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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미 강연

[정세미 115차] 엄기호 특강 "민주주의와 남성중심주의 문제" (1)

by 편집장 슈렉요한 2018. 10. 9.

2018/10/8(월) 저녁 7시, 세종 성바오로 성당에서 정세미 개최

제115차 정세미, 문화학자 엄기호 초청 특강

민주주의와 남성중심주의의 문제 (1)


천주교 대전교구 정의평화위원회(위원장 김용태 마태오 신부, 도마동성당 주임)는 10월 8일(월) 저녁 7시 세종성바오로 성당에서 제115차 정의롭고 평화로운 미사와 특강(정세미) 행사를 개최했다. 


성당 2층의 성전에서 7시에 개최된 미사 주례에 나선 최승범 베드로 신부(노은동성당 보좌)는 오늘복음(루카 10,25~37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말씀에 대한 강론을 통해 지금 우리는 경쟁과 돈이 지배하는 매서운 세상에 살고 있다고 하면서, 우리들 역시 경쟁과 이기심과 돈이라는 강도를 만나 상처투성이로 쓰러져 있다고 말했다. 





미사를 마친 후, 1층 교육관으로 옮겨서 진행된 행사에서는 문화학자 엄기호를 초청하여 ‘민주주의와 남성중심주의의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특강이 진행되었다. 엄기호는 울산에서 나고 자랐으며 공부를 통해 성장하며 살아온 ‘범생이’라고 한다. 그는 우연한 기회에 국제연대운동을 시작했고, 그때 고통의 현장에서 ‘말하지 못하는 이’들의 곁에 서서 그들의 말을 듣는 경험을 했다고 한다. 특히 그가 생각하는 공부는 ‘말하지 못하는 이들의 말을 듣는 연습이자 그들을 말의 세계로 초대하는 이중의 일’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현재 성당을 잠시 떠나있지만, 마음 속에서 깊이 우러나오는 가톨릭 신앙인의 영적 성찰을 보여주었고, 이에 교육관을 채운 교우들에게 깊은 영적 성찰의 기회를 선물했다. 


먼저 그는 가톨릭 신앙인으로서의 자신에 대한 에피소드를 소개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관점은 세대 차이에 관한 것인데, 급속한 사회의 변화로 인해서 세대별로 살아오며 부딪친 문제가 다르기에 서로가 이해하기가 매우 힘들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 것이다. 그의 강연 내용을 요약하여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아래 내용은 편집자가 강연 내용을 받아적어 정리한 것으로, 실제 강연 내용과의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부정확한 맥락이나 오해가 발생한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블로그 편집자의 수준에서 비롯된 것이며, 당일 강사님의 강의는 매우 훌륭했고 참석한 모든 이들에게 영적 영감을 불러일으킨 아름다운 강의였습니다.)


오픈마인드가 가능한가?

(중년 세대가 스스로 오픈마인드라고 자부하며 젊은 세대와 충분하게 소통할 수 있다면서 자신이) 열렸다고 되는 게 아니라, 살아오며 부딪친 문제가 다릅니다. 내일모레면 50대로 접어드는 저도 마찬가지로, 10년 정도 뒷 세대와는 적응이 안되는 게 있습니다. 제가 성당을 안 다닌 것도 이 문제와 관련이 있어요. 몇 가지 계기 중 하나가 이런 문제입니다. 저는 주교회의에서 보내서 바티칸에 다녀왔어요. 재수할 때 날마다 미사를 보고 성무일도도 하고 그랬었어요. 바티칸 가서 몽땅 잃어버리고 ...


남의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하는 게 괜찮을까

나이 드신 분들이 반갑다고 하면서 만지잖아요. 어깨도 두드리면서 “어떡하면 좋냐!” 하고, 남의 등도 쓰다듬고, 저도 그렇거든요. 보통 스킨십이라고 하는데, 그건 성적인 의미도 없이 반갑기도 하고 위로하기도 하고 하거든요. 그런데 지금 젊은이들은 이 스킨십에 기절하는 친구들이 많아요. 과연 이걸 가지고, 이 친구들을 민감하다고 할 것인가? 나이든 사람을 둔감하다고 할 것인가? 실제로 여러 곳에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문제가 되어서 없어진 조직도 있습니다. 너무 심각하게 문제가 되면서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지쳐버린 것입니다. 


프랑스에서 허깅을 안하면 생기는 일

저는 또 원래 국제 가톨릭 학생운동이라고 해서 세계연합회에서 아시아태평양 담당으로 외국에 나가 있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허깅하고 키스하는 게 예의이지만 한국은 아니죠. 그래서 프랑스에서 반가운 사람을 허깅하는 건 반가움의 표시일 뿐만 아니라, 사실 예의바른 행동입니다. 그렇게 안 하면 욕을 먹습니다. “너는 나를 배척하는 거냐?”라는 항의에 직면합니다.

