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세웅 아우구스티노 신부님 초청, 대전 전민동성당 세바특강

도대체 전례란 무엇이며 또 대림절은 무엇입니까?

 2018.12.8() 저녁 8, 대전 전민동 성당 2층 성전

 

 [참조] 예고 기사 링크 - 함세웅 신부님의 특별한 강의가 열립니다. 


함세웅 신부님의 특별한 강의는 교우들과 함께 하는 기도와 묵상으로 시작되었다.

오늘 사랑하는 교우들의 좋은 뜻을 확인해주셔서, 전례를 통해, 대림절을 통해 하느님을 가깝게 체험하고 기쁘게 지낼 수 있도록 허락해주시옵소서. 이 시간을 주님께 바치며. 성령 안에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해 비나이다.”

 

2018년 12월 8일(토) 저녁 8시, 대전 전민동 성당에서 함세웅 신부님 초청특강이 열렸다.


함세웅 신부님의 강의가 시작되었다.


 

반갑습니다. 한두 달 전, 전민동성당 교육분과장님이 전화를 주셨고. 특강을 원해서. 멈칫했다가 128일은 뜻있는 날이고 해서 기쁘게 응낙하였습니다. 128()은 한국교회의 수호자이신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입니다. 한국교회는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님을 수호자로 모시고 있습니다


(한국천주교회는 1838년 교황청에 서한을 보내 조선교구의 수호자를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로 정해 줄 것을 청하였고, 이 청원이 받아들여져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를 한국 교회의 수호자로 모시고 있다.)

(프랑스 남서부 피레네 산맥에 있는 작은 마을 루르드에 성모 마리아가 발현한 것은 교황 비오 9(재위 1846~1878)'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 교리를 선포한지 4년째 되던 해인 1858. 이후 성모 발현 동굴 위에는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 대성전'을 건립하고 1876년 축성했다. 대성전에는 축성 당시 제6대 조선교구장 리델 주교가 루르드 성모께 한국 교회를 봉헌한 석판이 안치돼 있다. 리델 주교와 리샤르, 블랑 신부 이름으로 봉헌한 이 석판에는 조선 반도의 선교사들이 바다에서 심한 풍랑으로 고생하던 중 원죄 없으신 동정 마리아의 도우심으로 구원되었음을 기념하여 서약에 따라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루르드 대성전에 이 석판을 설치한다는 내용이 쓰여져 있다.)

 

성모님과 한국교회

리델 주교님은 (1876) 루르드의 성모님에게 가서 한국 교회 비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성모님에 대한 내용을 함께 간직하면 좋겠어요. 또 어릴 적 성당 유치원, 수녀님들이 성가 가르칠 때, 대여섯 살 어린아이들이 두 손 모아 성가를 부르도록 가르치는데, 끝나고 바치는 기도가 원죄 없으신 마리아여~ 남북통일 주옵소서.” 이렇게 세 번을 반복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세계평화 주옵소서~” 이러던 것이 아직도 여운이 남아 있습니다. 지금 제가 나이가 들어도 (함 신부님은 1942년생으로 올해 76세임) 개인 기도할 때에 그 시절에 유치원의 어린이들이 기도하고 노래하던 것이 귓전을 때려요. 지난 427일 판문점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서로 만났을 때 텔레비전 통해서 봤잖아요. 텔레비전을 보면서 그 때 어린이들처럼 저도 노래를 혼자 크게 불렀어요. 그런 것이 바로 하느님께 바치는 각자의 아름다운 염원과 기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오늘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인권주일과 부끄러운 가톨릭의 역사

이제 인권주일입니다. 왜 인권이냐 하면, 1210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인권선언의 날입니다. 그리고 올해는 그로부터 70년이 되는 해입니다. 세계인권선언은 1948년 프랑스 파리에서 선언한 것입니다. 그런데 부끄러운 것은 인권의 중심이 되어야 할 교회가 그렇지 못했다는 점이에요. 인권에 대해서 우리보다 UN이 먼저 선언했어요. 1948년에 말이죠. 그러면 2천년간 그리스도를 믿는 교회는 무엇을 했습니까? 물론 천주교가 좋은 일을 많이 했지만, 사람도 많이 죽였어요. 중세 교회시절에 마녀사냥이라고 하면서 의로운 사람들을, 또 여성들을 막 죽였어요. 인권침해의 주범이 가톨릭 교회였던 거죠. 그래서 중세역사를 배울 때 얼마나 부끄럽습니까? 가톨릭이 저지른 범죄가 부끄러웠어요.

 

그런데 UN이 인권선언을 1948년에 했어요. 그래서 교회는 무엇인가? 바로 인권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지금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훌륭하시지만, 우리 교회가 지난 2천 년 간 억압과 권력남용, 그런 잘못들을 얼마나 많이 저질렀습니까? 그래서 이번 주에 우리는 회개해야 합니다. 복음의 곳곳에서는 가장 힘든 이웃들을 돌보라고 하는데, 정말 그랬나요?

 

눈에 보이는 형제자매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거짓말쟁이라고 요한1서에서 말하고 있어요.

