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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평강론과글

[20150525] 김영식 신부강론. 왜 팽목항인가?

by 편집장 슈렉요한 2016. 12. 27.

2015년 5월 25일(월)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단식기도회 8일째

주례, 강론: 김영식 신부(안동교구 신기동성당) '왜 팽목항인가?'

 


"김인국 대표 신부님 그리고 배인호 총무 신부님, 비우고 버리니 힘드시죠? (힘들지는 않습니다만, 먹고 싶습니다.) 먹고 싶어서 힘듭니다. 그런데 또 아무렇지도 않은 듯 옆에 있어서 죄스럽습니다. 소설가 김영한은 시인의 일은 ‘원샷 원킬’이라고 했습니다. 단 한 번의 글질로 단 하나의 단어를 선택하는 것, 수많은 말들 중에서 단 한 번의 글질로 단 하나의 단어를 선택하는 것이 시인의 일이라고 얘기합니다.

...

어쩌면 우리 인생살이에 있어서 성공을 좌우하는 것은 ‘원샷 원킬’을 어떻게 잘 하느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가장 필요한 때 가장 필요한 말을 하고, 가장 필요한 행동을 하는 것, 그것이 우리 신앙인들의 업, 화두인 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저희 사제들도 늘 ‘원샷 원킬’을 하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아놀드 하우저라는 분이 <예술사의 철학>이란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침묵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침묵으로 대하고, 자기에게 질문 하는 사람에게만 예술은 속삭인다.”

무엇을 보고도 모른 척 침묵하면 그 무엇은 말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무엇에게 끊임없이 ‘원샷 원킬’의 질문을 내던지면 그것은 나에게 와서 말을 한다는 것이에요.

 

우리 사제들이 지금은 잊혀져간 팽목항에서 단식을 하면서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말을 던져줄 것이라는 믿음 때문에 이곳에서 머뭅니다. 많은 사람들은 왜 정의구현사제단 사제들이 광화문이나 대한문, 사람들이 알아줄 만한 곳에서 유명짜 한곳에서 번듯하게 단식하면 훨씬 효과적일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곳으로 오라고 손짓합니다. 그럼에도 이곳 팽목항을 선택한 것은 정의구현사제단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무정한 세월 속에 잊혀져가는 팽목항 이곳에는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아홉 명의 실종자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제발 우리도 유가족이 되게 해달라고 소리치는 실종자 가족들이 있습니다.

 

이미 시신이 수습된 사람들과 이 실종자들을 비교하면, 실종자들은 그들 안에서도 변방의 사람들입니다. 그들 안에서 더욱 더 슬퍼하고 있는 사람들이죠. 우리 사제들에게 ‘원샷 원킬’은 바로 그렇게 누구도 알아주지 않고, 누구도 들여다보지 않고, 누구도 손 내밀지 않는 사람들, 바로 그곳에 끊임없이 왜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누구도 손 내밀지 않느냐고 질문을 던지는 일입니다. 그래서 광화문에 가서 스포트라이트도 받고 수많은 사람이 아는 체도 하고, 보람되다고 여길 수도 있겠지만 그래서 여기 팽목항입니다.

 

무정한 세월 속에 우리가 확인하는 것은 35년 전 광주민중항쟁 때 국가가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일을 벌임으로써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35년 후인 오늘,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음으로써 세월호에 탔던 생떼 같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은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국가는 그렇습니다.

 

밥을 굶고 있자니 참으로 무기력한 저희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느님 앞에서 겸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겨우 밥 며칠 굶었다고 꼼짝 못하는 인간, 그 인간들이 모여 사는 이 세상 속에서 우리는 한 주권자이면서도 한 개인으로 참으로 무력하다는 사실들을 눈으로 보고 느낍니다. 그러자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기도요, 미사인 것입니다. 그러면서 총칼로 싸울 수 없으니, 권력도 없고 재물도 없으니 밥을 굶으면서 하느님께 매 달릴 수밖에 없는 처지라는 것을 여실히 절실히 깨닫고 배우고 있습니다. 소외된 이들, 가장 아파하는 이들 옆에 있는 것이야 말로 정의구현사제단의 ‘원샷 원킬’이라는 것을 다시 느낍니다.

 

그럼에도 저희들은 희망을 갖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들이 저희들을 잊지 않기 때문입니다. 소고기 정국일 때이지 싶습니다. 김인국 대표 신부님이 하신 말씀이 있어요. 제가 찾아보니 모택동 어록에 나오더라고요.

“인민이 바다라면 당원은 물고기다.”

 

주권자들이 없으면 대통령도 필요 없는 것이죠. 마찬가지로 교우 여러분들이 없다면 우리 사제들도 없는 것이죠. 그래서 저희들은 여러분 안에서 힘을 얻고 희망을 갖게 됩니다. 단식 8일차, 저희들의 비우고 버리는 이 길 위에서 여러분들과 도반으로 맞이할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오늘 저녁은 그런 충만함으로 배불리 자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