 것은 무엇입니까? 심지어 앞에서 얘기한 가족들의 요구까지도 말을 바꾸어서 왜곡시켜서 가족들을 파렴치한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 과정에서 희생자 가족들은 쓰라린 상처에 소금을 끼얹는 듯한 아픔을 느끼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는 세월호 특별법이 중요합니다. 희생자 가족들이 원했던 원안대로 만들어지지도 못했고, 정치권에서 위헌소지가 있다는 식으로 물타기를 하며 호도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정말 어렵사리 특별법이 만들어져서 특별 조사위원회를 구성했지만 그 다음이 더 문제입니다.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는 독립기구이고, 특히 조사대상이 될 수 있는 기관으로부터의 독립성이 매우 중요합니다. 또한 위원회의 본질적 특성은 조사위원들이 논의와 결정으로 업무를 결정하고 진행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시행령안은 조사대상이 될 수 있는 부처에서 파견된 공무원이 각 위원회의 실무를 장악하고 지휘할 수 있도록 하고 있어 문제입니다. 즉, 파견된 조사대상이 되는 부처의 공무원이 진상규명, 안전대책, 지원 관련 소위의 업무를 담당할 공무원을 사실상 지휘 감독함으로써 독립성을 훼손시키고, 각 소위 소속 위원들의 논의와 결정이 집행되는 과정에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여 위원들의 역할을 축소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월호 특별법과 특별조사위원회를 무력화시키는 시행령은 폐기해야 합니다. 정부와 정치권이 제정신을 가지고 직무를 수행했다면 세월호 참사 같은 사태 자체가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세월호 참사를 통해서 이 나라의 지배층의 제모습이 드러났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입니다.

 

인도의 네루는 ‘정치는 국민들 눈에서 눈물을 닦아 주는 일이다.’ 라고 했다 합니다. 지진과 홍수가 났을 때 현장으로 즉각 달려가 피해 입은 사람들을 다독여주었던 중국의 시진핑이며 최근 일본에서 종군위안부 문제로 질책을 아끼지 않고, 전쟁사과로 좋은 모습을 보여준 메르켈 수상이 이번에는 독일 항공기 사고 현장에 달려가 고통을 함께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모습이 참 부러웠습니다.

 

우리의 대통령과 정치 지도자들이 국민들 눈물을 닦아주는 그런 대통령, 그런 정치 지도자들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드려야겠습니다.

 

부활절은 새로움과 변화의 축일입니다. 우리 사회도 이제 함께 살아가는 사회, 이웃의 고통을 함께 울어줄 수 있는 사회로 새롭게 부활하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이 미사를 통해 희생자들에게는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기도하고 유족들에게는 이 아픈 고통의 시간을 이겨낼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주시도록 온 마음으로 기도합시다. 그리고 우리들은 진실에서 눈 돌리지 않고 진실이 밝혀질 수 있도록 소리를 높이는 사람이 되도록 다짐합시다.


 

2015년 4월 1일, 의정부교구장

이기헌 베드로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