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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평화 좋은글

[20161126] 토크콘서트 다시 봄이 올거예요. 리본 하나 다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by 편집장 슈렉요한 2017. 1. 3.

대전 도안동성당 2016-11-26 토요일 저녁 7:30



다시 봄이 올거예요
김유정 신부 사회, 이아름, 박보나, 김인기 패널 참석


2016년 11월 26일 토요일 저녁 7시30분, 대전시 서구 도안동 성당에서 세월호 참사 비극의 희생자, 단원고 아이들의 형과 누이 3명이 북콘서트를 열었다. 





그 중 이아름 씨는 2학년 8반 이승현 학생의 누나다. 옆의 사진은 2014년 7월초, 아버지와 함께 750 km 도보순례길에 있을 때의 모습니다. 그리고 이승현과 이아름의 아버지는 이호진이다. 2014년 교황이 방문했을 때 직접 교황에게 세례를 받았던 분이다. 


또한 이아름 씨와 그의 동생이며 승현이의 형이 되는 이동현 씨가 2016년 3월 27일(일) 안산 선부동 성당에서 세례를 받았다.세례명은 이아름 마르첼리나, 이동현 마르첼리노 이다. 

또 다른 참석자 박보나 씨는 2학년 5반 박성호 군의 누나이다.  박성호 군은 가톨릭 성직자의 길을 준비하고 있었다. 부보님과 네 남매가 모두 가톨릭 신자인 집안의 셋째였던 박성호 군은 고교생이 되면서 가톨릭 신부가 되기로 마음을 굳혔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성호 군의 큰 누나 박보나 씨는 현재 세월호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세월호를 비방하는 인터넷 게시물을 찾아 법적인 조치를 취하고, 4·16 TV를 도우며 전국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그리고 세번째 참석자 김인기 씨는 2학년 4반 김웅기 학생의 큰 형이다. 동생 웅기한테 굉장히 엄격한 형이었기에, 사랑한다는 말, 고맙다는 말 한번도 못해본 것을 안타까워 하면서, "이 말을 못하고 동생을 떠나보낸 게 가장 후회된다."고 밝히는 김인기 씨


이처럼 2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믿기지 않는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세월호 참사로 유명을 달리한 희생자 304명이란 숫자는 단순한 통계가 아닌 것이다. 304명이란 숫자가 아니라 하나하나 304의 수십배, 수백배의 사람들 기억 속에 분명하게 살아있는 뚜렷한 존재들인 것이다. 


2학년 8반 이승현의 누나 이아름, 2학년 5반 박성호의 큰 누나 박보나, 그리고 2학년 4반 김웅기 군의 큰 형 김인기, 이들이 대전 도안동 성당을 찾아와서 북콘서트 "다시 봄이 올거예요" 행사를 열었다. 


사회는 김유정 유스티노 신부



2016년 11월 26일(토) 저녁 7시30분, 대전 서구 도안동 성당에서 열린 북콘서트의 사회는 김유정 유스티노 신부가 맡았다. 김유정 신부는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총무이면서 대전가톨릭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김유정 신부는 성당 안에 15만명 정도가 모였다고 너스레를 떨면서 첫번째 질문을 던졌다. 첫번째 질문에 대한 답변은 박보나 씨가 했다. 


첫번째 질문. 배가 가라앉은 정확한 이유는 뭔가요? 인양은 도대체 언제 되나요?


박보나

사건 당해 침몰원인으로 검찰이 밝힌 것은 과적, 조타미수, 고박불량 등이었어요. 그런데 세월호 이후 청문회가 있었고, 청해진 해운이 그들의 무리한 이윤을 위해 과적을 했던 것 말고도, 제주 강정으로 가는 철근 462톤 실려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어요. 그래서 그게 과적의 주요원인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근들이 어디에 실렸는지 밝혀있지 않고 있어요. 그게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어요. (박보나는 몸을 떨었다. 말을 잊지 못하겠는지, 잠시 정신을 추스리더니)


보면서 말하겠습니다. 좀 떨려서요. 


