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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미 강연

조영만 신부 강연. 박근혜 탄핵 이후의 한국사회와 신앙(1)

by 편집장 슈렉요한 2017. 1. 31.
조영만 세례자요한 신부는 천주교 부산교구 정의평화위원회가 주최하는 2017년도 첫 번째 아세미(아름다운 세상을 여는 미사)의 강연자로 나서, '탄핵 이후의 한국사회와 신앙'에 대해 강연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이 땅의 모든 가톨릭 교우들이 함께 듣고 고민을 나눌만한 강연이었다. 이에 필자는 부산 정평위 홈페이지에 게재된 강연 동영상을 보면서, 이 글을 정리했다. 그리고 부산정평위의 허락을 얻은 후에 공개한다. 1부(전반부)와 2부(후반부)로 나누어 정리하며, 다음은 강연의 전반부이다. 

조영만 세례자요한이 2017년 1월 9일(월) 부산 가톨릭센터에서 아세미 강연을 하고 있다. 


조영만 신부강연. 탄핵 이후의 한국 사회와 신앙 (1)

2017년 1월 9일(월) 저녁 7시 30분, (부산) 가톨릭센터 소극장
조영만 세례자요한 신부(부산메리놀병원 부원장)

여러분!
"2017년 첫 번째 아름다운 세상을 여는 미사의 강연자로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만 하면 좋겠는데, 현재 제 상황이 녹녹히 않습니다. 부산교구 정평위원장 김준한 신부님이 2017년 한해 아름다운 세상을 여는 미사의 첫걸음 제목으로 이런 것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탄핵 이후의 한국 사회와 신앙

기획자는 어떤 의도로 이런 강의를 주셨는지 모르는 바는 아니나, 무엇보다도 이런 사이즈의 제목은 어디 종편이나 공중파에서 나이 칠팔십 먹은 어느 대학 석좌교수님이나 명예교수님을 모셔놓고 그것도 손석희 쯤 되는 사회자가 나서야 합당할 수준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건 "부산교구 신부 하나를 죽이기 위한 기술적 의도다." (이 농담에 장내에 큰 박수가 터져 나옴.)

이 제목을 한번 보십시요. 탄핵 이후입니다.

현재 상황이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에 의해 정치적 탄핵만 가결되었을 뿐이지 아직 법사위를 통한 탄핵소추안이 헌재의 탄핵심판심리중이니, 그 결과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발언조차도 대단히 조심스러운 … 그래서 여전히 탄핵심판 소추인단과 대통령 법률대리인의 치열한 법정공방, 아니 말도 안 되는  법정공방을 벌이고 있는 이 시점에서, 9명의 헌법재판관 중 6명이 용인, 인용시켜야 법률적 탄핵에 도달되는 데에도 적어도 한 두 달은 더 남은 듯한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뻔뻔한 피의자들이나 박근혜 일당과 그 부역자들은 하나조차 출석조차 하니 아니하고 국민을 기만하고 있는 … 이 난맥상 아래서 도대체 정리된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이 한국사회에 대하여 무슨 말을 할 것이며 … 더 치사한 것은 조그맣게 '신앙'이라는 제목의 끝자락까지 받고는 혼잣말로 이랬습니다. 

"이것은 도올이 나와도 안된다. 
도올은 "박 대통령, 아버지의 0.00001도 못배워"라고 말했죠."

(김용옥은 2016년 9월 12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70주년 거기 중국 열병식에 간 거 하나 말고는 뚜렷하게 잘한 일이라고 생각되는 게 별로 없다”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공과와 관련 이같이 혹평했다. )

즉 도올이 나와도 이 주제를 소화시킬 수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천주교 신부가 뭘 안다고, 안 그래도 병원에서 빨갱이 신부니, 노조를 배후조종하고 있는 악덕기업주니 하는 핀잔을 듣고 있는 제가 이런 주제로 떠들었다가 좋은 소기 듣기는 텄고, 그저 마음편한 신앙강좌나 하자 하면서 지난 금요일까지 손을 놓고 있었습니다. 

