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2/18(월) 저녁 7시, 대전 도마동 성당에서 정세미 개최

제121차 정세미, 국제정치학자 김준형 교수 초청 특강

한반도 평화체제, 실현가능성과 과제 (1)


천주교 대전교구 정의평화위원회(위원장 김용태 마태오 신부, 도마동성당 주임)는 2019년 2월 18일(월) 저녁 7시 대전 도마동 성당 성당에서 제121차 정의롭고 평화로운 미사와 특강(정세미) 행사를 개최했다. 이번 정세미 특강은 국제정치학자인 한동대 김준형 교수를 초청하여 '한반도 평화체제, 실현가능성과 과제'란 주제로 이야기를 들었다. 김준형 교수님은 “하느님 집에 오면 마음이 편합니다.”라는 말로 강연을 시작했다. 다음은 강연의 주요내용이다.




남북은 무엇이고 북미는 뭐고, 일본은 또 무엇인가? 그리고 후반부에는 지난 평창올림픽부터 하노이까지 … 일어날 일과 전망에 대해 이야기 하겠습니다.


RBIO vs. New Normal

세계는 RBIO와 NEW NORMAL이 대립하고 있습니다. RBIO는 2차 대전 이후 70년 이상 지속되어 온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말합니다. 즉 민주주의, 자유무역, 국제기구를 통한 통합, 번영, 평화이다. 그러나 현재 RBIO는 엄청난 변화와 저항의 압력을 받고 있다.


미국이 고립주의를 벗어난 까닭

사실 미국은 1900년대 초부터 이미 최대강국이었지만, 유럽의 싸움에 끼기 싫어서 고립주의를 택했던 겁니다. 그렇게 못내 참다 참다 참전해서는 연합국 승리에 큰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미국이 고립주의에 빠질 수 없음을 깨닫고 세계 1위 국가가 됩니다. 그 질서를 바로 자유주의 국제질서라고 합니다. 


미국이 세계 지도국가로 인정받은 3가지 이유

저는 미국을 전공한 국제정치학 전공자입니다. 그런 연유로 반미는 아니지만 미국을 비판적으로 보는 학자입니다. 학자이기에 비판적으로 보는 것입니다. 미국이 완벽한 국가는 아니지만, 미국이 만든 세계질서를 많은 국가가 동의한 건 3가지 큰 특징 때문입니다. 1945년 세계2차대전이 끝나고 미국이 무력이나 강제력이 아니라, 그래도 지도국가로서 많은 국가에서 수용 받은 것은 3가지 때문입니다. 아까 말씀 드린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가진 장점인데요. 첫 번째 민주주의, 두 번째, 시장경제, 그리고 마지막으로 안정적인 국제정치 이렇게 3개입니다. 그 이전까지는 미국의 흠결이 전체 시스템을 흔들지 않았지만 이제는 이 3가지가 근본적 흔들리고 있습니다. 


김준형 교수가 도마동 성당에서 강연중이다. (2019.2.18 월 저녁 7시 50분경)


민주주의가 흔들리고 있다는 증거

이미 전 세계에는 독재국가들이 많았습니다. 과거에는 이것들이 후진국에서 일어나는 일인데, 최근에는 트럼프를 비롯해서 유럽의 국가들에서도 히틀러를 닮은 극우 지도자들이 굉장히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한반도 주변을 보면, 시진핑, 푸틴, 아베, 트럼프의 경우는 어떤가요. 이 분들은 민주적 절차로 당선되었지만, 어떤 측면에서 보면 독재적이고 제왕적이죠. 트럼프는 의회를 무시하고, 하드코어 지지자들만 봅니다.


절차적으로 민주주의가 완성되었지만, 그 절차를 통해 지도자나 대통령이 된 뒤에 민주적 질서를 실질적으로 무시하는 사람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어쩌면 김정은이 자기 권력을 잃지 않고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이는 것은 그런 모델을 보았기 때문일 겁니다.


