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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교리학교/사회교리 강의

[20150506] 대미를 장식한 사회교리 토크 콘서트 (2) (하기동성당)

by 편집장 슈렉요한 2016. 12. 26.
사회교리 토크 콘서트 (2)
- 10주간 강의의 대미를 장식 -

김유정, 김용태, 박상병 신부
2015년 5월 6일(수) 오후 8시~10시, 대전 하기동 성당


1부를 마치고 밤 9시경부터는 짧은 노래 공연이 있었다. 


대전사회교리 마지막 강의인 10주차에 열린 사회교리 토크콘서트의 1교시를 마치고 아주 잠깐 휴식을 취하는 사이에는 사회를 본 김용태 신부님의 기타연주가 있었다. 그리고 김유정 신부님과 새롭게 등장한 젊은 신부님 두분의 20여분에 걸친 짧은 콘서트를 개최한 다음, 9시 30분이 되어서 사회교리토크 콘서트 제2부가 시작되었다.


사회: 김용태 신부

Q. (김용태) 의료공동체 협동조합에 대한 질문
민들레의료복지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을 맡고 계시는 조세종 박사님께서 답변을 해주시겠습니다. 
(조세종 박사는 2015년 4월 1일자로 13기 사회교리학교 5주차 강의 [경제생활과 윤리]를 하기동 성당에서 한 적이 있다. 현재 대전교구 정평위 교육위원을 겸하고 있는 조세종은 짧은 티셔츠의 평이한 복장을 하고 나타났다.)

A. (조세종) 신뢰와 노력의 문제
제 복장 심플하죠. 제일 무섭다고 하는 이들인 중2가 오늘 50명 정도 방문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한시간 가량 맞이하였는데, 프리하게 입으면 좋을 거 같아서 이런 복장입니다. 질문하신 것은 의료공동체 설립방식에 대한 내용인데요. 법적으로 500명이나 1억을 출자해야 된다는 등의 말보다는 무엇보다도 사람들을 조금씩 설득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사람들 설득하며, 한사람 한사람 설립자를 모집해나가는 게 어려운 거 같다. 일단 병원을 세운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협동조합 병원 세우는 게 아니라, 일반병원이 1년 전에 세워져 있다고 하면, 그것이 나중에 조건이 맞을때, 협동조합으로 전환시키는 것이죠. 지금도 그런 식이고, 최근 부천에서 그렇게 합니다. 

공동체정신을 가진 의사가 있다면 설립이 쉬운 거죠. 두번째 설립 시 걸림돌이란, 홍보때문입니다. 알려나가는 게 중요하고, 주위의 훌륭한 의사선생님들 많은데, 주민과 함께 하는 의사선생님은 쉽지 않아요. 굳이 500~1000명 사람들과 의견 모아 어떻게 병원 세우고, 어떤 진료할래 그런 과정에 선뜻 의사들이 협동조합 방식 세우는 게 쉽지 않다는 겁니다. 1980년대 골룸반회에서 시도 있었는데, 마찬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또한 선우경식이라는 의사선생님이 계셨는데, 이 분은 주민과 함께 하는 방식을 선호하지 않으셨습니다. 빈민 복지를 선호하셨는데, 선생님이 돌아가시고 나니까 병원(요셉의원)은 서울대교구로 가버린 겁니다. 그 부분이 다릅니다.

1945년 7월 31일 평남 평양 출신의 선우경식은 1969년 가톨릭의과대를 졸업하고, 1980년부터 82년까지 한림대 의대 교수를 역임했다. 1983년 서울 신림동 철거민촌 의료봉사를 계기로 노숙자와 극빈층의 의료봉사를 시작으로 1987년 8월 관악구 신림1동 동사무소 자리에 무료 진료소인 요셉 의원을 설립하고 21년동안 노숙자, 외국인 근로자, 가난한 이들의 건강을 돌보다가 2006년 위암 판정을 받고 2008년 4월 15일 뇌출혈로 쓰러진 뒤 3일 후인 4월 18일 돌아가셨다. - 출처. 위키백과