누가 나는 하느님을 사랑한다.” 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눈에 보이는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요한 14,20)

 



우리 사제단과 정의평화위원회 주교단이 대림절 두 번째 주일을 인권주일로 설정해서 인간에 대한 사랑이 하느님에 대한 사랑이란 걸 확인했으면 좋겠다.’라고 건의해서, 198210(한국 천주교 추계 주교회의에서)에 매년 대림 제2주일을 인권주일로 설정하기로 결정했어요. 그 당시 1982(318)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사건이 있었죠. 이와 관련해서 원주교구 최기식 신부가 구속된 상황에서 한국 천주교회가 중요한 결정을 내린 겁니다. 그런데 37회를 맞이하는 올해를 보면, 그게 이제 형식이 되어버리고, 말만 인권이지, 인권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어 보입니다.

 

북한에 뭘 그렇게 퍼주나

또 지금 남북대화가 잘 통해서 다행인데, 이걸 못마땅해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예전 성당에서 만난 청년이 한 분 있어요. 그분도 이제는 60대로 같이 늙어가는데, 이렇게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아이! 신부님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에 뭘 퍼주고 있대요?”

뭘 퍼줬어?”

모르지만 퍼줬대요.”

 

그래서 가짜뉴스를 들었구나!’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예전에 김대중 대통령이나 노무현 대통령도 뭔가를 퍼줬다고 뭐라 하는데, 사실 그렇게 퍼준 게 하나도 없어요.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는 하도 퍼줬다라고 하니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실 독일의 경우에는 동독과 서독 합하기 (훨씬) 이전에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임기 1969~1974) 때부터 서독이 부자니까 동독을 많이 도와주었어요. 어마어마하게 도와줬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동독과 서독이 (1990) 통일합니다. 물론 지금도 조금은 갈등이 있지만 말입니다.

 

먹을 것을 주는 게 인권이다

아무튼 남북 간에도 한국이 뭘 많이 도와준다 하니,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우리가 도와준 게 남한 인구 5천만 인구 한 사람당 5천 원 꼴입니다. 그런데 뭘 그렇게 퍼줬다고 합니까?”라고 하면서 자꾸 북한 인권을 이야기하는데, 그것에 대해서도 굶어죽는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는 것보다 더 큰 인권이 있나?”라고도 했죠. 사실 인권에 대한 이야기도 성경말씀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재치도 있으시, 가톨릭 신자니까 성경을 가지고 설명을 하셨어요.

 

예전에 교황님이 한국에 오셨을 때, 2014818일 명동성당에서 열린 마지막 미사에서 교황님이 하신 강론을 들으면서 기쁘고, 또 한편으로는 부끄러웠습니다. 여러분들 남과 북은 말이 같습니다. 말이 같다는 건 어머니가 같다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같으면 여러분은 한 형제자매들입니다. 그러면 잘 사는 남쪽 형제자매가 어려운 북의 형제자매 돕는 것은 의무라고 말씀하신 겁니다.

 

그걸 들으면서 제가 부끄러웠던 건, 교황님은 (한국 사람이 아니고) 아르헨틴 교황님이지만, 남북 형제 잘 되라고 호소하시는데, 우리 안에, 물론 이 미사 오신 분들 안 그러시겠지만. 우리 안에 선입견 가지신 분 너무 많고, 전 이미 은퇴를 했지만, 본당 신자들 중에도 입에 거품 물고 욕하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그런 경우에 제가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님! 그 입으로 성체 영하세요? 그 입으로 동족을 헐뜯는 그 입으로 이 성체를 모실 수 있어요?”

 

그렇게 호소를 했던 겁니다. 우리 시대의 요청과 가르침이 무엇인지를 배우고 깨달으면서, 바로 이번 인권주일, 대림의 두 번째 주에 되새겨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도 문재인 대통령이나 남북의 일치화합을 원하는 많은 분들이 조금씩 끌고 나가고, 지난해 전쟁위기 있었잖습니까? 올해의 기적적 변화 이걸 시대적 변화의 물결로 타고 가야 하겠습니다.

 

마귀, 세속, 육신을 원수로 여기던 시절

우리 전민동 성당은 올해 1월 부터 세상을 바꾸는 특강이란 걸 하고 있습니다. 대단히 아름다워요. 이건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입니다. 세상을 바꿔야 합니다. 그건 1960년 공의회 이전에는, 세 가지 원수가 있었습니다. 마귀 원수, 육체도 원수, 세상도 원수, 이걸 예전에는 3(三仇, 마귀, 세속, 육신)라고 했어요. 그런데 우리 교수 신부님이 , 생각해봐라, 원수인데, 호텔 한 방에 둘이 같이 들어왔어. 그러면 편안하게 밤잠을 잘 수 있냐? 그건 말이 안된다. 영혼과 육체가 원수라면 내가 잘 살 수 있겠어? 신학적 모순이다.” 그래서 제2차 바티칸공의회 때 아니다! 육체는 하느님 선물이다.’라고 했지요. 우리가 좋은 일을 할 때 영혼이 날아다니며 일을 합니까? 손 발이 하잖아요. 즉 육체는 하느님 선물입니다. 이 세상은 또 어떤가요. 교회가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성당의 모든 게 세상 것이지만, 세상을 도외시한 겁니다. 성경에서 세상을 빼고 정치를 빼면 남는 게 없어요. 구원 역사의 현장이 그것입니다. 그래서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역사관이 바뀌고, 저희들은 그 과도기에 공부했는데 혼란스러웠습니다. 신학생 때 막 바뀌어서, 그때우리는 이거 망하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지금 돌이켜보면)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이었던 겁니다.

