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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미 강연

[20160215] 강수돌 교수강연. 노동현실과 희망의 대안 ②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방법

by 편집장 슈렉요한 2016. 12. 31.

강수돌 교수의 노동현실과 희망의 대안 (2부)


제 64차 정세미 @ 천안 불당동 성당

2015.2.15 (월) 저녁 7:42





  4.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방법



제가 2005년부터 2010년까지 마을 이장을 했습니다. 교수가 이장을 하다보니 언론이 주목을 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국회의원이나 시장에 출마해야 하지 않나 하는 이야기도 들었어요. 그러나 저는 마을 이장 이상의 권력을 탐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풀뿌리 민주주의로 밤에 함께 모여서 토론도 하고 여론도 듣는 모임을 함께 하고 싶은 겁니다. 그래서 저는 조치원에서 그런 작은 모임들을 하고 있습니다. 


① 자본이 원하는 경쟁과 이윤의 원리가 아니라사람이 원하는 연대와 필요의 원리에 따라야

② 자본과 권력을 추종하는 세력을 뽑기보다 인간과 생명을 중시하는 세력을 뽑아야

③ 정치경제, 사회문화, 교육종교 등 사회 시스템에 무관심하기보다 관심 같고 공부하고 토론하고 주장하며 요구해야 (→ 깨어난 시민들의 조직된 힘: 소통과 연대)


최근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부자들의 포럼이라고 하는 스위스의 경치좋은 다보스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남의 일이 아니라 우리가 모두 연결되어있다는 영성적인 통찰력을 말씀하시고, 함께 고통을 느끼고, 다른 이들의 고통에 깨달아야 한다는 것, 번영의 문화에 무감각해진 세상이지만 이런 걸 다른 사람의 책임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고 하시고, 가난한 이들에게 마음을 열면 오히려 나에게 자유의 공간을 준다는 것... 


“다른 이들의 고통에 단순히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행동이 부당함과 불평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번영의 문화에 무감각해져선 안 된다. 가난한 자들의 호소에 동정심을 갖고, 타인의 고통에 함께 울며, 그들을 돕는 것이 다른 사람의 책임이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

“가난한 이들에게 마음을 엶으로써 우리의 경제적 기술적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무한한 자유를 얻게 될 것”

“가난한 이들에게 마음을 여는 것을 두려워 말라. 소비지상주의가 결코 줄 수 없는 완전한 인생의 행복을 발견할 것이다.” 

“로봇공학과 신기술 (제4차 산업혁명)이 ‘영혼 없는 기계’로 인간을 대체하도록 허용해서는 안 될 것”

“타인의 고통을 위해 울어주는 것은 그들과 고통을 공유함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우리 자신의 행동이 불의와 불평등의 원인임을 인식하는 것을 의미한다”

“일단 이것을 인식하면 우리는 더 완전한 인간이 된다. 왜냐하면 우리 형제자매에 대한 책임이 우리의 공통된 인간성의 필수적인 한 부분이기 때문”

- 다보스 세계경제포럼(40개국, 2500명) 프란치스코 교 연설문 중



어려운 이들과 함께 하는 종교인의 모습을 보면 정말 존경스럽고 감동적입니다. 많은 경우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저 분은 어떻게 저렇게 희생 정신이 강하고, 어떻게 기꺼이 희생할까?" 그러나 제가 볼 적에 그 분은 자기 자신을 희생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얼마 못버틸 거라고 봅니다. 희생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새로운 기쁨과 자유의 공간을 열어주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5년간 마을 이장을 한 것도 건설 자본과의 싸움이었습니다. 천안에도 무수히 짓고 있는 아파트 자본과의 싸움이었는데, 근거없는 허위문서를 바탕으로 한 불법 아파트 건설과정을 제가 막아보려 싸웠 보았던 겁니다. 결국 못 막았지만, 우리 사회의 부정과 비리와 부패가 어떻게 연결되었는지 적나라하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최근 [내부자들]이란 영화가 나왔습니다. 고통스럽고 불편하지만, 우리 사회 본 모습인 거 같아요. 그걸 제대로 보고, 곳곳에 스며든 부패의 망들을 깨끗하게 바꿔낼 적에 비로소 우리 자녀와 후손들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들에게 1억이나 10억을 물려주는 것보다 1억이나 10억이 없는 아이들도 소박한 행복으로 살아가는 사회를 물려주는 것이 우리 가 할 일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박수 안 치셔도 됩니다. (이 말에 큰 박수와 큰 웃음이 함께 터져나옴) 프란치스코 교황님 말씀이 제가 생각한 것과 너무 비슷해서 인용을 해 보았습니다. 


