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총을 청하면서, 무릅쓰고 앞으로 나아가라
공주신관동 성당 수료미사, 김용태 신부 강론
8주간의 과정을 마치고, 2025.7.6.(일) 교중에 수료미사 개최
공주신관동성당 사회교리학교 수료미사가 2025년 7월 6일(일) 오전 10시 30분 2층 성전에서 개최되었다. 미사 주례는 대전교구 사회복음화국장 겸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김용태 마태오 신부가 맡았으며, 아산 장재 성당 주임 장우일 안토니오 신부가 함께 했다.
우리는 하느님 은총의 전달자이자 복음선포자
지금까지 사회교리를 들으면서 새삼스럽게 생각하게 된 건, 세상 속에서 우리들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은 신관동 성당 안에만 있는 게 아니라, 여러분이 살고 있는 이 세상 속에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서 살아가는 사람이고 하느님께 받은 은총의 전달자이기도 합니다. 즉 하느님의 복음 선포자이며, 은총의 전달자로 누군가를 도와주고 구원해주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세상 속에서 살아가며 실천하는 모습입니다. 하느님의 도움으로 살아가며 나 또한 다른 이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기에 이런 삶은 성당 속에서 제한되면 안됩니다. 우리는 세상 속에서 하느님을 찾고 만나며 하느님 뜻을 실천합니다.
성숙한 신앙인의 자세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리는 은총을 받는 사람으로서, 하느님에게 구원을 받는 사람이라는 차원에서 많은 것을 생각합니다. 그래서 기도의 내용은 주로 “뭔가를 해주십시오”라는 것인데요. 그런데 이제는 우리가 성숙한 신앙인으로서, 누군가를 도와주는 사람이 되어, 하느님께 받은 은총의 전달자로 우리의 기도가 확대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의 상태를 보라
오늘 복음이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자세를 알려주십니다. 복음의 전달자, 사도로서의 우리들은 어떻게 보면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는 사람’과 같습니다.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는 데 사람들은 뭘 봐야되요? 달을 봐야 겠죠? 그렇게 우리는 우리의 행위로 하느님을 보여줘야 합니다. 하느님의 좋은 이상과 가치를 보여줘야 합니다. 그래서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듯 우리 삶으로 하느님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손가락으로 달을 가르키는데 그 달을 보지 않고 손가락을 보면 그건 누구 잘못일까요? 보통은 그게 ‘보는 사람 잘못’이라고 얘기합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달을 정확히 가리켰어도 그 손가락이 문제일 수 있다면...
달을 가리키는데 손을 보고 있는 것은 「보는 사람」 잘못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차원에서 보면 그건 「가리키는 사람」 잘못이기도 합니다. 잘못 가리키는 것일 수 있습니다. 내가 똑바로 정확하게 가리켰다고 한다면, 사회교리 잘 배우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 잘 알아요. 그래서 정확하게 가리켰어요. 그런데도 달을 못보고 있어요. 그러면 순전히 100% 「보는 사람」 잘못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것도 「가리키는 사람」 잘못일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킬 때, 손가락에 다이아몬드 이만한 게 다닥다닥 붙어있어요. 그러면서 달을 가리키고 있는데 사람들이 뭘 볼까요? 다이아몬드를 보면서 놀라고 “저게 진짜인가?” , “저거 뭐야?”라고 생각합니다. 정확하게 가리켰지만, 사람들이 달을 보지 않고 주먹만한 다이아몬드에 정신이 팔리는 겁니다. 혹은 또 손가락을 보는 데, 똥이 묻어있습니다. “야 저것봐” 하면서 “아휴 더러워” 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이아몬드건 똥이건 사람들은 달을 보지 않고 손가락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은 그런 차원에서 얘기할 수 있습니다.
평화를 비는 본질은 무엇인가?
예수님이 일흔두 명의 제자들을 지명하시죠? 그리고 그들을 파견하시면서 당부사항을 말씀하십니다. “돈 주머니도, 여행보따리도 신발도 챙기지 마라”고 합니다. 돈주머니 때문에, 여행보따리 때문에 신발 때문에, 이런 것들때문데, 사람들이 다이아몬드가 붙어있는 손가락을 보듯이 복음은 보지 않고 그것만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복음에 신경쓰지 않고, 이런 부수적인 것들, 수단에 불과한 돈, 여행보따리, 신발 - 물론 필요합니다. 그러나 본질이 아닙니다. - 본질은 복음입니다.
그래서 복음선포에 대해 이야기하십니다.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말하여라.” 이게 바로 복음선포입니다. 평화~~! 평화는 우리 모두가 함께 잘 살아가는 그 모습이 평화입니다. 우리가 다 함께 어우러져서 소외되거나 버려지는 사람 하나 없이 모두 함께 구원받고 함께 살아가는 게 평화로운 모습입니다. 이것이 복음선포의 핵심입니다. 이것이 평화입니다. 이걸 빌어주라고 합니다. 이걸 선포하라고 한 것입니다.
