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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서와 문헌/다른가톨릭단체

[20111010] 제주 평화의 섬 실현을 위한 천주교 사제․ 수도자 선언

by 편집장 슈렉요한 2016. 12. 22.

2011년 10월 10일 

제주 강정마을에서 진행된 제주 평화의 섬 실현을 위한 천주교연대 출범의 날 행사에 발표된 선언문. 

 

제주 평화의 섬 실현을 위한 천주교 사제 ․ 수도자 선언

 


제주에 해군기지를 건설하려는 정부의 계획에 대해 해군기지 건설 예정지인 강정마을 주민들은 물론 생명과 평화를 사랑하는 많은 국민들이 반대하고 있습니다. 한국 천주교의 사제들과 수도자들도 생명이신 하느님, 평화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정신에 따라 제주 해군기지 건설 계획의 전면 백지화를 요구하며 지난 4년간 함께 아파하며 기도했습니다.

 

우리는 정부가 앞장서서 자랑하고 홍보하듯이 제주의 자연유산이 온전히 지켜지기를 원합니다. 그러므로 자연환경을 치명적으로 훼손하는 청정 해역의 군사기지화를 반대합니다. 정부는 한편으로는 제주가 유네스코에 생물권 보전지역, 세계 자연유산, 세계 지질공원으로 등록되어 있다 자랑하고,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을 위해 대 국민 홍보를 펼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제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연이 보존된 강정 구럼비 해변을 파괴하고, 콘크리트로 제방을 쌓아 수십 척의 군함이 정박하는 해군기지로 만들려하고 있으니 정부의 태도는 이율배반적입니다.

 

제주 강정을 해군기지 후보지로 결정하는 과정에서 합법적인 절차는 무시되었고 강정 주민들의 의사가 전혀 반영되지 않은 채 비민주적이고 일방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해군은 2002년 해군기지의 최적지로 제주 '화순'을 선정했으나 주민들의 강한 반대에 부딪히게 되자, 2005년 9월경 화순에서 '위미'로 변경하였고 이 역시 위미 주민들의 반대로 좌절되었습니다.

 

가는 곳 마다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히자 제주도는 2007년 4월, 여론조사 방법으로 해군기지를 결정할 것임을 발표하였고 불과 한 달 사이에 강정마을회의 해군기지 유치 희망의사 전달(07.04.26), 제주도의 여론수렴과정(07.05.03), 강정마을을 최우선 후보지로 결정(07.05.14)하는 등의 절차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습니다. 2007년 4월 26일 1,900명의 강정마을 주민들 중, 불과 80여 명이 모인 마을임시총회에서 만장일치 박수로 해군기지 유치결의가 이루어졌고, 도지사는 여론조사 결과 주민 다수가 찬성한다는 이유로 2007. 5. 14. 해군기지 강정동 유치결정을 발표하였습니다.

 

결국 2007년 8월 10일 마을임시총회에서 해군기지 유치결의를 주도한 마을이장을 주민 436명 참가해 416명(95.4%) 찬성으로 해임시켰고, 열흘 후인 2007년 8월 20일에는 공개적으로 "해군기지 유치 찬반을 묻는 주민투표"를 실시, 마을주민 725명이 참가해 유효 투표수의 94%인 680명이 유치에 반대하였습니다. 이렇게 마을 주민 대다수의 반대의사가 명백하게 확인됨에도 불구하고 해군과 제주도 측은 공사를 강행하였고, 이 같은 강압적 공사 강행으로 인해 강정마을 주민들이 겪은 물리적, 정신적 피해는 참혹합니다.

 