다보스 포럼에서는 제4차 산업혁명 이야기하면서 또 새로운 신성장 동력 같은 이야기를 하는데, 저는 이 정도면 성장이 충분하다고 보는 겁니다. 그런데 교황님은 로봇공학과 신기술(제4차 산업혁명)이 영혼없는 기계로 인간을 대체하도록 허용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경고하시면서 미래를 미리 내다보신 겁니다. 스마트폰도 이 정도면 노동자들에게 고맙고 아주 충분하다고 봅니다. 





5. 바람직한 사회 구조 변화 내용



우리가 한 꺼번에 모든 것을 다 바꿀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압축적으로 말씀을 드리면, 집 지을 때 주춧돌이 필요하듯이 4가지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① 노동시간 단축과 일자리 나누기

② 사회 공공성 강화: 식량, 주거, 육아, 교육, 의료, 노후

③ 개성 있는 평등화 (고교 – 대학 – 직업)

④ 유기농 중심 식량 자급률 향상



① 노동시간 단축과 일자리 나누기


첫번째로 노동과 관련해서 노동시간을 단축해서 일자리를 서로 나누어야 되겠다는 겁니다. 만일 9명이 10시간씩 한다면 15명이 6시간씩, 더 줄여나갈 수도 있어요. 사람은 늘려야 하고요. 


9M x 10H = 90 M/H (현실)

15M x 6H = 90 M/H (진보) 

6M x 15H = 90 M/H (퇴보)


그러나 현실경제는 사람은 줄이고 시간을 늘리는 겁니다. 이러니까 실업자가 생기고 다른 한편에서는 장시간 노동에 고통받습니다. 파김치가 되어서 집에 오면 가족이나 자녀들과 대화할 시간이 없는 겁니다.


ⓐ 한 사회가 돌아가기 위한 노동총량을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이 골고루 나누기

ⓑ 효율성 향상과 더불어 노동시간 단축하여 삶의 질도 높이고 새로운 일자리도 만들기

ⓒ 일자리 혁신: 비정규 아닌 정규직 중심, 사회-생태적 필요에 맞는 일, 일의 기쁨과 보람을 느끼게!


② 사회 공공성 강화: 식량, 주거, 육아, 교육, 의료, 노후


두번째는 복지 영역입니다. 노동시간을 단축하면 임금이 줄어서 걱정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임금을 받아 생활하는 데 돈이 가장 많이 드는 부분은 주거, 교육, 육아 등입니다. 핵심만 따시면 식량은 그렇게 많이 들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사회 공공성을 강화하면, 주거와 육아와 교육과 의료, 노후를 온 사회 공동체의 책임으로 만든다면 노후도 불안하지 않다는 겁니다. 


ⓐ 인간다운 삶이 가능하려면 개별 소득 의존보다 사회 공공성 강화로 삶의 안정성 고양

ⓑ 일반 소비재는 자유 시장에 맡겨도 되지만 대중 공공재는 사회 공공성 강화를 통해 해결



공공성 강화 (사회보장, 기본소득, 사회임금 등) 위한 재원 마련?


그렇다면 그 재원은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제 나름대로 생각해보니까, 지금 벌고 있는 걸 어느정도는 면세해주고, 많이 벌면 벌수록 많이 매기면 됩니다. 그리고 많이 매긴 다음에 그걸 잘 써서 모두에게 잘 돌아가게 하면 됩니다. 유럽 선진국에서 절반정도 세금으로 내도 아이들 대학 등록금까지 무료로 교육하니까 불평을 안합니다. 의료 영역에서도 큰 병을 얻어도 마찬가지인 겁니다. 그래서 공공의 수익도 복지기금으로 돌리면 됩니다. 잘못된 것도 돌려놓으면 됩니다. 과도한 국방비를 줄여야 하고요. USB 하나를 80만원 주고 샀다고 합니다. 


