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평강론과글

[20150615] 김기곤 신부강론. 배려하는 사람 도움주는 사람

by 편집장 슈렉요한 2016. 12. 27.

천주교정의구현전주교구사제단 -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단식기도회

6.15.목 - 1일째


단식기도 일정표

09:00 아침기도  12:00 낮기도  15:00 묵주기도

18:00 저녁기도    19:00 미사     21:00 끝기도



배려하는 사람 도움주는 사람

 

강론 : 김기곤 신부(전주교구 영등소라성당)

 

 우리말 ‘좋다’는 본디 고어 ‘둅다’에서 비롯된 말이라고 한다. 지금의 동사로 말하면 ‘돕다’ 혹은 ‘배려하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좋은 사람(일)’이란 ‘돕는 사람(일), 배려하는 사람(일)’을 말한다. 한편 우리말 ‘좋다’와 반대말인 ‘나쁘다’는 ‘나뿐’이란 말에서 비롯된 말로 곧 ‘나(자기)만 안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나쁜 사람(일)은 ‘나(자기)만 아는 사람(일)’을 말한다.

 

일본의 패전으로 일제로부터 벗어난 이 나라가 새로 정부를 수립할 당시 강대국이 자신들의 이권을 위해 남과 북을 나누어 신탁통지 하려함에 반탁으로 단호히 맞선 백범 김구 선생은 남과 북이 하니 되기를 염려하며 미래 대한한국을 이렇게 그렸다. “나는 이 나라가 경제부흥국이 아니라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희망한다.” 경제부흥국이 아닌 아름다운 나라! 그가 꿈꾸며 그리고 싶었던 한국의 미래상! 그것은 비록 강대국의 힘을 빌려 일제 강점기를 벗어났지만 그럼에도 세계 그 어느 나라도 그리지 못했던 새로운 패러다임이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 패러다임은 그 후 기득권을 누리려 온갖 술책을 꾸려온 사람들과 순박한 국민들의 속음으로 제대로 실행 한번 못한 채 지금껏 역사의 고물로 책속에 묻혀 왔다. 그런 백범의 고물 구상이 세월호 진상 규명과 민주주의 회복 촉구를 위한 기도의 날이 오늘밤 이렇게 다시 새김 될 줄이야 전연 생각지도 못한 일이다.

 

70여 년 전 백범이 꿈꾸었고 희망했던 새로운 패러다임대로 이 나라가 경제부흥국이 아니라 아름다운 나라로 건립되어 왔다면 지금 우리는 어떠했을까? 단언컨대 이 나라가 304명의 국민들을 바다 속에 생매장 시키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또한 35년 전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반인륜적인 광주학살도, 그보다 더 이전의 4.3 제주 도민의 처참한 학살도 없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멀쩡한 자연의 흐름을 단지 경제 이점이란 이유로 바다와 강들을 막아버리는 일이나, 수천수만 마리의 돼지와 닭과 소를 살처분 하는 일도, 2200여일이 넘도록 부당 해고됨을 외치는 쌍용 해고 노동자들의 처절한 소리를 잔일할 만큼 외면하는 일도, 이미 다른 나라에서는 폐업 선언을 한 핵발전소 건립과 운영을 마치도 황금알인양 선전하며 실행치 못함에 안달하는 일도, 그리고 용산 참사의 비운과, 강정의 몸부림과, 밀양 어르신들의 고통도 없었을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백범이 구상한 미래의 한국 상이 더욱 그리운 밤이다.

 

 