또, 지난 9월 2일 강정마을에 폭력적인 공권력 투입이 시작되기 하루 전인 9월 1일, 해군기지 예정지에서는 청동기 시대 유적지가 발견되었고 문화재 전문가들은 매우 중요한 문화재일 가능성이 높아 철저한 조사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모든 공사행위가 중단되어야 한다고 정부에 호소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문화재청장이 심도 깊은 발굴조사를 위해 공사 즉시 중단을 요청했음에도 해군은 막무가내로 공사를 진행하고 있으니 참담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난 9월 2일 강정 해변으로 가는 유일한 통로인 농로를 폐쇄하는 과정에서 육지에서 동원된 500여명의 무장 경찰특공대가 강정 주민들과 평화활동가들에게 가한 폭력진압과 무더기 연행은 두 번 다시 용납할 수 없는 제2의 4․3사건이었습니다. 한반도에서 벌어진 역사적 사건들 중 한국전쟁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국민이 희생된 4 ․ 3 사건의 상흔이 아직도 곳곳에 남아있는 제주와 제주도민들에게 공권력이라는 이름의 폭력을 또다시 마주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정부는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고, 중국을 견제하여 해양영토를 보호하며, 남방해역 해상교통로와 풍부한 해저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제주 해군기지 건설의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는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군사분계선과 가장 먼 제주에 건설되는 해군기지가 혹시 발생하지도 모를 북한의 도발에 즉각 대응할 수 없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또, 우리나라의 남방해역에서 해군이 나서야 할 정도로 명백한 위협이 나타난 적이 없고, 중국이 이어도의 영유권을 주장할 것이라는 주장 역시 현실과 동 떨어진 이야기입니다. 아시아에서는 해적에 의한 범죄가 점점 줄어들어 안정화되었고 만일 해적에 의한 우리 상선의 피해가 발생할 때마다, 해군이 출동하여 작전을 수행하게 된다면 외교적으로도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우리가 동북아에서 평화를 유지한다는 것은 대한민국의 국력과 외교 역량이 좌우하는 것이지 해군기지가 지켜주는 것이 아닙니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은 오히려 미국을 위한 해군기지가 아니냐는 주변국들 불편한 오해를 사기 십상이고 군사적 긴장감만 유발할 가능성이 큽니다. 평화는 무기와 군대로만 지켜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제주에 해군기지를 건설할 경우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아시아에서의 미·중·일 안보 경쟁 현실에서 볼 때, 제주는 평화로운 관광지에서 동북아의 새로운 군사적 긴장의 전초기지로 탈바꿈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는 막연한 추측이 아니라 베트남 앞바다를 비롯한 남중국해 일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긴장, 센카쿠 열도에서 벌어지는 중국과 일본의 갈등, 오키나와에서 벌어지고 있는 미국과 일본의 신경전 등이 선명하게 증거하고 있는 엄연한 사실입니다.

 

정부와 해군은 구럼비 바위를 부수고 강정 바다에 시멘트를 퍼 붓는 이 암담한 공사를 즉각 중단해야 합니다. 정부는 제주 해군기지 건설 계획을 전면 철회하고, 국회는 제주 해군기지 건설과 관련된 모든 예산의 편성과 집행을 중단해야합니다. 이 길만이 한반도의 평화와 평화의 섬 제주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우리는 오늘 제주 평화의 섬 실현을 위한 천주교연대를 출범합니다. 생명과 평화를 수호하기 위한 복음을 제주에서 선포하고 이를 위해 기도하고 마음을 모을 것입니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막아내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 나갈 것입니다. 우리는 해군기지 건설 중단을 정부가 결단해 줄 것을 요구하며 국민들께 강정마을과 제주의 평화를 위해 함께 해 주실 것을 호소합니다. 강정의 평화가 바로 우리의 평화입니다. 그리스도의 평화가 제주와 한반도에 함께 하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하나. 우리는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를 위협하는 제주 해군 기지 건설을 반대합니다.

 

하나. 해군은 문화재청의 권고대로 공사를 즉각 중단하고 문화재 발굴조사를 투명하게 실시하기 바랍니다.

 

하나. 정부는 비민주적인 제주 해군기지 건설 과정에 대해 강정마을 주민들께 사과하고 전면 철회해야 합니다.

 

하나. 국회는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위한 모든 예산 편성과 집행을 중단하고 제주 해군기지 문제의 해결을 위해 적극 나서야 합니다.

 

하나. 정부는 ‘제2의 4․3 사건’ 을 우려하는 제주 도민들의 아픔을 기억하고, 육지에서 입도한 모든 공권력을 제주에서 즉각 철수하고 공권력 남용에 대해 사과하십시오.

 

하나. 정부는 이미 진행된 공사로 파괴된 제주의 생명과 자연에 사죄하고 원상회복을 위한 모든 노력을 기울이십시오.

 

2011년 10월 10일

제주 평화의 섬 실현을 위한 천주교 사제 ․ 수도자 1010인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