세월호 배 안에 철근이 실렸는지를 몰랐다고 검찰이 말하고 있지만, 몰랐을 리는 없었을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밝혔던 대로 과적을 주 원인이라고 이야기했는데, 새누리 당이나 청와대도 계속 발뺌을 하고 있어요. 여전히 어디에 실렸는지 밝히지 읺았고, 1심때 검찰 결과를 그대로 따라서 조타수의 조타 미숙으로 급변침을 했다고 했어요. 2심 때는 조타의 정상작동이 합리적으로 의심된다고 밝혔어요. 과연 조타기가 온전한 지 철근은 어디에 실렸는지는 배가 온전하게 인양 되어서, 침몰의 원인을 밝혀야 하는데, 밝히지 못하면, 인양 되지 않아서 선체 조사 못하면 그 원인을 알 수가 없어요. 


검찰에서 밝히고 있는 대로, 그 세 가지 이유로 침몰이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더 정확한 이유가 밝혀져야 할 것이고요. 뱃머리만 들고있다가 4월 18일에는 뱃머리까지 다 가라앉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그 당시 배안에 에어포켓이 있을거라는 희망이 전국적으로 아니 전 세계적으로 있었는데요. 에어포켓이 있을 거고 그 안에 희생자들이 조금 더 버틸 수 있게 공기주입해주고 신소주입해준다고 산소를 넣은 이후 완전 침몰하게 되었다고 했는데, 그 산소 넣어준다는 것을 가족들은 완전 침몰 이유로 보고, 청문회에서 그 산소가 공업용인거로 밝혀졌고, 그 산소를 배 안에 있는 이들이 숨쉴 수 있게 배 안에 가장 많이 있을 식당에 공기주입 하겠다고 했는데 청문회에서 밝혀지길 사실 아무도 없을 기관실에 넣었을거란 사실, 넣었던 공기는 사람이 마시면 죽는 공업용 산소인 게 밝혀졌습니다. 


그들은 쇼를 한 것입니다. 공업용 산소를 넣고, 사람 없는 기관실에 넣고, 그게 배를 더 가라앉게 했고, 구조를 위해 생존자를 수색하는 등의 일은 아무 것도 한 게 없습니다. 

그리고 인양은 2016년도 올 해 안에 되지 않을거로 봅니다. 7월에는 인양하겠다고 하더니, 다시 겨울에 하겠다고 했다가는 올 해에는 할 수가 없다고 말을 바꾸면서, 해수부와 정부는 인양을 계속 미루고 있습니다. 사실 저희 가족들은 이미 세월호 선내 많은 증거들이 사라졌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세월호에 있던 앙커 닻이나 여러 증거들이 이미 많이 훼손되었고, 세월호 안에는 선내 증거를 훼손한 것도 모자라, 배에다 구멍, 이른바 천공을 140개를 냈습니다. 그 구멍으로 사람이 빠져나가고도 남을 만큼 더 큰 구멍도 있어요. 그 중에는. 원래 상하이 쌔비지 방식 중 천공 게획 없었는데, 천공을 낸 겁니다. 갑자기 통보하고, 왜 천공해야 하는지, 그들의 실수로 밝혀졌습니다. 


상하이쌔비지에 관한 제보를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받고 있는데, 정부에서 일부러 능력있고 돈도 적게 받겠다는 업체들이 많은데, 왜 상하이 쌔비지 선택했는지, 인양에는 생각이 없는 게 정부이고, 인양이 되더라도 그 과정에서 산산조각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있습니다. 그리고 배 인양 후에도 세월호를 없애려고 합니다. 올라온 동사에 미수습자를 수습하겠다는 명분으로 그들은 다른 계획이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유가족들은 불안하고, 미수습자 가족만 참여시키면서, 그 사이에 유가족과 이간질을 시키면서 소통을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인양하기가 어렵고, 미수습자와의 사이도 많이 안좋아지고. 지금 세월호 7시간에 많은 시민들이 궁금해 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왜 침몰했는지 궁금해 하고 있습니다. 현재 많은 증거들이 훼손되었지만, 온전히 인양이 되어야 진실 밝힐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난제는 세월호 특조위가 정부에 의해 강제 해산되어, 인양된 이후라도 진실 제대로 밝힐 기관 지체가 없다는 점입니다. 정부가 은폐하고 진실을 축소시킬 수 있어요. 그래서 특조위원들은 2차 특조위 구성 을 원하고 있습니다. 다시는 이런 참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많은 도움이 필요합니다. 계속적으로 관심 가져주시고 인양되도록 목소리 내주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박보나 씨는 시종일관 떨리는지, 숨이 멎는듯한 발언으로 매우 힘들어하고 있었다.)

