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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서와 문헌/다른가톨릭단체

[20150518] 세월호 진상규명과 민주주의 회복 위한 단식기도회 성명서

by 편집장 슈렉요한 2016. 12. 27.

2015년 5월 18일

깊은 바다에 좌초된 민주주의가 부르짖는다!

 

 

“불의로 진리를 억누르는 사람들(…)에 대한 하느님의 진노가 하늘에서부터 나타나고 있습니다. (…) 그들은 지혜롭다고 자처하였지만 바보가 되었습니다.”(로마 1,18.22)

  

1. 

올해 우리는 광복70주년을 맞이한다. 칠십년 간난신고(艱難辛苦)의 중심에 5 ․ 18 광주민중항쟁이 우뚝 서 있다. 해방 35년 만에 민중항쟁이 일어났고, 그 날로부터 다시 35년이 흘러 오늘에 이르렀다. 해방 3년 후 정부가 수립되었고 민중항쟁 7년 후 민주화가 달성되었다고는 하나, 우리는 국가의 본질과 민주주의의 실상에 대해서 근본적인 의심과 함께 심각한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가 없다. 어째서 우리의 국가는 아이들을 건져내지 않았으며, 오늘의 민주주의는 헐값에 팔리다가 일회용품처럼 폐기되는 아버지, 어머니들의 위태로운 현실을 외면하고 있는가? 

2. 

그해 5월에는 군대가 와서 학생과 시민들을 무참히 죽이고 돌아가더니, 멀쩡한 배가 가라앉던 4월에는 경찰들이 절체절명의 현장을 수수방관하다가 무심히 돌아갔다. 결과는 똑같았다. 시민들 수백이 죽었고 아이들 수백 명이 숨졌다. 박근혜의 해경을 전두환의 공수부대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우리는 그날 해경의 비정한 처신에서 국가폭력의 잔영을 보았다. 참사 직후 대통령은 눈물까지 흘려가며 개혁을 다짐했고 나아가 대대적인 국가개조까지 약속하였다. 상상도 못하던 참사의 뿌리가 바로 정부의 부패와 무능, 그리고 무사안일이라는 사실이 너무나 명백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3. 하지만 지난 1년 대통령과 정부, 여당은 개선을 위한 별다른 노력을 보이지 않았다. 도리어 사고원인을 규명함으로써 안전한 나라를 만들고자하는 시도들을 노골적으로 방해하고 조롱하며 무산시켰다. 저 끔찍한 참사 후에도 반성은커녕 공공의 이익을 무시해온 자신들의 본색을 그대로 드러내는 권력자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죄악의 짙은 그늘과 음습한 냉기를 느낀다. 실로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결과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는 출범조차 하지 못했고 실종자 아홉 분과 통한의 세월호는 어둔 바다 속에서 날마다 녹슬어 가고 있다. 시름과 분노를 달랠 길이 없어 괴로운 유가족들은 매 순간 무너져 내리고 있다.

4. 

시민들은 지금 진실의 인양, 나아가 민주주의의 인양을 애타게 요구하고 있다. 우리 사제들 또한 일 년 넘도록 수장되어 있는 세월호를 생각할 때마다 “광주시민 여러분, 도청으로 나와 주십시오. 지금 계엄군이 시내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함께 나와서 싸워주십시오.”하던 80년 5월 27일 새벽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무장군대가 도시를 습격하던 35년 전의 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국가와 자본의 동맹 아래에서 전답을 빼앗겨도, 해고와 차별을 당해도 그저 묵묵히 인내해야 하는 오늘의 형편이 더 위험하고 불행하다. 

5. 

오늘부터 광주민중항쟁 열흘 동안 이어지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단식기도회는 무엇보다 광복70년, 광주민중항쟁 35년의 의미를 묻고 답하는 자리이다. 독립군들은 어떤 나라를 세우기 위해 일본제국주의와 싸웠으며, 시민군들은 어떤 민주주의를 위해 군부독재에 맞서 피를 흘렸던가? 괴로우나 즐거우나 사랑해야 할 그 나라,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켰다가 자식들에게 물려줄 그 민주주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6. 

기도회 내내 우리는 탱크를 앞세운 계엄군들이 시내로 진입하던 새벽 세 시, “불을 켜주세요, 여러분. 제발 불이라도 켜주세요, 여러분”하던 그날의 애절한 호소를 마음에서 붙들고 놓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 목소리를 유례없는 참사에는 유례없는 성찰로 맞서라는 먼저 간 아이들의 간곡한 부름으로, 마지막까지 도청을 사수했던 시민군들의 명령으로 듣고자 한다. 

7.

지금은 살아남기 위해 우리끼리 다투고 따질 때가 아니다. 가엾은 약자끼리 무한경쟁을 펼치는 국가에서 누군가의 눈물 한 방울만으로도 홍수가 지는 연대의 나라로 성큼 건너가지 않는 한 우리의 배가 닿는 항구마다 광주와 세월호의 참극은 끝없이 반복될 것이다. 그러므로 저마다 하던 일을 멈추고 광주가 보여준 “공공성을 향한 자각, 타인에 대한 배려, 공동체적 헌신”을 고민하며 깊은 생각에 잠겨보자. 오월광주가 우리에게 남겨준, 나무랄 것을 나무라고 지킬 것을 지키는 저항정신. 공동체를 위하여 모든 것은 내놓고 나누는 대동정신. 패배를 장엄하게 그리고 실패를 비옥하게 만듦으로써 부활의 씨앗을 마련하는 밀알정신. 이 세 가지는 빛고을 광주가 오늘의 우리를 위해 차려준 아름다운 국가, 정의로운 민주주의를 위한 빛의 양식이다. 

8.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을 필두로 각 교구별 사제단식기도회가 이어진다. 뿌리째 흔들리는 대한민국, 바다 깊은 곳에 좌초된 우리의 민주주의를 걱정하며 모든 평신도, 수도자, 사제들이 절박한 심정으로 성경을 읽고 성체를 모시고 성령께 기도하자.

 


2015년 5월 18일

광주민중항쟁35년을 맞아 단식기도회 열흘을 시작하며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단식기도회 +

2015년 5월 18일 ~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