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회교리학교/사회교리 강의

[20120218] 최상순 신부의 가정과 생명 강의(사회교리학교 5강)

by 편집장 슈렉요한 2016. 12. 23.

2012년 2월 18일 법동성당 교육관

제4기 대전교구 사회교리학교

제6강 가정과 생명

부제. 요한 바오로2세(몸의 신학)에 따른 혼인과 가정

황새바위 성지 주임 최상순 신부


1. 우리 사회의 이혼과 낙태 현황 (최근 5년간 / 보건복지부 자료)


연간 33만 2천 쌍의 혼인 중 12만 5천 쌍(12만 4천 쌍-2007년,) 이혼 평균 연령은 남자 42.6세 여자 39.3세, 이혼 사유는 성격차이 40.7%, 합의 이혼이 86.7% 재판이혼은 13.1%

연간 인공임신중절 건수는 약 35만 건, 이중 미혼여성이 전체의 25%로 추정되고 있어, 여성들의 낙태율이 위험수위에 달함. 이러한 모든 것은 성 윤리 의식 부재와 사랑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됨.


2. 성(性) 혁명의 도전(성의 개방화에 따른 심각한 사회 현상)


성의 혁명이란 60년대 중반부터 서양에서 확산된 성에 대한 혁명으로써, 전통적 성 관념으로부터의 탈출을 의미. 성행위를 혼인제도 안에서, 그리하여 부성이나 모성에로 나아가야 할 그 방향으로부터 분리시키고자 하는 계획적인 시도.


2.1. 성 혁명의 본질과 위험

혼인과 성이 지닌 의미간의 전통적 관계의 파괴이며, 제도적이며 지속적인 관계로부터 벗어난 자유로운 성을 주장, 이로써 성과 자녀출산 사이의 연결 관계의 파괴로 마치 책임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자유로운 성’이 됨.

오늘날 성의 의미와 전통적인 관계들은 마치 억압이나 인간의 자유를 방해하는 장애물로 느끼게 함. 그렇기에 성의 해방은 곧 이러한 관계들의 계획적인 파괴로 인식되며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


2.2. 성 혁명의 영향과 결과

결과적으로 성적본능에 만족을 주는 모든 형태들은 정통적이거나 탈선적이거나 구별할 필요도 없이 마치 개인적인 권리처럼 인식되었고 사회적 계층 안에서 합당한 위치를 차지하며, 이혼은 개인적 권리 혼인은 마치 우연의 결합인 사적인 협약으로 변형.

성은 곧 유대요 관계이며 인격들 간의 친교와 만남, 책임을 반드시 수반하지만 성의 혁명으로 인하여 범속화, 생물학적 욕구에로의 축소되었으며, 무엇보다도 성의 탈 인격화, 즉 성이 진리 안에서 인격과 분리 되어짐.


2.3. 성 혁명의 문화적 뿌리들 


2.3.1. 정신분석학적 관점 - 정신분석의 거칠고도 본능주의적 모델인 '저항할 수 없는 충동'으로 해석. 이 충동은 인격 안에 불균형이 생기지 않도록 돌파구를 찾아야만 한다. 성적 본능은 단순하게 생활 필수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콤플렉스다. 이 본능은 만족을 필요로 한다. 

2.3.2. 자유주의 - 일반적으로 자유에 대해서 말하길 인간이 본능과 전통으로부터의 해방된 그 지평이라 생각. 그 결과 소위 성에 대한 자유로움은 마치 몸이 어떤 용도를 위해 사용되는 저급한 물건처럼 취급. 즉 몸은 성 또는 남자, 여자라고 하는 주체의 정체성과 전혀 관계가 없다는 것. 성적 구별, 남, 녀의 구별은 모두 부차적이고 액세서리처럼 여겨짐. 

2.3.3. 감성주의(로맨스) - 감정에 대한 일방적이고 지나친 과장으로서 사랑은 어떤 통제도 가능하지 않은 하나의 매혹적 사건이 되어버림. 의지나 이성으로부터 풀려난 사랑은 그 자체로 가치의 기준이 되며 혼인이라는 제도적 틀에 묶일 수 없는, 절대적으로 통제될 수 없는 체험으로 여겨짐.