더 심각한 것은 이것이다

두 번째 더 심각한 것은 이것입니다. 미국이 만든 시장경제와 자유무역은 인류가 살아온 어떤 세기보다 20세기를 인류 역사상 가장 번영한 세기로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아무도 부정 못하는 겁니다. 인간이 축적한 부가 이 정도로 막대한 적은 없고, 그런 세기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소득불균형입니다. 빈부의 격차이죠. 전체는 잘 살게 되었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너무 심각한 소득 격차가 존재하는 거죠. 이것도 민주주의의 사례처럼 과거에는 아프리카나 남미 등의 문제였지만, 현재는 미국과 유럽 사회에서도 똑같이 겪는 문제입니다.


미국의 진보주의 정치인 버니 샌더스는 이런 말을 했어요. '미국 3억 인구 중 1억 6천 만명의 재산의 합이 단지 5개 은행의 자산과 같다.' 국제정치에서 ‘80대 20’이란 용어가 있습니다. 세계 80% 인구의 재산이 세계 20% 인구의 재산과 같다는 것인데, 이른바 불평등을 말하는 숫자이지요. 지금은 90대 10이라고 하거나 혹은 더욱 심각해졌습니다. 이를테면 90%의 세계인구가 10%를 쪼개 쓰고, 10%의 인구가 90%의 부를 향유하면서 사는 세상인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현상이 소위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나라에서도 마찬가지 사정이란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역시 그 중의 하나입니다. 


문제는 상대적 빈곤감과 박탈감이다

세 번째로 말씀드릴 것 역시 심각한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 마음 속에 빈곤한 마음으로 허하고 분하고 그렇습니다. 상대적 빈곤감과 박탈감으로 끓고 있는데, 그것을 독재자들이 선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 번째 문제는 미국이 지도하는 세계체제가 그래도 세계 전쟁을 막아내며 나름의 안정을 이뤄왔다고 봅니다. 물론 베트남 전쟁, 유고슬라비아 내전도 있지만, 강대국의 시각에서 보았을 때는 3차대전을 막았다고도 할 수 있어요. 미국과 소련이 긴장 속에서 대결했지만, 냉전이라 불린 건 긴장 속에서 안정된 국제질서를 향유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미-중 관계로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른바 앞서 언급하던, 미국이 자랑한 3가지 체제가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을 뉴 노멀(New Normal)이라고 합니다. 


김준형 교수가 도마동 성당에서 강연중이다. (2019.2.18 월 저녁 7시 50분경)


New Normal

이는 새로운 차원의 정상으로 가는 게 아니라, 다시는 인류가 정상적인 안정된 체제로 갈 수 없는 게 보편화될 것이라는 암울한 메시지를 주고 있습니다. 희망을 주고 안정되면서 민주주의 길로 발전하고 경제가 발전한다는 것은 과거의 일이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70년대까지는 한 사람만 벌어도 충분히 먹고 살았고, 90년대에 부부가 같이 벌어야 살고, 이제는 그게 어려워 미래 것을 당겨서 삽니다. 우리 모두가 빚쟁이입니다. 심지어 국가도 당겨서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출산율이 0.85라고 합니다. 1.3을 기록해야 현상이 유지되고, 1.5는 되어야 인구가 증가한다고 하는데요. 그런데 0.85는 지구상 아무도 기록하지 않은 숫자라고 합니다. 극단적으로 말한다면, 200년 후 한국 사람은 이론적으로 한 명도 남지 않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일이 왜 일어나나?

그건 바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입니다. 국가도 스트레스를 받지만, 이게 우리 삶으로 전이되고, 최근 엽기적 사건들이 벌어지는 이유 중 하나는 이 전체 세계의 시스템과도 상당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부분설명을 하면, 미국과 중국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해볼 수가 있어요. 


미-중 패러독스: 상호의존과 갈등의 이중주

이 지구상에 지정학적으로 저주의 땅이 두 곳이 있습니다. 바로 발칸반도와 한반도입니다. 그 주변의 강대국이 못 살게 구는 형국인 겁니다. 사드(THAAD)는 우리가 잘못하면 미래에 맞이하게 될 비극의 100분의 1도 안되는 것입니다. 우린 미국에 안보를 의지하고, 중국에 경제에 의지하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그 중 하나를 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나라 경제 규모 중에서 26%의 무역을 중국에서 가져오고, 5% 정도 되는 홍콩을 합치면 31% 정도가 중국으로부터 옵니다. 그래서 중국과 손을 잡으면 한미동맹은 어떻게 될까요? 사실 엄청난 양날의 칼에 서 있는 셈입니다.


