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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교리학교/사회교리 강의

[20151022] 김덕진 국장의 인권 특강 -전민동성당 사회교리 7강

by 편집장 슈렉요한 2015. 10. 18.
사회교리학교 7강 
인   권

김덕진 천주교 인권위원회 사무국장


'인권'이란 단어가 어려운가

'인권'이란 단어가 어려운가요? 저보다 연배 높으신 분에게 '인권이 뭐냐?'라고 여쭤본다면 <들국화>의 전인권을 말하시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고요. 조금 어린 분들이라면 김인권을 말하기도 할 것입니다. 

1985년 결성된 대중음악 그룹 <들국화>의 보컬 '전인권'(1954년생)과 영화배우 김인권(1978년생)의 이름은 '인권'이다.


그런데 그냥 편안하게 '인권'하면 떠오르는 것은 무엇인지 한번 얘기를 꺼내볼까요? 앰네스티, 유엔인권헌장, 무섭다, 좌파, 천주교인권위원회 ...

1974년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 인권의 시작

사실 인권이란 단어는 한국사회에서 군사 독재정권을 오랜기간 형성된 개념입니다. 그 때에 군사독재와 싸우는 민주화운동, 그리고 억울하게 감옥 간 사람들 구명하는 운동 등으로 인권이 비롯되었습니다. 근현대사에서 보았을 때, 앰네스티 한국지부가 오래되었겠지만, 1974년에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을 인권운동의 시작으로 봅니다. 당시 민청학련 현재 다 무죄와 배상받은 사건으로 유신당시 있었던 때 같이 생긴게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의 인권위원회와 함께 천주교에서 생겨나면서, 민주화운동과 양심수석방운동이 같이 전개된 겁니다.

천주교에서 시작된 인권운동

천주교에서 인권운동이 시작되었다는 것과, 농민운동이나 사회복지분야에서도 가톨릭이 기여한 바가 큽니다. 인권에 대한 개념을 말했을 때, 인권이란 애매한 부분이 있습니다. 나도 있고, 상대방도 있고, 옆집이나 슈퍼아저씨 인권도 있고, 극악한 범죄자도 인권이 있고, 대통령이나 세월호 유가족에게도 인권이란 있습니다. 그런데 개개인의 충돌과정에서 무엇이 우선되는가를 따질 때 어렵고 힘든 일이 있습니다. 주변 장애인 시설이나, 집 주변이 출소자 주거촌이 생긴다거나, 화장장이 생기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표면적으로는 동네가 위험해지고 아이들 키우는데 범죄자들 오는 게 걱정된다고 하지만, 사실상 집값 떨어진다는 걱정 즉 재산권 침해에 대한 우려입니다. 내 집을 비싸기 팔 권리이고 인권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겁니다, 나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왜 꼭 너가 해야하는 일인가?

그런데 문제는 그런 시설들도 분명 필요하다는 것은 인정하는 거지요. 인권운동하는 사람 필요하다 그런데 왜 너가 그걸 해야 하나? 라고 부모님이 말씀할 수 있듯이, 시설이 필요하다고 할 때, 그게 내 집 주위에 하필 생기는가에 대한 의문이 생기는 겁니다, 그럴 때 성숙한 사회의 수준과 의식같은 것들이 그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하지 못하니 권리의 충돌이 생기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 동네와 아이들에게 더 조은 교육현장이고 집 값 떨어지지 않을 것이란 조건들이 해결되면 될 것입니다.

천부인권이란

인권은 매우 어려운 규정짓기 어려운 단어입니다. 유명한 학자들 여러가지 설로 말하지만, 전 하나도 못 외우고 있습니다. 사실상 활동 속에서 느끼는 건 다른 겁니다. 천부인권의 뜻을 아시는 분? ...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권리죠. 여기에는 사실 평등함이 괄호 속에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똑같은가요? 나와 내 언니나 친구를 하느님이 정말 똑같이 평등하기 사랑하실까요? 살면서 평등, 똑같이 모두에게 이런 단어들이 진짜 그렇게 주어진 것인가? 이런 고민을 상당히 많이 했습니다.