세번째로 확산되지 못한 이유는 의료생협이란 유사 사이비 병원들이 전국 400여군데 있다는 겁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무장 병원입니다. 의사 아닌 이가 이사장 할 수 있어요. 병원 사무장이 돈버는 재주를 갖고 있다면 가능한 것인데, 그런 것의 부작용이 큽니다. 그런데 우리와 같은 협동조합은 전국에 25개 밖에 없어요. 그리고 공공성에 대한 오해가 있는데, OECD 국가 중에서 밑에서 네번째로 바닥인 공공성 가진 나라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의료에는 보건 예방의 개념 같은 게 없습니다. 그래서 협동조합의 방식이 적합한 겁니다. 지난 10년간 25개가 세워졌고, 앞으로 10년간은 100개, 200개까지 예상합니다. 

마지막 질문하신 것에 대해 말씀드리면, 운영하며 어려움을 물으셨는데, 이 모든 게 다 어렵죠. 홍보하는 것, 긴 호흡으로 가는 것, 자본 힘이 아닌 신뢰와 협동으로 하나하나 쌓아가는 건 오랜시간 가야 하고, 그 시간을 버텨나가는 신뢰관계를 가진 이들이 있어야 합니다. 저희 조합원이 현재 3천명입니다. 3백명 시대보다 관계의 밀도가 옅어졌습니다. 그것이 고민되는 겁니다. 일반 병원과 뭐가 달라? 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공공성, 과잉진료 금지, 예방보건 등인데, 쉽지 읺아요. 돈에 대한 문제. 비용대비 수익이 많이 나지 않는 구조가 현실적이기에 어렵습니다. 그래서 초심 잃지 않고 경영을 투명하게 하면서 성과내는 지혜로운 순간들을 맞이해야 한다는 겁니다. 

Q. (김용태) 해방신학과 사회교리
해방신학과 사회교리에 대해서 사람들이 궁금해하는데, 그게 뭔가 김유정 신부님이 답변해주시겠습니다. 

A. (김유정
신학이란 것은 단 한가지가 아닙니다. 그것은 지역적, 시대적 특성에 따라서 각각의 신학이 존재합니다. 20세기에 이르러서는 남미의 해방신학이 등장하고, 아프리카 신학과 또한 독자적인 아프리카 여성신학도 존재합니다. 북미신학도 있고 우리나라에서는 민중신학이란 게 있었어요. 그런데 그러한 것을 모두 '토착신학'이라고 불렀다가 '맥락신학'이라고 부릅니다. 용어가 바뀝니다. 지금 우리에게 교리서가 있는 이유는 초세기부터 수많은 신학논쟁이 있어서 그것들이 모아져서 어떤 부분들은 다양한 목소리가 하나로 합쳐져 교리서에 나오는 겁니다. 그 중에서 해방 신학이 유명한 까닭은 남미의 상황이 아주 오랫동안 군사독재를 겪었던 겁니다. 게다가 남미의 사제들은 너무나도 가진 이들의 편을 들어왔던 겁니다. 그러다가 이제부터는 가난한 이들의 편을 들겠다고 한 것이 바로 해방신학입니다. 이것에 대해서 비판하는 자들은 '세상을 너무 2개로 나눈다!'는 것이죠. 바로 부자와 가난한 자입니다. 가난과 부자로 구분하는 걸 맹점이라고 지적하고 있지만 사실상 그것은 남미의 독특한 상황입니다. 실제로 남미는 그렇게 구분되어 있는 겁니다. 콜롬비아에서는 여전히 총을 들고 다닙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남미 해방신학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분이 성인이라고 해도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걸 다 잘할 수는 없는 것이죠. 그런 분은 오직 한분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라칭거 추기경으로 신앙교리성 장관을 할 때에 '해방신학'에 대한 훈령을 발표합니다. 그런데 그 훈령에 담긴 신학적 평가에 대한 논쟁이 많았는데, 그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다르게 자리매김을 하기도 하는 것이죠. 