 

(전민동 성당의 11월 24일(토) 세바특강 ‘신앙인 안중근강연에 대해 촌평하며) 안중근 의사는 먼저 강론하신 신부님보다 제가 더 잘할 수 있어요. (실제로 함세웅 신부님은 안중근 의사 기념사업회 이사장이다) 그러면 여기 계신 분들을 전부 다 안중근 의사처럼 만들 수 있어요아무튼 오늘 저는 신자들에게 자극 주기 위해서 제목을 이렇게 정했어요. “도대체 전례란 무엇이며 또 대림절은 무엇입니까?”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

1962년부터 1965년까지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열립니다. 당시 전 세계 3,000명 주교와 신학자들이 모여서 처음 합의한 게 전례헌장입니다. 왜 쉽게 합의했냐면, ‘전례라는 게 기도하는 거거든요. 기도를 반대할 수 없죠. 가톨릭의 공적 기도가 전례입니다. 전례란 말은 국가와 정치에서 비롯된 거죠. 문재인 대통령 평양에 내리면 어서 오십쇼 악수할 수 있지만, 칼도 들고 군인 서있고, 의전이라고 하죠. 그게 전례입니다. 그게 형식이지만, 우린 하느님을 중심으로 하는 게 전례이고, 하느님이 빠지면 의전이 되는 겁니다.

 

전례는 작업복이 아니다

신부님들이 작업복 입고 미사를 하는 게 아니라, 하느님께 집중하기 위한 모든 의식을 집약한 게 전례입니다. 하느님께 향한 의식의 총화라고 말할 수 있고, 일상생활에서는 가게를 차리거나 집을 마련할 때 인테리어 했냐?”라고 말하죠. 인테리어는 내부란 뜻이죠. 집안을 잘 꾸미는 것인데, 전례에서 인테리어는 마음을 꾸미는 것, 즉 회개하는 것입니다. 인테리어를 잘해야 하죠. 그것은 회개이며 뉘우침이며 마음가짐입니다.

 

전례는 내적 준비

예수님께서는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을 꾸짖으셨습니다. 그들은 모두 하느님에게 열심인 분들인데 왜 꾸짖었을까요? 그것은 마음 때문입니다. 겉도 중요하지만 마음을 깨끗이 해라. 내적 준비라고 하겠죠. 저도 밖에서 공부할 때, 종교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건 시간과 장소에 대한 구별입니다, 우리는 하루 24시간, 일 년 열두 달을 보냅니다. 그 중에서도 축제 기간, 대림절은 다른 겁니다. 시간 중에서 이 시간은 하느님께 바친 시간이기에 거룩한 시간입니다. 하느님과 연결된 시간은 거룩한 시간입니다. 기도시간, 미사시간, 축일, 은총의 계절, 대림절, 사순절, 그리고 장소. 성전은 거룩한 집입니다. 하느님과 같이 하는 집이잖아요. 그래서 시간과 장소 교육이 종교 교육의 핵심입니다.

 

전례는 외적 준비

지금이 어느 때인가? 여기가 어딘지 아는가? 그런 걸 생각하면 경건해지는 겁니다. 제가 유럽에서 공부할 때 보면, 특히 독일에서 보면, 교회에 갈 때 부모는 아이들에게 봉헌금으로 새 돈을 주고, 새 옷이나 깨끗한 옷을 입히죠. 우리도 차례나 제사를 앞두고 정성껏 준비합니다. 그렇게 전례는 알찬 내용을 위해 아름다운 외적 준비를 하자는 겁니다.

 

전례는 화살기도

제가 신학교 때 전례에 대해 배운 것은요. 미사 의식도 중요하지만, 하느님께 향한 마음, 그게 핵심입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신학생 때 화살기도, 짧은 기도, “하느님 도와주십시오, 자비 베풀어주십쇼. 은총을 주십시오.” 등 하느님과 직통하는 게 화살기도라는 거죠. 대중가요에서도 앉으나 서나 당신(하느님) 생각이런 게 전례의 기초가 되는 겁니다.

 

전례는 형식이 아니다

우리 성당에도 많은 전례부원들이 계십니다. 그런데 형식에 너무 빠지지 말고 핵심에 접근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레지오마리애 경본이 성경보다 앞에 갑니다. 그건 아닙니다. 바른 순서를 정립해야 한다는 내용. 하느님께 몸과 마음을 바치는 행위를 대림절에 생각할 수 있겠죠우리나라 전통에서 제사나 차례, 국가의 그런 행사들을 연계해서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1963124일에 첫 번째 합의되고 반포된 문헌이 전례헌장이에요. (거룩한 전례에 관한 헌장 - 거룩한 공의회(Sacrosanctum Concilium)) 이것은 아주 긴 문헌입니다. 6장까지인데, 모든 것에 대해서 낱낱이 규정했습니다. (전례헌장의 핵심은 전례 쇄신과 신자들의 능동적 참여 촉진’) 특히 이를 계기로 예전에는 라틴어로 미사를 하다가 본국어로 바꾸게 되었던 겁니다. 게다가 그때는 제대를 향해 제사를 지낸다는 개념이었습니다. 그러나 미사는 또한 잔치입니다. 그래서 신자들과 마주보며 미사를 보게 되었죠.