할아버지는 뭐하시는 분이니?

천부인권이란 말이 말도 안된다는 사회적 구조들이 있죠. 요즘은 태어날 때부터 모든 미래가 결정된다고 하죠. 결혼할 때 아버지 직업 물어보지 않는다고 합니다. 할아버지가 뭐하냐고 물어본답니다. 결혼적령기 20대 중후반 청년들 부모님은 50대 초반인데 그 때에도 뭔가 이루기 어렵다고 보는 겁니다. 그래서 할아버지 때부터 권력이나 돈이 있어야 A등급 받는다는 겁니다. 즉 태어날 때부터의 경제적 수준과 문화를 향유하는 상황을 알아보려는 것이죠. 어렸을 때 영어유치원 다니고, 초등학교 때 해외연수 다니는 서울 강남의 한 청년과 어떤 지역의 농산어촌에서 태어나서 선생님도 별로 없는 학교 다니다가 공부 열심히 해서 서울의 대학에 들어간 친구가 과연 평등하게 경쟁을 할 수 있다고 보시나요? 

인간승리가 가능한가?

예전에는 뭔가 극복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단칸방에서 여러 형제자매가 살면서 인간승리를 하는 것이 사례가 많나요? 그것이 티브이에 나오는 것은 드물기때문입니다. 출발선상의 불평등함을 해소해주고, 그래도 비슷하기 만들어주는 것 이것이 국가, 정부, 지방자치단체들이 해줘야 하는 일이고, 그것이 바로 경상남도에서 많이 얘기되는 무상급식에 대한 이야기들, 그리고 무상교육에 관한 이야기들, 바로 이런 것들이 권리, 인권의 문제이며, 모두에게 똑같이 뭔가 구현되려면 필요한 게 있습니다.

성경의 오병이어 사례를 예로 들면, 제가 이해하는 성경의 그 말씀은 한 아이가 내어놓으니 모두가 다 내어놓아서 함께 다 먹었다는 겁니다. 국가나 제도, 법률 등이 받쳐주지 않으면 평등한 인권이 조성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제가 여기 계신 분들 직업을 다 알지 못하니 비판하려는 의도는 없는 것이고요, 요즘 환경미화원, 공무원 뽑을 때 박사학위자들도 온다잖아요, 그것은 환경미화원 공무원 10급 기능직을 뽑을 때나 그런 겁니다, 청소하는 사람이라기 보다는 공무원을 뽑는다는 것인데, 우리나라에 그렇게 공무원으로 일하는 미화원이 많지 않습니다. 

환경미화원이 1주일동안 청소를 안 한다는 걸 상상해보라

그런데 보통은 동네나 일하시는 회사나 학교 등 환경미화노동자들이 있는데, 그 분들이 일주일 정도 안하신다면 여러분 생활이 어떻겠습니끼? 추석 연휴 삼사일 정도 수거 안하면 힘드시지 않나요? 아파트보다 다세대주택은 아주 심각하죠. 강아지와 길냥이들이 다 뜯어놓고 동네가 아수라장에 생활이 불편해지는 겁니다, 그런데 예를 들면 대전대학교 이모교수님, 카이스트 교수님, 혹은 대단한 어떤 분이 1주일이나 2주일 없어진다면 우리 삶이 불편해질까요? 그런데 우리 사회는 내 삶에 직접적 영향 미치지 않는 사람을 대접하고 그들은 명예를 누리는데, 우리에게 필요한 분들은 왜 최소 임금을 받고 살아야 하는가? 

공부를 많이 하면 노동의 가치가 몇 배 오르나?

공부를 많이 한다고 해서 노동의 가치가 과연 몇 배가 되는 걸까요? 예를 들어 대학교수, 시간강사 분들 보통 한달에 버는 수입이 100만원, 150만원 언저리가 많아요. 정말 강의한 시간이 따라 받는데 13만원, 17만원 한시간에 받는다고 한다면, 그것이 일주일에 아홉시간 정도 있다고 보면 어렵습니다. 그런 분들이 교수가 되는 순간 대접이 완전히 바뀝니다. (전임직 교수에게는) 방도 주죠, 조교도 배치되죠, 월급도 뛰죠, 사람들이 '교수님, 교수님' 하면서 사회적 대접을 많이 받습니다. 그렇다고 교수가 되는 순간 지난 시간강사 때의 강의와 오늘 강의가 달라질 게 없는데 지위는 올라갑니다.