박보나 다시
이번 달에 다시 세월호 인양 관련 자료집을 만들었습니다. 광화문에서 나눠주고 있는데요. 이 책 내용을 토대로 전국적인 공연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대전에는 아직 요청 들어오지 않았지만, 여러 단체 요청해주시면 전문가분들과 부모님들이 강연해주시고, 이 책을 5천원에 판매해요. 상황이 열악한 관계로 인양 관련 많은 정보들이 있으니 침고해주시고, 세월호 4-16연대를 통해서도 질문받을 수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진상규명 어디까지 왔나]하는 제목의 책입니다. 




김유정 신부 두번째 질문

지금 이 상황에서 가장 바라는 건 무엇인가요?

이아름

여기 있는 저희 셋은 세월호 유가족이란 이름으로라도 불리지만, 미수습자 가족들은 그렇게 불리지도 못하고 계십니다. 사실 그분들 생각하면 제가 이 자리에서 그분들 이야기 올리는게 죄스러운 마음 뿐인데요. 보나도 말했지만, 배가 완전히 가라앉았을 때 살아서 만나긴 어렵겠단 생각을 이미 했습니다. 그런데도 확인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하루라도 빨리 만나고 싶었지만, 막상 그 순간이 되니 아니길 바랬던 것 같아요. 그런데 미수습자 가족들은 어떤 마음으로 사시는지 상상도 안되고, 상상하고 싶지 않아서 상상하지도 않았지만, 세월호 유가족으로 바라는 게 있다면 그들 미수습자들이 모두 가족 품으로 돌아오길 바라고, 고창석 선생님, 양승진 선생님, 현철이, 영인이, 은화, 다윤이, 그리고 일곱살 혁규, 혁규 아버지 권재근님, 이영숙 님 등 아홉분 하루 빨리 돌아오셨으면 좋겠고요.


"조은화, 허다윤, 남현철, 박영인, 고창석, 양승진, 권재근, 권혁규, 이영숙."

그 다음 세월호 탑승하신 분들중 생존하신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어요. 
그 분들이 구출이 되어서 지금 이렇게 실고 계신게 당연한 거고 잘못된 게 아니니 너무 미안해하지 마시고. 특히 아이들 같은 경우에는 친구들 몫까지 열심히 살려고 애쓰지 말고, 자기들한테 주어진 몫만 열심히 행복하게 잘 살아서 잘 커서 그 아이들이 그냥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고요. 저처럼 비록 실아서 만나지는 못했지만, 유기족이 된 다른 가족분들에게 바라는 곤 여전히 사랑하는 가족들이 옆에 있기 때문에 아무리 힘들어도 하루하루 사는 게 아쉬워도 행복하게 잘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이게 제가 바라는 겁니다. 감사합니다. 

김유정 신부의 질문  3년전과 비교해서, 변화된 게 있다면?