ⓐ 소득세, 법인세 등 누진제, 투명성 강화

 탈세, 누세, 지하경제 바로 잡기

 공공재산 (땅, 강, 숲, 철도, 통신, 보건 등) 수입

 지출의 재구성: 국방비, 공공사업, 눈 먼 돈…

 지금 부족하더라도 공공성 강화 시 노력 경주 

   (사람들은 재미 + 의미 있는 일에 동기 부여된다) 



이렇게 해도 자금이 부족하다면, 저는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콩 한 알이라도 세 사람이 나눠먹을 수 있을 정도의 협동적인 관계라면 사람들이 감동을 해서 열심히 일해서 세가마니 금방 만듭니다. 재미있고 의미있는 일이라면 더 열심히 일해서 금방 만들어냅니다. 이런 걸 믿어줘야 합니다. 못 믿고 잘라내는 방식으로 가려고 하면 안된다는 겁니다. 


③ 개성 있는 평등화 (고교 – 대학 – 직업)



그리고 교육이 중요하죠. 교육을 출세수단 내지는 부모들이 어릴적 받았던 열등감을 만회하려는 수단으로 삼기 때문에 뒤틀리는 겁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똘똘한 몇 명만 뽑아서 돈 버는데 이용해 먹으려는 경우도 있어요.게다가 소위 좋은 학교의 네트워크를 통해서 각종 정치경제사회의 부패의 고리로 활용되는 데 우리 사회 모습입니다. 영화 [내부자들]에서도 빽없는 검사의 설움이 표현되고 있습니다. 연줄망으로 얽켜야히지만 출세하고, 동일한 일을 하더라도 방해받지 않고 소신을 펼 수 있어요. 그렇게 하려면 연줄이 있어야 하죠. 그런데 소신을 갖는다고 하지만 지시를 받고 움직이는 게 더 많아보이기도 합니다. 


다른 소망과 재주를 가진 아이들이 무엇을 공부하더라도 지지해주고 학비 부담 없이 배울 수 있으며 배우고 나와도 아무런 차별이 없는 구조 … 이런 사회적 조건이 있어야, 꿈을 꿀 수 있다 



그런데 정말 제대로 된 교육이라면 자기가 가진 끼나 소망이나 재주나 이런 것들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죠. 그러나 그게 안되고 있습니다. 만일 이렇게 했어도 대학을 가고 직업으로 연결된다면, 일정한 수준만 되면 비슷하게 대우받는다면, 아이들이 좋아하고 잘하는 걸 열심히 아니까 우리 사회의 실력은 더 월등히 올라간다고 봅니다. 문화예술에 재주가진 아이들이 국영수에 파묻혀서 전부다 대학에 가서 박사가 될 것처럼 교육되는 현실이 우리 사회의 저력을 미리부터 망가트리고 있다고 보는 겁니다.


예전에 '교육인적자원부'란 말이 있어요, 제발 제대로 교육하려면 '인적자원'이란 말을 빼라고 했어요. 중간에 한번 빼긴 뺏어요. 제 말을 들어서 그런 건 아니겠지만요. 중요한 것은 철학과 실질적 정책입니다. 그러나 지금도 역시 인적자원의 관점으로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④ 유기농 중심 식량 자급률 향상


마지막으로 농어촌에 대한 부분이니다. 1차적으로는 농민을 없애는 정책을 반성해야 하고, 그 다음은 농약제초제 중심의 관행을 바꿔야 합니다. 그러면서 식량자급율을 높이면서, 농민들이 판매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식으로 바꿔야 합니다. 농사 지어봐야 인건비도 안나온다는 계산이 나오지 않도록 일정한 소득과 판매망에 전국적 힘을 모아서 농민들이 안심하고 농사에 전념하도록 지원하는 것을 정부나 정치가들이 하는 일이라고 봅니다. 공동체적 삶이 영성적 삶입니다. 모든 사람이 이웃 사촌이 되어야 하죠. 그래서 따지고 보면, 농림부 장관, 교육부 장관, 복지부 장관, 노동부 장관. 이 네 분의 장관들이 시급한 사회개혁의 주춧돌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장관을 우리가 뽑지 않습니다. 누가 임명하죠? 대통령이죠. 그래서 대통령을 잘 뽑아야 합니다. 


