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회교리학교/사회교리 강의

[20150924] 최초의 신부 김대건 후손과 함께 하는 강의(전민동 사회교리 3강)

by 편집장 슈렉요한 2015. 9. 20.
2015년 9월 24일(목) 사회교리학교 제3강의 강사신부님은 도마동 본당 주임으로 계시는 김용태 마태오 신부님이십니다. 이번 주일(9/20)이 [성 김대건 사제와 성 정하상과 동료순교자들의 대축일]이었습니다. 순교자의 대축일을 지내는 한 주일에 순교자의 후손이 전민동 성당에 오셔서 뜻깊은 강의를 하시게 됩니다. 

김용태 마태오 신부님은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후손입니다. 김대건 신부님의 아버님(김제준)의 동생 김제철 님의 직계 후손입니다. 게다가 이 집안의 8남매 중에서 4형제가 모두 신부님이십니다.  김선태(대전교구), 현태(대만 신주교구), 용태(대전교구), 성환(대만 신주교구) 등입니다. 한가지 참고할 일로, 4형제 신부님들 중의 장남이신 김선태 신부님은 대한 가수협회에 정식 등록된 가수이시며 음반도 발매하신 분입니다. 지난 5월 29일 전민동 성당에 오셔서 멋진 노래로 성모의 밤을 전민동 신자들과 함께 하기도 했습니다. 

2015년 5월 29일 성모의 밤 행사에 초청되어 오신 김선태 신부님은 김용태 신부님의 맏형님이다.

9월 24일(목) 사회교리 제3강을 해주실 김용태 마태오 신부님은 우리나라 최초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방계 4대손에 해당된다.





(3) 9/24(목) 사회교리의 원리

강의. 김용태 신부님(도마동 본당 주임)

마음이 지쳐서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마음이 지쳐서 기도할 수 없고 
눈물이 빗물처럼 흘러 내릴 때
주님은 우리 연약함을 아시고 사랑으로 인도하시네

누군가 널 위하여 누군가 기도하네
내가 홀로 외로워서 마음이 무너질 때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사회교리도 그냥 '교리'다

사회교리는 이미 우리가 배우는 내용들을 다시 배우는 것입니다. 사회교리가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그동안 배웠던 것이죠. 신앙이 안방에서, 교회 울타리 안에서, 성당 안에서만 이뤄지는 게 아닙니다. 그것은 세상에서 이뤄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은 세상 안에서 실천하는 것이고, 사회를 비추는 것입니다. 따라서 교리는 복음과 성서에서 끌어낸 원리와 이치인 것입니다. 사회교리는 성서에서 이끌어낸 원리들입니다. 


모든 게 다 예수님 말씀이다

정의와 평화란 단어, 정의란 단어가 이상하게 보이는 것은 이 세상에 정의가 희박하다는 증거이고, 그것이 교회 안에서도 특별히 보이는 것은 교회 안에서조차도 제대로 서있지 못하다는 걸 반증하는 겁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복음화되지 못하고 세상에서 정의와 평화가 특별히 보일만큼 세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회교리와 '잘 살아보세'

사회교리는 예수의 복음적 가치를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적용하는 공식입니다. 하느님 말씀과 복음말씀을 가지고 적용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생과 신앙의 대주제는 무엇입니까? 바로 '잘 살아보세'입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고, 그 사랑으로 우리를 살리십니다. 우리는 하느님 안에서, 그 분이 이끄시는 길을 따라서 걷는 것이 가장 행복하고 풍요롭고 충만하게 잘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처음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당신을 닮은 모습으로 만들었던 그 좋은 모습으로 사는 것. 바로 하느님 안에서. 바로 이것이 신앙의 내용입니다. 


성서를 한마디로 줄이면 '삶'

성서를 한 마디로 줄이면 삶입니다. 이것을 예수님이 분명하게 보여주셨어요. 그것이 성서 전반의 이야기이면서, 특별히 예수님께서 특별하고 명쾌하게 말씀과 온 삶으로 우리가 잘 살 수 있는 길을 알려주셨습니다. 그것이 복음의 내용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려면 여러 문제가 있는데, '복음을 적용하면 되겠구나!'하는 것. 마치 수학공식같은 원리, 이게 사회교리 원리입니다. 