김인기

현실적으로 보면, 세월호에 관해 진전이 별로 없어 개인적인 이야기를 드리고 싶습니다. 항상 간담회나 북콘서트에 가보변, 그 날에 모든 기억이 멈춰져 있습니다. 사실 그날 이후부터 뭘 했는지 기억 안나고 머리가 백지로 점점 변해가고 있는 심정입니다. 정신은 물론이고 몸도 확실히 피폐해져간다는 걸 몸으로 그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아직 시작도 인했어요. 모두가 투쟁현장에서 목소리 내고 있고 앞으로도 바램이 이뤄질때까지 목소리를 낼 것입니다 다만 변화가 있었다면, 이런 일이 있기전까지는 정말 열심히 달려왔고, 가까이 있던 존재는 망각하게 된다는 것인데요. 그런데 뒤돌아보면 있어야 할 존재가 더 이상 없습니다. 그래서 반성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과연 나는 누군가의 아픔과 슬픔에 진심으로 공감한 적이 있는가? 어찌보면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는 그 엄청난 죄책감, 그 슬픔을 누군가에게 얘기하지 않고 많이 삭히며, 그런 삶을 이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까 있는 감정들을 그대로 솔직하게 받아드리는 것 같아요. 계산적이지 않게, 아프면 아픈다고, 기쁘면 기쁜 대로 제 자신에게 솔직해집니다. 그동안 저 자신 채찍질하며 달려왔는데, 이제 제 마음의 진솔함에 귀를 기울여 어떤 상황에도 솔직하게 다가갈 힘이 생깁니다. 그러다보니 제가 겪은 슬픔들을 어떻게 제어해야 할지 잊지 않고 살아가면서 어떻게 이 아픔 안고 가야 할지 생각하는 날들, 요즘인 것 같고, 그게 변화라면 변하고, 동생이 마지막 9시3분에 보낸 카톡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늘 그날을 살고 있습니다. 



사회자 김유정 신부
무거운 질문들이 앞에 있나 했는데, 하나하나 다 무거워요, 그럴 수 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 다음 질문 읽어드릴게요. 사람들 어떤 반응이 가장 함드나요? 개인적 도움 주고 샆은데 어떻게 도움이 필요할까요?

이아름
사실 요즘 뉴스보면 새삼스럽게 속상하고 서운합니다. 왜 이제서야 광화문에 백만 촛불, 이백만 촛불 밝혀지는지 한편으로 속상합니다. 제가 거리를 걸을 때는 세월호 7시간이 나오지 않고, 최순실이 누군지 모르지만, 이제 새삼스럽게 나오는 뉴스를 보며 그게 가장 함들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래도 그거 역시 제 몫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래서 하루하루 많이 아쉬운 것 같은데, 요즘에는 뉴스 보는 게 가장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자 김유정 신부
김인기 아버님과 도보순례하고 성모승천대축일에 십자가를 교황님께 전달하기도 했고, 또 아름이는 아빠와 순례를 했어요. 보나 동생 성호군은 예비신학생이고, 신학교로 진학해서 사제가 되는 게 꿈인 학생이었어요. 그런데 지금 아름 양아 아야기한 것처럼 지지난 주에 광화문가서 백만명이 모인 것이 가슴 뭉클하고 뿌듯했는데, 세월호 때는 왜 이렇게 모일 수가 없었을까? 물론 언론의 지속적인 방해와 왜곡보도가 있었으나 그것에 우린 정말 속아야만 했나? 우린 지금 통쾌한데, 형제자매 입장에서 왜 여태까지 관심 안갖다가 이제와서 모든 언론들이 이렇게 하는지 저도 그런 마음이 듭니다. 

박보나

"어떻게 하면 도움이 될까요?" 이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책에서도 말하고 있지만, 사람들에게 원하는 것은 하나같이 세월호 리본을 달고 있는 것만드로도 큰 힘이 됩니다. 세월호 리본 달고 있는 것 만으로도 세월호 희생자 기억하고 계속 추모하고 진실 밝혀지길 원한다는 표현이기에 세월호 리본을 보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됩니다. 2년이 지나서 떼신 분들도 많아지고, 또 왜 아직까지 달고 있어? 이제 뗄 때도 되지 않았어? 이런 질문을 세월호 활동하시는 분들도 많이 들었다고 합니다. 가장 작은 일이지만, 리본 하나만으로도 큰 힘이 되고, 세월호 활동 관련해서도 영화 만든 분들, 책 만든 분들, 이렇게 자발적으로 활동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큰 일이 아니더라도 집회에 참여하지 못하시더라도, 세월호 관련 소식을 꾸준히 읽고 주위에 알려주시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요. 청문회가 벌써 3차나 있었다는 것, 세월호가 몇 시에 침몰했고 미수습자가 여전히 있다는 사실을 주위에 알려주시는 것 만으로도 큰 힘이 됩니다.