 

전례와 기도지향

도대체 전례는 무엇인가에 대해서 넓은 의미로 시회 역사적 의미가 있고, 중간의미로 조금씩 기념식 같은 것, 우리 생일 같은 것, 종교적 의미로 항상 하느님과 연계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아름다운 기도가 된다는 것을 염두에 두시면 좋을 것이고요, 중요한 것은 기도지향인데, 누구나 다 바라는 게 있는데요. 많은 분들이 바라는 원의(願意)를 한 개씩 말씀하시는데, 그게 나만 위해서 가족만을 위해서 원의를 하는 건 이기적 기도입니다, 기도할 때 나의 생각을 넓혀서 내 가족 영역으로 넓히고, 다시 그걸 더 넓혀서 어렵고 힘든 사람을 생각하자는 겁니다. 그래서 넓은 의미의 기도를 하면 이타적 기도이며 사랑의 기도가 되는 겁니다. 그런데 대체로 신자들의 기도가 이기적 기도에요.

 

나의 기도지향을 쓴다면

어느 신부님이 신자들에게 설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기도지향을 쓰십시오.”라는 것인데요. 그러나 첫 번째는 내 건강과 가족 건강을 위해서”, 두 번째는 조금 더 넓혀서, 다행히도, “친척들을 생각한다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세 번째 지향을 쓰라고 하면 어떤 분들은 없어요.” 라고 하거나 쓰시는 분들은 자신이 아는 사람을 쓰거나 그 이상을 못 넘어간다는 거예요. 그 신부님은 그렇게 설문한 것으로 강론을 하면서, “한국 천주교 신자들의 기도지향이 너무 협소합니다. 이웃과 세상의 변혁을 꿈꾸셔야 합니다.”라고 말씀하셨답니다. 그러면 20181월부터 전민동 성당이 (연중행사로 20181월부터 매월 개최한 세상을 바꾸는 특별한 강의’(일명, 세바특강)을 통해서) 그런 지향으로 살아왔다면. 변화가 되어야 합니다.

 

가톨릭의 중세역사

가톨릭 교회에 대해 이야기할 때, 중세 시대는 독재였고, 십자군 전쟁으로 남을 헐뜯고 앞잡이를 한 짓이 바로 현실이었습니다. 우리는 그걸 뼈아프게 반성해야합니다. 반성을 하려면 우리는 예수님처럼 살아야 합니다. 가만히 계셨으면 그렇게 안 돌아가시지만, “문제 있다! 회개해라! 뉘우쳐라!”라고 말씀을 하고 다니시니, 그래서 십자가에 못 박혀서 돌아가신 겁니다지금 사법부 농단을 보면서, 영장을 기각하는 판사들, 먼저 대법원장을 보십시오. 그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런 모습이 우리 교회 안에 그대로 있습니다. 언제나 힘센 사람, 모순된 사람이 제 곁에도 있어요. 돈 많은 사람과 권력가진 사람들 말입니다. 이번에 프랑스를 보세요, 젊은 마크롱 대통령이 유류 값 올렸다고 파리에서 폭동 일어났고, 그래서 항복했죠. 폭동을 일으켜도 지지하죠. 한국 역사는 2천년, 혹은 4천년 역사 중에서, 다행히 2년 전 광화문 촛불혁명이 일어나고 성공했지만, 그게 사실은 부분적이죠.

 

우리 역사에서 저항이 성공해 본 적이 있나?

우리 역사를 보면, 삼국시대, 고려와 조선에서 한 번도 저항이 성공해본 적이 없어요. 그리고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겼죠. 고종과 민비가 나올 때는 분노가 올라와요. 나라를 빼앗겼으면 죽어야지, 그래서 191931(서울에서의 독립선언과 만세시위를 시작으로 1919년 한 해동안 나라 전역에서 벌어진 역사적 사건)의 사건은 사회운동이며 사회혁명입니다. 왕정제도에서 황제시대로 이어진 시대에 생겨난 3.1독립선언! 민의의 시대이며 인민이 중심이 되고, 국민이 나라의 중심이 된다는 생각. 인민의 나라가 되었다는 것을 혁명이라고 해야 하지만, 또 임시정부에서도 이것을 혁명이라고 했지만, 1948년 제헌의회 때 이걸 혁명이라고 안하고 운동이라고 바꾸어 썼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운동’, ‘스포츠입니까? 그건 항쟁이며 혁명입니다. 그래서 우리 시민단체에서는 내년에 (100주년을 맞이하면서) 3.1 혁명으로 이름을 되찾아주려고 합니다.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는 이 단어 하나의 의미가 얼마나 중요한가!’라고 말합니다.

 

도마 안중근은 전민동 성당의 주보성인이 될 뻔했다?