난 이 다음에 커서 청소노동자가 될거야?

그런데 우리 사회는 공부 잘하는 사람들, 시험 잘보는 사람들이 많은 월급 받는 걸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회에 살고 있는 건 아닌가? 과연 여기 계신 분들이 자녀들이 청소노동자를 만들 생각은 없으시잖아요? 아이들 중에서도 내가 이 다음에 커서 청소노동자가 될거야? 그런 생각 가진 사람이 있나요? 당연히 없죠, 그런데 인간의 노동, 노동이라는 것, 일할 자리만 줘도 고맙다고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얻으러 다니는 것은 아니라고 봐요.
(참고. 지자체 환경미화원이 되는 것도 바늘구멍이다. 대졸자와 박사들도 많이 지원한다. 5명 선발에 83명(17대1, 영등포구청), 7명에 278명(40대 1, 창원시청), 6명 선발에 121명(20대 1, 구로구청), 1명 뽑는데 22명(광주시), 16명에 415명 지원(26대 1, 포항) 등 평균 경쟁율은 10대 1을 훌쩍 넘긴다)

얻어먹을 힘만 있어도 은총인가

꽃동네 캐치프레이에는 '얻어먹을 힘만 있어도 하느님 은총'이라고 하지만, 얻어먹으러 다니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굶주린 이들을 사회와 국가가 보호해야 하는 겁니다. 시혜와 도움을 바라지 않고, 긍휼히 여기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가 당연히 제도적 안전장치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보는 겁니다. 제가 어렸을 적에 아버님이 '가난은 불편한 것이지 수치스러운 것은 아니다'라고 하셨지만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낭만적인 공자님 말씀같은 게 위안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떠들지 않아도 똑같이 누린다

인권의 역사는 자기 것을 지키는 싸움에서 시작된 것이죠, 재산을 지키고, 내 가족을 지키고, 영토를 지키는 것입니다. 마그나 카르타라는 영국에서 발표된 게 인권의 시작이라고 하지만, 영국의 왕이 있고 지역의 영주들이 있죠. 고려시대 중앙정부가 있지만, 지역마다 세력가들이 있는거죠. 중앙정부는 도지사들에게 분담금도 받고, 전쟁나면 사람도 빼고, 나라에 특산물 바치라고 해서 운영하는 거죠. 

그런데 큰 왕이 있으면 작은 왕도 있는거죠? 저 사람은 자꾸 돈 내라고 하고 사람 징발하려고 하니 열받은 작은 영주들이 큰 왕이게 개긴 겁니다. 자꾸 우리한테 돈 내놓으라고, 사람 내놓으라고 하는 거 그만해라 힘들다. 그래서 왕이 세금 덜 걷고 사람 덜 걷게 했던 그것이 바로 인권의식의 출발입니다. 인류 최초의 마그나카르타라는 인권의 출발. 시작 자체가 내 것을 지키려는 것, 아까 님비로 말해지는 것, 그런 것입니다. 집 값 떨어질까봐 혐오시설이 들어오는 걸 싫어하는 것과 같은 겁니다. 그러니 그런 갈등을 구조적으로 풀어주는 제도와 법률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근대 민주주의의 첫단계, 마그나 카르타
영국의 왕 존(John, 1167~1216)은 1199년 즉위해서 죽을 때까지 왕노릇을 한 이다. 그는 귀족들의 강요에 의해 대헌장(마그나 카르타)에 서명했다(1215.6.15). 근대 민주주의의 첫단계로 손꼽힌다.  국왕의 권리를 문서로 명시했고, 왕은 몇가지 권리를 포기하고 법적 절차를 존중하며, 왕의 의지가 법에 의해 제한될 수 있음을 인정하게 된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여러가지 호칭