세월호참사 1000일(1/9)을 앞두고 2017년 1월 7일(토)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제11차 촛불집회에 단원고 생존자 학생들이 무대에 올라 눈물 적신 편지를 낭독하고 희생자 부모들과 포옹하고 있다.


그런데 어제 제가 부산 사하구 시립도서관에 앉아있었습니다. 바로 이 사진 때문입니다. 광화문에서 벌어진 제 11차 범국민의 날에 있었던 일입니다. 지난 3년 동안 살아남았다는 것조차 미안해서 죄인이 된 심정으로 광장으로 나올 수도 없었던 9명의 단원고 아이들이 유가족들과 시민들 앞에 나와서 "미안하다, 사랑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가 끝났을 떼 세월호 참사 유가족 어머니와 아버지들이 이 생존학생들을 끌어안았습니다. 그래서 이 사진을 보고서 그냥 가만히 있으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 이제 더 도망치지 말자. 그동안 우리 많이 도망쳤잖아. 여기 살아있어도 살아있다는 말조차 못했는데, 뭐라도 하자고 싶어서 올라간 곳이 도서관이었습니다. 자격증 시험공부하는 아저씨들 사이에서 시국관련 책 몇 권 보고 나니, 이 세월호 아이들에게 덜 미안한 마음이었습니다.

우리는 2014년 4월 16일 그 이후에 자다가도 벌떡 벌떡 몇 번씩 일어납니다. 저는 솔직히 아직도 세월호 아이 부모들 인터뷰를 끝까지 못 듣겠습니다. 중간에 끕니다. 내 자식이 죽어가면서 "엄마~~!"하고 죽었을 거 아닙니까? 손톱에 부러지고 피가 나도록 창문을 긁다가 죽었던 거 아닙니까? 이런 소리를 듣는 사람이라면 그날 밤에 잠을 못잡니다. 그런 밤에 잠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새해 벽두부터 대통령이란 인간은 기자들을 불러놓고, 그것도 헌법유린의 피의자가, 그것도 직무가 정지된 자가 한다는 소리가, "작년이던가요? 재작년이던가요?" 정말로 여러분에게 죄송합니다만, "저게 미쳤나?" 옆에 있으면 입을 쥐어박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2014년 4월 16일 그 많은 생명들이 생매장, 수장되는 걸 하루 종일 TV에서 다 보았습니다. 아니 어떻게 그게 기억이 안나고 뭘 했는지 모르겠고, 아니 어디에 있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은 죄다 청와대에 앉아있습니까? 그렇게 똑똑하고 잘난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뻔뻔한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연인원 1천만 명의 촛불집회였습니다. 2002년 미선이 효순이 그리고 소파(SOFA) 개정부터 시작해서, 2008년 한미 FTA와 광우병사태를 지나서 2016년 세월호까지 진화되어온 과정들을 보면, 현재 한국의 대의민주주의제도 아래에서조차도 광장민주주의, 일종의 직접민주주의가 구체적으로 살아 꿈틀거리는 실체를 우리는 매주 만나고 있습니다. 

파괴된 이 땅의 민주주의 회복을 
이끄는 가장 큰 동력이 바로 이 촛불

요새 말로 하면 협치입니다. 협의 거버넌스입니다. 일방적 독재가 아니라 협력과 협의라는 민주주의 본연의 모습을 다시 세워놓으라는 이 거센 요청이 광장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주권의 대의기관인 국회가 국민의 눈치를 보고, 어떤 면에서는 간접 대의민주주의 체제 아래에서도 어떻게 직접 민주주의가 실체적으로 작동되는가를 전세계적으로 유래가 극히 드문 사례입니다. 파괴된 이 땅의 민주주의 회복을 이끄는 가장 큰 동력이 바로 이 촛불입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촛불 집회에서 전체를 관통시키는 핵심 피켓을 한장 골랐습니다. 

이게 나라냐! 