2.4. 오늘날 성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  


성과 인격은 별개라는 것, 즉 성의 '탈 인격화‘인 것이다. 따라서 성행위는 타자의 운명에 대한 근본적인 수용과 합의이며 사회의 공동 과제를 책임지는 것과 관련된 인격적 선물이라고 하는 그 의미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3. 몸의 신학(Teologia del Corpo)


3.1. 요한 바오로 2세의 정합적(整合的) 인간학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가르침은 의식 안에서 드러나는 본성적 목적성과 함께 성을 육체적 결정으로서뿐만이 아니라 인격적 차원으로서도 인식하는 하나의 길을 제시.

성의 본능적이고 애정적인 체득이 일러주는 이것은, 성이 결코 외적으로 억압되어져서도, 과대평가 되어지거나 고립되어져서도 안 되며, 오히려 선 안에서의 진리를 통해 표징적으로 해석되고 통합되어져야 만이 된다는 것이다. 이는 심오한 인간의 단일적 개념, 즉 몸과 영혼은 하나이다. 라는 개념에 의한 것이다. 


3.2. 그리스도의 성체성사적 선물 


그리스도의 성체성사는 곧 인간 몸에 관한 최종적 의미를 제공한다. 성체성사 안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신부인 교회의 자양분이 됨으로써 신부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는 그리스도의 혼인적 사랑이 실현(에페 5, 21-33 참조)되며, 당신의 사명과 생애에 있어서 최고의 순간에 몸의 최종적 의미를 알려주는 말씀을 하신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먹고 마셔라.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내어 줄 내 몸이다. 나를 기념하여 이를 행하여라." 

예수께서 잔에 관해 말씀하신 것과 결합된 이 말씀은 십자가의 희생 안에서, 그리고 성체성사적 빵 안에서 자기를 몽땅 내어 주는 선물을 표현한다. 


3.3. 성의 상이성과 몸의 선물 (자기를 거저 내어줌) 


성체성사 안에 신학적인 핵심을 가지는 선물이라고 하는 이 해석학의 조명을 통해 성의 상이성이 지니는 궁극적인 의미를 성찰하고, 인간 존재는 남성 또는 여성으로 실존하므로 인간의 육체성은 본질적으로 성에 의해 표시된다. 따라서 성의 중요 포인트는 인격체인 인간의 부수적 요소가 아니라, 하느님을 닮은 모습으로 만들어진 인간의 본성을 설명하기 위한 결정적 특징을 구성하게 됨. 


3.3.1. 원초적 외로움 (Solitudine Originaria)

성의 상이성은 무엇보다 먼저 인격의 구조적 종속성과 제약(한계)를 계시하며, 항상 자기 앞에 자기와 다른, 다가갈 수 없는 다른 성을 대면함으로써 인간은 자신의 육 안에서 불완전함, 한계, 공허 등을 경험함. 자연세계는 인간이사물들을 통해서는 자기의 한계를 채울 수 없다는 사실과 누군가와 관계를 맺어야 하는 필요성을 채울 수 없는 불가능성을 알려줌.


요한 바오로 2세는 이를 일컬어 ‘원초적 고독’이라 말함.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에게 알맞은 협력자를 만들어 주겠다.(창세 2,18) 이는 곧 인간의 성 결합은 근본적으로 동물의 짝짓기와는 다르다라는 것. 만약 같은 것이라면, 아담은 그 많은 동물들 중에서 그에게 ‘적합한 협력자’를 얼마든지 찾을 수 있었겠지만, 동물들의 이름을 지어 부르면서, 자신이 그들과 다름을 깨닫게 된다. 오직 자신만이 하느님의 모상으로서 자신의 몸을 가지고 사랑하도록 불림 받은 인간임을 깨달은 것이다.

여자를 보자 남자는 외친다.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구나!’(창세2,23) 

이는 곧, ‘마침내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인간이로구나’ 라는 고백.


