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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평강론과글

박제준 신부, 발전은 평화의 새 이름입니다.

by 편집장 슈렉요한 2018. 1. 28.

발전은 평화의 새 이름입니다.

한끼100원 나눔운동본부 전담 박제준 신부 

대전주보 2018년 1월 28일자 2면 게재



"해외원조". 우리는 흔히 아프리카의 굶주린 어린이들에게 식량을 지원하거나, 동남아시아 저개발국가에 대한 의료지원을 먼저 떠올립니다. 우리는 넉넉하게 살고 있고, 우리보다 넉넉하지 못한 해외의 굶주린 형제들과 나눈다는 뜻에서 물질적으로 돕는 것을 해외원조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우리나라도 해외의 원조를 받아서 국가적 빈곤을 해결해 왔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해외원조의 개념이 새롭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물질적으로 지원하다 보니, 일부 공동체에 한정되기도 하고, 공동체 안에서도 차별과 갈등의 요소가 되어서, 공동체에 해가 되는 경험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해외지원단체들이 물질적인 지원보다는 해당 공동체가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인적 지원과 교육 지원을 목표로 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시혜적 표현인 해외원조라는 말보다는 국제협력이라는 표현을 더 많이 쓰고 있습니다. 


이는 모두가 함께 발전해 나아가야 할 형제들이지, 지원을 받아야 할 대상이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고, 물질주의적 성장보다는 사람 중심, 관계 중심의 발전이 더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해외원조, 혹은 국제협력사업은 다양한 의미의 '발전'을 목표로 합니다. 발전은 공동체가 함께 평화롭게 살아가기 위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6세 교황께서는 회칙 "민족들의 발전"에서 인류의 보편적 공동선에 대해 천명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빈곤과 부조리를 거슬러 싸우는 것은 결국 인간의 물질적 행복과 정신적 내지 윤리적 발전을 도모함으로써 전인류의 공동선을 증진시키려는 것이다. ... 평화는 하느님이 원하시는 질서, 더욱 완전한 정의를 인간 사이에 꽃피게 하는 질서를 따라 하루하루 노력함으로써만 얻어지는 것이다."(민족들의 발전 76항)


오늘날 많은 이들이 해외원조사업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빈곤의 해소를 위한 시혜적 지원인지,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복음적 실천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발전은 소위 저개발국가라고 하는 일부국가들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인류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이고, 우리나라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대전주보 제2450호 - 2018년 1월 28일(연중 제4주일, 해외원조주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