미국과 중국은 어떤 관계인가?

사실 미국과 중국의 관계와 같은 형태는 역사상 단 한 번도 없었던 관계입니다. 적도 아닌 것이 친구도 아닙니다. 이 정도 크기의 나라가 상대방의 정체를 몰랐던 게 한 번도 없었던 거죠. 미국과 소련은 적으로만 대했고, 영국에서 미국으로 패권이 넘어갈 때는 협력해서 넘겼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실상 중국은 소련에 대항해서 미국에 기대어 경제가 발전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자유주의 질서가 아닌 사회주의 독재국가입니다. 


지금까지 미국이 일본이나 소련, 영국 등으로부터 도전을 받았죠. 중간에 소련이 한번 도전하고, 또 일본이 도전하고, 지금은 중국인데, 중국 이전까지를 보면, 미국에 도전한 소련이나 일본 같은 나라들은 미국 전체 부의 40% 미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아프간과 이라크 전쟁 즈음해서 중국의 규모는 미국의 40%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미국이 그런 쓸데없는 전쟁에 빠져 있는 동안에 중국이 굉장한 경제발전을 이루었고, 지금은 67% 정도 됩니다. 


중국은 더 이상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이제는 중국이란 나라가 더이상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나라는 아니게 된 겁니다. 즉 미국이 좌지우지할 수준을 넘어섰습니다. 이제 중국사람 100명을 죽이려면 미국사람 80명을 죽여야 한다는 말도 생겼습니다. 물론 이 두 나라가 전쟁을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인간의 전쟁이 실수, 착오, 비합리적 결정으로 할 수도 있지만, 이성의 영역에서는 부딪치지 않아야 한다. 그렇게 되면 두 국가가 다 망하기 때문입니다. 


러브 소파에 앉게 된다면

그런데 괜찮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른바 이것은 불안정 상태입니다. 서로 간을 보는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그런 상황이 우리에게 어떤 미래를 주겠습니까? 미국과 중국은 전 세계를 무대로 다양한 대결을 벌이고 있죠. 물론 중국이 미국 정도로 크지는 않지만, 동북아와 아시아에서는 미국과 중국이 요새 말로 다이다이로 대결할 수 있는 역량을 갖게 되었습니다. 미국에 가면 러브 소파란 게 있습니다. 사랑의 소파란 뜻이죠. 소파가 작습니다. 작은 2인용인데, 좁기때문에 연인이 앉는 소파란 뜻이다. 좁은 2인용이니까 여기에 불편한 대로 함께 앉아 있으려면 2가지 요건이 있습니다. 서로 친하거나 한쪽 몸집이 작아야 합니다. 그래서 러브 소파인 거죠. 즉 동북아, 아시아에서 중국이 별로 크지 않았고, 그동안 미국과 사이도 좋았습니다. 소련을 대상으로 미-중이 탁구 외교 또는 핑퐁외교라고 하죠. 아주 오랫동안 그랬습니다. 그런데 중국이 커졌습니다. 그럼 어디가 부딪칠까요? 머리, 어깨, 허리, 무릎 등을 부딪칩니다. 