하느님 법에 충실하다는 것

우리나라 순교자들도 다 정치범으로 순교하셨습니다. 법에 의해 처형당했지만 하느님 법에 충실한 모습이었고, 우리들도 그래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하느님 원리에 충실할 때, 하느님 법에 충실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사회교리의 원리들


1. 공동선의 원리 ...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해 흘릴 피


예수님이 공동선을 알기 쉽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와 모두를 위해서 흘릴 피다." 이게 공동선의 원리입니다. 너 한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을 확대시키는 겁니다. 자식과 가족에게 좋은 것을 주고 싶은 마음을 확대시키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가족의 개념에서 생각해본다면, 가족 중 병들고 약한 아이가 있다면 오히려 더 신경쓰고, 그 아이한테 집안의 삶의 방향을 맞춥니다. 이걸 조금만 확대하면 가족의 울타리 밖에서도 이런 태도가 가능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걸 이해를 못합니다. 왜 우리가 그런 사람들 때문에 손해를 봐야합니까? 내가 왜 기다려야 합니까? 희생해야합니까?


공동선의 최고 가치

그렇다면 공동선의 최고가치는 무엇이죠? 그건 하느님입니다. 인간의 참된 삶은 하느님과 하나되는 것.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말씀하실 때, 예수님이 말씀하신 마지막 종착역은 과연 어디인가? 바로 하느님처럼 되는 것입니다.


2. 재화의 보편적 목적의 원리

두번째 원리는 재화의 보편적 목적의 원리입니다. 사목헌장 69항에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목헌장] 69. 하느님께서는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모든 사람과 모든 민족이 사용하도록 창조하셨다. 따라서 창조된 재화는 사랑을 동반하는 정의에 따라 공정하게 모든 사람에게 풍부히 돌아가야 한다.8) 다양하고 변화하는 환경에 따라 민족들의 합법적인 제도에 적용된 소유권의 형태가 어떠하든, 언제나 재화의 이 보편적 목적을 명심하여야 한다. (이하 생략)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이 세상 모든 것의 주인은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거저 주신 것입니다. 은총의 라틴어는 bĕnĕfícĭum(베네피치움)입니다. 이것은 원래 공짜로 거저 준다는 뜻입니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그것이 재화의 보편적 목적 원리입니다. 네 소유라고 주장하는 모든 것들은 하느님의 것이다. 너희 것이 아니다. 이걸 알아야 합니다.


풍요는 이미 가진 것을 나누는 것 

풍요는 이미 가진 것을 나누기만 하면 되는 것인데, 제자들은 더 많은 돈을 얘기합니다. 풍요는 더 많은 돈에서 오는 게 아니라, 이미 가진 것을 나누는 사랑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악마의 유혹처럼 돌을 빵으로 만드는 게 아니라, 예수님 자신을 빵으로 만듭니다. 이게 바로 성체성사의 의미입니다. 그래서 너희도 나를 기억하라고 하시는 겁니다. 먹을 걸 더 달라고. 이백데나리온 어치도 모자르다는 제자들. 악마는 다시 제자들 입을 통해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눔의 신비로, 기적을 이루십니다. 그렇게 재화의 보편 목적의 원리는 가진 것을 서로 나누라는 것입니다. 


재화의 보편 목적의 원리...사유재산과 충돌하나?

재화의 보편목적원리는 사유재산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다만, 재화의 보편목적에 충실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사유재산은 필요합니다. 공산주의가 아닙니다. 똑같이 공동 사용한다는 게 아니고, 주위 가난한 사람 있으면 사랑이란 가치 안에서 그리로 흘러가게 해주는 것입니다. 교부들은 부유함은 은총이라고 했습니다. 가난한 이에게 흘러갈 수 있도록 하느님이 책임을 부여한 것입니다. 부자의 부유함 자체 문제가 아니라, 흘러가지 않고, 고이고 쌓인 채로 있는게 문제입니다. 그래서 항상 공동선과 재화보편 목적의 원리에서는 누가 우선적 고려대상인가?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두가지 방법

가난한 사람을 우선 선택해서 나눈다고 할 때는 두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 불우이웃 돕기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가 있습니다. 우리가 정말 간과하는 것입니다. 사회적 정치적 차원입니다. 사회구조, 정치구조, 이 안에서 더 가난하게 만들고, 더 부자로 만드는 구조를 없애는 것도 가난한 이를 위한 노력이 됩니다. 공동선을 위해, 재화의 보편적 목적의 원리를 위해 나눔을 실현하고, 이웃 사랑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이웃을 불행하게 만드는 사회적 구조와 제도를 없애는 게 중요합니다. 이웃이 울고 있을 때, 달래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이웃을 때린 사람들이 더 때리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