사회자 김유정 신부
네. 감사합니다. 저도 지하철에서 세월호 리본 만난 분들 만나면 반갑습니다. 다음 질문, 질문이라기보다 하시고 싶으신 말씀 점점 미궁속으로 빠지는 데, 심리안정이 걱정됩니다. 누구보다 지쳤을 분들에게 힘내시라고 말씀드리고, 같은 길을 걷겠습니다. 화이팅.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아름
저는 노란 리본을 달아주시는 것도 감사드리지만, 만약 세월이 더 지나서 노란 리본 다 없어지더라도 마음으로 관심가져주사면 그걸로도 충분히 감사드라고요,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뉴스를 잘 보려고 하지만, 궁금한 한가지는 왜 그 7시간동안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 시간동안 뭘 했는지 궁금하지 않고, 왜 구조를 못한 게 아니라, 구조를 안한 것이었다는 걸, 진실이 아니라 제가 인정할 수 있는 사실만이라도 밝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자 김유정 신부
어떻게 하느님께 이야기했는지 조심스럽게 질문을 적어봅니다.
김인기
제가 이 어려운 질문으로 인해 어제밤에 고민이 많았습니다. 사실 신앙이란게 부끄럽지만 당연한 듯 하던 중에, 이런 일 겪다보니까. 일이 터졌을 때는 정말 거들떠도 인 봤어요, 팽복항 바로 내려가서 여러 종교인들 오시고 그러나 쳐다보고 싶지 않을만큼, 찬 물에 박혀있는데, 정말 지옥 같았고, 다 내치고 싶고 원망의 대상이고 이성의 끈을 끝까지 부여잡고 동생 데리고 간다 이 생각 뿐이었습니다. 


전 동생의 모든 모습을 가기 전까지 다 보았습니다. 내 동생 내가 봐야죠, 다섯번 여섯번 끝까지 다 보고 보냈어요, 그러면서 장례미사도 안 올렸어요. 당장 내 동생 썩어가고 있는데, 그 두 세시간 못 참겠더라고요. 보내는 날에 안산으로 헬리콥터를 타고 왔는데 모르는 수녀 한 분이 오셔서 아무 말없이 손을 잡아주시고 쓰시던 묵주, 나무 묵주 오래된 반질반질 걸 주시며, 하시던 말씀이 다시는 기도도 하지 말고 성당도 가지 말고 돌아가 성당에 가서 욕하고 데때려부시고 아무 것도 찾지 말라고 본인은 너무 마음이 아프지만, 수녀의 몸으로 할 수 없는 그런 비참한 현실이 너무 속상하다면서 그 묵주 주셨고 받았죠. 


안산 와서 정신 없이 장례를 치루고 그러는 동안에도 묵주는 주머니에 무의식처럼 있었고, 다만 너무 힘들때마다 붙잡고, 작년 도보 때도 팽목항 걸어가며 꼭 쥐고, 그런 것들이 줄곧 생각납니다. 수녀님이 전하려는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예수님이 과연 돌아가서 기도해라? 아니면 날 이해하려고 했을까? 수 백 수 천 번을 했다. 어떻게 보면 그 분의 그 말씀 하나로 정말 큰 가르침과 감명으로 그래서 신앙을 완전히 버리지 못하고, 남은 미련과 죄책감으로 신앙 안으로 돌아가려고 사실 아직도 방황중이지만, 마음에서는 끝은 잡으려는, 그래서 수녀님은 저에게 소중한 분이 되었습니다. 여전히 문자 드리고, 고마운 존재로 남았고, 신앙이 어떤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주신 분이고, 그렇게 차츰차츰 알아가는 중입니디. 