현재 25%도 안 되는 식량 자급률, 세계 곡물가 동향, 수입 농산물 (방부제, 환경호르몬, GMO 등), 식량 안보, 농촌 공동체의 가치 → 농촌, 농민, 농사, 농업을 중시하는 사회


그래서 여기서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은 5분짜리 흑백 영화가 있습니다. [마우스 통신]이라고 하는데요. 1997년도 서울에서 국제독립영화제에 출품된 작품이었어요. 쥐들의 마을이란 것인데, 대통령을 뽑는 데 희안하게 고양이를 뽑았어요. 하얀 고양이를 뽑았는데, 5년간 시달려서 꼬리 뜯기고, 머리 뜯기고, 피나 나고 도망다니다가 5년 뒤에 뽑았는데 검은 고양이를 뽑았습니다. 또 5년 동안 시달리다가 뽑았는데 얼룩 고양이를 뽑았습니다. 마지막에 쥐 한마리가 일어납니다. (탁자를 탁 치며!) "쥐 여러분! 정신 차립시다. 왜 우리가 고양이를 대통령으로 뽑아서 이렇게 고통을 당합니까? 다음부터는 쥐를 대통령으로 뽑아야 되겠습니다!" 하니까 전부다 박수를 치다가는 쥐죽은 듯이 영화는 끝납니다.


저는 이것이 굉장히 상징적이라고 봅니다. 선생님들에게 가서 이런 말을 합니다. 아이들에게 국영수를 가르치고, 또 어떤 면에서는 인간이 되라고 인성을 가르치는 것도 중요한데, 제가 보기에 어떤 사람이 우리를 위하는 사람이고, 어떤 사람이 우리를 억압하는 사람인지, 사람보는 눈 조차 길러주지 못한 게 우리 교육이 아닌. 사람 보는 눈을 길러줘야 겠다는 생각입니다. 이것은 선생님들뿐만 아니라 모든 어른들과 모든 구성원의 숙제라고 생각합니다. 




6. 최근 노동개혁의 핵심



① 능력주의, 성과주의 임금체계 강화

② 일반 해고제 도입 (저성과자, 노조원 위험)

 비정규직 확대 (기간제, 파견 업종)

④ 취업규칙 퇴행 변경 (임금피크제, 동의 없이)

⑤ 탄력근로시간 정산 기간 확대 (O/T수당 절감)

야간근로(22:00-06:00): 제2급 발암 물질 (cf. 미세먼지: 제1급 발암 물질)




7. 나부터 실천, 생동하는 연대



① 자본과 권력이 이끄는 방향과 내용에 대한 비판적 성찰: 공부, 대화, 토론

 더 많은 민주주의를 위한 집단 지성과 집단 실천

 ‘삶의 질 중심 구조 혁신’에 대한 공감대 형성과 사회적 공론화

③ 현재 10%에 불과한 노조조직률을 30% 이상으로 올리기

④ 아이들이 살아갈 더 나은 세상에 대한 전략적 비전을 나누고 만들기

⑤ 총선, 대선, 지자체 선거 등 각종 선거 국면에서 제대로 된 일꾼 뽑기 + 새 비전 공유

⑥ 당장 ‘나부터‘ 할 수 있는 일들: 소모임 활동, 지역 모임, 온라인 및 오프라인 소통과 연대

⑦ 밥상혁명, 교육혁명, 마을혁명과 동시에 전 사회적 구조 변화에의 의지 공유

⑧ 기업별 노조를 넘어 산별 노조, 지역 노조 등 다양한 소통과 연대의 실천 (각종 인문학 모임)

⑨ 정치 권력을 바꾸고 경제 권력을 바꾸어야 한다  정치경제 민주화, 노조 민주화

 정치경제 민주화가 되려면 나부터 바뀌어야 한다 (주체성과 연대성)

 3-4%의 소금이 바다를 짜게 하듯, 나부터 소금이 되어야 한다!

 미래의 세상도 행복해야 하지만, 만드는 과정도 행복해야 한다!

     


여러가지 이야기 중에서 지금까지 말씀드린 방향으로 가야지 현재 정부에서 가고자 하는 방향은 '개악'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살아가는 세상에서 나부터 하는 일에 참여하고, 소모임 활동을 많이 만들고 참여하고, 내 밥상도 바꾸고, 유기농으로 밥상을 바꾸면 유기농민을 살리는 길이 되고, 생협 회원이 되면 조합이 하나의 사회 흐름을 바꿀 수 있고, 혁신학교, 대안교육 등, 저도 하고 있는 입장인데 이런 걸 해야 하고요. 