아이부터 어른까지 왜 이 한 마디가 지난 60일 동안, 천만이 넘는 국민들이 주5일 근무도 모자라서 주6일 토요일까지 추운 겨울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서 이 소리를 외치게 만드는지? 이게 나라냐? 사실은 이 소리 한번조차도 광장에서 한번 하는데 이만큼의 세월이 흐른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2002년과 2008년 체제를 부정하는 구호나 깃발은 강한 제재를 받았고, 그리고 머지 않아서 그것은 종편 등에 의해 종북 프레임에 갇혀버렸습니다. 하지만 2016년도와 2017년를 관통하면서 이어오는 촛불의 연장은 이런 면에서 대단히 진화된 것이라고 봅니다. 아주 다양한 요구들이 자유롭고 활기차게 확장되고 있습니다. 갖가지 깃발들이 펼쳐집니다. 그 가운데서 사람들은 즐깁니다. "이게 나라냐?" 이 소리 한 번에 우리는 지나치게 많은 것을 걸지 않아도 됩니다. 

세월호 이야기만 꺼내도, 괜히 이상한 시선으로 보던 그들조차도, 광장에 나가면 나와 같은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구나. 그 생각에 오히려 위로를 받는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 때문에 마음 아팠던 사람들끼리 생판 모르던 사람들이었지라도, 온기를 느끼고, "아, 내가 잘못 살아온 게 아니었구나."라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촛불은 이 세상에 대한 의미있는 개입이 되길 바랍니다.
촛불이 등장한 배경을 보겠습니다. 주 키워드는 '헬조선'이었습니다. 촛불의 초창기 진화과정은 헬조선으로 표상되는 불공정 승자독식 그 구조 속에서 기회의 균등을 박탈당한 젊은이들, 공정하지 않은 경쟁 속에서 판판히 깨어져 나가고, 그래서 지식의 상아탑이라는 대학에서 조차도 취업준비에만 올인되어 있는, 그러면서 대학을 졸업을 하고 나와도 결국은 판정패할 수 밖에 없는 현실. 

숱한 청년들이 알바와 학자금 대출의 채무자가 되면서 졸업식을 하는 사이에 대한민국 젊은이들인 삼포, 사포 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칠포. 연애, 결혼, 출산, 취업, 주택, 인간관계, 그리고 마지막 뭐죠? 꿈. 이것을 포기해야만 살아갈 수 있다고 만들어 놓은 헬 조선! 그래서 그들이 검색한 키워드 1번이 우울증 그 다음이 자살입니다. … 그런 점에서 대한민국을 '헬조선'이라고 불렀습니다. 

특히 촛불광장에 중고등학생들이 뛰쳐나왔습니다. 그 시점은 아이러니하게도 기말고사 기간이었습니다. 왜요? 그 때에 누구 딸은 1년에 학교를 50일만 가도 이화여대 문을 열어주고, 몇 번 가지도 않은 대학에서 알아서 대학교수들이 학점을 주는 이 판국에 지금 공부를 하면 뭘 하나? 그래서 뭐라고요? "이게 나라냐?"하면서 아이들까지 피켓을 듭니다.

최소한 국가라는 것이 국민과 영토와 주권을 가지고 그것을 정상적으로 작동시킬 수 있는 시스템, 기회의 균등과 공정한 절차가 전제되지 않고, 사사로운 개인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로 전락된다면. 그 때 "이게 나라냐!"라고 말하는 겁니다. 그러면 그런 나라일지라도, 겨우 너네들 밥세끼 빌어먹고, 이만큼 먹고 살게 해준 것에 감사하고, 너희들 끽 소리 하지 말고, 너희들 각자 알아서 제 살길 찾아 나가라고 하는 '각자도생'이 2016년의 마지막 사자성어로 등장합니다. 

각자도생(各自圖生)

그래서 출산율은 꼴찌고 자살률은 1등인 이 허무한 비극. 고도의 압축 성장에 따른 그 선택의 결과를 이제는 이 시점입니다. 이 시점, 탄핵이란 기점 이후에 좀 새롭게 세팅을 시킬 수 있는 시점에 도달한 것은 아닌가? 