3.3.2. 둘이 하나됨(Unita Duale)

인간은 '둘이 하나됨'으로, 즉 다른 인격과의 관계 안에 존재하게 되는데, 이 때 성은 몸에 새겨져 있는 것으로 친교 안에 상호성에로의 초대와도 같다. 따라서 성은 둘의 인격적 정체성을 혼동하거나 흩어 놓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개방과 친교, 그리고 더욱 풍부하게 만드는 관계를 향해 자기 자신으로부터 나오도록 둘의 인격적 정체성을 인도한다. 동시에 성의 인격적 차원은 성이 친교적 상호성 안에서 자기 자신을 참된 선물로 내어주는 것임을 표현하도록 요구 함. 성을 통한 인격적 친교(Communio Personarum)로서 둘이 하나가 된다. 


3.3.3. 몸의 혼인적 의미

"지상에서 그 자체를 위하여 하느님께서 바라신 유일한 피조물인 인간은 자기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 주지 않으면 자신을 완전히 발견할 수 없다." (사목헌장 24항)

자기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 주는 선물이라는 소명은 육과 영혼, 인간의 총체성 안에서 인격과 관계를 맺기에 몸은 자기 자신을 아낌없이 선물로 내어주는 사랑에로 부르는 것. 이것이 '몸의 혼인적 의미'를 갖는 이유가 된다. 


3.3.4. 사랑의 표징인 성사

"한 처음"(창세 1,1)에 나를 창조하신 하느님께서는 본질적으로 무상적이고 자유로운 사랑으로 행하신다. 이는 나라고 하는 존재는 '자기를 내어주는 선물'을 통해 만들어졌다는 것, 사랑이신 하느님의 모습을 닮은 존재로 창조되었고, 당신을 아낌없이 내어주시는 하느님의 선물로부터 왔기 때문이다. 사랑으로 원해진 나는 내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주는 선물인 사랑 안에서 나를 실현한다. 이것이 내 몸에 새겨져 있는, 내 존재의 본 모습이다. 따라서 남자와 여자, 서로간의 인간적 사랑은 보이지 않는(비가시적) 하느님 사랑의, 보이는(가시적) 표징인 성사다. 


4. 혼인적 사랑과 자녀출산 


4.1. 인격과 인격의 만남


자신의 몸을 서로에게 내어맡김은 인격의 궁극적인 헌신이며, 이 인격의 헌신(dedizione, 자기를 내어 줌)은 자유롭고 독점적이어야만 한다. 즉 자유 안에서만 선물일 수 있으며 오직 공적이고 완전한 약속 안에서만 자기를 내어 주는 선물일 때 인격의 수준에 도달된다. 


4.2. 번생성(Fecondità)-자녀출산


우리의 만족을 위한 필요에서 생겨나는 성적 쾌감은 물론 경멸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부부관계는 곧 인격과 인격간의 관계이기에 이 쾌감이 절대적 기준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두 사람 사이에 혼인적 친교의 완전한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자기 자신의 한계를 넘어가는 그들 사랑의 번생성. 이것은 일반적으로 자녀출산으로 표현된다. 이는 곧 부부의 성을 완성하는 것은 바로 부부가 육체만이 아니라 영적으로도 자기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주는 선물로부터 태어나는 자녀. 즉 자기를 아낌없이 내어주는 사랑으로 인하여 생겨난 사랑이 바로 자녀인 것이다. 따라서 자녀는 육체적 행위의 당연한 결과일 뿐만 아니라 두 인격간의 사랑의 행위로부터 태어나고 교육 의무를 완성해감으로써 참된 '재-창조(pro-creazione)'가 됨. 


4.3. 일치와 출산의 관계


부부의 일치와 인간 생명의 출산이라는 이 두 가지 의미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성립되는가? 

원인-결과(?) 아니면 내재적 가치(?)? 다시 말해서 새로운 생명이 생겨날 수 있는 성행위로 인해 주어지는 사실들은 단지 생물학적인가 아니면 성의 언어와의 관계 안에서 어떤 가치를 갖는가? 성적인 행위는 원인, 또는 이유가 아니다. 성행위는 비록 그 행위 안에 새로운 생명이 생겨날 수 있는 조건들이 주어지긴 해도 인격과 인격간의 사랑을 표현하도록 부름 받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의의는 모두 부부 행위 속에 내포되어 있으며 하느님께서 제정하신 것이므로 인간이 고의로 이것을 파괴할 수는 없다. 사실 이같이 밀접한 관계 때문에 부부 행위는 남편과 아내를 굳은 인연으로 결합시키는 동시에 부부에게 다 같이 본질적으로 주어진 자연의 법칙을 따라 새 생명을 낳을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일치와 출산이라는 이 두 가지 면을 준수한다면 부부 행위는 전적으로 참된 부부애의 의의와 인간에게 맡겨진 가장 고귀한 사명인 어버이에로의 질서를 유지할 것이다."(인간 생명 12항) 