사실 앞서 보았던 이 모든 고통과 비운의 원척적인 발원이란 다름 아닌 처음부터 잘못 시작한 경제부흥국에서 비롯되었다 하겠다. 정말이지 경제부흥이 나쁜 사람, 나쁜 일이 아니고서 어떻게 가능할 수 있겠는가? 나의 것은 물론 너의 것마저 나의 것으로 취하지 않고는 이룰 수 없는 것이 경제부흥 아닌가? 이 점에서 본래부터 경제부흥이란 너를 배려하거나 너를 돕는 일이란 가능치 않는 삶의 방식이다. 그래서 너를 배려해 줄 때 그것이 자기에게 손해나는 일이라면, 또 너를 도와 줄 때 그것이 자기 기득권을 포기해야 할 경우라면 인간으로서 요구되는 최소한의 측은지심도 가차 없이 외면하고 배척하거나 무시함은 물론, 의도적이고 계획적으로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반인륜적 행동마저 서슴없이 자행하였던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그래도 설마하니 그러기야 하겠어?’라며 지금도 실 낱 같은 기대 속에 처진 맘을 달래는 우리가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다시 강론 서두에서 새겼던 ‘나쁜’이란 원래 말의 의미를 들쳐 세월호 때 있었던 몇 가지 일을 집어 보자. 어떻게 나쁘지 않고 배 안의 승객들을 버려둔 채 자신만 살겠다고 침몰하는 배를 빠져 나 올수 있으며, 어떻게 나쁘지 않고 1초가 아까운 그 시간에 희생자들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여 죽음의 길을 자초할 수가 있었으며, 어떻게 나쁘지 않고 전원 구조 되었다고 허의 방송과 보도를 할 수가 있으며, 어떻게 나쁘지 않고 현장에 구조를 위해 모여온 민간 배마저 접근치 못하게 하며, 어떻게 나쁘지 않고 7시간씩이나 나라 안에 일어난 대참사를 모를 수가 있으며, 어떻게 나쁘지 않고 사고의 원인을 반드시 규명함은 물론 책임자를 꼭 찾아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약속했던 그 일을 지금껏 묻어 둘 수 있으며, 오히려 그 진상규명을 하지 못하도록 법적 행정적 조치를 취할 있을까? 심지어 4.16 참사 1주기 추모식에 즈음하여 진상규명을 외치는 유가족의 주장을 희석시키고자 매스컴에 유가족의 외침이 더한 보상금을 받기 위한 행동인 것처럼 유포시켜 국민들로 하여금 그들을 비난하게 하는 치졸한 작전을 어떻게 나쁘지 않고 할 수가 있을까? 어떻게 나쁘지 않고 공인된 추모행사장에 경찰 차벽을 세우고 추모군중을 향해 물대포와 최루액을 뿌릴 수가 있을까? 분명 이 모든 일의 저변에는 경제부흥이란 허울로 다져진 나쁜 삶의 방식이 면면히 흐르고 있지 않고는 생각할 없는 일들이다. 비로 이 점에서 다시 오늘밤 김구의 아름다운 나라의 구상이 그립다.

 


그런데 그가 그린 아름다운 나라! 그것은 동화책에서ㅏ나 나오는 그런 나라가 아니다. 바로 그 나라는 우리가 만들 수 있는 ‘좋은 나라’로 곧 돕는 사람이 주를 이루는 나라이다. 도와주는 사람! 그는 앞서 말했던 배려하는 사람이다. 나만 아는 나쁜 사람이 아니라 너도 아는, 너도 생각해 주는, 너도 배려해 주는 사람! 바로 그런 사람, 그런 사회, 그런 나라다. 그런 나라를 김구는 그렸다. 그런데 이런 그림을 그리고 희망하고 꿈꾸었던 백범은 이제 와서 볼 때 이 나라의 선견자였다. 그가 그린대로였다면 오늘밤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얼토당토 않는 세월호의 참사가 이 나라 안에 일어나지 않았을 것임은 물론 선혈들과 열사들이 목숨 바쳐 이룩한 민주주의가 지금처럼 거꾸로 가는 상황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자. 남을 배려하는 나라요, 돕는 사람의 가치관이 뇌리에 새겨져 있을 진대, 어떻게 배안에 외국인도 아닌 자국민이 그것도 대부분 수학여행 길에 있던 자식 같은 학생들이 죽어가는 그 현장을 보고 국민의 생명을 우선적으로 지켜야 할 정부가 아무런 손도 쓰지 않을 수가 있을까? 너를 배려하고 돕는 맘이 근본적으로 형성된 사람일진대 어떻게 그들을 잃고 몸부림치는 유족들을 향해 이제 고만해라! 지겨워 주겠다, 누가 여행가서 사고 당하라고 했냐며 조소와 비아냥거릴 수가 있을까? 곡기를 끊고 아픔을 나라님께 호소하는 단식 유족들 앞에서 족발과 음식물을 먹으며 약을 올리는 동물적 행동을 할 수가 있을까? 배려가 뭔지도 모르는 소도 어린 송아지가 팔려간 뒤에 며칠을 목메어 운다는데... 그러면 다른 소가 그러 어미 소의 목을 비비며 같이 아파한다고 하지 않나? 정말이지 남을 돕는 사람, 남을 배려하는 정책, 그런 좋은 나라를 지향하고 교육하며 너나없이 그렇게 삶의 방향을 처음부터 잡고 살아 왔더라면 위에서 예로 들었던 그런 무능한 정책이나 몰인정한 태도, 말, 몰상식한 행동들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들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백범의 이런 패러다임은 구상만 되었을 뿐 제대로 한 번 실행치도 못하고 70여년을 그대로 방치해 두었다. 그리고 그렇게 방치한 결과가 어떤 것인지를 지금 우리가 혹독하게 겪고 있는 중이다. 이 점에서 세월호의 유족들이 겪는 처절한 아픔과 고통은 우리 국민 모두가 겪어야할 내일의 아픔과 고통을 앞당겨 겪는 고통이자 아픔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실상 유족들을 마주 보기가 송구하고 미안하고 죄스런 맘이다. 어쩌다 우리가 겪을 일을 미리 당겨 겪음으로써 우리의 아픔을 방지시켜 주며, 우리의 고통을 미리 막아주는 희생제물이라는 점에서 더더욱 미안하고 죄스런 맘이다. 어쩌면 그래서 오늘밤 이곳에 나온 우리가 아닌가 싶다. 우리를 대신하여 아픔을 견디어 내는 유족들에게 조금이나마 죄스런 맘을 보속하고자, 그리고 애린 유족들의 가슴에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고, 또한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희생자들과 학생들에게 면목이 없어 이런 단식 기도시간을 갖게 되었다고 말함이 지금 이 순간 솔직한 우리의 고백이라 하겠다.