신학에는 두 부류가 있습니다. '우리도 총들고 싸워야 한다는 부류'가 그것인데 사실 그것은 신학이 아닙니다. 또 하나는 완전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죠. 대표적인 분이 바로 엘살바도르의 로메로 대주교님이십니다. 이분이 최근 시복되셨죠. 교회가 해방신학의 공로를 인정하는 추세이기 때문에, 교황청에서 받아들이느냐 마느냐는 이전 교황님들은 약간 경계하셨는데, 시대를 통해서 교회가 이해하는 면이 달라졌다고 말씀드릴 수 있고, 해방신학 외에도 지역별 상황 신학들이 조금씩 목소리들을 낼 것으로 전망이 됩니다. 우리 가톨릭 교회는 한가지 목소리만 내는 게 아니라 여러 다양 목소리 내는 것, 산의 여러가지 색들이 어울려서 아름답듯이, 통일하면 국방색 나오는 게 아니라, 하나로 일치되지만, 그 안에 다양한 목소리 있고, 그걸 다 포함되니 보편된 교회라고 얘기하는 겁니다. 여기에서 이전보다 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게 해방신학이리고 볼 수 있는 것이죠.  구스타프 구티에레스(1928년, 페루 리마 생), 레오나르도 보프(1938년 12월 14일 브라질) 신부님 등이 대표적이십니다. 보프 신부님은 급진적이라고 해서 라칭거 추기경 시절, 사제직을 떠났습니다. 사제직을 떠나셨지만, 당신께서 '평신도로 상승했다'고 표현하셨고, 아주 유명한 대화가 있습니다.

보프 신부님은 1984년 『교회, 카리스마와 권력』이라는 책 때문에 바티칸으로 소환을 당했습니다. 당시 로마 교황청은 중남미교회의 해방신학이 질서를 어지럽힌다고 보았고, 라칭거 신앙교리성 장관과 이런 대화를 나눕니다.  (라칭= 라칭거)

라칭: 수단이 썩 잘 어울립니다. 신부님. 그건 당신이 누구인지를 세상 사람들에게 증거해주죠. 
보프: 하지만 브라질에서는 더위 때문에 이 옷을 입기 쉽지 않아요.
라칭: 그러나 그 때문에 사람들은 당신의 헌신과 인내를 알아보지요. 그들은 그가 세상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있구나 하고 말 할 겁니다.
보프: 물론 우리에게 영성주의의 증거들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건 수단이 아니라 마음에서 오는 것입니다. 잘 차려 입어야 하는 것은 바로 그 마음입니다.
라칭: 하지만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아요. 어떤 것들은 눈에 보여야 합니다. 안 그렇습니까?
보프: 그렇죠. 하지만 수단은 권력의 상징일 수도 있습니다. 제가 이 옷을 입고 버스를 타면, 사람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저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사람들의 종이어야만 합니다.


신앙교리성은 보프 신부님이 과격하다고 보고 로마로 불른 겁니다. 보프 신부님은 라칭거 추기경님의 밑에서 공부하시던 분이라고 해요. 그런 시절에도 늘 청바지를 입고 다니셨다는 데, 교황청에 나타날 때 수단을 입고 갔으니 그걸 보고 스승인 라칭거 추기경님이 굉장히 기뻐한 겁니다. 그래서 '잘 어울린다'는 칭찬을 하지만, 보프는 수단이 브라질에서는 굉장히 더운 옷이라고 말을 하는 겁니다. 그러자 라칭거는 '하지만 사람들은 우리를 위해 대신 십자가를 지는 걸 고마워하죠. 그러자 보프는 '제가 브라질에서는 권력이 되고, 수단을 입고 버스에 타면 할아버지도 일어난다'고 촌철살인의 답변을 합니다.  

그리고 보프 신부님은 해방신학자로서는 유일하게 교수직을 박탈당하고 사제에서 환속하게 됩니다. 요즘은 더 이상 신부님은 아니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해 호의적 발언하면서, 화해무드가 조성되었어요. 예전에는 교황청에서 가장 경계했던 신학자였지만 말입니다.