성 행위 안에서 인격들의 일치는 생명을 향해 열려 있을 때만 참된 것이며, 자녀출산은 인격들 간의 육체적 일치를 표현하는 행위의 결실일 때만 참된 것이다.


5.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적 사랑의 구원 


인간의 죄는 곧 하느님 사랑에 대한 불신으로 비롯된 심층적 무질서인 욕정이다. 하느님께로부터 주어진 선물인 자기완성을 거부, 이로써 자기 자신 안에 있는 하느님의 모습을 흐려지게 하는 욕정을 통하여 다른 이를 선물로 받아들이거나 자기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주는 능력을 잃어버리게 된다. 이 결과 타인들과의 관계 안에서 더 이상 그들의 진리나 인격의 품위(존엄성)를 깨닫지 못한 채, 자신의 본능(욕구)을 채우기 위한 소유의 대상으로 여기게 된다. 따라서 성은 친교의 구조로부터 쉽게 지배의 구조로 바뀌게 된다. "남편을 마음대로 주무르고 싶겠지만, 도리어 남편의 손아귀에 들리라." (창세 3, 16). 

하지만,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주는 능력과 타인을 맞아들일 수 있는 능력을(사랑할 수 있는 능력) 되찾을 수 있는 구원의 가능성이 우리에게 주어진다. 


5.1. 불충실한 신부를 사랑하는 신랑(호세, 3, 1-5). 


하느님은 이스라엘이 간음을 범하고 불충을 저지를 때도 혼인적 사랑으로 그를 사랑하신다. 

하느님의 사랑은 인간의 사랑과 관련되는 모든 능력을 넘어서는 충실한 약속이 되는 것. 선택된 백성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을 묘사하기 위해 이와 같은 인간적 사랑을 사용하심은 인간적 사랑이 비록 불충실로 드러나는 죄로 인해 상처를 입었지만 죄 이후에도 역시 사랑을 표현하는 능력과 사랑의 선(善)을 간직하고 있다는 의미. 인간적 혼인성은 인류를 위한 하느님의 혼인적 사랑의 되비춤이다. 


5.2.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신부인 교회와의 관계 안에서 혼인적 사랑의 정점과 번생성의 정점을 계시(에페 5, 22-23 참조)하며, 육화를 통해 몸을 취하시고, 몸을 통해 인류에게 내어주시는 혼인적 선물로 자기 생명을 사신다. 인류를 향한 그리스도의 이 혼인적 선물의 정점은 십자가 위에서 도래한다. 즉, 십자가 위에서 당신의 몸은 인격들의 친교를 위해 주어졌으며 신랑이신 그리스도는 인류와 결정적으로 혼인잔치를 치르시는 것이다. 간음을 범한 신부가 자기를 거부하고 자기를 죽음으로 내모는 바로 그 순간에 충실하게 자기 자신을 내어준다. 이로써, 그 모든 거부보다 더 위대하고, 그 모든 배신보다 더 충실하며 그 모든 죄보다 더 강한 사랑을 계시하신다. 


5.3. 그리스도의 사랑


자유로이- 몸을 자유로이 내어주심(‘아무도 나에게서 목숨을 빼앗지 못한다. 내가 스스로 그것을 내놓는 것이다.’요한 10,18)

전적으로- 몸을 아무런 제한도 조건도 이기적인 계산도 없이 전적으로 내어주심(‘그분께서는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요한 13,1)

충실하게- 몸을 충실하게 끝까지 내어주심(‘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

생명을 얻도록- 몸을 내어주시어 생명을 얻게 하신다.(‘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왔다’ 요한 10,10)



PHOTO Link

[20120218. 사진] 사회교리 5강(심현주 박사), 6강(최상순 신부)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