머리가 한반도, 어깨가 센카쿠, 허리는 양안관계

머리가 한반도, 어깨가 동중국해(센카쿠 아일랜드)입니다. 독도가 한-일 관계를 상징한다면 센카쿠는 중-일 관계를 말합니다. 독도는 우리가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일본이 내놓으라고 말하지만, 센카쿠는 일본이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중국이 내놓으라고 합니다. 거기에 미국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까요. ‘독도는 우리땅’이라고 한국의 손을 들어주지 않지만, 센카쿠는 일본 땅이라면서 일본 손을 들어주고 있습니다. 이른바 “중국은 건드리지 마라.”라는 메시지이죠. 거기서 중국이 미국에 대해 불만이 있는 겁니다. 게다가 허리는 중국과 대만 양안(兩岸) 관계입니다. 미국은 대만 독립 문제를 이용해서 중국을 약 올립니다. 네 번째는 남중국해인데요. 중국이 수로를 통해 유럽으로 가는 그곳을 미국이 확실히 지배하고 있었는데, 중국이 거기에 인공섬과 비행장을 만들었습니다. 즉 이 해수로를 놓고 긴장 관계에 놓여 있는 겁니다. 


앞으로 끊임없이 부딪치며 우리에게 불안과 긴장을 줄 것

앞으로 20~30년 동안 미-중이 전쟁은 안 하지만, 이처럼 팍팍 머리, 어깨, 허리, 무릎이 부딪치며 상대방의 반응을 시험할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서 머리를 박는 게 바로 사드입니다. 미국과 중국은 한반도를 놓고 리트머스 시험지 삼아서 자기들은 안 싸우면서, 그들의 정체와 입장에 대해서 확인하려 들 것입니다, 사드 배치는 미국이 하는 것이고 그 문제에 대해 제재는 미국을 상대로 해야 하지만, 중국은 한국에 제재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앞으로 스트레스의 100분의 1 정도의 고통이라고 생각하면 미래는 굉장히 걱정입니다. 


미국과 중국 서로가 상대방의 정체를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이른바 미-중 대결의 시험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상황은 남북 긴장관계입니다. 남북 사이가 좋으면 저 수단이 통하지 않습니다. 미국도 사드 배치하면서 이게 중국용이라고 이야기하지 못합니다. 그렇게 말하면 본격적으로 싸우게 됩니다. 그래서 내부용이라고 말하죠, 그런데 남북 사이가 좋으면 사드를 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김준형 교수가 도마동 성당에서 강연중이다. (2019.2.18 월 저녁 7시 50분경)


트럼프의 역설

트럼프가 하는 말과 행동을 트럼피즘이라고 합니다. 많은 미국민들로부터 비난을 사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런 그가 기가 막히게 한국 평화를 돕고 있습니다. 사실 트럼프는 앞서 말씀드린 (New Normal로 향하는) 그 불안한 3가지 질서가 무너지는 걸 본능적으로 이용하는 자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빈곤한 것을 우리가 상식적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어떤 정당을 뽑아야 할까요? 복지를 추구하고 노동자와 농민 편을 드는 정당을 뽑는 게 상식적인 선택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진보의 잘못도 없지는 않습니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오바마나 힐러리는 입진보입니다. 입으로만 진보인 겁니다. 미국민들은 진보가 정권을 잡았다고 해서 자기 삶이 하나도 안 바뀌었다는 걸 경험했습니다. 그러면 “내가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데 이 판을 뒤집어보자.”라는 생각을 하게 되죠. 이런 걸 트럼프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겁니다.


갈등을 부추기는 이유

그런 맥락에서 노동자들이 나서서 트럼프를 지지합니다. 이와 유사한 게 히틀러 나치의 상황입니다. 트럼프는 멕시코 사람, 흑인, 아시아계 등을 타깃으로 삼았습니다. 히틀러가 유대인을 그렇게 했듯이 말입니다. 입진보도 있지만, “그들이 너의 것을 빼앗아 간다!”면서 인종갈등 부추기고 있어요.


예멘 난민 사건을 포함해서, 한국 사회의 중국동포나 중국사람들, 그리고 동남아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보십시오. 게다가 어떤 이들은 통일을 원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그건 현재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사실 정부가 해야 할 일이란 게  약자들을 위해 무엇인가 일을 해야 하는데, 그걸 못하니까, 누구라도 희생양이 필요하고 적이 필요한 겁니다. 국가 내부적으로는 약자들을 희생양 삼고, 외부적으로 다른 나라를 적으로 삼는 외교가 성행하는 것이 이런 겁니다. 


트럼프는 관종?