노동 쪽에서는 기업별 노조로 너무 활발하지만 이 틀을 넘어서야 하고, 지역과 연결되어야 하고, 정치권력을 바꾸고 경제 권력을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가 바닷물을 찍어먹어보면 짠 맛이 납니다. 그런데 짜다고 해서 전체가 소금인 건 아닙니다. 100그램 중에 3~4% 정도가 소금이라고 합니다. 나 하나가 제대로 살아가는 모습이 소금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런 마음으로 나부터 소금이 되자는 겁니다. 간디 선생도 얘기했어요. 세상을 불평하지 말고, 나부터 촛불을 켜자. 내가 먼저 촛불을 켜자는 마음으로 가자는 겁니다. 그러나 나 홀로 가면 안되고 같이 가야 합니다.


나 자신을 포함해서 우리 모두는 가정이든 교육시스템이든 사회든 언론이든 다양한 사회적 과정 속에 은연중 엄청난 상처를 받은 존재란 것을 깔고 타자와 관계하기 시작하면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고 사랑으로 힘이 되고자 노력하면 연대의 힘이 더 강해집니다. 그런 마음이 아니라 "내가 좀 더 잘났어!" 이런 마음으로 시작하면 연대가 깨어지고 잘 안되는 겁니다.  



8. 맺음말


<나부터 실천 + 더불어 실천>이 희망입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자본과 권력은 경쟁과 분열로 달려갑니다. 원리상으로 자본과 권력은 자기들 지배를 유지하려고 경쟁과 분열을 조장합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남성과 여성, 지역주의, 학력차별, 성과차별, 국적차별 등등. 경쟁과 분열을 조장하지만, 생명과 인권의 권리는 함께 가야 합니다. 그래서 노동과 생명으로 소통과 연대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인간의 행복은 은행의 이자와 상반됩니다. 은행 이자는 저금해서 나중에 미루었다가 한꺼번에 많이 찾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행복의 원리는 10대, 20대 행복을 미루었다가 50~60대에 한꺼번에 못찾는다는 원리가 있어요. 매 순간 발걸음마다 내 존재의 기쁨, 다른 사람과의 관계의 기쁨을 찾아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행복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는 겁니다. 오늘 행복을 찾기 위해서라도 불편한 현실을 끊임없이 들여다 보면서 어디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고쳐야 할까? 나부터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를 공부하고 토론하고 학습하는 모임을 만들어가야 될 것 같습니다. 이 말씀으로 마치겠습니다. (8:53 pm)



천안 불당동성당 2015.2.15 (월) 저녁 8:54 스마트폰 촬영. 강의가 모두 끝나고 질문을 받고 있는 모습



질의응답


질문: 리만 브라더스 사태가 미국에서 벌어졌지만 왜 세계적으로 타격을 받았습니까? 


네. 아주 좋은 질문입니다. 약간 우스개 소리하면 미국의 리만 브라더스는 망했는데, 한국의 리만 브라더스는 잘 살아있죠. 이명박 대통령과 강만수를 빗댄 겁니다. (리만 = 이명박과 강만수) 그런 농담이 있었어요.


그것은 금융자본이 이미 세계화되어 한 기업에 투자된 자본금으로 엮여있고. 세계 각국의 자본금이 모여있고, 거기에 투자된 돈들이 망하면, 그 은행이 갚아야 할 다른 은행들이 또 어렵게 되잖습니까? 그런 식으로 전 세계 금융 네트워크가, 투자가 세계적으로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금융 자본들의 조직이, 우리나라 기업들이 서로 상호출자형태처럼 그물망으로 엮여 있기 때문에 한군데 펑크나면 다른 쪽에 연결에 연결로 도미노 현상이 벌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미국 자본만 타격 받는 게 아니라 유럽 자본도 타격을 받았던 겁니다.


질문: 부모로서 아이들에게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는지요. 


