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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안팎뉴스/가톨릭 뉴스

[20150615] 6월 둘째주 강정소식 - 제주평화의섬 실현위한 천주교연대

by 편집장 슈렉요한 2016. 12. 27.

6월 둘째주 강정 현장 소식


한주가 해무로 가득 찼습니다. 눈으로 안개들이 떠 다니는 것이 보이듯, 바닷바람을 타고 안개가 자욱하게 드리웁니다. 안개가 끼고 습도도 높아서인지, 기운이 빠지기도 합니다. 청명한 하늘을 보면 절로 기분이 좋아 지듯 우울한 하늘은 기분마저 우울하게 만드는 듯 합니다. 그럼에도 육지에서 오신 손님들, 특히 여름 방학을 즈음해 강정을 찾는 어린 친구들 덕분에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사람을 위로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7일 일요일에는 골롬반외방선교회에서 함께 해 주셨습니다. 8일 월요일에는 전주교구에서 오셔서 4시미사와 9일 화요일 미사를 함께 해 주셨습니다. 특히 화요일미사에는 청주교구 유아교육분과의 수녀님들, 전국 청소년사도직 수녀님들, 성가소비녀회 수녀님들이 참석해 주셨습니다. 10일에는 중앙성당의 신부님과 신자분들이 함께 해 주셨고 11일에는 성산포, 표선 성당에서 함께 해 주셨습니다. 멀리 의정부교구 후곡성당에서 강정을 찾아주신 신부님과 신자분들이 오후 미사를 봉헌하였습니다. 12일에는 강정현장팀과 살레시오회 수녀님들이 미사를 진행했습니다. 13일 토요일에는 강정현장팀과 육지에서 온 대안학교 청소년들이 온 힘을 다해 미사를 진행했습니다. 하루하루 진행되는 미사가 어떻게 진행될지 걱정도 많지만 육지에서 찾아주시는 손님들, 제주교구 각 본당의 노력으로 현장미사가 힘을 얻습니다. 강정을 위해 기도해 주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강정 농사

강정(江汀) 예부터 물이 맑고 수량이 풍부해 농사가 잘 되기로 유명한 일강정에 40년만에 쌀농사가 지어지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농사를 짓지 않는 땅인데다 어리숙한 손길 이여서 시행착오도 있지만 제법 모판의 모들이 부쩍 자라나고 있다고 합니다. 쌀농사 뿐 아니라 강정공소 잔다크 회장님이 짓고 있는 밭에는 고구마며 국화며 팥, 호박, 물외, 고추 등 온갖 밭작물들이 반짝하는 햇살을 양분삼아 뿌리 내리고 있습니다. 마을에 방문하시는 수녀님들이나 방문자들이 손을 거들어 농사일을 돕기도 합니다. 마을을 지키는 일과 더불어 일상을 살아가며 바쁘게 돌아가는 강정의 봄입니다.


강정생명평화대행진

벌써 4회째가 되는 강정생명평화대행진이 7월27일(월) 제주시를 출발해 8월1일(토) 강정에 도착하는 일정으로 열립니다. 동쪽과 서쪽 두 개의 팀으로 나뉘어 제주 전역을 돌고 토요일에 강정에 도착합니다. 8월3일은 해군기지 반대투쟁이 어느덧 3000일이 되는 날 이기도 합니다. 제주에서 전국 각지에서 많은 참여와 응원을 부탁드려요.

 




강정에 하느님의 사랑이, 하느님의 율법이, 

예언서의 정신이 이뤄지기를 간절히 기도 해야겠습니다.

                     

중앙성당 홍윤학신부님 강론

 

강정에 올 때마다 차들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참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도 자기들이 약속을 안지키는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내고 싶어할까. 11시 미사가 있는 것을 안다면 적어도 5분전에는 차를 움직이고 멈춰야 하는 것이 아닌가. 저희도 한시간 동안의 미사 시간을 보장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한시간 꽉 채우고 갈 것입니다. 오늘은... 약속을 한 것이니까 저희도 지켜야 하겠죠.