저는 그리스도교 신자? 가톨릭 교회에 다니는 사람? 예수님을 닮아가려고 노력하는 사람? 우리는 여러가지 이름으로 불리우잖아요. 제가 농민회나 여러가지 한국가톨릭교회에 대해 앞서 자랑을 한 바 있어요. 그런데 제가 교회 역사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은 아니지만, 제일 많이 언급되는 것이 <새로운 사태>란 교황님 문헌이잖아요? 그것이 1891년 레오 13세가 발표하신 회칙이죠. 몇 년 전에 반포 120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여러 군데에서 열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2011년이 120년이 되는 해)


<새로운 사태>는 노동헌장이다

그런데 이 <새로운 사태>가 왜 대단하냐면, 저도 강의를 다니느라고 읽어봤지 이걸 누가 읽어보겠습니다. 어느 누가 바티칸 공의회 문헌을 찾아가서 읽어볼까요? 강의하는 분들이 아는 척을 해야 하는 처지에서 읽어보는 건 아닐까요? 그래서 읽어보니까 이게 <노동헌장>입니다. 그리고 노동자와 사용자가 갈등이 생길 때 어떻게 해결하면 좋은가? 그리고 그럴 때 교회의 역할은 무엇인가? 이런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 항목들을 살펴보면 대단한 내용들입니다. 

<새로운 사태>는 교회의 사회에 대한 발언의 정당성을 발표한 것이다.

노동자들의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주욱 서술합니다. 아마도 1891년 당시의 노동자들은 지금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서 노동을 했을 것이고, 훨씬 더 봉건적인 사회 안에서 더 많은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이 없는 이들을 더 억누르는 사회였을 것입니다. 노조도 없었을 것이며, 임금인상을 위해 싸우거나 의견을 표현하기 어려운 환경이었을 텐데, 그럴 때에 <새로운 사태>가 노동에 관한 헌장처럼 발표가 되면서, '가톨릭교회가 사회문제에 대해 발언을 한다는 것, 사회문제에 종교가 개입하고 입장을 애기하는 것이 복음의 선포이다.'라고 하는 것을 <새로운 사태> 선포 당시에 정해주신 겁니다. 

이미 120년 전에 잘못이라고 결론내린 것

그래서 사회문제에 개입한다는 것에 대해 말하자면, 그리스도인이 사회문제에 대해 침묵하고 있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이미 120년 전 넘는 세월 전에 발표를 했다는 겁니다. 물론 그 이전에는 종교가 마치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 같은 시절이 있었습니다. 유럽의 중세시대에 면죄부 판매라든지, 추기경의 횡포 등을 종종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서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권력을 종교가 쥐고 있는 것은 문제가 되지만, 권력에 대해서 의견을 개진하고 비판하고, 사회의 모순을 지적하고 이야기하는 것은 종교가 당연히 해야할 일이란 사실을 <새로운 사태>가 우리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사태>를 계승한 것 뿐

그래서 그러한 전통을 지난 2~3년간 대전교구의 정의평화위원회를 비롯한 각 교구의 정평위들이 국정원의 대선 개입 문제라든지, 세월호 참사 이후에 보여줬던 불의한 모습들에 대해서 발언하는 것들이 <새로운 사태>의 정신을 계승하고 있는 것으로 봅니다. 사실상 교황님이 다녀가셨던 지난 해 8월을 다 기억하시죠. 대전교구도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은혜를 정말 많이 받은 교구이죠. 그런 연유로 대전교구 유흥식 주교님이 올해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이 되신 건 아닌지 괜한 생각을 해봅니다. 