1938년 태어난 보프는 1964년 12월 26세의 나이에 프란치스코회의 신부가 되었다. 그는 독일 뮌헨대학에서 1972년 박사학위를 받았고, 9개 국어에 능통(그리스어, 라틴어, 독일어, 네델란드어, 영어, 불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모국어인 포르투갈어 등)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삶은 그 자체로 논쟁적이었고, 영광과 고초를 동시에 안겨다 주었다. 1984년에, 바티칸 신앙교리성은 그의 교회론 논문집 『교회: 카리스마와 권력』(Church: Charism and Power: Liberation Theology and the Institutional Church, Maryknoll, New York, 1986)에 대해 문제를 삼아 보프를 로마로 소환했다. 1985년 5월 9일에 1년 동안의 "자숙 기간"이 내려지고, 교수직과 편집장직을 박탈당했고, 강연도 금지당했다. 그가 쓰는 모든 글은 해당 지역 주교와 프란체스코회 수도원장의 검열을 받아야 했다. 이러한 조치는 오히려 보프의 작품과 남미 해방신학을 확산시켜 주는 계기가 되었다. 보프는 "나는 내 신학을 갖고 혼자 걸어가느니 차라리 교회와 함께 걸어가겠다"고 선언했지만, 그의 작품에 대한 검열은 물론, 교직과 대부분의 편집자 직책의 상실(브라질 주교들은 그의 정직(停職)을 11개월만에 풀어 주었다)과 바티칸과의 지속적인 갈등은 그로 하여금 프란치스코회를 떠나게 하는 고통스러운 결단으로 이끌었다. 그는 결국 1993년 6월 26일에 신부직을 사임했다. 그때부터 보프는 로마 가톨릭의 평신도 신학자가 되었고, 리오 데 자네이로 연방대학의 윤리학 전임교수가 되었고, 가톨릭 신학자이자, 장성한 두 자녀의 어머니인, 마르시아 미란다(M rcia Miranda)와 결혼하여 그를 동반자로 삼았다. 



Q. (김용태) 사회교리를 불편해하는 신자분들
불편해하는 신자분들 어떻게 할까요. 그리고 세상을 진단하는 소명과 교회의 성찰에 대해서

A. (김용태) 추구하는 것이 본질
우리는 그동안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용어 중심으로 말해왔습니다. 그렇게 세상을 진단해 보았는데, 다시금 여기 앉은 우리들은 교회에 대한 성찰로 마무리를 하겠습니다. 신부님들 한 말씀씩 하시면서, 증거자이며 예언자의 소명을 짊어지신 여기 계신 분들에게 한말씀씩 하시면서 마무리를 했으면 합니다. 

우리는 좋은 일을 한다는, 그리고 옳은 일을 한다는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 자부심은 겸손한 마음을 가지는 것과 또 다른 차원에서 드러내야 하는 겁니다. 그러나 물론 열받는 일이 많이 생깁니다. 교회 내부적으로도 많이 생기죠. 사회를 복음화시키려는 노력과 의로운 일을 할 때, 그런 일을 불편해하는 신자들이 계십니다. 그리고 사제나 그런 주교님이나 추기경분들도 계십니다. 사실 이럴 때 열받죠. 복음을 묵상하고 들으면서 왜 이걸 모르나? 속상하고, 옳은 일 하면서 맞닥뜨리는 일들에 싸워야하고, 저항해야 하고 맞서서 뭔가를 해야할 일도 있는데, 더 근본적인 건 맞서는 것보다는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본질입니다! 

자칫 맞서다가 추구하는 걸 잃습니다. 교회의 부정적 부분을 어떻게 햐야 합니까? 우린 끊임없이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며 그리스도인은 "마르타야 넌 많은 것이 마음을 쓰는 데 필요한 건 하나뿐이다." 그런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싸우는 것이 지쳐가고, 이해하지 못하는 장상들에게 어떻게 하는가 회의하게 되지만, 더욱 본질적인 건 끝까지 추구하는 것입니다, 추구하다 보면 맞서고 싸우지만, 그게 본질이 아니라는 것. 우리는 빛을 향해 나가는 사람이지, 어둠과 싸우는 사람이 아닙니다. 어둠만 보면 찡그리게 됩니다. 자칫 이러한 삶을 복음적 삶을 노력할 때, 어둠에 대해서 피로감을 느끼면서 얽매이는 경우가 있지만, 현실적으로 어둠과 싸운다고 해도 빛을 향해 나간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어떻게 그런 장상이나 반대자들과 싸워야하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란 것 들려주고 싶습니다. 