사회자 김유정 신부
그 수녀님이야말로 하느님의 마음을 가장 잘 알고 계시고 전달하신 분이 아니신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 질문은요. 하느님의 부재에 대해 생각해보자는 것인데, 그래도 하느님 안에 있는 모습 ...

박보나

사실 저도 미사 열심히 나가지 않는데, 세월호 사건 그 날 이후, 왜 내 동생이어야 했는지, 왜 이렇게 큰 일과 고통을 주시는지 원망을 하지 않았던 건 아닙니다. 그래도 주님께 더 기도해야 한다고 성호를 만난 이후에도 생각했고, 이제 내가 성호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없어서, 희생자들에게 가장 잘 해줄 수 았는 분은 내가 못해준 걸 해주실 수 있는 하느님 그래서 열심히 활동을 생각 하지만 성당에서 상처받게 되면서 주님보다는 성당 사람들에 대한 상처로 못나가게 되었습니다.


성당에서는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아이가 4명이었고요. 동생 성호는 사제를 꿈꿨던 아이고, 성당에서 처음 나올 사제가 될 상황이었습니다. 그만큼 열심 활동했는데, 그 이후에 성호의 죽음, 아이들의 죽음을 목격하면서 지켜보던 신자들은 저희에게 잠깐의 위로를 보냈지만, 사실 위로가 안되는 위로였어요. 


주님이 너무 사랑하시니까 데려가신거야! 주님 옆에 있으니 너무 슬퍼하지 말고 행복하게 살아! 이런 말들이 오히려 더 큰 상처가 되었습니다. 그 말에 주남이 사랑하니까 왜 아렇게 고통스럽게 아이를 데려가는지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 많았습니다. 세월호 사건으로 인해 정부에서 왜곡이 점점 더 심해지면서 유가족과 시민들 사이도 이간질을 했어요. 그래서 성당 내에서도 많은 분들이 주님을 기억하고 기리긴 하지만, 세월호 시건으로 희생당한 이들을 기억하기는 싫어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성호를 가르쳤던 선생님이 "8억이면 많지!"란 이야길 하거나 함께 활동했던 성호를 잃었으니 성호와 세월호 기도하자고 하는데, 레지오 단장님은 세월호 기도를 안 올렸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면서 그것이 또 상처를 받게 되는 거였어요. 그런데 거리미사는 나가려고 했습니다. 주님께 청하려고 그런데 계속 상황이 나빠져 왜 이렇게 힘들게 끔찍한 고통을 주시면서도 왜 아무 것도 바뀌지 않는건지, 내 동생 죽음 개죽음 만드시는지 계속 그제서야 주님께 화내고 원망했던 것 같아요. 그럼에도 주님을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다연이 어머님은 기독교 신자인데, "왜 아직도 주님 찾으시고 교회 나가시는가?"라는 주위 질문에 "그래도 하느님은 내 마음을 가장 잘 아실 분이니까."라고 하신 그 답변에 공감이 됩니다.


예전에 성모의 밤에 신부님이 제 엄마를 초청해서 이야기를 해 달라고 했는데, 성모의 밤은 성모님을 찬양하면서 기쁜 노래를 하는 것이라면서,  그 신부님은 그 날에 성모의 밤에는 성모님의 수난과 고통을 가리자며 이야기해달라고 했던 것이었는데요. 나이 많고 보수성향 계셔서도 하지만 왜 이렇게 기쁜 날 성모님 그런 모습을 이야기 하냐고, 신부님께 화내고, 나가시는 분들도 있고, 그런 모습 보면서 아마도 내가 주님을 원망하면서도 주님을 욕하지 않거나 하는 이유는 그 고통을 이제 너무 잘알고 얼마나 힘드셨을지 아프셨을지, 그 고통에 동참하게 되어서인 거 같습니다. 