제가 듣기로 전민동 성당은 안중근 의사(1879~1910)를 주보로 모시려다가 안 되었다고 하던데요. “벗을 위해서 목숨을 바친 것보다 더 한 것은 없다.”라는 건 요한복음의 말씀이예요. 도마 안중근 의사와 같은 분들이 성인이에요. 안중근 의사를 그때 모셨어야 하는데, 못 모시게 되었던 것은 ... 그게 대전교구의 한계인 거예요. 하지만 전민동 성당이 주보성인으로 모신 사도 성 토마스를 보면서 안중근 의사를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정말 대단한 분입니다. 우리가 이 분을 하얼빈에서 이등박문(이토 히로부미, 伊藤博文, 18411016~ 19091026)을 죽인 걸로만 알지만, 안중근은 교육가, 사상가, 그리고 훌륭한 신학자입니다. 프랑스 신부님들을 능가하는 분이었어요. 당시 신부님들은 안중근에게 성당에 오지 마라!”라고 하면서 성당에 못 오게 했어요. 그래도 성당을 가셨어요. 그때 신자들이 몇 명 되지 않아서 바로 알잖아요. 그래서 프랑스 신부님들이 안중근 의사가 오면 못 들어오게 했다고 합나다. “독립운동 하면 못 들어온다.” 그래도 들어가셨다는 거예요. 사실 나 같으면 이까짓 신부들 !”하고 떠나갔을 텐데, 그렇게 가톨릭에서 배척하는데 그러나 뮈텔주교에게 죽기 전에 편지를 써서 선교 잘해서 많은 신자들을 위하라는그렇게 자기를 미워하는 주교에게 마지막 편지 쓸 수 있을까요? 안중근은 당시대를 능가한 신학자였습니다. 그게 바로 열정입니다. 1백여년 전의 일입니다. 내년이 안 의사 의거 110년이 되는 해입니다. 안중근은 열여덟 살에 세례를 받고 선교로 한계 느끼면서, 그래서 독립운동을 하고, 국채보상운동에도 참여하시고 그랬습니다.

 

서비스가 전례의 원형

밥 먹는 식당에서 음식 봉사하시는 것이 전례이고, 부엌에서 일하는 것, 가족들 위해 일하는 것도 전례입니다. 가장들이 밖에서 일하는 것 역시 다 전례입니다. 서비스가 바로 전례의 원형입니다. ‘모든 봉사는 다 하느님에게로 향할 것이다.’란 의미로, 미사 때는 일상생활을 정화하고, 사회적으로는 의전이 전례라고 할 수 있겠으나. 신앙도 평소 신앙이 주일에 와서 장엄하게 받쳐주는 겁니다. 그리고 매 주일이 잔치입니다. 미사가 짐이 되면, 사실 집에서 성당에 가는 걸 기뻐해야 하죠. 전 사실 토요일 노는 거 반대했습니다. 김영삼 대통령 때 일을 더 했어야 해요, 지금 너무 많이 놀아요. 정규직은 돈을 몇 천만 원에서 1억도 받고, 비정규직은 조금 받고요. 이걸 서로 나눠가져야 하는데, 이걸 교회가 해야 합니다. 세상을 향해 메시지를 줘야 하는데, 주교회의에 건의를 하는데 아무 대답을 안 해요. 가톨릭은 3-1혁명 때 아무 것도 못했습니다. 우리가 정중하게 건의를 했어요. 그런데 이런 주교들이 사목을 맡고 있으니, “한국교회가 되겠는가!?” 가슴이 아픈 거예요. 주교들은 3십여 명 되는데, 세상을 바꿔야할 건데, 아까 말씀드린 대로 내적(內的)으로 아름다운 마음을 갖고 오셨는데 .

 

흡연과 성무일도

미사를 바치려면 매일 성무일도를 2시간 반을 봐야 하고, 옛날에는 라틴어로 그걸 보지 않으면 다음날 미사를 못 봤어요. 너무 힘들죠, 담배 피는 신부님이 담배를 피우고 싶어서, 어떤 이들이 성무일도를 보면서 담배를 피웠어요. 그런데 교황님에게 이걸 물어봤다고 해요. 그런데 예수회 신부한테는 된다.’라고 하고, 프란치스코회 신부에게는 안 된다,’라고 했다고 해요. 질문이 이랬어요.

 

(예수회) “교황님, 혹시 담배피면서 기도해도 됩니까?” “되지!” (교황님)

(프란치스코회) “교황님, 기도하면서 담배 피워도 됩니까?” “안 되지!” (교황님)

 

이게 일하면서 기도하는 거예요. 뭐든지 하면서 기도하는 거예요. 그게 생활기도, 생명의 기도입니다. 그러니 또 집중기도가 있어야 하고, 지금 말씀드리는 건 넓은 의미의 기도, 삶 지체가 기도라는 겁니다. 남미의 어느 성당에 기도문이 아름답게 써있다고 하는데, 저는 못 가봤어요.