A. (김유정
오늘날 해방신학 조명받는 이유는 세상을 두 개의 세상으로 구분해보기때문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세상이 그렇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남미의 문제 만이 아닙니다. 그래서 다른 지역의 나라에서도 제조명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캐나다에 갔을 때 구티에레스 강의를 직접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어떤 분이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해방신학 한물 간 거 같은데, 미래 어떻게 보는가?,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라고 묻자, "가난한 사람 늘 있고, 우리가 가난해 질 수는 없다고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오늘까지 좋은 밥을 먹다가 내일부터는 나쁜 음식을 먹고 있는 좋은 옷을 다 팔고 나쁜 옷을 입을 수는 없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연대할 수는 있습니다. 여러분이 가난한 현실을 보고 가난해지라는 것이 아니라, 연대하라는 것입니다. 사실 저도, 제 강의 끝나고 어떤 분 귀한 말씀 우리가 어떻게 해야하는가? 우리가 사회교리 통해서 앞으로는 사회교리란 말을 안쓸 겁니다. 이건 가톨릭 교회 교리입니다. 다만 상대적 소홀했던 부분이었기때문에 특강형식으로 풀어나간 것이었습니다. 실질적으로 이것은 예비자교리에서도 묶여서 나와야 하는데, 이런 식으로 다뤄지니까 어두운 현실을 더 알게되면서 마음이 무거워질 수 있습니디. 여러분, 혹시 이연학 신부님이라고 아시나요? 이 분이 강의를 하시면 무조건 꼭 들어보세요. 엄청 대단한 분이십니다.

이연학 요나 신부님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토 수도회





그 분 말씀에 따르자면, 성경에서 나를 편하게 하는 말씀만 찾지 말고, 불편한 말들을 찾아야 한다는 겁니다. 바로 그 '불편한 말씀'이 하느님이 내게 들려주려는 말이라는 것입니다. 뭔가 나를 찌르고 불편하게 하는 게 있어야 하는 데 그게 너무 없어요. 루카복음 4장에서 복음을 선포하자 마자 나나렛 사람들에게 벼랑에서 떨어질 뻔하고, 미쳤다는 비난을 당하고, 바알제불의 힘을 빌렸다는 말을 듣지만, 우린 너무 편하게 복음을 선포하려는 그런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이것이 대해 불편하게 하려는 게 이상한 게 아니라, 예수님이 걸으셨던 길, 사도행전에서 제자들이 걸었던 길인데, 그걸 '왜 이런 식이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이 원래 그렇다는 겁니다. 박해를 각오하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듯이, 불편함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말씀 드리고 싶고, 어떻게 해야하나? 연대해야 하는데, 계속 저희들도 어떻게 연대해야 하는지, 앞으로 소식 드릴테니, 주위에서 가난하고 어려운 분들과 연대하는 방법을 찾아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A. (박상병
우리가 가난해질 수 없다고 김유정 신부님이 구티에레즈의 말씀을 통해서 하셨는데, 제 마지막 답변으로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하면 이렇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에 대해서 전 세계적으로 환호하지만, 그것을 한마디 요약하면 '가난'입니다. 그런데 이 가난은 경제적으로 누구나 선택하고 싶지 않은 단어입니다. 그러나 가난이란 단어와 관련하여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선출되신 것이 성령의 역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가난에 대한 논쟁이 많았습니다. 그리스도의 신비로서의 논쟁들이었는데, 그 바티칸 공의회의 방대한 그 문헌 중 한 항이 '가난'에 대한 것입니다. 그것이 중요한 항목으로 있고, 그러면서 아쉬웠던 것은, 어쩌면 개인적으로 제가 로마에서 공부할 때 논문을 쓰면서 생각했던 것인데요. 과연 교회가 과연 가난해질 의향이 있는가에 대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사람이 되신 것도 가난해지신 겁니다. 바오로 사도의 필립보서에 나오는데, 그분 제자라는 우리가 가난의 길을 고민하고 살아갈 길을 찾고 있는가? 그게 우리 신앙생활 묵상 주제중 중요한 자리 차지하나? 그렇지 못한 부분 꽤 많습니다. 왜 그런 걸까요? 가난이란 게 결국 사랑이라고 묵상합니다. 다 내어줄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가난해져야 사랑이 가득해져야 이 땅이 내려오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그 못박힌 상태에서 다른 사람들 위해 기도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무언가 포기할 것들, 버리고 싶은 것들이 없다는 착각을 합니다. 잃을 것이 많다고 여겨질 때 오히려 다 내것이고 다 채우고 싶다고 생각하면 가난해질 수 없습니다. 많이 기도하는 건 많이 사랑하려는 겁니다. 마음의 평화도 있겠지만, 그 기도 안에서 잃을 것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생명까지입니다. 우리 삶의 많은 것들, 재물, 명예, 직책 등을 잃는 걸 두려워하지 않으면 가난하게 살 수 있고, 조금 더 사랑하는 삶을 살 수 있지 읺을끼? 그래서 가난해지도록 기도하고 하나씩 실천하고 그걸 통해 부활을 맛들이고 사는 것입니다. 