(볼이나 입술에 직접 갖다대는 것이라기보다 소리를 내는 것에 불과하겠으나) 키스를 안 하니까 “왜 나한테 키스를 하지 않는가?”라고 화를 내는 경우가 있어요. 반면에 한국에서는 난리가 납니다. 그런데 난리를 치는 게 잘못된 건가? 전혀 아닙니다. 살아가는 문맥이 바뀌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당분간 안 섞이는 게 좋다

(세대차가 심각한 오늘날 현상을 볼 때) 이럴 때 좋은 건 안 섞이는 겁니다. 당분간 나이 드신 분들, 제 또래도 마찬가지지만, 괜히 젊은 친구들과 친하게 어울리겠다. “난 오픈 마인드다.” 하다가 문제된 경우가 너무 많기 때문에, “난 너희 이해가 안 되고, 그렇게 까지 해야할지 모르겠다.” 젊은 사람들도 “당신들 못 마땅하다 어쩐다.” 하면 사회학자 전공이 그런데 사회학과 인류학적 관점에서는 이게 통관하는데, 두부모 자르듯이 어제까지 괜찮고 오늘 안 되고, 그게 아니라 모든 일은 지나가는 데 시간이 필요하잖아요. 천주교에서는 이집트 빠져나와서 가나안 가는 데 헤맸던 것처럼 시간을 보내는 동안에는 어지간하면, 서로 접촉 안하는 게 좋아요. 


문화적 충돌의 현장, 농촌

그냥 냅두는 수밖에 없고, 냅두면서 접촉면이 생길 때 아주 조심스럽게 하는 게 낫습니다. 이게 지금 여러 문제가 되는데, 그 사례 중 귀농이 있어요. 우리나라 농촌문화는 도시문화와 180도 다릅니다. 제가 귀농한 어떤 친구한테 들은 말에 따르면, 귀농하고 나서 가장 두려운 존재가 ‘동네 할머니’랍니다. 정말 불쑥불쑥 들어온답니다. 그냥 들어오시지 않고 고구마 감자 들고 들어오면 나가라고 할 수도 있고, 와서 10분 20분이면 (집안 사정을) 다 털고 호구조사 하고 밭두렁 경로당 등을 통해 소문 퍼지는 데 일주일도 안 걸립니다.


새로운 룰을 찾는데는 시간이 걸린다

이걸 나쁘다고 해야 하나? 좋다고 해야 하나? 그걸 말씀드릴 게 아니라, 문제는 뭐냐면 도시에서 나고 자란 젊은 친구들한테는 용납할 수 없다는 겁니다. 내 사생활에 대한 이보다 심각한 침해는 없거든요. 그런데 이게 다 좋은건가? 그렇지도 않아요. 저는 깡시골에서 자랐는데, 계산법이 다른 겁니다. 계산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다른 겁니다. 제가 울산과 부산 경계쯤에 있는 5일장 들어서는 곳이고, 50년대쯤 그 동네로 유입되어 어머님이 장에 가셔서 물건 살 때랑, 제가 갈 때랑 물건 품질이 달라져요. 시골장에서는 낯선 인간은 사기를 당해도 싼 인간인 거고, 가까운 사람들, 우리 동네사람들은 사기치면 자기가 쫓겨나죠. 예를 들어 우리 어머니한테 추석때 바닷가 근처로 하니 소라인데 그 중 맛이 이상한 애가 있다면 그 장사 끝난 겁니다. 우리 엄마의 소문이 좌악 사통팔달로 돌면 끝이거든요. 계산법이 다른 것인데, 그걸 이쪽 문제 저쪽 문제 아니라고 말하기보다 문화가 다른 것이기 때문에 이 두 문화가 화해를 하거나 새로운 룰, 규칙을 찾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립니다. 시간이 걸리는 동안에는 서로 가급적 조심하고 사는 것, 이것에 제일 좋은 것이라고 생각해요. 


남자가 바꿔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

한국에서 심각하게 갈등이 나타는 것이나, 세대 간에 갈등이 나타나는 것, 그리고 얼마 전까지 물밑에 숨어 있다가 확 밖으로 드러난 것은 성별 문제입니다. 사실 이 과정에서 제일 반성하거나 마음과 태도 이것을 바꿔야 되는 게, 사실 여자보다 남자거든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남자가 바꿔야 하는데, 안 바꾸고 있어요. 그래서 상당히 오랫동안 문제가 될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면 왜 이런 문제가 벌어질까요?


어쨌든 저도 제가 가진 사유, 생각의 상당부분을 그리스도교 신앙에 빚지고 있는 게 있거든요. 그리스도교의 사랑의 관점에서 남녀 불평등, 민주주의 이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사랑이란 관점에서 왜 문제인가를 최대한 압축해서, 대학에서 한 학기 강의하는 건데, 확 압축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2부에서 계속)



(이 내용은 편집자가 강연 내용을 받아적어 정리한 것으로, 실제 강연 내용과의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부정확한 맥락이나 오해가 발생한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블로그 편집자의 수준에서 비롯된 것이며, 당일 강사님의 강의는 매우 훌륭했고 참석한 모든 이들에게 영적 영감을 불러일으킨 아름다운 강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