(“하늘에 계신하지 말아라. 세상일에만 빠져 있으면서우리하지 말라. 너 혼자만 생각하며 살아가면서아버지하지 말라. 아들딸로서 살지 않으면서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하지 말라. 자기 이름을 빛내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면서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하지 말라. 물질만능의 나라를 원하면서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하지 말라. 내 뜻대로 되기를 기도하면서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하지 말라. 가난한 이들을 본체만체하면서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하지 말라. 누구에겐가 아직도 앙심을 품고 있으면서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하지 말라. 죄지을 기회를 찾아다니면서악에서 구하소서.” 하지 말라. 악을 보고도 아무런 양심의 소리를 듣지 않으면서아멘하지 말아라. 주님의 기도를 진정 나의 기도로 바치지 않으면서. - 우루과이의 한 성당 벽에 쓰인 반성하는 주기도문”)

 

우리는 주님의 기도를 많이 바치는데, 주님의 기도는 우리의 한 삶입니다. 우리 삶 자체 그것입니다. 내 삶의 자체가 커다랗게 주님의 기도여야 하고, 내 삶이 마감될 때 가장 아름다운 주님의 기도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순간순간 모든 순간들을 하느님께 집중해야 하는 겁니다.

 

대림절은 뭔가?

대림절은 기다림입니다. 추운 지방에서 연유가 된 게 초를 놓는 것이죠. 천년왕국설이라고 보면, 구약 4천년 신약 2천년을 보는데, 초 하나가 천년의 신비를 담고 있습니다. 1주일, 2주일, 3주일 분홍색 기쁨의 주일, 곧 주님이 오신다는 겁니다. 4주의 중간에 기쁨의 주일 하나 넣은 것은 수도원에서 유래했어요. 단식과 금육으로 늘 힘들어하는 수도자들에게, 소가 지나간 국물이라도 마시자는 취지로 소고기국을 줬다고 합니다. 등산하면서 잠시 쉬듯이, 기쁨의 주일이라고 하는데, 한국교회는 자선주일로 정했어요. 그런 의미기 담겨져 있는 한 주이고, 네 번째는 시간이 다 되었으니, 흰 초입니다. 흰 초. 이걸 보면, 성당 전례로 의미가 있어요. 독일 북쪽이나 스칸디나비아반도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는데, ‘기다림은 영어러 어드벤트(advent)인데 이건 미래를 앞당긴다는 의미에요. 미래는 기다려야 오죠, 시간이 지나가야 해요, 그런데 이건 선취적(先取的) 미래라고 합니다. 미래를 앞당긴 것입니다.

 

우린 이 세상에 살지만, 이미 하늘나리에 살고 있으며 구원의 삶을 살고 있는 겁니다. 그런 긍지로 살고, 예수님이 안 오셨지만. 예전에 오셨으니까, 그 분이 우리 안에 계신 것처럼 사시는 것입니다. 다시 오신다고 하셨으나 이미 오셨습니다. 성체를 통해서, 기도, 봉사, 사랑을 통해서, 아웃과 함께. 잔치를 통해서 정의를 통해서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미래를 미리 갖는 겁니다. 미래를 현실에 당겨서 사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의 종말적 삶입니다. 그런데 2018년의 대림절입니다, 내년에 2019년에 또 오죠. 그래서 과거를 생각합니다. 유다인들이 메시아를 생각하며 절절히 기다리던 그 마음을 다시 재현하자, 또 사도신경 후반부를 보면, “하늘에 오르신 예수님께서 그리로 부터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믿나이다,” 즉 예수 재림(再臨) 사상이에요, 그런데 올해 2018년 올해 예수님이 내게 새롭게 오십니다. 매 해마다 새롭게 오시는 예수님을 맞이하는 정신이 담겨 있는 게 대림절입니다. 그렇다면 올해의 다짐, 2018년의 꿈과 다짐은 무엇인가?

 

꿈이 뭐에요?

내 꿈은 뭘까? 그런 내용들 한번 씩은 생각할 수 있고, 어린 시절 아주 순수했을 적의 내 마음가짐, 또 나이 들며 변화된 내 과정들 이런 걸 다 묵상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신학공부하며 수도자들 서원 같은 거 공부합니다. 수도자나 사제들, 신앙인들은 누구이며 그리스도인이란 누구인가? 여러 관점에서 정의할 수 있어요. 전례란 무엇인가에 대한 각자의 답처럼.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을 체험한 사람이다, 예수님을 체험한 사람이다. 이걸 가지고 계셔야 합니다. 어떤 분은 대화를 나눠보면 그런 경험이 없어 보여요. 그래도 어릴 적에, 혼배 때, 영성체 때, 하느님과 나름 끈끈한 관계를 맺었던 그 때가 중심이 되어야 하고 그렇게 재현되어야 합니다. 성서의 작가들은 그런 체험을 쓴 것이죠.

 

주일 제 1독서(바룩서 5,1~9)에서도 슬픔과 재앙의 옷을 벗어버리고 하느님에게서 영광의 아름다움을 영원히 입어라”(5,1)라고 합니다. 나라를 빼앗겼을 때, 아름다운 미래를 꿈꾸었어요. 우리가 맞이할 예수님의 날, 그리스도의 날은 언제인가? 내 세상의 끝은 어디인가? 그 때 내가 하느님과 어떤 대화를 나눌 것인가? 루카복음 오늘 복음(루카 3,1~6)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라고 죽 말씀하십니다그리고 대림절은 4주간입니다. 4주간에 이사야 예언서를 제일 많이 읽죠. 66장까지 있는데, 이사야서는 희망의 책, 구원의 책 그리고 축복의 책입니다. 두 번째 나오는 인물은 세례자 요한, 예수님의 선배이죠. 어떤 의미에서, 예수님 길을 다 닦아놓고 길을 물려드리고 당신은 떠나가시죠.

