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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평강론과글

[20150316] 우리가 원하는 것보다 하느님께서 더 원하고 계십니다.(김유정신부)

by 편집장 슈렉요한 2016. 12. 25.

3월 16일 (사순 4주간 월) 정세미 강론


우리가 원하는 것보다 하느님께서 더 원하고 계십니다

김유정 신부


요한 복음 4,43-54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를 43 떠나 갈릴래아로 가셨다. 44 예수님께서는 친히, 예언자는 자기 고향에서 존경을 받지 못한다고 증언하신 적이 있다. 45 예수님께서 갈릴래아에 가시자 갈릴래아 사람들이 그분을 맞아들였다. 그들도 축제를 지내러 예루살렘에 갔다가, 예수님께서 축제 때에 그곳에서 하신 모든 일을 보았기 때문이다.

46 예수님께서는 물을 포도주로 만드신 적이 있는 갈릴래아 카나로 다시 가셨다. 거기에 왕실 관리가 한 사람 있었는데, 그의 아들이 카파르나움에서 앓아누워 있었다. 47 그는 예수님께서 유다를 떠나 갈릴래아에 오셨다는 말을 듣고 예수님을 찾아와, 자기 아들이 죽게 되었으니 카파르나움으로 내려가시어 아들을 고쳐 주십사고 청하였다.

48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표징과 이적을 보지 않으면 믿지 않을 것이다.”

49 그래도 그 왕실 관리는 예수님께 “주님, 제 아이가 죽기 전에 같이 내려가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50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가거라.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 그 사람은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이르신 말씀을 믿고 떠나갔다.

51 그가 내려가는 도중에 그의 종들이 마주 와서 아이가 살아났다고 말하였다. 52 그래서 그가 종들에게 아이가 나아지기 시작한 시간을 묻자, “어제 오후 한 시에 열이 떨어졌습니다.” 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53 그 아버지는 바로 그 시간에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 하고 말씀하신 것을 알았다. 그리하여 그와 그의 온 집안이 믿게 되었다.

54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유다를 떠나 갈릴래아로 가시어 두 번째 표징을 일으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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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교구 정의평화 위원회가 주관하는 제47차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을 위한 미사를 함께 봉헌하고 있습니다.

 

정의평화 위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을 실천하기 위해서 설립되었습니다. 곧 복자품에 오르시게 될 바오로 6세 교황님께서는 1967년에 반포한 회칙 “민족들의 발전”에서, 이 세상을 새롭게 변화시켜야 할 교회의 사명을 거듭 강조하면서, 교황청과 각 지역 교회에 정의 평화위원회의 설립의 필요성을 말씀하셨습니다. 교황청에서는 1969년 1월에 임시기구로 설치되었다가 바오로 6세 교황님의 자의 교서 “정의와 평화”를 통해 1976년에 상설기구가 되었습니다. 1988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에 의해 평의회로 개편되었습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1969년 10월 정기 총회에서 정의 평화위원회 설립을 결의하였고 이듬해 창립총회를 가졌습니다.

 

저희 대전교구 정의평화위원회는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의 산하기구로서, 교회의 대사회적 가르침인 사회교리를 바탕으로 정치, 경제, 인권, 노동, 평화, 환경, 생명 등 사회생활의 여러 문제에 대하여 복음적인 시각으로 성찰하고 참여하고 있습니다. 주요 활동으로는 사회교리학교를 운영하고, 지금 여러분께서 참여하고 계신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을 위한 미사’와 특강의 자리를 마련하고 있으며, 가난하고 고통 받는 이웃들과 구체적으로 연대하는 길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김종서 교수님을 모시고 법과 민주주의에 대한 특강의 자리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세월호 1주기인 4월 16일을 한 달 앞둔 3월 16일입니다. 오늘 저희 교구에서 38년간 사제로 봉직하시면서 사목해 오셨던 윤종수 세례자 요한 신부님의 장례미사가 있었습니다. 저는 보좌 신부 때에 신부님을 주임 신부님으로 모셨던 연으로 인해 명절과 축일 때에 신부님을 찾아뵈었고, 안타깝게도 지난 설에 너무나 바빠지면서 신부님께 드릴 선물은 차에 실어 놓은 채 아직까지 세배를 못 올리고 신부님 뵈올 기회를 찾다가 그만 부음을 듣게 되었습니다.

