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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평강론과글

[20160516] 김다울 신부의 정세미 71차 미사 강론, 도마동 성당

by 편집장 슈렉요한 2017. 1. 2.

하느님을 신뢰하십니까? 

하느님을 신뢰하는 삶의 태도


2016년 5월 16일 연중 제7주간 월요일, 도마동성당

2016년 상반기 정세미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을 위한 미사와 특강)

제 71차 미사 김다울 클레멘스 신부님 강론



오늘 복음말씀에서 예수님은 "이 믿음이 없는 세대야! 내가 언제까지 너희 곁에 있어야 하느냐?"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이 믿음이 없는 모습을 보며 한탄하시는 모습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벙어리 영이 들린 아들을 데리고 온 아이 아버지에게 "<하실 수 있으면>이 무슨 말이냐? 믿는 이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라고 말씀을 하시고 아이를 낫게 해주십니다. 그리고 복음 마지막에 제자들은 "어째서 저희는 그 영을 쫓아내지 못하였습니까?"라고 묻자, "그러한 것은 기도가 아니면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나가게 할 수 없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우리는 이 복음을 통해서, 이러한 믿음에 대해서,그리고 믿음을 갖고 하는 기도에 대해 생각해봐야 하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정말로 하느님을 믿느냐?"라고 질문하십니다. '믿음' 이런 표현을 쓰면 그 '믿음'이란 것이 아주 거룩하고 저 하늘 위로 떠다니는 단어 같아서 말을 바꿔보겠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정말 하느님을 신뢰하심니까?  (교중에서 대체로 '네~~')


바로 이 물음입니다. 정말 하느님 신뢰하느냐? <난 누구를 신뢰한다.>라고 할 때의 바로 그런 말처럼, 정말 하느님을 신뢰하는지를 물었더니, 여기 계신 대부분의 분들이 '네'라고 대답을 하셨습니다. 그러셨죠? 


저는 중앙시장 성당에서 사목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때로 어떤 신자분께서 오셔서 자신의 가게를 축복해달라고 하시면 가서 축복을 합니다. 그런데 갈 때 그냥 안 가겠죠. 십자가 하나라도 가져가게 됩니다. 가게에 뭐하나 달게 해줘야 하는데, 선물로 들고가는 겁니다. 그래서 십자고상 들고 가서 걸어주고 축복해주고 그런데 며칠 뒤에 가보면 그 십자가 안 보입니다. 왜 없어졌을까요? 고사를 지내야 해서 그런 겁니다. 신자분께서 차마 양심은 있으셨는지, 약간 껄쩍지근했던 탓인지, 예수님을 잠시 내려놓고 고사를 지내셨던 겁니다 .


또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제가 축복을 해주고 갔는데, 이후에 또 친척 중에 목사님이 계시다고 해서 가게에 와서 한번 또 축복을 하고, 아는 스님분도 있다고 하면서 가게에 와서 합니다. 왜 그럴까요? 다리를 몇 개 걸치는겁니다. 마치 로또 살 때 번호 하나만 사지 않는 것 같은 겁니다. 천주교도 하고, 개신교도 하고,불교도 하고, 고사도 지내고, 그중 하나만 걸리면 된다는거죠. 그게 우리 문화일수도 있겠지만. 우스우면서도 씁슬한 생각이 드는 이유는 사람들이 그렇게 하느님을 신뢰하지 않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제가 보좌신부 때 보면, 수능 즈음되면 갑자가 신자가 늡니다. 얼라? 1~2백명이 느는 겁니다. 대체로 고3 엄마나 고3 학생들입니다. 평상시에 많이 나오면 일곱명 적게는 다섯명인데, 수능 위한 미사 한다고 하면 또 학생들이 1~2백명 옵니다. 선물도 잔뜩 준비하고 안수도 해주고, 그러면 아이들이 수능 끝나고 열심히 나오겠다고 말하지만, 사실 다시금 하나도 안 나옵니다, 하느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얼만큼 하느님을신뢰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오늘 우리는 (민족문제연구소 박한용 실장님을 모시고) 역사에 관한 특강을 이제 듣게 됩니다. 우리나라 역사 안에서 여러가지 말들도 있고. 또 여러가지 면에서 생각해보면, 친일파, 공신주의자, 자유주의자, 민족주의자 여러 단어들을 나열할 수 있지만 크게 보면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는 이기주의자들이고, 다른 하나는 그래도 조금 양심 갖고 살려는 사람들, 이렇게 두 종류 사람들이 있지 않았을까요? 


이기적인 사람들에게는 삶의 일관성이 없습니다. 자기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는 겁니다. 자기 이익만 챙깁니다. 우리 역사를 볼 것도 없이, 우리가 사는 이 시대 이 현장 안에서도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익이 되면 여기 갔다가 또 이익되면 저쪽도 갑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그 이익을 좇지 않고, 그래도 정의가 뭔지, 옳은 게 뭔지. 내 양심에 따라 살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느님을 신뢰하는 사람들은 이 후자의 사람들입니다. 자기 삶을 일관성있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입니다. 기쁠 때나 슬플때나 어려울 때나 좋을 때나, 온전히 자신의 삶을 하느님께 의탁하는 사람, 일희일비하지 않고, 일관성있게 살아갈 줄 아는 것이겠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하느님을 신뢰하는 사람들의 모습이고 삶의 태도입니다, 여기 우리 모두는 아까 대답처럼 하느님을 믿고 신뢰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과연 그만큼 우리 각자의 삶은 하느님을 신뢰하는 일관성을 갖고 살아갔는지 돌아봤으면 합니다. 우리 역사가 얼마나 일관성을 갖고 공동체를 위한 것이었는지 오늘 복음 통해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잠시 묵상하시겠습니다.


2016년 5월 16일 연중 제7주간 월요일

2016년 상반기 정세미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을 위한 미사와 특강)

제 71차 미사 김다울 클레멘스 신부님 강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