트럼프를 설명하는 가장 좋은 말이 우리나라에 있습니다. 관종이다. 관심종자입니다. 이 사람은 모든 것을 드라마로 만듭니다. 기자회견하는 걸 보면, 절대로 정상적으로 책상 앞에 앉아서 얘기하는 법이 없습니다. 적어도 헬기를 돌려놓고 고함지르거나 트위터 질을 합니다. 그게 다 계산된 겁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십여 년 동안 리얼리티 TV쇼를 하며 자기중심적인 모습이었는데, 그가 관종인 건 백악관에서도 하루에 10시간 이상 TV를 틀어놓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자신이 TV에 나오면 회의를 중단하고 그걸 보게 한답니다. 그러면서 감상평도 남기게 한답니다. 


트럼프의 천재적 본능

그런데 이 사람은 기본적으로 어떻게 대통령이 될 수 있었을까요? 원래 민주당 출신이었지만, 이념보다는 천재적 본능으로 사태를 파악합니다. 모든 걸 승부로 생각하고요. “여기서 내가 이길 방법이 뭔가?”를 생각합니다. 게다가 그는 미국민 전체의 대통령이 되고 싶어 한 적도 없습니다. 그를 예측불가능한 사람이라고 이야기하지만, 그는 공약실천율이 1위입니다. 그런데 그 공약이란게 안 지키는 게 더 나을 법한 멕시코장벽, 난민에 대한 문제이고, 기후협약도 망가뜨렸고요.


오바마가 힌트를 준 거였다

그리고 트럼프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사람은 바로 오바마입니다. 이를테면 ‘흑인주제에!’라는 생각이지만, 자기 직전 전임자였고, 존경받는 대통령이었습니다. 트럼프는 여러 장소에서 제일 싫어한다고 이야기를 하기도 했어요. 재미있는 일은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에서 물러나던 정권교체 시기이던 2017년 1월 중순 경에 대통령 당선인 트럼프 불러 두 번에 걸쳐 인수인계를 했다고 합니다. 오바마가 자기 이야기를 하면서 “8년간 재임기간 중 가장 아쉬운 게 있다. 내가 북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라는 이야기를 전달한 겁니다. 그런데 그 순간 트럼프 머릿속에 불꽃놀이가 번쩍했더랍니다. “내가 오바마를 꺽을 수 있는 것은 ㅎ느님 보호하사 북한 문제!!!”라고 생각을 한 겁니다. 오바마가 해놓은 걸 대부분 날려먹었지만, 오히려 북미 관계는 현재에 이르른 걸 보는 역설적 상황이 시작된 거죠. 


미국은 왜 북한을 안 만나려 했을까

미국 대통령 중 부시, 클린턴, 오바마까지 김정일이나 김정은과 만난다고 하고 못 만난 건 다 이유가 있습니다. 미국 제도권 사람들의 입장에서 그들을 만나는 건 일종의 금기사항이었던 겁니다. 미국은 패권 국가이며, 세계 1위 국가입니다. 그런데 북한은 세계 180위 국가입니다. 그걸 다이다이로 만나는 건 자존심 상하는 일인 거죠. 게다가 국가로 인정도 하지 않고 있다가 만나주면 그건 바로 국가로 인정하는 결과를 낳으니 만날 수가 없었던 겁니다. 그런데 트럼프는 만나기로 한 것입니다. 과연 이게 무슨 역설인가요? 그러니까 트럼프에게 한반도 운명을 맡겨도 되나요? 아무튼 잘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실질적으로 지금의 상황은 우리에게 주어진 엄청난 기회라고 보여집니다.




트럼프, 시진핑, 푸틴, 김정은의 공통점

이들은 한결같이 자기 권력을 위해서 밖의 적을 강조하고, 내부적으로 권위주의적이며 민주주의 훼손하는 이들입니다. 이런 것을 가리켜 스트롱맨 리더십, 강자의 리더십이라고 합니다. 현재 이런 것이 추앙받고 보편화 되는 게 아시아이며 한반도를 둘러싼 4강의 상황입니다. 군사력 1위 미국, 2위 중국, 3위 러시아, 그리고 일본 7위, 한국 9위입니다. 그리고 우리보다 약한 북한은 핵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정학적 저주라고 부르는 겁니다. 