 

오늘 ‘율법과 예언서를 예수님께서 폐지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오셨다’고 하시는데, 율법과 예언서를 완성하러 오신 예수님께서 율법과 예언서를 무엇으로 완성 하려고 하시는 것일까. 오늘 복음 말씀 안에서 우리는 그것을 알 수 있을겁니다. 가장 작은자, 큰 사람 이런 것들이 나오면 우리는 당연하게 사람을 머릿속에 떠올려 볼 수 있는 것이죠. 왜냐, 예수님께서는 가장 높으신 분이시지만 인간들을, 우리들을 사랑하시기에 가장 작은 사람이 되어 오셨죠. 그리고 그분의 삶 자체는 율법과 예언서를 비껴나간 삶이 아니라 율법과 예언서에 가장 근본적인 정신, 즉 사랑을 완성 시키는 삶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보다보면 우리는 이러한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요한 복음을 보면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 놓는 것 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너희를 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는 말씀을 우리는 떠올려 볼 수 있을 겁니다. 즉 사랑이라는 것은 내가 죽어서 남을 살리는일 이라고 할 수 있겠죠. 내가 죽어서 남을 살리는 일인데, 요즘 세상에 과연 누가 나를 죽이고 남을 살리는 일을 하겠습니까? 분명 사제인 저도 그렇게 하지 못하고 신자들인 우리 신앙인들도 그렇게 잘 살지 못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렇게 살려고 노력은 하고 있다는 겁니다. 한번 건물지어진곳 보실래요? 뭐가 보이십니까? 그저 하얀 건물, 벽돌지붕이 보이죠. 예전에 저 자리는 생명의 자리였습니다. 구럼비가 있었고 생명이 살아 숨쉬는 곳이었죠. 살려야 하는데, 내가 살려고 저 자연을 죽여 놓은 겁니다. 뭣 때문에? 개인적인 이익과 국가의 안보라는 허명 때문에 정부가 그일을 하고 있는거죠. 모든 법과 모든 규율의 기본은 항상 사람인데, 어느순간 이 국가 법이라는 것이 사람들을 억누르고 억압하고 기득권들을 위한 법이 되었습니다. 사랑이 배제되어 버린, 악법도 법이라고 하는데. 악법 안에도 사랑은 분명 있을 겁니다. 내가 배불리는 사랑이 아니라 나를 죽여가는 사랑이 보여져야 하느님 사랑이 완성되고 이땅 안에서 진정한 평화가 이룩될텐데... 눈 앞에 보이는 것은 평화가 아니라 전쟁의 도구일 뿐이고 생명이 아니라, 생명이 죽은 자리밖에 보이지 않으니... 어떻게 안싸울수가 있겠습니까.

 

강정을 보며 그런 생각도 했습니다. 아, 이제 하나씩 시작되는 구나. 강대국들의 논리에 의한 세상의 끼어 맞추기가 시작되는구나... 그냥 놔두면 안될까. 여기와서 느낀점이 몇가지 있습니다. 누가 무슨 권한이 있어서 저 앞을.. 미사시간이라도 지키려는 신부님과 신자들을 들어 나르는지.. 무슨 권한으로.. 이 나쁜짓을 우리가 언제까지 봐야될까.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안에 이들을 심판하는 정신이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심판해야 할 것인가. 아마 예수님께서 오셨어도 아마 사랑으로 이들을 보둠으라고 할 겁니다. 얼마나 가난한 이들인지. 우리도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들의 삶 안에서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을 폐지하지 말고 사랑으로 완성시키고 그 사랑은 나를 죽여가는 사랑이라는 것을 다시한번 생각해 보시면서, 진정으로 이 강정에 하느님의 사랑이, 하느님의 율법이, 예언서의 정신이 이뤄지기를 간절히 기도 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