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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서와 문헌/교황과 주교

[20121209] 인권주일 담화문- 보수진보 이념은 모두인간과 공동체에 대한 사랑을

by 편집장 슈렉요한 2016. 12. 23.

2012년 12월 9일


제31회 인권주일ㆍ제2회 사회교리 주간 담화문

보수와 진보 이념은 모두인간과 

인간 공동체에 대한 사랑을 기초로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인권주일과 사회교리 주간을 맞이하여 여러분 모두에게 하느님의 평화와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수십 년에 걸쳐 우리 사회는 정치, 경제, 사회, 교육, 환경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보수’와 ‘진보’의 대립과 갈등을 경험해 왔고, 이런 현상은 제18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정치와 사회 이념으로서 보수와 진보의 구별 기준은 시대와 국가에 따라 다르지만, 질서와 안정과 경제적 성장을 강조하면 ‘보수’에 속하고, 변화와 개혁과 경제적 분배를 강조하면 ‘진보’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이념의 논의가 활발하게 전개되는 것은 우리 사회의 ‘발전’과 정치적 수준의 향상을 뜻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논쟁이 우리 정치ㆍ사회의 진정한 발전이 되기 위해서는 감정적인 아집과 이기심의 대결이 아니라, 합리적인 사고와 희망을 담보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신앙인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겠습니까? 교회는 보수와 진보 중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습니다. 다만 교회는 보수와 진보를 포함하는 ‘인권’과 ‘사회교리’에 따라서 그 해답을 찾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는 교회는 끊임없이 인간다운 사회 건설을 위해서는 ‘인간의 존엄성’과 ‘인간 공동체의 소중함(공동선)’을 핵심으로 진리, 정의, 자유, 사랑의 가치를 추구하고 있습니다(간추린 사회교리 197항 참조). 교회는 보수와 진보의 이념 모두가 근본적으로 이러한 복음의 가치를 추구하는 한에서만 가치와 의미를 지닌다고 보고 있습니다. 보수와 진보의 이념이 인간의 존엄성과 인간 공동체에 대한 사랑을 거부한다면 그 자체로 허구요 위선이기 때문입니다. 보수와 진보는 대립과 갈등의 구조가 아니라, 서로 보완하고 상생의 길을 찾는 여정입니다. 이 둘은 공히 하느님의 뜻에 따라 인간의 존엄성과 인간 공동체의 행복을 위한 방편이며 수단일 것입니다.


같은 하느님을 믿고 고백하는 우리도 정치와 사회이념에 있어서는 보수와 진보로 갈릴 수 있는데, 이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개인은 자신에게 맞는 정치ㆍ사회의 고유하고 이상적 모습이 구현되기를 염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와 사상의 차이는 한결 같이 인간의 존엄성, 이웃에 대한 사랑, 사회적 관심, 생명과 환경 존중 등과 같은 복음과 교회의 가르침, 즉 ‘통합적이고 연대적인 인도주의’(간추린 사회교리 19항) 안에서 조화와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가톨릭 사회교리에서 가르치는 공동선의 원리, 재화의 보편적 목적과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 노동의 존엄성, 환경에 대한 공동책임, 평화 증진과 전쟁의 제한 등은 인간의 본성과 본질에 기초하는 객관적인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한편, 혼인의 가치와 가정의 중요성, 보조성 원리에 의거한 국가 개입의 제한, 인성을 거스르는 생명공학 연구의 한계, 법적 질서의 가치, 민주주의의 한계 등은 현실적 정치와 사회 문제이지만, 인간성을 부정하지 않는 수준에서 합리적인 기준과 규범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교회의 사회교리는 구체적인 정치와 사회의 틀을 제시하지는 않지만, 불변하는 척도를 제시함으로써 진보와 보수를 초월하는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바로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고, 이를 온 몸과 정신으로 가르치시다가 십자가에 처형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인간 삶의 규범과 척도이기에, 교회는 이 분의 모범을 따라, 세상에 불변하는 사회교리를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은 「가톨릭 교회 교리서」의 ‘지킬 계명’ 부분에서 ‘십계명’을 포함하는 사회교리에 관한 내용을 상세하게 배울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참된 복음화의 도구인 사회교리를 잘 숙지하여 이념적 갈등을 극복하고, 우리 사회를 복음의 빛으로 밝히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특히 지금 우리나라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인 물질만능주의와 경쟁지상주의, 즉 돈과 권력, 명예를 얻기 위해서라면 인간의 존엄과 생명을 파괴하고 도구화하며, 자신의 이익과 탐욕을 위해 사회적 약자의 고통을 외면하는 현실을 개선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한국 천주교회는 오래 전부터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인공피임, 낙태, 사형제도, 안락사, 배아복제, 배아줄기세포 연구와 실험을 반대하였고, 최근에는 환경과 생태계, 인간생명, 정의와 평화를 위협하는 4대강 개발, 핵에너지 확산 정책,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였습니다. 이는 사회교리의 가르침에 따라, 이러한 정책들이 인간과 자연의 생명을 파괴하고 인간의 존엄성과 공동선의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교회의 사회 문제에 대한 윤리적 판단과 참여는 예수 그리스도의 숭고한 가르침인 ‘인간과 인간 공동체에 대한 사랑’에 기초한 교회의 사명이며, 시대의 징표에 응답하는 교회의 고뇌와 고민을 드러낸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선거에서 진정으로 인간의 존엄과 공동선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존중하고 겸허하게 국민을 섬길 줄 아는 지도자가 선출되기를 기도하며, 사회교리의 정신에 따라 자신이 속한 삶의 자리에서 인간 생명의 존엄성 구현과 자연환경 보존을 위해 헌신하는 모든 이들에게 주님의 축복을 기원합니다.


2012년 12월 9일 인권주일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이 용 훈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