방한 중인 교황님은 세월호 가족을 매일 만났다

사실상 교황님이 다녀가셨던 지난해 여름은 사실 '한여름 밤의 꿈'과 같은 선물이었다고 다른 곳에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이런 분이, 이런 종교인이 과연 또 있을까요? 이렇게 말 한마디 한마디, 미소 하나 하나에 울림이 있는 분이시구나. 많은 감동을 주고 가셨구나. 그러면서 천주교 이미지가 일반 국민들에게 굉장히 좋아졌습니다. 저는 교황님의 일정을 죽 보니까요. 세월호 가족들을 매일 만나셨습니다. 하루도 세월호 가족분들을 안 만난 적이 없습니다. 아시겠지만, 대전까지 학생유가족이 900 km를 넘게 행진하며 지고왔던 그 십자가를 교황님께 드릴 때 그걸 기꺼이 받아주셨고, 듣고 위로를 해주셨고, 또 우리 이호진이라는 아버님을 특별히 따로 불러서 세례를 주시기도 하셨고, 무엇보다 감동적인 장면은 광화문 광장 미사하러 가는 과정에서 유민이 아빠가 단식하는 그곳에서 내리셔서 차를 멈추고 손을 잡고 위로하신 장면입니다. 저는 그 안에는 못들어갔는데, 바깥 쪽에 있었는데요. 뉴스로만 봐도 굉장히 감동적인데, 옆에 계신분들은 거의 통곡을 하셨더라고요. 

교황님의 첫마디, 세월호는?

그 과정에서 마지막날 명동성당에서 열렸던 '남북 화해를 위한 미사'에서도 세월호 유가족분들 뿐만 아니라, 쌍용자동차 노동자들, 강정마을 주민들, 그리고 위안부 할머니들, 밀양 송전탑 할매들 다 초대하셔서 자리도 마련하시고 한 자체만으로도 너무나 큰 선물을 주고 가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번에 한국 주교님들이 로마 바티칸에 가셨죠. 교회 용어로 정기알현이라고 하나요. 전체 주교가 가신 거죠. 그 때 딱 만났을 때 첫마디가 "세월호 문제는 어떻게 되었느냐?" 하셨어요. 그리고 제가 왜관 베네딕토 수도회의 박현동 블라시오 아빠스 님이 4월 6일 엠마오에 갔을 때 오셨거든요. 그 분에게 들었던 것인데요. 교황님이 "세월호 문제는 어떻게 되었느냐?"라고 말씀을 하시면서, "세월호 가족들에게 내가 제일 처음 질문한 것이 세월호 문제였다는 것을 꼭 말해줘라."는 말씀가지 하셨다는 데요. 정말로 대단하신 겁니다.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

한국을 떠나실 때 다 기억하시죠? 실종자 10명의 이름을 손수 다 쓰셔서 돌아오길 바란다는 기도와 함께 쪽지를 남기셨는데요. 그래서 길거리에서나 어디서나 추모미사나 시위 등이 있을 때마다 보여지는 대단한 명언도 남기고 가셨습니다.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 정확하게 언어 해석은 다를 수 있지만, 대충 종합해보면, 고통을 겪는 사람 앞에서 중립이란 게 있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죠. 그런 말씀들이 사실은 과연 얼만큼 울림을 우리에게 주고 가셨으니까, 가시고 나서는 잊고 살면 안되니 끊임없이 그런 얘기를 반복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제가 인권활동가로 교황님의 방한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말은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라는 말도 있지만, 이 얘기였습니다. 우리의 대화가 독백이 되지 않으려면 생각과 마음을 열어, 다른 사람, 다른 문화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혼자 하는 말이 되지 않으려면, 다른 이를 이해해야 하고, 우리와 다른 문화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죠. 

차별에 대해서

제가 문헌 전문가는 아닙니다만, 가톨릭 문헌들, 특히 교황님 문헌들을 보면, 대단한 이야기들이 많슶니다, 특히 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인권에 대해서 아주 정리를 하셨는데 이런 말이 나옵니다. "인간기본권에 대한 모든 형태의 차별,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성별, 인종, 신분, 종교, 피부색 이런 것들에 따라서 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하느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이므로 제거되어야 강조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요즘 많이 나오는 얘기입니다. 