주의해야 할 지점들은 많이 있습니다. 4-19 혁명을 5-16 박정희가 말아먹었고, 5-18 혁명을 12-12 전두환이가 말아먹었습니다. 우리가 지금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세월호의 죽음과 촛불의 혁명 또한 어느 놈이 말아먹으려고 준비하고 있다는 겁니다. 과연 우리가 저 정국을 이만큼 변화시켜놓은 촛불을 혁명이라고 불러도 좋다면, 이 역동적인 상황 하에서 비단 대통령 하나 갈아치우는 게 혁명의 목적이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삶 속에 깊이 뿌리박혀 있는 친일과 독재, 불공정과 특권과 반칙. 후진 그 따위 룰들을 완전히 새롭게 세팅할 기회는 우리가 눈을 부릅뜨지 않으면 어느 놈한테 고스란히 또 빼앗길 수 있겠구나. 단지 박근혜의 퇴진이 촛불의 목적이 아니라, 그 아이들이 말하는 지금 우리가 물려줄 세상. 이 아이들이 나와 똑같은 세상에서 살면 안되지 않습니까? 감추어진 것은 드러나고, 불의는 폭로되고, 거짓은 진실을 이길 수 없고,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는 외침이 그냥 광장의 구호로 끝나게 만들어서는 안되지 않습니까?

촛불을 이끌어온 동력들을 섬세하게 다듬어야

그러기 위해서는 이 촛불을 이만큼 이끌어온 동력들을 좀 더 섬세하게 다듬을 수 있습니다. 이 동력을 잃지 않을 정도의 정교한 희망을 그 결과물들을 보여줘야 합니다. 아직도 잠들어 있는 많은 이들을 우리와 함께 교섭하게 하고, 지치지 않을 정도의 희망은 우리 안에 충분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각자 자신들에게 질문을 던질 때가 되었습니다.

온정주의(溫情主義)와 먹고사니즘

대한민국 건국 이래 모든 쿠데타는 다 성공했습니다. 반대로 대한민국 건국이래 모든 혁명은 다 실패했죠. 우린 그 위험 속에 있습니다. 첫번째는 온정주의. 우리 스스로 이만하면 됐다. 하고 다시 먹고사니즘으로 회귀하면 안됩니다. 그래도 인생이란 게 먹고 사는 것보다 한가지 더 중요한 게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먹고사니즘으로 가버리면, 다시 어떤 여자와 비슷한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습니다. 진실과 빛이,정의와 공정이 구조적으로 조직화된 지속가능할 수 있는 상태로 이끌어가기 까지 절대로 '그만하면 됐다!'라고 이야기해서는 안 됩니다. 아직 멀었습니다. 

"되긴 뭐가 돼?" 왜 아직도 그 많은 나치 부역자들을 법적으로 처벌하고 있습니까? "왜 그런 나라가 우리네보다 훨씬 덜 부패하는가?" 이 말입니다.  온정주의에 대한 엄격한 배격이 있기 때문입니다. 법을 어긴 것에 대한 온정주의 말입니다. 제로 톨레랑스. 무관용의 원칙입니다. 끝까지 가야만 저 박근혜 따위. 저런 사람이 어떻게 대통령이 되었습니까? 23살에 엄마가 총 맞아 죽고, 27살에 아빠도 총맞아 죽습니다. 얼마나 불쌍하고 가련합니까? 그 나이에 부모 잃어본 사람이 박근혜 하나 밖에 없습니까? 그런데 국민들은 그 나이에 부모를 잃었다고 대통령을 시켜줍니다. 말도 안되는 짓을 아무런 성찰이나 반성도 없고, 철학이나 비전도 없이, 그저 나의 살던 고향은 청와대니까 그런 식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그거라도 실컷 하라고 시켜준 게 누구입니까? 바로 국민들입니다. 우리들입니다. 딱 그 국민의 수준에 맞는 딱 그 수준의 대통령이 우리 앞에 앉아있는 겁니다.

