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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평강론과글

광화문시국미사강론 | 세례는 왜 주는 것이오? 촛불은 왜 드는 것이요? 양기석 신부

by 편집장 슈렉요한 2017. 1. 4.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월요 시국미사 2017. 1. 2.


세례는 왜 주는 것이오? 촛불은 왜 드는 것이요?

 

강론_ 양기석 신부_ 수원교구 송전성당


뉴스를 들으니 지난 2016년 12월 31일까지 이곳 광화문광장을 비롯해서 전국 주요도시에서 촛불을 밝힌 이들의 수가 천만이 넘었다 합니다. 현재 우리 사회가 중대한 기로에 놓여 있다는 것을 너무나도 많은 분들이 알고 느끼고 계신 듯합니다.


추운 겨울밤에 촛불을 들고 광화문 일대의 광장으로 향하는 촛불 시민들이나, 촛불을 드는 이유를 도대체 이해할 수 없어 태극기를 들고 시청광장 등을 찾는 사람들이나 매 한가지인 듯합니다. 태극기를 들고 군대보고 나서라며 내란을 선동하는 분들이 왜 그러는지는 알고 싶지도 않습니다만, 간절한 마음을 담아 이 나라의 어둔 밤을 밝게 비추는 촛불의 의미는 생각을 해 보아야겠습니다.



촛불은 주위를 환히 밝히는 역할을 합니다. 불을 밝히는 그 순간 우리는 어둠 속에 무엇이 있었는지 알 수 있게 됩니다. 어둠 속에 숨어서 우리를 괴롭히던 것들도, 우리를 두렵게 만들던 것들도 알게 됩니다.   

 

사실 웃기지 않습니까?

현재의 여당을 비롯한 국회의 모습도, 검찰의 모습도. 박근혜 정부와 부역자라고 불리는 일당들의 국정 농단과 전횡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었는데, 많은 이들이 도둑이야, 강도야 하고 외칠 때는 못 들은 척하고, 오히려 고발한 이들을 끌고 가 가두고 단죄하더니, 촛불을 밝히니 이제 와서 철저하게 진상을 규명하고 엄하게 처벌한다고 합니다.

 

역사는 반복된다 합니다. 2천 년 전 예수 그리스도의 시대에 광야에서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라 외쳤던 세례자 요한이 나섰을 적에 당시의 위선적인 지도자들은 사람을 보내 묻습니다.


“당신이 그리스도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고 그 예언자도 아니라면, 세례는 왜 주는 것이오?”


그들은 고대부터 예언자들이 전한 내용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이들이었지만, 그들이 바란 것은 예언이 이루어지는 세상이 아니라 지금 그대로 권력을 누리고, 가난한 이들을 착취하는 세상이었습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찾아오실 때 “두려워하지 말라”고 위로해 주십니다. 진실을 알게 될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내가 이길 수 없다 여겨 두려움에 떨며 숨죽이게 했던 악이 사실은 완전하지 않다고, 빛을, 밝음을, 선을 선택만 하면 우리가 악을 이길 수 있노라고 말씀하십니다. 세례자 요한은 뒤에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그분이 완성하실 하느님 나라를 위해 당당히 선포하였습니다.


세례자 요한을 찾았던 힘 있는 자들은“ 우리가 어떻게 하면 되겠냐?” 묻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옷을 두벌 가진 사람은 못 가진 사람과 나누라 합니다. 먹을 것도 나누라 합니다. 정해진 것보다 더 요구하지 말고, 강탈하거나 갈취하지 말라.” 합니다. 


이 모두 권력과 자본의 부도덕함을 꾸짖는 내용입니다. 광야에서의 세례자 요한의 외침은 어둠 속에서 구세주를 기다리며 고통당하던 이들이 해방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회개하고 정의를 세워야만 하느님 나라가 온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그는 세상을 향해, 특히나 악을 행한 자들에게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요구합니다. 세례자 요한이 하느님 나라라는 새로운 세상을 위해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라”했던 외침처럼, 광장에서 밝혀지는 촛불은 우리 사회보고 어둠에서 벗어나 변화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촛불은 우리를 억누르고, 우리 것을 뺐어가서, 우리의 삶을 고단하게 만들고, 두렵게 만들었던 악이 어떤 모습인지를 밝혀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악에 기생하며 우리의 억눌러왔던 세력들의 면면이 얼마나 초라한지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거기에 더해 촛불이 밝혀준 놀라운 것들이 있습니다.

세월호 희생자와 유가족들, 쌍용차와 콜트콜택, 유성기업의 노동자들, 백남기 임마누엘 농민 살해, 국정역사교과서, 위안부 할머니들과 소녀상, 장애등급과 부양의무제로 장애인들의 기본권, 밀양과 핵발전소, 당진의 화력발전소의 지역주민들의 권리를 침해해 왔는지? 그들의 고통을 왜 그렇게 외면하고, 오히려 감추고 억압하려 했는지 확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어둠 속에서도 그 사람들이 희망을 잃지 않고 싸울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우리처럼 평범한 선량한 시민들이 연대 때문이었다는 것을 밝혀 주었습니다. 그러기에 아직도 선량하고 평범한 시민들은 빛을 밝히려 광장을 찾습니다.


한 사람의 회개가 하느님 나라를 앞당기는 것처럼, 한 사람의 촛불이 이 사회의 악을 없애고, 새로운 사회를 열 것이라는 희망으로 모입니다. 차가운 밤 공기를 마시며, 거리에서 세상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는 여러분은 이 시대의 세례자 요한입니다.

여러분이 바치는 기도는 하느님 나라의 오심을 알리는 세례자 요한의 외침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신발 끈을 풀어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하던 세례자 요한처럼 나약한 존재이지만,

주님은 거리에서 빛을 밝히며 기도하는 여러분을 그 어떤 존재보다도 더 위대하다하실 것입니다.

 








원문출처. 천주교 정의평화구현 전국사제단블로그 http://blog.daum.net/sajedan21/25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