요즘 이슈를 이미 1960년대에 언급했다

저 사람이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출신지역이 다르다고, 못생겼다고 잘 생겼다고, 동성애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전과가 있다고, 병을 앓은 적이 있다고, 학력이 딸린다고, 이런 것을 가지고 '차별'에 대해 성찰하는 것은 요즘 3~5년간 인권활동의 전체를 지배하는 개념이 되었는데, 이미 1960년대에 발표된 바티칸 공의회의 문헌에 나와있고, 다 일일이 열거가 되며 나온 겁니다. 여러분이 불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지만, 동성애에 대해서도 바티칸공의회를 통해 발표된 교리서는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우리는 보통 동성애를 부정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인정하는 것도 아니지만, '동성애'라는 것이 오래 전부터 있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이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란 점을 꼭 알아야 한다. 마치 유행이나 사회적 트렌드를 따른 게 절대 아니라 이들이 타고난 것이란 걸 알고 이들을 존중하고 친절하게 대하며 어떤 차별의 기미라도 보이면 안된다고 말하는 겁니다. 사실 그러면서도 교회는 그것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밝히는 모순점이 있지만, 그것이 1960년대 언급되어졌다는 사실은 그것이 대단한 인권감수성을 가졌다고 생가을 합니다. 그런 문제들을 이미 많이 얘기한 것이죠. 

마음만 먹으면 변화시킬 수 있다

교종 프란치스코께서 아직 2년 정도 밖에 되지 않으신 것인데요. 이 세월동안 이분의 일거수 일투족이 얼마나 많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습니까. 감옥에 가서 수감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부활절 예배를 소외된 사람들과 같이 하시고 하니까, 우리 주교님들도 그렇게 하십니다. 복지원에 가서 미사를 보시고, 제주교구의 강우일 주교님은 아예 부활절 당일 11시 미사를 강정마을 정문 앞에서 보셨습니다. 그리고 교황님 숙소의 청소노동자들, 식당 일하시는 분들과 정기적으로 밥을 드신다고 합니다. 역대 교황님들 중에서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미사도 따로 드렸다고 합니다. 이런 변화가 가톨릭교회를 자랑스럽게 여기게 만듭니다. 그래서 가톨릭 교회가 마음만 먹으면 한국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보는 겁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힘

그것이 한국 가톨릭 교회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천주교는 단일화된 조직체계입니다. 교구를 중심으로 하느 체제이니까 어떤 이들은 그게 마피아같다고 비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개신교는 종파가 엄청 많죠. 대충 따져봐도 장로교가 있고 그 안에도 몇 개가 더 있죠. 다른 종교를 폄하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감리교, 성결교, 순복음교회, 하느님의 성회 등등 한국에서 엄청 많고, 불교도 종단이 처음 알았는데, 27개가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보통 조계정, 천태종, 태고종 정도만 알고 있지만요.

노동의 문제... 교회 내부로부터 시작해야

그러니까 먹히기가 쉽지 않은 걸 수 있습니다. 아무튼 가톨릭 교회의 결심이 한국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킬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노동 이야기를 할 때, 이번 주교회의에서 정평위를 할 때 [노동소모임]이라고 해서 신부님들이 노동 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단위가 만들어지고, 상임위원회에서 인준을 하셨는데, 각 교구별로 보면, 노동사목위원회가 있는 데가 있고 없는 데도 있습니다만, 노동문제가 굉장히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고, 노동문제에 대해 교회가 귀를 기울이고 있는데, 저는 그런 출발을 이 교회 안에서 해야 한다고 봅니다. 교회 안에서 노동의 문제를 해결하자는 겁니다. 

교회 내에서 종사하는 노동자를 모두 정규직으로 바꾼다면

올해가 춘계 주교회의가 끝났나요? 이제 추계 주교회의를 가을에 할 때 그런 발표를 하는 겁니다. 전국 17개 모든 교구는 앞으로 교회에서 향후 3년간 비정규직과 파견과 계약직을 모두 없애고 모두 정규직으로 바꾸겠다는 선언을 한다고 가정하자고요. 그러면 난리가 날 겁니다. 일간지의 1면 탑을 장식하고 기업에서도 비판할 수 있습니다. 전경련에서 성명서를 내고, 한국 가톨릭교회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고요. 어쩌면 후원금을 안내겠다는 압박을 할 수도 있는 것이고요. 아마도 굉장히 큰 반향을 일으킬 것이고 그것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습니다. (끝)


* 실제 강의는 이 보다는 훨씬 더 다양하고 풍부한 사례들을 제시하며 진행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