엄마나 아빠의 힘은 유기농 농사에서 화학비료를 안 주고 퇴비주죠. 농약제초제도 안하죠. 물론 퇴비도 논란이 있어요. 자연농법에서 퇴비도 안좋다는 이야기하는데, 자연농법 내지 유기농법에서 퇴비와 같은 거름 역할 하는게 부모의 조건없는 사랑입니다. 기저귀 갈아줄 때의 마음입니다. 다음에 의사나 판검사 된다는 조건으로 갈아주는 게 아니죠. 무조건 갈아줍니다. 이 아이가 우리 가정에 태어난 것이 너무나 소중하고 고맙다는 마음으로 꾸준히 관심가지면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과 하고 싶어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아이가 하고자 하는 일을 '측면'에서 어떻게 지원해줄 수 있을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한편으로 경제적 지원과 다른 것은 정서적 지원이 있어요. 정서적 지원은 무한대이지만, 경제적 지원은 사회가 해결해야 하는 것으로 크게 보아가면서 개인적으로는 형편 닿는 한에서만 도와주고, 마음으로는 무한대로 지지해주는 것이 조건없는 사랑을 실천하는 길입니다. 


제가 아내와 세 명의 아이를 키우면서, 엄마 아빠가 공부해온 것처럼 공부하지 말라고 했어요. 성적표에서 등수나 점수 따지지 않았고, 저는 개인적으로 우리 교육계에서 가능한한 시험 적게 치고, 시험을 치더라도 등수 시스템을 없애라고 끊임없이 주장합니다. 아무리 애들이 잘해도 등수를 물어봅니다. 백점을 받아와도 "애! 이번에 백점 짜리 몇명 있니?"라고 물어봅니다. 그런 것도 없애고, 나중에 대학과 직장에도 서열화 개념이 없어져서 내가 가고 싶은 분야에 일정한 정도 실력만 되면 될 거 같아요. 전 그 기준이 운전면허증이 라고 보는데, 한 70점 정도만 되면, 누구나 다 골고루 대접해주는 사회가 되면, 그리고 개인적으로 게을러터져서 남의 걸 프리 라이더로 타고 가는 공짜는 문제가 되지만,노력을 하되 정도를 정해주는 겁니다. 대개 숙제는 하고 놀아라 하는 게 70점 정도라고 합니다. 나머지는 자신이 더 좋아서 더 공부해서 백점을 맞을 수는 있습니다. 물론 칭찬을 해줘야겠지만 강요는 해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그리고 등수로 아이들을 갈라놓는 것은 아이들 마음을 고약하게 만듭니다. 질투심과 경쟁심과 또 다른 이면으로 열패감을 심어주어 병들게 만듭니다. 비교하면 안됩니다. 다른 아이들과, 형제들과도 비교하면 안됩니다. 각각의 아이들은 나름의 빛깔로 자란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너의 존재만으로도 고맙고 소중하다는 마음으로 살아가면 그 아이는 언젠가 싹을 틔울 자신감있게 틔우게 될 것이라고 저는 믿어요. 



마지막 질문: 삶의 질 중심으로 개인의 삶을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우리 사회 자체는 시장경제이고, 굉장히 필수적인 구조에서 요즘 많이 대두되는 기본 소득이 대안이 될 수 있는지요?


매우 많은 생각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기본소득과 사회복지, 사회보장 이런 게 용어는 다를지라도 이 생각은 일치하는 겁니다. 한 사람이 태어나서 교육을 받고 일가를 이뤄 살아가고 또 살다보면 아프기도 하고, 나이가 들면서 늙어가고, 이렇게 사람이 거쳐가는 생애 과정에서 사람으로 어쩔 수 없이 맞닥뜨려야 하는 걸 각 개인이 벌어서 해결하는 식으로 개인화시키지 말고, 사회가 함께 고민으로 가야하는데, 사회복지, 공적 지출, 기본 소득 등의 개념들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저는 기본 소득에 대한 개념을 지지하며 글이나 책에 쓰는데, 기본 소득이란 서울시나 성남시에서 시도하려는데, 중앙 정부에서 안된다고 방해하려고 하는 겁니다. 기본 소득개념은 누구나 다 사회 구성원이라면 남녀노소 모두에게 한달에 50만원씩 주자는 것이 기본소득 개념입니다. 그렇게 되어야 할 이유에 대해서 여러가지 논란이 있지만 핵심은 취업이 잘 안되는 세상이라는 점입니다. 취업된 사람은 먹고 살고 나머지는 죽으란 말이냐?


두번째는 우리 사회에 일정한 부가 생간되고 사회가 이렇게 돌아가고 있는데, 따지고 보면 이것이 취업한 사람들이 만든 부가 아니라, 자연과 환경과 수많은 이들이 만들어낸 땀과 눈물의 결실이기때문에, 기본소득 개념으로, 누구나 다 최소한의 부를 공유하자는 겁니다. 뭐 어마어마한 돈을 주자는 게 아닙니다. 