사회자 김유정 신부
박보나 이야기는 스토리펀딩에 니왔죠? 제가 그걸 보고 많이 울었고요. 제가 신학교 강의중인데, 다 나눠주고, 레포트를 냈었어요. 너무나 쉽게 신앙인들이 범하는 잘못이고요, 요즘 욥기에 대해 신학생들에게 강의하면서 (교중을 향해) 사족을 붙여서 죄송합니다만, 연관되는 이야기라서요. 욥이 고통을 겪을 때 세 친구가 와서 일주일 동안은 멀리서 바라보고 계속 울었는데요. 그리고 갔어야 했어요. 위로한다고 하는게 어긋나서 계속 폭력을 가했습니다. 하느님 편에서 이야기한다고 했지만, 계속 그게 욥을 더 고통스럽게 했고, 하느님이 마지막에 나타나셔서 욥의 세 친구들에게 너희들은 욥처럼 솔직하지 못했다. 네 종 욥이 너희를 위해 빌어주면 용서해주겠다. 그러니까 섣부른 위로는 대단한 폭력입다. 하느님 편에서 하는 위로가 아니라, 본인 생각을 하는 것, 하느님 이름을 헛되이 부르는, 십계명을 어기는 잘못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럼 다음 질문은요. 세월호 참사, 병원의 의료실수, 부정부패에 의한 실업자 등등 사회 악에 의해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어쩌면 하느님을 만나는 방향이 틀어진 건 아닌가 하는 질문입니다. 

김인기
저도 방향을 못잡았는데, 물어보시니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고통이란 감정은 늘 있던 게 없어지는 그 부재가 고통으로 오는 것 같습니다. 그 지점에서 힘들어지고, 이겨내는 과정이 고통인 것 같은데, 고통 안에 잘 살 수 있는 분명한 방법은 없는 거 같고, 겁날 것도 받을 것도 기댈 곳도 없다고 생각할 때 찾아오는 마지노선이 있다고는 봅니다, 제가 느꼈던 경험처럼 누군가 저에게 진솔한 모토와 빛을 비춰준다면 자연스럽게 또 뜻깊게 쉽게 다가설 수 있는 그런 방법이지 않을까 생각이 되어서 저도 바르게 실천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되어야 겠다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회자 김유정 신부
시간이 흐르며 잊게되어 죄송합니다. 그러나 하느님 안에서 다시 한번 하게 되어 감사합니다. 세월호 참사도 흘러가는 사건이 아니라 끝까지 밝혀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박보나
일단 여기 계신 분들은 세월호 진실 밝혀지길 원하는 분들이니 감사드라고, 왜 아직 이야기 기억해야돼 주위 계시다면, 이런 이야기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얼마전 SNS에서 타이타닉은 잊지 읺는데, 세월호는 잊으려고 하나? 그 일은 기억하며 우리나라 일 기억하지 않으려하는지. 우리나라 국민들이 죽어간 사건인데 왜 지겹다고 하는지. 그런 이야기가 있었어요. 그래서는 안될 것 같고, 올해 봄에 산티아고 다녀왔는데, 많은 분들이 도와주셨습니다. 산티아고 대성당에서 추모미사를 드리고, 대주교님도 만나주시고 또 위로해주셨어요. 산티아고 시장님도 만나뵙고 위로를 받았습니다. 사실 안산시장도 세월호 리본 달고 있지 않고, 뱃지를 줘도 달지 않아요. 그런데 산티아고 시장님은 바로 리본 달아주시고 좋은 말씀을 해주셨어요. 또 스페인 청년들을 만나서 그 청년들이 아직도 나는 세월호 사건을 기억하고 있다고 하는 겁니다. 