그리고 지금 이 나라는 그 인간들이 쌓아놓은 똥 치우느라고 야단법석입니다. 온정주의! 혁명 앞에서는 우리가 촛불을 혁명이라고 정말로 부르고 싶다면, 혁명 앞에서는 그 온정주의를 제로 퍼센트로 만드십시오. 박근혜 불쌍하다고 우는 우리 할매들! "할머니 당신 인생이 더 불쌍해요! 이 바보야!. 저 여자 자기 손으로 단 한번도 이력서를 써본 적도 없고, 손에 물 한방울도 묻혀본 적이 없죠. 평생을 떵떵거리고 살았어요. 할머니! 당신이 더 불쌍해요. 제발 그러지 마세요."

이 온정주의의 결과, 재미있는 기사가 2015년에 등장합니다. 우리나라 고교생의 56%가 10억이 생긴다면 죄짓고 감옥에 가도 괜찮다는 내용입니다. 

2015년 12월 29일(인터넷 기준) 한겨레 신문 보도내용. 


한국의 56%의 학생들이 비윤리적이거나 악의에 가득찼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온정주의의 결과입니다. 지금 한국사회는 법의 지배가 아니라 돈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아주 명확한 지표입니다. 법을 우습게 알고 사익추구에 몰두한 결과, "이게 나라냐!"란 소리가 밤새도록 주말이면 그치지 않습니다. 그러면 지금으로부터 2,200년 전에 일종의 백과사전인 [여씨춘추의 제자백가] 중에서 보면 이런 말이 나옵니다.

"지도자가 공정한 법을 집행하는 의지가 있으면 부패가 사라지고, 지도자가 바르지 않으면 사악한 자가 날뛰고 지혜로운 사람은 은둔하게 된다. 임금이 허리 가는 여자를 좋아하면 굶어 주는 여자가 생기고, 임금이 용감한 것을 좋아하니 목숨 걸고 싸우는 사람이 생긴다. 권한을 가진 사람은 사람들의 습관을 바꾸고 행동방식을 바꿀 수 있다."

제가 주목하는 대목은 '허리가는 여자'가 아니고, '권한을 가진 사람은 사람들의 습관을 바꾸고 행동방식을 바꿀 수 있다.'는 대목입니다. 무슨 소리일까요? 도덕이란 것은 습관, 관습에 대한 지속적인 복종입니다. 그게 도덕률이 됩니다. 관습이나 습관은 누가 만듭니까? 권한을 가진 사람이 만들죠. 대한민국의 관습은 도대체 누가 만들었을까요? 

현재 대한민국의 관습은
법보다는 돈, 정상보다는 비정상. 안되면 되게 하라. 돈만 되면, 성공만 하면, 출세만 하면 무슨 짓도 다 덮어주는 것. 그저 경제적인 목적으로 먹고 사는 데만 수십년을 몰두하게 만든 이 습관. 그러니 이제 스무살이 되는 여자아이가, "자식들아, 돈도 능력이야. 돈 없는 너희들은 능력없는 너네 부모를 원망해."라고 하는 소리가 너무나도 당연하게 나올 수 있는 이 정도의 사고방식의 수준. 성장주의, 물질주의, 몰염치한 능력주의에 대한 반성없는 이 관성의 시작은 어디서부터일까? 그리고 지난 한달동안 우리가 보아왔던 그 청문회를 보며, 참 뻔뻔하다. 어떻게 온 국민에게 눈도 깜짝하지 않고 대놓고 거짓말을 할 수 있을까? 

수오지심(羞惡之心)

최소한 글깨나 읽었다는 인간들조차도 판에 박힌 듯한 거짓말을 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느끼는 것은 무엇입니까? 아~ 인간이란 게 부끄러움이 없을수도 있구나. 최소한 수오지심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인간이 짐승과 다른 점이 '수오지심' 즉 부끄러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점인 거죠. 이 수오지심이 없으면 뭐와 같다고 봅니까? "짐승과 같다."입니다. 이건 제가 한 말이 아니라 한완상 전 부총리가 하신 말씀이시죠.