 

故 김상현 의원의 일화

돌아가신 (민주당) 김상현 의원(1935~2018.4.18.)은 감옥에 갔다 와서 천주교인이 되었어요. 세례명은 베드로인데요. 감옥에 갔을 때, 부인이 찬을 안 넣으시고, 성경 하나만 넣어줬다는 거에요. 그래서 다른 것을 더 넣어달라고 하니, 영어성경을 넣어줬다고 해요. 그래서 그거 말고 읽을 게 없었다고 합니다. 그 분께서 감옥에 갔다 오시더니, ‘성경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세요. 그게 뭐냐면,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의 선배이고 다 이룩해 놓았는데, 어떻게 조용히 사라질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조용히 사라지셨죠. 한국 정치사에서 이런 정치인이라면 우리나라는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저는 신학교에서 그렇게 배운 적은 없어서, 성서의 새로운 해석으로 보았고요. 그 분 장례미사 때(2018.4.21. 오전, 서울 서대문구 가재울 성당)에서 그런 강론을 하고, 신학생들에게도 그런 내용을 전달했습니다. “성경은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라고 말입니다.

 

우리도 세례자 요한처럼!

예수님께 다 물려주고 홀연히 사라지신 세례자 요한! 바로 주님의 길을 닦는 자는 이것입니다. 우린 뭔가를 하면 대가를 기다리죠. 그러나 어머니들은 대가를 기다리지 않죠. 그리고 주부들의 헌신이 그 가정의 영광으로 끝나지 않고 확산시켜 세상을 위해 모든 일들에 대해 헌신의 마음을 갖게 하는 것, 그게 그리스도인의 마음이다.

 

그리고 성모마리아

예수님을 잉태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과 가장 가깝게 계시고, 제가 마리아를 설명할 때 개신교에서 오해가 많고, 알레르기 반응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목사님과 자주 접하고 잘 지내면서 터득한 것은 같이 감옥 갔다 와서 개신교회에서 교회 일치운동과 함께 마리아님에 대한 이해를 말씀드렸을 때입니다. ‘개신교에 계신 분들은 성모마리아 알레르기가 있는데, 그건 미숙한 신앙이다. 목사님이 감옥에 계실 때 사모님이 애쓰신 노고를 신자들이 존경하고 평가하지 않냐! 감옥에 계신 목사님이나 밖에 계신 사모님이나 고통의 상통성이 존재한다.’ 그렇게 그것을 연결시킬 수 있습니다. ‘십자가 위와 십자가 아래로 말입니다. 목사님 부인을 시랑하고 존경한다면, 예수님의 어머니를 존경하는 건 당연한 일인 겁니다. 다 알아들으시더라고요.


고통의 상통성

또 다른 설명으로는 구약에서 계약의 궤입니다. 이 약속의 궤는 아무나 못 만져요. 사제들만 출입하는 성전 지성소에 모셔두죠. 그게 돌판인데 말이죠. 그게 하느님 현존(現存)의 상징이라면 예수님을 잉태하신 마리아님을 존경하는 것도 당연한 게 됩니다. 그러면 또 알아듣습니다.

 

톨스토이와 성탄의 신비

그래서 대림절은 이사야 예언자, 세례자 요한 그리고 성모마리아를 중심으로 맞이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탄의 신비는 뭔가? 톨스토이의 많은 단편소설 중에 성탄에 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러시아 정교회도 그리스도교이니까, 강론 때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구두수선공은 어느 날 하느님의 응답을 듣습니다. 찾아오시겠다는 것이죠. 그런데 기다리는 하느님은 오시지 않습니다. 겨울에 눈도 많이 오는데 아침 9시에 도착한 첫 손님은 가난한 거지였습니다. “아이 재수없이 거지가 먼저 들어왔어. 빨리 가!” 그런데 예수님은 안 오시죠. 또 갓난아이를 안은 엄마가 와서 역시 또 돈을 청해서 적당히 돈을 주고 차 한 잔을 주고 가라고 합니다. 그런데 또 예수님 안 오시고 저녁 여섯시 문 닫으려는데 또 아주 비참한 사람이 먹을 걸 달라고 합니다. ‘예수님 안 오시고 이런 사람들만 왜 이런 사람들만 오지?’ 다 끝나고 집에서 저녁기도를 하면서 왜 안오시나를 생각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마르티노야 너 왜 그랬어?”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세 번 찾아갔는데 못 알아보더라.”라는 겁니다. 이건 그리스도인에 대한 꾸짖음입니다.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예수님을 만납니다. 톨스토이는 그런 류의 단편소설 너무너무 많이 쓰고, 우린 이런 예화를 많이 들었지만, 실제 우리 삶은 그렇게 못하고 있습니다.