우리나라에서 많은 분들이 지겹다고 하던 때였는데, 2년이 지난 일들을 다 기억하고 진심으로 위로와 응원을 보내주는 것이 몹시 신기하고 또 감사했습니다. 그게 정말 큰 힘이 되었고 큰 위로가 되었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일인데, 잊지 않겠습니다. 끝까지 기다리겠습니다. 약속했지만, 인양 하는 데 돈이 많이 든다니까 안 해도 되지 않을까, 2년 지나서 잊어도 되지 않을까? 그러나 외국 사람들도 기억하는 사건임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세월호 사건은 아직 아무 것도 해결되지 읺고 진실이 히니도 빍혀지지 읺았습니다. 그리고 배 안에 여전히 9명의 미수습자가 있고. 이 사건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으면 더 큰 사건들을 겪게 될 것이고, 2년동안 또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고, 더 큰 참사를 또 다시 마주하지 않기 위해서는 세월호 참사가 제대로 해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끝까지 기억해주시고, 세월호 7시간이 밝혀진 이후에 미수습자들을 찾을 그날까지, 다시 안전한 나라, 상식적인 나라가 만들어질 때까지 함께 해주셨으면 좋겠고, 포기하시지 않았으면 좋겠다. 김사합니다.

사회자 김유정 신부
너무 감사합니다. [안네의 일기]는 명작이니 독후감 쓰라 하는 데 그게 2차 세계대전 때의 일이죠. 그런데 위안부는 불가역적이니까 다시는 이야기를 꺼내면 안된다고 합니다. 그러면 정치인들은 '네 알겠습니다.' 하죠. 그러지 말아야 하는데... 토론토에서 공부할 때 일주일간 [안네의 일기]를 틀어놓는 거에요. 조용히 공부하는 곳인데, [안네 주간]이라고, 거기 독일사람들 있을텐데, 불편할 수 있을텐데, 우린 그만하라고, 누가 이야기하는 것인지, 그런 악한 목소리 거슬러 성령의 목소리 따라 살아가는 게 중요합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세분 말씀을 들어보겠습니다. 그럼 마지막 한 말씀씩 부탁드리겠습니다.
김인기
저희 형제 자매들이 모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자주 모이기가 힘든데, 그래도 가끔 이렇게 초청해주시고, 시간 나면, 어떻게 해서든 많아 참여하려고 합니다, 사실 많이 부족하지만, 표현하기 많이 떨려서 좀 힘든데, 그래도 이런 자리 오면 쑥스럽지만 들어주시는 여러분 얼굴과 표정들을 정말 많이 안고 갑니다, 그 계기로 열심히 사는 원동력이 되니까 앞으로 어떻게 해나가는지 세월호 유가족이 어떻게 해나가는지 끝까지 지켜봐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박보나
저는 홍보를 좀 할게요. 특조위의 강제해산에 대해 아까 말씀하셨는데,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진 제2기 특조위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대로 하려면 시민들의 많은 도움과 계속되는 관심이 필요합니다. 특별법을 가족들이 다시 제정할 건데, 그 기간이 330일 정도 걸릴 것 같아요, 그동안 가족이나 4.16 연대나, 국민들이 함께 노력하면서 진상규명이 안된 것, 부족한 것들의 진실을 찾으려고 올해 말 국민조사단을 출범시킵니다. 많은 시민들의 도움을 바라고요. 의견개진괴 직접 참여, 그리고 재정적 도움 등이 필요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 계속 관심 가져주시고 함께 해주시면 합니다. 
이아름
먼저 이런 소중한 시간을 만들어주셔서 감사드리고, 도안동 성당이 처음 짓기 시작할 때부터 아빠랑 와서 보기 시작했고, 여기서 좋은 분들 많아 만나서 감사하다는 인사만 제대로 전하고 왔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긴장되고 떨려서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안나는데, 너무 감사드리고 세례를 이번 부활 때 받았는데, 받은 이유는 제가 만났던 좋은 분들이 신자분도 계셨고, 수녀님, 신부님 계셨고, 전 하느님을 본 적도 없고 믿었던 적도 없지만, 만일 있다면 그 분들이 하느님이라고 생각, 그래서 제가 세례를 받을 수 있게 마음으로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께 신자로서 감사드립니다.

사회자 김유정 신부
세월호 관련 소식에 대해 언론은 자꾸 걸러서 전달하니까 4-16연대 홈페이지에 직접 들어가보셔야 정확합니다. (아래 이미지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