이론적으로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핵심적은 것은 그런 것입니다. 취업과 연관되어 벌이에 너무 한계 가 있으니까 이걸 인정하자는 겁니다. 취업 못한 사람도 먹고 살게 하자는 겁니다. 부의 원천은 사회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같이 나누는 게 맞습니다. 재원들에 대해서는 앞서 얼핏 말씀드린 것들이 연관이 됩니다. 결국 저 자신도 그래요. 저도 책을 쓰고 논문을 쓰고 하지만, 그게 온전히 저 혼자 힘으로 되는 게 아닙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도와줍니다. 선생님이 도와주죠, 장학금 주신 분이 있죠. 버스 운전기사를 나를 태워서 학교까지 바래다주셨죠. 어머니의 노고 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협동이 있었습니다. 논문을 쓸 때도 그 전에 수많은 사람들의 연구를 참조하고 거기서 아이디어 착안하고 내 걸 보태는 것입니다. 내 이름으로 내기는 하지만 그것이 온전히 나만의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질못되었단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과가 과연 온전히 나만의 것인가? 이게 바로 영성적인 관점입니다. 우리는 같이 움직이고 있다는 겁니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의외로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최근에 많이 되고 있고, 논의가 시작된지 얼마나 안되었는데, 서울시와 성남시에서 이미 하겠다는 나선 것도 혁명적 변화입니다. 물론 쉽지는 않지만, 조금 관심가지고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국민 교양도서라고 생각하면서, 꼭 봐야 하는 책이 <녹색평론>이란 격월간지입니다. 그런 공부 모임을 만들었으면 합니다. 책이 마땅하지 읺으면 인터넷에 '기본소득' 치면 수많은 자료들이 나옵니다. 관심갖고 보시면 일리가 있겠다고 생각하실 겁니다. 사회보장이나 사회복지이든 공적 지출이든 공공투자이든 기본소득이든 용어가 어떻든 우리 삶을 개인에게만 책임지는게 아니란 걸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 물론 개인이 책임져야 할 부분이 있어요. 영화보고 여행가고 아이들에게 맛있는 거 사주고 하는 건 각자 자기가 벌은 것으로 할 수 있어요. 시장을 전면 부정하지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지금은 시장 만능주의로 가고 있잖아요? 특히 저는 재래시장이나  벼룩시장, 아나바다 시장 같은 거 좋아합니다. 

새로 만들기 보다 서로 좀 지루해지고 몸이 커서 안 맞는거 교환해서 쓰면 자원도 절약하고 돈도 절약하고 돈 더 벌려고 일을 더 하지 않아도 좋고요. 그런 거 생각해보면, 시장도 필요하지만, 충분함의 미학과 적정시장, 적정기술, 적정 속도 이런 것을 감안하며 나아가면 동알한 자원으로도 훨씬 행복하게 살 수 있겠다는 겁니다. 기본 소득 개념도도 그런 관점 더 많은 논의가 이루어지면, 나 혼자 꿈꾸면 공상이지만, 모두가 함께 꿈꾸면 현실이 된다는 말이 있죠. 그런 꿈을 여러분도 꾸시면서 그런 꿈을 주변에 나누면 좋겠다는 겁니다. (9:08 종료)



위 기록은 강사님의 말씀을 다시 정리한 것이기에 실제 말씀과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1961년 경남 마산에서 출생한 강수돌은 서울대에서 경영학을 공부하고, 독일 브레멘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려대 세종캠퍼스 경영학부 교수로 '돈의 경영'이 아닌 '삶의 경영'을 가르치고 실천하는 일에 힘쓰고 있다. '나의 작은 실천'이 참 행복의 길을 열고 사회도 바꾼다는 믿음에서 2005년 5월부터 2010년 6월까지 5년간 시골 마을의 이장을 지내기도 했다. 학교 근처 서당골에 귀틀집을 짓고. 가족과 텃밭을 일구며 세 명의 아이들을 자연 속에서 키웠고 자연이 주는 즐거움에 흠뻑 빠져 사는 그는, 돈벌이가 아닌 살림살이의 관점에서 사회와 삶을 바라보고 '아래로부터의 시각'으로 이웃과 역사를 바라볼 때 희망이 열리고 더불어 행복한 세상도 올 것이라고 믿는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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