3. 보조성의 원리


재화의 보편목적의 원리를 실현하려면 국가권력이나 상위집단의 규제가 필요합니다. 공동선 차원에서 순전히 자발적인 것에만 맡기면 안 됩니다.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가진 상위권력집단은 이러한 원리를 가지고 이 원리에 입각해서 조절해나가는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힘 센 사람이 힘 없는 사람을 도와주는 것, 힘 센 집단이 힘 없는 집단을 도와주는 게 바로 보조성의 원리입니다. 착한 사마리아인처럼 하는 게 보조성의 원리입니다. 그냥 놔두면 죽어버립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치유되어 멀쩡해지도록 돕는 것. 이미 복음 안에 나오는 것들입니다. 


십자가를 보라

모든 민주주의는 참여입니다. 교회도 중요한 민주주의의 한 축입니다. 민주주의에서 더 나아가서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는 사명으로, 두루두루 참여해야 합니다. 그런데 참여를 방해하는 이들, 가로막는 불의한 시도들이 있다면 없애려고 저항해야 합니다. 수많은 불의한 시도들, 심지어 부패한 권력이 있다면 끌어내려야 합니다. 이것이 참여의 복음입니다. 



4. 연대성의 원리

연대는 함께 협력하는 것입니다. 어우러짐이죠. 연대성의 원리를 쉽게 표현하면 어우러짐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유기체 교회론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코린토 1서 12장 12절부터 31절까지를 보면 그 소제목은 <하나인 몸과 여러 지체>입니다. 

12 몸은 하나이지만 많은 지체를 가지고 있고 몸의 지체는 많지만 모두 한 몸인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그러하십니다. ... 26 한 지체가 고통을 겪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겪습니다. 27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지체입니다. 
 
이 말씀은 연대성의 원리에 바탕이 됩니다. 우리는 홀로 독립되어, 다른 사람의 삶과 무관한 존재가 아닙니다. 저 사람이 불행하면 나도 불행해 질 것이란 말입니다. 우린 하나의 생명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곧 유기체입니다. 거대한 한 생명으로 이루어진 유기체이므로, 홀로 존재하듯이 살아서는 안된다는 게 연대성의 원리인 것입니다. 그래서 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게 연대성 원리의 핵심입니다. 


저절로 연대가 될까

그래서 연대성의 원리는 우리는 하나다. 이 모든 것이 가족의 틀 안에서는 다 이해되는 데 그 울타리를 벗어나서는 이해하지 못합니다. 남의 것 빼앗고 무관심하게 눈감고 그런 겁니다.  그러나 하느님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어서 오신 것이 바로 최고의 연대성의 원리입니다. 인간이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저 높은 곳의 하느님. 인간과의 격차가 가장 큰 창조주께서 당신이 그 격차를 없애고 나와 똑같이 되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연대입니다. 인간을 살리기 위해서 우리와 똑같이 되신 것이 연대성의 극치입니다. 인간이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창조주께서 이걸 당신이 없애시고 똑같이 되신 것. 차별과 격차를 없애시고. 그런 모습을 하느님이 우리에게 하신 것입니다. 말씀이 되시고 인간이 되신 하느님이 바로 연대입니다. 그래서 그런 식으로 희생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마무리하면서


이 모든 것들을 아우르는 모습. 공동선, 재화의 보편적 목적의 원리, 보조성의 원리, 참여, 연대성의 원리 등 이 모든 내용들은 바로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서로 사랑하십시요." 바로 이겁니다. "내가 사랑한 것처럼, 자기 이웃은 몸처럼 사랑하십시요. 가진 것을 줘라. 먹을 것을 줘라. 받아먹어라. 이 내용이 다 사회교리 안에 들어있는 것입니다. 다만 이 범위를 확대시켜라. 가족들에게 적용하고 실천하던 이 모든 원리들을 이웃에게도 적용하고, 울타리 넓혀라. 가족끼리 하고 있는 걸 이웃에게도 하라는 것이 오늘 강의의 요약입니다. 


내 앞의 작은 것을 실천하라

세상을 바꾼다고 거창한 것을 생각하면 아무 것도 못합니다. 내 앞의 작은 것,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해나가는 겁니다. 사랑이란 옆 사람에게 던지는 작은 미소, 옆에서 주눅든 사람의 등을 두드려지는 것. 하늘의 태양이 될 생각을 하지 말고 작은 촛불이 될 생각을 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