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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평강론과글

김용태 신부 정세미 미사강론 ... 진정한 믿음은 어디에서 오는가?

by 편집장 슈렉요한 2018. 2. 13.

 진정한 믿음은 어디에서 오는가?



2018년 2월 12일 연중 제6주간 월요일 제102차 정세미 미사 강론

용태 마태오 신부(대전정평위원장, 도마동성당 주임)

오늘 복음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가?>

✠ 마르코 8,11-13

그때에 11 바리사이들이 와서 예수님과 논쟁하기 시작하였다. 그분을 시험하려고 하늘에서 오는 표징을 요구하였던 것이다. 12 예수님께서는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며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13 그러고 나서 그들을 버려두신 채 다시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셨다.




(강론 시작)

그러자 악마는 예수님을 데리고 거룩한 도성으로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운 다음, 그분께 말하였다.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밑으로 몸을 던져 보시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지 않소? ‘그분께서는 너를 위해 당신 천사들에게 명령하시리라.’ ‘행여 네 발이 돌에 차일세라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쳐 주리라.’”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이르셨다. “성경에 이렇게도 기록되어 있다.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마태 4,5-7)


광야에서의 세 가지 유혹 장면 중의 하나입니다. 이 유혹은 한 마디로 표징에 대한 유혹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악마는 예수님을 유혹합니다. “신기한 표징을 보여줘라! 그러면 사람들은 그 표징을 보고 너를 쉽게 믿게 될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유혹을 물리치십니다. 예수님을 알고 계셨습니다. 믿음은 표징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런데 바로 이 유혹이 오늘 복음에서 다시 재현되고 있습니다.


그때에 바리사이들이 와서 예수님과 논쟁하기 시작하였다. 그분을 시험하려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징을 요구하였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며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마르 8,11-12)


예수님께서는 표징을 보여 달라는 바리사이들의 요구를 거절하십니다. 과거 광야에서의 악마의 유혹이 바리사이의 입을 통해 재연되고 이를 예수님은 다시 물리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듭 우리에게 알려주십니다. 믿음은 표징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사람이 더불어서 함께 살아가는 데에 믿음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믿지 못하면 함께 살 수 없죠. 또한 믿음은 영향력과도 같은 의미를 지닙니다. 믿어주는 사람이 많을수록 영향력도 커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많은 이들의 믿음을 얻고 싶어 합니다.


그렇다면 그 믿음은 어디서 오는가? 

사람들은 보통 표징에 주목합니다. “百聞不如一見”이란 말이 있듯이 백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죠. 그래서 표징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곧 믿을만한 사람이 되는 거고, 보여줄 수 있는 표징이 많을수록 세상에서의 영향력은 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세상에서의 영향력을 원하는 사람들 즉 많은 이의 믿음을 얻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표징에 주목하고 표징에 집착합니다.


그렇다면 이 시대에 표징이란 무엇인가? 

사람들의 믿음을 얻을 수 있는 그 표징! 마술이나 기적과 같은 신기한 현상? 그런 것은 그냥 구경거리에 불과할 뿐입니다. 이 시대를 좌우하는 대표적인 표징은 바로 돈과 명예와 권력입니다. 아니 이 표징은 이 시대만이 아니라 모든 시대의 표징이 되어왔습니다. 돈과 명예와 권력은 오랜 세월 사람들의 믿음의 이유가 되어 왔고 세상을 통치하는 원동력이 되어왔습니다.


그런데 믿음이란 게 정말 그런 것인가?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만들고 사람을 정말 사람답게 만들어 주는 믿음, 모든 사람이 더불어서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고 이 세상은 아직 살만하다고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서로에 대한 믿음이란 게 정말 그런 걸까?


아니다! 이게 바로 예수님의 답변입니다. 아니다! 진정한 믿음은 표징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표징에서 믿음이 오는 것이라면 그런 믿음은 결정적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바로 표징이 사라지는 순간 믿음도 함께 사라진다는 사실때문입니다. 믿음이 돈에서 오는 것이라면 돈이 많을 때에는 문제없지만 돈이라는 표징이 사라지는 순간 믿음도 함께 사라집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돈 없는 사람을 가리켜 믿을 수 없는 사람, 즉 신용불량자라고 부릅니다. 


반면 돈이 있는 사람은 수백 수천 혹은 수조원을 도둑질해도 끝까지 믿어주고 무죄라 판결해줍니다. 그러나 이런 건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만드는 참된 믿음이 결코 아닙니다. 명예도 그렇고 권력도 그렇습니다. 믿음이 그런 것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명예와 권력이라는 표징이 사라지는 순간 믿음도 사라집니다. 힘없고 빽없고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 보잘 것 없는 이들은 이 세상에서 결코 믿을 수 없는 이로서 소외되고 버려집니다. 


반면 높은 지위에 있으면서 권력을 휘두르고 신문과 방송을 통해서 그럴 듯하게 자기 포장을 하는 자들은 사람들이 여전히 믿어주고 지지하고 따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시고 우리가 따르고자하는 믿음은 결코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믿음은 어디에서 오는가?

믿음은 바로 사랑에서 옵니다. 사랑은 돈도 없고 누가 알아주지도 않고 보잘 것 없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끝까지 믿어줄 수 있습니다. 사랑은, 되갚을 것 같아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 기꺼이 줄 수 있고, 오른뺨을 때린 사람에게 다시 왼뺨마저 맡길 수 있으며, 겉옷을 달라는 이에게 속옷마저 내어줄 수 있고,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이미 일어난 일처럼 기뻐하게 만들어 줄 수 있습니다. 


사랑에서 오는 믿음이란 것은 바로 이런 것이죠. 이러한 믿음이 우리를 모두가 더불어서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 줍니다. 이 믿음은 우리가 가져야할 믿음이기 이전에 이미 우리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믿음이기도 합니다. 사랑이신 하느님이 우리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믿어주시는 바로 그 모습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드러나는 바로 그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결국 표징을 요구하는 바리사이들의 요구에 대해 사랑이라는 진정하고 유일한 표징을 보여주십니다. 성전꼭대기에 올라가는 대신에 십자가 위에 올라가신 것처럼 예수님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신기한 표징 대신에 요나의 표징 즉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그 한없는 사랑만을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그 사랑과 믿음으로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사랑이 메말라가고 그래서 서로에 대한 믿음도 점점 사라져 가는 이 세상입니다. 표징에서 오는 거짓 믿음만이 난무하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가난하고 힘없고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은 점점 살아갈 터전을 잃어가는 그런 세상입니다. 이러한 세상 속에서 우리는 절망하고 말 것이 아니라, 깊이 탄식하시면서도 우리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거두지 않고 그 사랑과 믿음의 길을 걸어가신 예수님처럼, 한숨밖에 안 나오지만 결국 다시 마음을 다 잡고 좀 더 사랑하고 좀 더 믿어주는 이 구원의 길을 오늘 다시 한 걸음 걸어갈 수 있도록 다 같이 노력합시다. 


잠시 묵상하시겠습니다. 


2018년 2월 12일 월요일 저녁 7시

천안 오룡동 성당

제102차 정세미 미사 강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