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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평강론과글

[대전교구장 예수부활대축일 메시지] “그리고 보고 믿었다.”(요한 20,8)

by 편집장 슈렉요한 2017. 4. 16.

2017년 예수부활대축일 메시지


“그리고 보고 믿었다.”(요한 20,8)



사랑하는 대전교구 자매, 형제 여러분!


그 어느 해보다 깊은 절망과 희망의 교차점에 서서 부활선포와 축하인사를 전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하느님이 없는 세대, 예수님의 부활 선포에 가볍게 고개를 돌리는 세상입니다. 누구를 탓할 수 없습니다. 점점 극악하고 잔인한 양상을 보이는 살인사건들이 보도됩니다. 전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는 무자비한 테러는 종교의 의미를 스스로 무너뜨립니다. 약자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마저 거부하는 세계 정치지도자들의 야만적인 목소리가 바이러스처럼 번지는 세상입니다. 젊은이들의 소박한 내일이 절박한 위기에 처한 시대입니다. 노동을 통해 존엄성을 실현하며 건강한 내일을 준비하려는 꿈마저 사치로 느끼는 그들의 눈에 두려움이 가득합니다. 인류 역사상 최대의 과학기술 발전과 경제적 번영을 달성한 21세기 자화상입니다. 포용과 배려, 공존의 윤리는 무한경쟁과 살기(殺氣)어린 생존법칙, 자폐적인 불감증에 그 자리를 내어줍니다. 절망의 시대입니다. 그 어디에도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가 보이지 않는 듯합니다.


이러한 시대의 어둠에서 우리는 또한 희망을 봅니다. 엄청난 노력으로 교사가 된 20대의 젊은이가 불과 몇 살 어린 제자들을 구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구명조끼를 양보한 숭고한 죽음에서 희망의 빛을 봅니다. 생명의 위기마저 느꼈을 압력을 견디며 사실을 증언하고 정의를 지켜낸 이들의 용기와 화재 현장에서 한 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끝까지 뛰어다녔던 분들의 희생에서 인간과 세상의 희망을 봅니다. 이기심과 생존의 본능조차 꺾을 수 없는 사랑과 정의의 힘이 희망을 보여줍니다.


하느님의 부재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시대에 그리스도인들의 부활 선포는 이처럼 희망을 증거하는 삶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악으로 가득찬 시대에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는 일은 세상의 조롱과 비난, 협박을 받는 자리에 서는 것을 의미합니다. 무관심과 폭력성의 노도에 맞서, 양심과 사랑을 증언할 때 발생하는 마찰이 빚어내는 빛과 소리가 세상의 눈과 귀를 하느님께 돌려놓습니다. 우리의 증거가 하느님께서 모든 인간 안에 심어 놓은 양심과 선성을 일깨우고 그들이 참 인간과 하느님을 찾아 나서게 합니다. 우리를 변화시키시며 구원으로 이끄시는 그리스도께서 이기심과 안주의 유혹을 버리고 당신을 따라 구원의 길을 함께 걸어가는 부활로 초대하십니다. 우리의 삶으로 그리스도의 현존이 드러날 때 부활하신 예수님은 세상의 궁극적인 희망이며 유일한 구원자로 선포됩니다. 우리 안의 그리스도께서 용서와 자비와 사랑의 힘을 주시기에, 우리는 그 손을 잡고 기쁜 마음으로 견디며 세상 구원에 동참합니다.


2017년의 부활에는 그 어느 해보다 큰 희망이 담겨 있습니다. 회개와 사죄로 변화된 우리 사회에서 슬픔이 희망으로 변화되었기 때문입니다. 3년 전 오늘, 최소한의 준법과 양심만으로도 살릴 수 있었던 귀중한 생명이 가장 귀중한 시간을 놓친 당국과 선원들에 의해 스러져 갔습니다. 그 죽음 앞에 온 국민은 슬픔과 분노에 머물지 않고, 사회의 불의를 방관한 우리들의 죄를 사죄하였습니다. 그리고 더욱 정의로운 세계를 만들기 위한 변화의 촛불을 밝혔습니다. 교회도 빛과 소금, 예언자의 역할을 온전히 수행했는지를 치열하게 반성하며 그들과 함께 울고, 국민과 함께 촛불을 들었습니다. 그들의 죽음으로 드러난 세상의 악이 우리의 사죄와 사회의 근본적 변화로 이어질 때 스러져 간 죽음이 부활합니다.


성경은 두려움에 갇힌 제자들의 부활체험이 부활신앙의 시작임을 보여줍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정의와 사랑을 위해 십자가 길을 걷는 삶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납니다. 우리의 부활 체험과 변화된 삶이 신의 죽음을 선포하는 세상에 하느님 체험과 부활 체험을 증거하는 삶을 살아갑시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빛으로 세상을 바라봅시다. 우리의 궁극적 희망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그 부활의 은총이 여러분과 가정에도 함께하시길 빕니다. 그리스도께서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2017년 4월 16일 부활대축일

천주교대전교구장 주교 유흥식 라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