 

빈소에서, 장례미사에서, 그리고 하관예절에서 자꾸만 눈물이 났고, 부활을 믿으면서 이렇게 서러워하면 안 된다고 다짐하였지만, 준비되지 않은 긴 이별에 슬픔과 죄송함의 눈물이 나는 것은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예수님께서는 당장 당신께서 다시 살리시려고 마음먹으신 라자로의 무덤 앞에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이러한데, 아직까지 시신조차 찾지 못한 9분의 실종자 가족들, 제발 이제 실종자 가족에서 유가족이 되고 싶다고 말씀하시는 그분들의 심정이 어떠할지,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자식들을 잃고 진상 규명을 염원하는 수많은 유가족들의 마음이 어떠할지 만분의 일, 십 만분의 일이나마 이해할 수가 있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죽기 직전의 왕실 관리의 아들을 살려 주십니다. 오늘 복음을 읽으며 뜬금없이 ‘효자동 이발사’라는 영화가 떠올랐습니다. 청와대 전속 이발사로 발탁이 된 극중 송강호 씨의 아들 낙안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4.19혁명의 날에 태어난 낙안이는 초등학생 때에 ‘설사를 하는 사람은 간첩’이라는 말도 안 되는 정부의 발표에 의해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고문을 받은 뒤 풀려나지만 다리를 못 쓰게 됩니다. 낙안이의 다리를 고치기 위해 아버지는 낙안이를 업고 전국의 용하다는 의원을 찾아다니기도 합니다.

 

영화의 하이라이트 장면이 두 개 있는데, 극중 대통령이 이발사에게 “우리가 만난 지 몇 년이나 됐지?”하고 묻자 이발사는 “네, 각하, 12년 됐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대통령이 “음. 임자도 이 일을 참 오래 하는구만!”이라고 말하자, 이발사는 “각하께서도 참 오래하십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래도 요행히 잘리지 않고 그 다음 대통령의 이발을 하게 되었는데, 대통령이 머리카락이 별로 없었습니다. 이발사는 “각하, 머리가 자라면 다시 오겠습니다.”라고 말했다가 흠씬 두들겨 맞고 자루에 싸여 짐짝처럼 버려집니다.

 

다리를 다쳐 아버지에게 업혀 다녀야 하는 낙안이는 바로 민주주의를 상징합니다. 권력자에게 헌신적인 봉사를 하지만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이발사는 우리 국민을 상징합니다. 복음에서 죽기 직전의 아들을 살리기 위해 예수님께 달려 온 아버지가 국민처럼, 죽기 직전의 아들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처럼 제게 다가왔습니다.

 

겨우 살아난 것처럼 보였던 민주주의가 오늘 날 죽음 직전의 상태에까지 가 있습니다. 공정과 정의로 민주주의를 뒷받침해야 할 법질서가 강자들의 논리에 의해 무너지고 제멋대로 악용되고 있습니다. 병이 들어도 무서운 병이 들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들을 살려 주십니다. 당신의 말씀으로 살려 주십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예수님께서 알아서 고쳐주시겠지’하고 수수방관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아들을 살리기 위해 갖은 방도를 다 동원하고, 카파르나움에서 카나까지 먼 걸음을 달려가 예수님께 청합니다. 그 아버지가 얼마나 애 닳아하는 상태인 줄을 알았던 종들은 집에서 기다리지 않고 아들의 치유소식을 전하러 달려나갑니다.

 

아들을 살리기 위한 아버지의 애타는 마음, 죽은 이의 무덤 앞에서 눈물을 흘리시는 예수님의 마음, 아들 예수님을 지극히 사랑하시는 하느님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며 오늘의 복음 말씀을 대해야 하겠습니다.

 

1독서의 말씀처럼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시는 것을 우리보다 하느님께서 더 원하고 계십니다. 하느님의 나라가 오는 것을 우리가 원하는 것보다 하느님께서 더 원하고 계십니다. 이 땅에 공정과 정의의 법질서가 세워지고 가난하고 억울한 사람들이 법의 보호를 받으며,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권이 존중되어 우리가 민주사회를 거쳐 하느님나라로 나아가는 것을 하느님께서는 진정 원하고 계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도움을 청하고 계십니다. 우리 또한 달려 나갈 것을. 죽기 직전이라고 낙심하지 말고 희망하고 청할 것을. 애 닳아 하고 아파하고 우리의 모든 노력을 기울이며 당신께 청할 것을 우리에게 청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약속하십니다.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