(톨스토이의 단편 [사랑이 있는 곳에 하나님이 계신다.] 정리자 주)

 

프란치스코 성인이 만든 구유의 의미

성탄은 예수님이 누구인가를 깊이 생각하게 하는 때입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최초로 말 구유를 만들었죠. 그걸 보며 반성하기를, “! 넌 뭐하냐! 나는 마구간에서 태어났어. 동물 속에서 덜덜 떨면서. 그런데 넌 뭐하는 거야?” 이렇게 속삭이는 것 같고, 말구유에 계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도전하신 것 같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구유에 태어나시고 가난하게 태어난 그 정신을 우리가 따르는가?

(정리자 주 프란치스코 성인은 1220년 아시시 인근의 그레치오에서 성탄을 기념하여 최초로 성탄 구유를 만들었다. 당시 전통적으로 그려지던 예수의 탄생 장면을 그대로 따라 만든 구유에는 실제 상황 같이 생동감을 느끼도록 살아있는 동물들을 구유 안에 집어 넣었다고 한다.)

 

베들레헴 성당을 가보면 작아요, 허리를 구부려야 해요. 그런데 어린이들 초등학교 1학년들은 서서 들어가요,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하느님처럼 될 수 없다. 그런 의미로 설명을 들었는데, 성탄의 신비와 예수님 십자가 신비는 연결되는 거죠, 필리피 서 말씀에서도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오신 강생을 이야기합니다. 그런 비움의 삶으로 살았듯이, 우리도 그런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하늘에서 또 내려오셨어요. 하늘 길을 뚫어놓으셨고, 그 길로 우리가 따라가려면 예수님처럼 살 때야 그길로 갈 수 있는 겁니다. 그 다음에 인권주일과 함께 벌써 두 번째 주일이고 정말 집중해서 살아야겠구나!”하는 생각을 합니다. 제가 살면서 느낀 건 집중하면서 사는 만큼 하느님과 가까운 삶을 산다는 겁니다.

 

톨스토이의 [부활]에서 내린 결론처럼

끝으로 종합하면, 톨스토이가 쓴 [부활]의 결론으로 말씀드리면, 부활은 뭔가요? 저도 어렸을 때부터 [부활]을 읽었어요. 그런데 신학생들과 함께 책을 보며, ‘부활은 환생이 아니다. 벌떡 살아난 환생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부활은 장례식에서 살아나는 게 아닙니다. 부활은 십자가를 껴안는 겁니다. 고통을 껴안는 겁이다. 고통을 수락한 것이 부활입니다. 톨스토이의 [부활]에 그런 내용이 있더라고요, 톨스토이는 [부활]에서 어떻게 설명을 했냐면, ‘불교식의 깨달음이 부활이라고 합니다. 주인공은 자기가 잘못한 거 뉘우치고, 쫓아가다 결국 못 이루고, 허탈해 하죠. 자기 진실이 전달 안 되니까. 허탈해 하면서 추운 시베리아 벌판에서 난로 불을 피고 있다가, 그날따라 성경을 읽는데 마음에 막 와 닿는 거예요. 마른 해면이 물을 빨아들이듯 성경 말씀이 내 마음에 와 닿는 거예요, 그 말씀이 마태오복음입니다.

 

정의를 구하여라! 이것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정의를 구하면 나머지는 다 저절로 되는 것입니다. 거기서 주인공이 깨달았어요. 그래서 그의 변화된 삶이 그의 앞날을 보여줍니다. 제가 인생을 살면서도 주제로 삼는 것은 이것입니다. 무엇보다 먼저 하느님 나라의 정의를 구하면 모든 것은 덤으로 옵니다. 그게 대림절이고 전례이며 부활절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올해 여기 계신 분들의 영혼과 건강 함께 기원하며 기도하겠습니다.

 

함세웅 신부님의 마침기도

오늘은 대림 두 번째 주일 저녁입니다. 세상을 바꾸는 신앙인의 노력의 일환으로 전례와 대림절에 대해 함께 묵상하고 기도했습니다. 늘 어렸을 때의 순수한 초심, 세례 때 아름다웠던 마음, 또는 첫 영성체 때, 또 신앙생활에서 지녔던 열정적인 하느님에 대한 사랑을 간직하는 은총을 구합니다. 하느님 안에서 이웃을 위한 삶을 살도록 본당공동체외 우리 겨레 모두를 축복해주시고, 겨레를 위한 헌신의 삶을 살도록 허락해주시며, 남북의 평화를 기원하면서 또한, 내년 3.1 혁명 백주년을 맏이하며 하느님 나라의 정의를 위해 살도록 허락해주소서.

 

(2018128() 저녁 9:43 종료)


실제 함세웅 신부님의 강의를 당일 현장에서 타이핑하여 재정리한 내용입니다. 따라서 일부 내용은 각색되고 편집되었기에, 실제 강연 내용과 불일치한 부분들이 있으며 내용 중 이상한 점이 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편집자의 잘못된 정리에 따른 것입니다. 당일 함 신부님의 강의는 아름답고 매우 공정한 것이었습니다


함세웅 신부님은 2018년 12월 8일(토) 저녁 8시 특강에 앞서,
청소년들과 함께 하는 저녁 7시의 중/고등부, 특전미사를 주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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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전정평위뉴스 편집장 슈렉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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