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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평강론과글

광화문시국미사강론 | 이제 새로움이 밀려오고 있습니다. 조승현 신부

by 편집장 슈렉요한 2017. 2. 12.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월요 시국미사 2017. 2. 6


이제 새로움이 밀려오고 있습니다

 강론_ 조승현 신부_ 서울교구 동작동성당

찬미예수님!

 

설날이 지나고 바로 입춘도 지나갔습니다. 이제 몸을 움츠리게 만들었던 이 추위도 곧 물러나겠지요. 꽃샘추위로 겨울은 마지막 저항을 해보겠지만 겨울이 가면 봄이 온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봄은 얼음을 녹이고 언 땅에 새싹을 키우며 부드러운 봄바람으로 올 것입니다. 그 봄을 기다리며 세상과 마음에 정의와 평화라는 씨앗을 뿌리셨으면 합니다.

 

봄이 가까이 오니 세상에는 새출발을 하는 새로움으로 가득합니다. 서품식, 서원식을 통해 교회는 새사제와 수도자로 채워졌고, 책가방을 싸며 새학년을 준비하는 아이들의 마음에도 새로움이 가득합니다. 봄 씨앗을 준비하는 농부의 얼굴에는 풍년을 꿈꾸고, 신입사원이 된 청년들은 다부진 각오로 새출발을 준비합니다. 이렇게 우리의 작은 일상들은 새로움으로 가득한데 아직 새로움으로 차오르지 못하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탐욕이 작동하는 세상입니다.



 

사실 세상은 동물의 정글처럼 아비규환입니다. ‘돈도 실력이다. 능력 없으면 너네 부모를 원망하라’는 한 말타는 소녀의 말은 지금 이 땅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정확히 고백합니다. ‘아버지가 힘이 없어 내 딸이 죽었다’는 어느 세월호 유가족의 말처럼 지금 이 땅의 가난한 이들은 가난의 연좌제로 살고 있습니다. 가난의 대물림으로 희망마저 빼앗긴 사람들에게 돈의 세상은 우주의 기운 운운하며 땅위의 모든 노력들을 배반합니다.

 

그런 자본을 감시하고 통제해야 할 국가권력은 오히려 자본의 친구가 되었습니다. 지갑공동체, 이익공동체가 되어 한 몸통이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자녀인 형제자매로 살지 못하고 권력과 자본의 노예가 되어 서로의 탐욕을 위한 또 하나의 가족이 되어버렸습니다. 서로의 탐욕을 위해 돈과 권력을 주고받고, 광고주의 하수인이 되어버린 언론은 그들의 음험한 뒷거래에 고개를 돌려버립니다.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고 자신의 본분을 잊어버린 것들로부터 나오는 어두운 기운은 세상을 병들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독서에서 하느님은 그런 어둡고 음험한 것들을 어떻게 대하시는지 보여줍니다. 오늘 독서는 세상의 장엄한 첫 시작을 선포합니다. ‘한 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창세 1,1)’는 성경의 첫 문장으로, 구원역사의 대장정을 시작합니다. 하느님의 일이 있기 전 세상은 제 꼴을 갖추지 못한 어둠만이 땅을 덮고 있었습니다. 깊은 침묵이 땅을 내리누르고 세상은 앞으로 닥칠 변화를 알지 못한 채 잔득 웅크려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빛을 만드시어 빛은 낮의 자리에, 그리고 어두움은 밤의 자리로 돌려보내십니다. 그리고 하늘을 만드시어 해는 낮을 다스리게 하시고 달은 밤을 다스리게 하십니다.

 

그러고 보면 창조는 기존의 것을 파괴하고 어떤 새로운 것을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본래의 자리로 찾아가는 것입니다. 제 꼴을 갖추지 못한 세상에 제 모습을 찾아주는 것이 창조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각자의 본모습으로 돌아간다면 그것이 창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국민이 백성이 아닌 주권자의 모습으로, 권력의 위임을 받은 공직자는 임금이 아닌 봉사자의 모습을 찾아가는 것이 창조입니다. 컨트롤타워가 아니라고 하는 곳을 컨트롤타워가 되게 하는 것이 창조입니다. 거짓과 술수로 탐욕을 채우려 했던 이들은 벌을 받고 자신의 잘못을 비는 이들은 용서해주는 것이 창조입니다.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세상, 공동선을 소중히 여기는 세상이 되는 것이 새로움, 창조입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에서는 본래의 자리를 잊어버린 사람들이 본래의 모습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복음에서는 병든 이들을 찾아 예수님을 만나게 해주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그들은 온 동네를 두루 뛰어다니며 병들어 있는 이들을 찾아내고, 거동이 불편한 이들은 들것에 눕혀 예수님에게 데려옵니다.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이들을 대신하여 예수님께 당신의 옷자락에 손이라도 대게 해주십사고 청합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예수님이 계시는 곳마다 있었다고 복음은 전합니다.

 

병든이들을 예수님과 만나게 해주기 위해 뛰어다녔던 사람의 모습은 저희 새사제들의 마음도 새롭게 만듭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 아파하는 이들이 예수님을 만나게 해주는 사람입니다. 그러기위해 그리스도인은 마음이 부서진 이들, 가난하고 아파하는 이들을 찾아 뛰어다닐 것입니다. 움직일 수 없으면 우리가 움직이고,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이들이 있으면 그들의 목소리를 전하는 이들이 될 것입니다.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사제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세상의 정의와 평화를 위한 노력을 함께 하셨으면 합니다. 슬퍼하는 이들과 함께 슬퍼하고 기뻐하는 이들과 함께 기뻐합시다. 분열을 말하는 자들과 죽음을 조롱하는 자들을 똑바로 응시합시다. 양심을 살펴 거짓을 말하는 이들을 고발하고, 저항하며, 진실을 말합시다. 성령께 의탁하며 이 땅에 참된 평화가 오기를 기도합시다.



 

촛불광장의 형제자매 여러분.

 

이제 새로움이 밀려오고 있습니다. 그 새로움은 우레와 같은 외침으로, 부드러운 봄바람으로 오고 있습니다. 꺼질 것 같지만 결코 꺼지지 않는 촛불로 새로움은 오고 있습니다. 하느님께 이 땅에 정의와 평화를 바라는 기도손의 모습으로 오고 있습니다. 그 새로움은 거짓을 밝혀내고 어두움을 몰아낼 것입니다. 제 꼴을 갖추지 못한 것들을 제자리로 가게 만들 것입니다. 새로움은 우리의 마음, 이 광장에서 시작되어 이 땅 곳곳으로 퍼져 갈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새로움의 물결을 보시고 하느님께서는 세상의 창조 때 하신 말씀을 하실 것입니다.

 

“보시니 참 좋았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