수단과 목적에 대해서
그래서 다른 것을 신경쓰다가 정말 중요한 복음을 놓치면 안된다는 겁니다. 복음이 목적이고, 돈, 여행보따리, 신발은 도구에 불과합니다. 손가락 역시 도구입니다. 달이 목적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복음을 선포하는 사람으로서 세상 속에서 하느님을 알려주고 선포하고 알려준다고 할 때 사람들이 헷갈리게 하면 안됩니다. 복음이 가리키는 하느님을 분명히 드러내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가 가난해야 한다는 이유가 있습니다. 너무 부유하면, 손에 다이아몬드 휘감은 것처럼 하고 있으면, 사람들은 성당만 바라보지 하느님을 보지 못합니다. 성당이 너무 화려하면 아름다운 성당의 수많은 조각품을 보면서 진정한 복음을 못 봅니다. 또 손에 똥이 발라지면, “아휴 더러워~”하듯이, 교회가 타락하면 아무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해도 사람들이 믿지 않습니다. “너나 잘 살아 이 자식아~”라고 합니다.
우상이란 무엇인가?
그래서 하느님을 드러내는 복음선포자로서의 내 모습을 되돌아봐야 합니다. 수단과 도구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주객이 뒤바뀌면 안됩니다. 반드시 있어야 되는 것과 없어도 되는 것을 오해하면 안됩니다. 돈과 여행보따리, 신발은 수단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복음이야말로 절대 없어서는 안되는 하느님의 가치입니다. 교회에서 “우상에 빠지지 말라”고 구약과 신약에서 강조합니다. ‘우상’의 정의는 뭘까요? 주객이 전도된 것입니다. 수단, 도구, 방법에 불과한 것이 마치 목적인 것처럼 여겨지는 걸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목적인 하느님과 그 가치를 말하는 복음이 사라져버리는 것을 ‘우상’이라고 합니다. 지금 세상을 바라보면, 천주교와 개신교를 포함해서 카페, 편의점만큼 교회가 많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많은 만큼 이 땅이 이 나라가 복음화되어 있는가? 이 땅에 평화가 자리하는가? 그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주객이 전도되어서 그렇습니다. 하느님은 안 계시고 수단과 방법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파견을 보내는 제자들에게 당부한 것은?
이제 예수님이 몸소 가시려는 모든 고을과 고장으로 당신에 앞서 둘씩 보내려고 하는 오늘 복음의 장면은 여러분을 세상에 파견하며 복음을 통해 당부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정말 필요한 것은 단 한가지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바로 마르타에게 한 말과 같습니다. 마리아가 일을 안 하고 예수님 발치에서 듣고만 있으니까 마르타가 예수님께 “이 애 일 좀 시키세요 ” 라고 합니다. 그때 예수님은 마리아를 두둔하는 말씀이 아니라, 마르타에게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마르타야! 많은 것에 마음을 쓰고 걱정하고 그러는데, 필요한 건 한가지 뿐이다. 이걸 잃어버리면 안 된다.” 이것이 바로 복음을 선포하는 우리들에게 당부하신 말씀입니다. 세상 속에서 여러분은 많은 것들을 걱정하고 염려하시죠? 먹고 살아야하니까, 또 자식들을 키워야 하니까. 또 부부간의 관계 안에서, 자식과의 관계 안에서 또 세상속에서, 우리들은 수많은 걱정과 고민을 갖고 있고 이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물론 그것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 우리가 목숨을 잃을지언정 절대로 이것만큼은 포기할 수 없는 것!
정말 필요한 걸 놓치고 있다면?
어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축일이었는데, 순교자들의 삶이 그런 겁니다. “내 목숨을 잃을지언정, 정말 이것만큼은 포기할 수 없다. 놓쳐서는 안되는 것, 정말 필요한 건 한가지뿐이다.” 여러분이 이것을 잃지 않는다면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것이고, 세상 속에서 돈도 많고 지위도 높고 세상사람들이 아무리 알아준다고 해도, 정말 필요한 이걸 놓치고 있다면 우리는 아무 것도 가지고 있지 않은 빈털털이에 불과합니다.
우리 5대 조선 교구장 다블뤼 안토니오(1818~1866) 주교님의 사목 표어가 뭐냐면 “예수님을 가진 자가 모든 것을 가진 자이다.”입니다. 순교자들의 삶이 그런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순교자의 후예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정말 죽었다 깨어나도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복음선포자의 삶을 잘 살아가셨으면 합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파견하실 때 대책 없이 파견하지 않으십니다. 돈도 여행보따리도 신발도 챙겨가지 말라고 하시면서도 예수님은 항상 그들에게 필요한 은총을 아버님께 청하십니다. 그들이 복음을 선포하는데 필요한 것들을 챙겨주십니다.
두려움을 무릅쓰고 나아가라
우리도 두려운 세상이지만, 그 두려움으로 인해 머물러있는 게 아니라, 저 호수로 바다로 나아가지 않으면, 풍랑이 두려워서 나아가지 않고 뭍에 머물면 아무 것도 못하고, 고기를 잡을 수 없습니다. 그 두려움을 무릅쓰고 바다로 나아가서 그물을 던질 때 고기를 잡을 수 있습니다. 물론 풍랑을 만나죠? 하지만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잖아요! 주님께 살려달라고 청하지 않습니까?! 주님께 청하고 예수님은 풍랑을 잠재우시고 우리를 살려주십니다. 그러한 믿음 안에서 풍랑이 가득한 저 세상으로 나아가는 겁니다. 거기에 필요한 은총을 주님께 청하면서 여러분의 파견미사 봉헌하도록 합니다. 잠시 묵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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