(김영삼·김대중 정부에서 통일·교육부총리를 지낸 한완상 서울대 명예교수는 "박근혜 대통령은 부끄러움을 모른다. 부끄러움을 모르면 짐승"이라고 말했다. 2017년 1월 4일 YTN 신율의 ‘출발 새아침’ 인터뷰에서 그는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들을 격앙케 한 가장 큰 요인으로 무치(無恥), 부끄러움을 모르는 행태를 꼽았다. '세월호 참사 때 관저에서 할 일을 다했다'는 박 대통령의 변명에 "그게 무치의 절정이다. 지난 일요일 청와대 간담회를 보고서 자기가 잘못한 걸 전혀 모르는, 어떻게 이런 분이 사람일 수 있는가? 대통령 이전에 사람일 수 있는가?"라며 "동물은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사람만이 부끄러워한다"고도 했다. "무책임, 무능은 봐줄 수 있으나 최고지도자가 무치(無恥)를 가졌으면 이건 국가의 기본 바탕이 무너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도대체 우리의 이런 악한 습관들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 정말 저는 탄핵정국 이후에는 이분(박정희)과 이별하고 싶습니다. 이제 좀 박정희, 그가 만들어놓은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싶습니다. 졸업 좀 합시다. 탄핵 정국 이후에 이것이 가장 중요한 지점이라고 봅니다. 우리 대한민국이 박정희주의, 박정희 사고를 졸업할 출발점입니다. 촛불이 최소한 시민혁명이라면 그 혁명의 도화선은 바로 이 지점입니다.

위의 사진 두장은 똑같습니다. 대한민국이라는 이 국가의 격이라는 것이 최소한 천만 촛불을 관통하면서 박정희가 남겨놓은 구태와 적폐들을 완전히 붕괴시키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최소한 박정희라는 저 개인이 가지고 있는 신화의 상당부분을 해체시키는 시대로 진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의 이 불공정들, 성장주의, 물질주의, 능력주의로 대표되는 박정희 식의 압축발전이 결국 우리 젊은 세대들이 겪고 있는 헬조선을 만들었다는 걸 많은 분들이 상당부분 깨닫고 있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독재라는 욕망이 먼저 있고, 그 다음 
비정상적 과정과 불의한 절차를 통하여
압축성장에 들어갔던 것

대한민국이라는 이 수명이 짧은 국가는 다른 나라에서는 100년 혹은 200년에 걸쳐서 점진적으로 완성되었던 결과물을 우리는 불과 50~60년이란 시간 안에 다 집어넣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두고 수구주의자들은 박정희의 공이라고 이야기하죠. 그러나 그건 사기입니다. 독재라는 욕망이 먼저 있고, 그 다음 비정상적 과정과 불의한 절차를 통하여 압축성장에 들어갔던 겁니다. 1972년 유신체제를 선포하며 더욱 공고화되었던 것이 재벌 그리고 중화학공업의 육성입니다. 소득세와 법인세를 낮추고 간접세를 올렸습니다. 그러면서 뭐라고 했습니까? 이제 세금 낮춰줄테니까, 너희들은 너희들의 노후를 늙어죽을때가 알아서 챙기라고 한 겁니다. 

능력있는 놈 잘 사는 것 당연하고 능력없는 놈 잘 못사는 게 당연한 세상이 되었어요. 죽을 때까지 이 나라의 국민들은 근면성실해야 되었습니다. 죽을 때까지. 내 새끼 아무리 공부시켜서 삼성보내십시요? 그 중에 몇 퍼센트가 남아있을까요? 중간에 한 10년 되면 단물 쫙 빨아먹고 내보내버립니다. 그런데도 엄마는 내 새끼 삼성간다고 좋아합니다. 누구 좋은 일 시키고 있는지 보십시요. 그래서 촛불이 박근혜만 물러나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 구조적으로 뿌리박힌 적폐들, 이게 잘못된 것이다. 우리가 성공이라고 부르는 게 성공이 아닌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져야 그 안에 있는 박근혜와 최순실을 뽑아낼 수 있습니다. 

(2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