Q. (김용태) 신자수 질량 불변의 법칙에 대해서
늘 세례 받고 새신자가 들어오는 데 왜 성당 미사에 참례하는 신자의 수에는 변함이 없는가에 대한 질문이 있었습니다.

A. (김용태) 줄지 않는 게 감사하다
그것은 교회적 원인도 있을 것이고, 시대적 가치관의 문제들, 성소 급감 등 복음을 받아들이기에 어려운 환경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 내용은 시간 충분하면 좋겠지만, 이것에 대해 많은 이들이 하느님께 목자품에 양들이 많이 오도록 복음선포차원 깊이 생각해보고, 질문 내용 마음 새기며 숙제처럼 남겨두었으면 합니다. 저는 어떤 면에서는 신자 수 줄지 않는 걸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Notice. (박상병) 공지사항
다음주 수요일은 사목방문과 사목감사기간이 있어서, 수료미사는 금요일(2015.5.15) 저녁 7시 30분에 김종수 보좌주교님이 봉헌하시겠습니다. 10주의 시간동안 함께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10주간 강의 중에서 7번 이상 참석하신 분들이 수료 대상이시고, 빠진 부분에 대해서는 2학기를 전민동 성당에서 개최할 예정이니 그 때 빠진 과목 채워주시면 수료증서를 드립니다. 그리고 다다음주 5월 18일 월요일 정세미(2015년 상반기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을 위한 미사)가 버드내 성당에서 있습니다.

지금까지 10주간이지만, 원론적인 얘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교회가 가르치는 원론적 설명이 기초과정이어서, 아직은 여력이 안되어 심화과정을 못만들지만, 정세미가 주제별 가르침이므로, 매월 세번째 주 하는 걸 함께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꿈이라면 꿈이고, 사제생활 계획인데, 각 본당에도 정의평화분과나 사회복음화분과라고 해서 지역공동체와 고민하는 분과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럴려면 교구청 내에도 그런 조직이 있어야 하는데, 아까 조세종 박사님 말씀처럼 긴 호흡으로 가야하는데, 하기동 성당 사회복음화 분과 생긴 걸로 알고 있고, 전민동도 생긴 걸로 압니다. 분과장 혼자 움직여서는 절대로 안되는 것이니만큼, 사회복음화분과원 활동을 하는 분들이 신청해서 작은 실천들 만들어주길 부탁드립니다. 오늘 하기동본당에서는 함께 움직여보겠다고 해서 (분과원을 모집한다고 하니) 함께 하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강의 첫번째 드린 질문이 뭐였죠? 김종수 주교님이 질문하실 것이라고 하면서 기억하라고 한 겁니다. 네. <새로운 사태> 입니다.


마무리. (김용태
오늘 끝나고 다과가 아니라 야식이 준비되었다고 합니다. 오늘 여러분 부활 성야를 봉헌했다고 생각하시고, 오늘이 그날이라고 생각하고 마음 편히 계셨으면 합니다. 마치면서, 유정브라더스 노래 미뤄두었던 거 듣고 감상하고 함께 부르시고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시한번 긴시간 함께 해주시고 잘 들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끝)


2015년 5월 6일 밤 10시 15분 경 10주간의 과정이 모두 끝났다. 성당 지하에 음식이 준비되었고, 

대부분의 수강생들이 지하로 모여서 뒷풀이를 했다. 필자는 불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