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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평강론과글

[20110810] 유성기업 미사 강론 - 김다울 신부

by 편집장 슈렉요한 2016. 12. 22.

2011년 8월 10일

유성기업 노동자들을 위한 미사

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교회의 입장



안녕하십니까? 저는 부여군 구룡면 금사리에 살고 있는 김다울 신부라고 합니다.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생계의 위협 속에서도 이렇게 힘든 투쟁을 하는 것은 한마디로 밤에는 잠 좀 자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유성기업 영동 공장의 경우, 야간 노동에 시달린 한 노동자가 퇴근길에 출퇴근버스 안에서 돌연사하는 사건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또 이 곳 아산공장 역시 2009년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4명의 노동자가 야간 노동 때문에 자살, 뇌출혈, 급성 폐혈증 등으로 사망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더 이상 안되겠다 싶어서, 더 이상은 안타깝게 목숨을 잃는 일이 없어야겠다 싶어서 노동자들이 주간2교대제를 요구하며 협상을 했지만, 불행히도 사측은 이 협상을 성실히 임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인간 존엄성에 바탕을 둔 노동자들의 기본적인 권리를 외면한 채 공격적인 직장폐쇄와 용역들을 투입하여 노동자들을 핍박했습니다. 이것이 지금 여기 우리가 있는 까닭입니다.

교회는 노동자의 권리에 대하여 아주 명백하게 이렇게 가르칩니다.


노동자의 권리는 다른 모든 권리와 마찬가지로 인간 본성과 탁월한 인간 존엄에 바탕을 둔다. 교회의 사회 교도권은 이 권리들이 법체계 안에서 인정받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 중 몇 가지 권리를 열거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보아 왔다. 그것은 곧 정당한 임금에 대한 권리, 휴식의 권리, 노동자들의 신체적인 건강이나 정신적인 건강에 손상을 끼치지 않는 노동 환경과 작업 과정에 대한 권리, 자신의 양심과 존엄성이 모독을 받지 않고 일터에서 자신의 인격을 보호받을 수 있는 권리, 실직 노동자들과 그 가족의 생계에 필요한 적절한 보조금에 대한 권리, 연금에 대한 권리와 노후, 질병, 직업 관련 사고에 대비한 보험에 대한 권리, 출산과 관련된 사회 보장에 대한 권리, 집회 결사의 권리 등이 있다. 그러나 보호받고 적절히 대변되지 못하는 저소득 노동자들의 슬픈 현실이 확인해 주듯이, 이러한 권리들은 흔히 침해되고 있다. 


마지막에 언급한 교회의 판단이 어쩌면 이렇게 지금 여기, 우리 사회의 현실과 똑같은지요. 혹시 지금 우리 사회를 보고 이런 가르침을 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이 미사를 봉헌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어려움을 겪는 노동자들에게 미약하나마 힘을 북돋아주고, 또한 이들과 연대하여 인간이 인간답게 살지 못하게 하는 이 “죄의 구조”를 정화하고 바꾸기 위한 작은 노력입니다.


얼마 전 저에게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밤에 자다가 뒤척이며 잠을 깼는데, 아! 조그만 청개구리 한마리가 방 안에 들어와 있었습니다. ‘어떻게 들어왔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가만히 보니, 나갈 출구를 찾아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중이었습니다. 그 모습이 귀엽고 예뻤지만, 귀찮은 마음에 ‘알아서 나가겠지’ 하고는 그냥 다시 잠들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틀 후, 창가에서 그 개구리가 말라 죽어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순간, 저는 머리를 망치로 맞은 듯 했고, 무거운 마음을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면 저의 귀찮음에서 비롯한 무관심이 한 생명을, 귀엽다고 느꼈던 한 생명을 죽이는데 동참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단 몇 초의 수고만 하였더라도, 그래서 그 귀여운 개구리를 풀밭에 놓아주었더라면 그런 일은 없었겠지요.


어쩌면 우리도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이 어려움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에 살아가고 있는 이상, 우리가 연대하지 않고 함께하지 않는다면, 우리 역시 이 “죄의 구조”에 가담하는 것임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교회는 우리에게 이 연대의 책임에 대해 아주 무겁게 가르칩니다.


연대성의 가치는 무엇보다도 제도의 질서를 결정하는 도덕적 덕목에 있다. 이 원리를 바탕으로, “죄의 구조”를 극복하여야 한다. 죄의 구조는 법률, 시장의 법칙, 사법 체계의 수립과 적절한 개정을 통하여 연대성의 구조로 정화되고 전환되어야 한다.

연대성은 “가깝든 멀든 수많은 사람들의 불행을 보고서 막연한 동정심 내지 피상적인 근심을 느끼는 무엇이 아니다. 그와는 반대로, 공동선에 투신하겠다는 강력하고도 항구적인 결의이다. 우리 모두가 모두에게 책임이 있는 만큼, 만인의 선익과 각 개인의 선익에 투신함을 뜻한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공동선을 지향하는 덕목이고 “타인을 착취하는 대신에 이웃의 선익에 투신하고 복음의 뜻 그대로 남을 위하여 ‘자기를 잃을’각오로 임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는 이 일이 너무 미약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너무 미약해서 다른 이들에게 하찮은 조롱거리로 비춰질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말씀하십니다. 또 우리가 믿는 복음의 빛에 비추어 말씀하시는 교회의 가르침 역시 이 “죄의 구조”를 극복하기 위하여 ‘자기를 잃을’ 각오로 임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또 유성기업 노동자 여러분,

이 사회의 “죄의 구조”를 바꾸고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여기 모인 우리가 비록 밀알처럼 약하고, 또 한 줌 밖에 안될지라도 우리의 이 노력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분명 우리에게 백 배의 열매를 맺어주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가 여기서 하는 이 모든 것들은 바로 예수님 당신이 하셨던 일이고, 또 우리를 통해서 지금도 하고 계신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이러한 믿음과 확신 안에서 희망을 가집시다. 그리고 용기를 냅시다. 


끝으로 세 달 가까이 힘든 투쟁을 하고 있는 유성 기업 노동자들에게 하느님께서 특별한 위로와 힘을 주시기를 빕니다. 감사합니다.



[20110810.사진] 유성기업 노동자를 위한 정의평화 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