스트롱맨 리더십과 유화주의자

문재인도 정권에 대한 욕심을 생각했더라면 스트롱맨 리더십과 같은 상황에 들어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른바 홍트럼프라고 불리우는 분은 위의 그런 그룹에 들어갈 만한 사람일지도 모르겠네요. 이른바 상대방을 적으로 삼고, 내부적으로 결속시키는 방법을 쓰는 것 말입니다. 과거 우리의 독재자들도 그렇게 했습니다. 북한의 김일성 독재자는 자기 백성들이 굶어 죽어가는 것도 다 남쪽의 괴뢰도당 때문이라고 했고, 남쪽의 이승만이나 박정희도 자신의 비위를 숨기는 데 가장 좋은 존재가 바로 김일성이나 김정일이었습니다. 이것은 굉장히 유혹적인 방식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것은 민족의 이익과 국가의 이익에 반하는 것입니다. 사실 나머지 4명의 국가들에는 큰 손해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런 방법의 굴레에서 제일 큰 피해를 입습니다. 큰 피해자는 남과 북이지만, 최대 피해자는 우리입니다. 오죽하면 트럼프와 문대통령 사이가 나쁘면, 국내 트럼프(홍)가 말하길 ‘유화주의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유화주의자’란 표현에는 역사적 의미가 있습니다. (뮌헨협정은 20세기 실패 협정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영국 총리 체임벌린은 1938년 9월 29일 히틀러와의 3차 회담에서 체코 수데테란트를 넘겨주는 뮌헨협정을 체결했다. 그러나 1년 뒤 히틀러가 폴란드를 침공하며 협정은 휴지 조각이 되고, 체임벌린은 조롱거리로 전락했으며, 그의 유화정책은 굴욕 외교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2018년 3월 5일의 남북의 3-5 합의 직후, 홍준표는 문재인을 ‘유화주의자’라고 폄하한 것이다.)


그러니까 영국의 체임벌린은 나라를 망하게 하는 사람이라는 것이죠. 지금도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서 “네가 김정은의 변호사냐?”라고 하는 경우가 있어요. 어떻게 보면 그런 오해 받기 딱 좋습니다. 그런데 왜 이 길로 가야 하냐면, 저 소용돌이의 같은 구도에 들어가면 결국 한국은 미-중 사이에서 땔감 역할을 하고, 크게는 전체 소용돌이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2부에서 계속)



(이 내용은 편집자가 강연 내용을 받아적어 정리한 것으로, 실제 강연 내용과의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부정확한 맥락이나 오해가 발생한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블로그 편집자의 수준에서 비롯된 것이며, 당일 강사님의 강의는 매우 훌륭했고 참석한 모든 이들에게 평화통일에 대한 열망을 불러일으킨 최고의 강의였습니다.)



Posted by 대전정평위뉴스 편집장 슈렉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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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ngelohur93 2019.04.11 18: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전교구 신자입니다.
    세월호, 한반도 평화 등 대전교구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빛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활동들에 감사를 표합니다.
    하지만 너무도 아쉬운건, 낙태죄가 폐지될 마당에 아무 목소리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가장 기본적인 가치인 생명에 지난 번 촛불혁명 때처럼 그리스도인들이 광장에서 보인 정의에 대한 열정은 온데간데 없습니다. 서울에만 몇 시위를 하고 있겠죠.
    제 짧은 생각입니다만, 낙태죄를 다루는데 있어 많은 사람들에게 동의를 얻지 못하는 이 세상 때문에 교회의 목소리가 이쪽 부분에서만 길을 잃지 않았나라는 걱정이 듭니다.
    교회가 언제부터 대중이 있는 곳에만 있었습니까? 참된 정의의 활동은 질타를 받아가면서 움직여야 하지 않습니까? 세상 앞에 당당했던 그 모습들이 보고싶지만, 정작 이 사이트의 메인에는 온통 다른 이야기들 뿐입니다. 너무 아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