 


이레 강론을 마무리해야겠다. 여기서 강론을 마무리하기 전에 여러분과 함께 지금껏 고물로 여겨온 백범의 미래 한국 상인 아름다운 나라! 좋은 나라! 그 나라의 구상도를 다시 한 번 펼쳐 보며 이제라도 그리로 방향을 잡자고 호소하고 싶다. 이런 나의 호소는 개인적 발상이라기보다 오늘 1독서에서 바오로 사도가 말한 다음 말씀에서 비롯된 것이다. :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와주었다. 지금이 바로 매우 은혜로운 때요 지금이 바로 구원의 날이다. 이 말씀과 같이 주님께서는 지금껏 나쁜 삶의 방식에서 비롯된 세월호의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가운데 진정 그 일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근본적 이유를 우리가 굴절 없이 보게 해 주고, 동시에 그 안에서 역사의 방향 점을 새로 잡을 수 있게 그 동안 숨겨온 김구의 구상도를 조명케 해 주셨다. 이로써 이후로 우리가 세월호와 같은 비극으로부터 근본적으로 해방할 수 있는 길을 오늘밤 이렇듯 선명히 알려주셨다. 이 점에서 오늘밤은 우리 자신은 물론이요. 이 나라가 불행으로부터 행복으로 바뀔 수 있는 은혜로운 밤이자 구원의 날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세월호 진상규명과 민주주의 회복을 촉구하기 위한 단식기도가 시작되는 오늘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이끌어 주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며, 지금껏 나라님으로부터 온 국민에 이르기까지 경제부흥을 마치도 행복의 길로 착각함에서 벗어나 아름다움을 향한 배려와 너를 돕는 방식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지혜와 힘주시길 간절히 그리고 간곡히 기도하자.

 

악인과 맞서지 마라,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을 대주고, 오리를 가자는 사람에게 십리를 가주라는 오늘밤 복음말씀도 결국 적극적으로 상대를 배려하고 상대에게 도움을 주는 삶을 경주하라는 주님의 가르침이 아닌가? 그러므로 오늘밤 백범의 구상도를 다시 우리들 가슴마다에 깊이 새겨 오늘 이 순간부터 ‘나쁜 삶의 방식’을 걷어내고 ‘좋은 삶의 방식’을 살아내도록 하자.

 

차제 나라님이 정해진 기간 동안 나라님으로 있어야할 입장이라면 이제라도 ‘나쁜 나라님’이 아니라 ‘좋은 나리님’으로 이 나라를 이끌어 가도록 회심의 맘 주시기를 맘을 다해 기도하자. 또한 정치, 사회, 외교, 남북교류, 복지, 보건은 물론 이 나라의 민주주의가 본래의 좋은 자리로 돌아갈 수 있도록 임기 동안 나쁜 사람들, 특히 나쁜 언론과 정치와 기업인 길들이기에서 벗어나 좋은 사람, 좋은 언론, 정치와 기업인을 육성하는 엘에 매진할 수 있도록 지혜와 힘주시길 기도하자, 그리고 동시에 백범이 그린 패러다임이 이 땅에 실재로 실현될 때까지 우리 함께 연대하여 나라님과 정치 사회 지도자들을 지켜보며, 격려와 질책을 아끼지 않는 복음의 파수꾼이 되기를 다짐하자.

 

“지금이 바로 은혜로운 때요 오늘이 바로 구원의 날이다”고 주님께서 약속해 주신대로 오늘밤 우리 모두 안에 새로운 삶의 방식이 발아되기를 진심으로 축원하는 바이다.

 

SERMON & PHOTO Links

  1.  [20150618] 김창신 신부강론. ‘분노’하며 깨어있으라!
  2. [20150615 사진] 전주사제단 세월호참사진상규명 단식기도회 1일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