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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평강론과글

박주환 신부 강론 ... 주님, 저희는 당신께 희망을 겁니다!

by 편집장 슈렉요한 2022. 7. 18.

대전 정평위,  2022년 여섯 번째 정세미(7/14 목 19:30) 강론

정의와 평화, 그리고 사랑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

주님, 저희는 당신께 희망을 겁니다!

 

미사주례는 Fr.박주환 미카엘(오른쪽), 그리고 같이 해주신 Fr.김민엽 프란치스코(왼쪽)

(2022.7.14. 복음. 마태오 11,28-30)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28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30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그리스도인들을 일컬어 '예수님의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 예수님의 사람들인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서 구원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고, 그래서 불안한 나머지, 내 미래에 대한 걱정과 근심에 싸여 점집을 찾아가 점을 보는 이들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기는 하지만 기도와 성사생활 보다는 용한 무당을 찾아 그의 얼굴을 마주보며 위로를 받는 것입니다. 좋기는 하겠지만 너무 자주 가면 지갑이 얇아지는 단점과 더불어 하느님이 선물로 주신 자유로운 삶이 점점 어려워지고 두려움이 많아 지게 됩니다.   그 반대로는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서 구원에 대한 확신이 지나치게 넘치는 나머지, 자신을 스스로 열심한 의인으로 여기면서 여기저기 자신의 기도 시간과 기도의 양을 자랑하고, 자기보다 기도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없신여기거나 단죄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그러한 본인 자랑을 '하느님의 뜻'이라 말하며 어떤 경우에는 "하나님, 하나님! 나한테 까불면 죽어" 라는 실언까지 하게 되는 모 종교 지도자의 사례를 우리는 목격하기도 하였습니다.  

 

강론 중인 Fr.박주환 미카엘


그러나 또 한편으로, 이번에는 완전히 다른 경우도 있습니다. 이 그리스도인들은 내가 구원을 받게 될 것인지 아니면 구원을 받지 못하게 될 것인지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지금 내가 "아무개 신부님과 친하다." 또는 "내가 아무개 주교님을 잘 안다." 이런 식으로 말하고 다니면서 교회 내 영향력 있는 분들과의 친분을 과시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어떤 본당신부님께서 본당 형제님들과의 회식자리에서 겪었던 일입니다.한 형제님이 본당신부님께 자신이 잘 아는 '형님'이 계시는데 전화를 해보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전화 해서는 "형님~ 잘 지내시죠?" 이러면서 자신이 잘 아는 그 형님께 본당신부님이 직접 인사 드리라고 전화를 바꿔줬답니다. 그래서 본당신부님이 할 수 없이 전화를 받았더니 "저는 아무개 입니다." 하더라는 겁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이라 생각해보니 어디 모 교구 주교님이셨답니다. 
  

어찌되었든 간에 이렇게 구원에 대한 확신이 들지 않아 불안과 두려움에 사로잡힌 그리스도인도 있습니다. 반대로 구원에 대한 지나친 확신과 자신감 때문에 신앙이 약한 다른 이들을 업신여기고, 하느님과 교회 마저도 본인의 뜻대로 움직이려는 그리스도인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영향력 있는 분들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내가 이런 사람이야." 자랑하고 싶은 그리스도인도 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모여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우리 신앙의 교회가 바로 가톨릭교회인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을 일컬어 "예수님의 사람들"이라고 표현했습니만 이런 사례들을 살펴보니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여 그리스도인이란 어떤 사람들인가? 예수님 시대에도 이런 다양한 사람들이 있어왔고 2000년이 지난 지금에도 마찬가지지 않습니까? 그래서 오늘 이 미사에서 '그리스도인'에 대한 보다 명확한 의미를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리스도인이란 극단적 희망의 사람들이다.'
  

 

오늘 우리가 들은 독서 말씀인 이사야서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 저희는 당신께 희망을 겁니다. 당신 이름 부르며 당신을 기억하는 것이, 이 영혼의 소원입니다. 당신의 판결들이 이 땅에 미치면, 누리의 주민들이 정의를 배우겠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복음 말씀에서는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그리스도인은 희망하는 사람들입니다. 곤경과 박해와 죽음의 두려움 가운데서도 이미 이 세상을 이기고 모든 죄를 없애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희망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빌려서 내가 원하는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알려주신 정의와 평화와 사랑이신 하느님 아버지를 내 인생에 제일 윗자리에 모시고 섬기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좋을 때만 기쁠 때만 행복할 때만 필요할 때 꺼내서 쓰는 그런 하느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아니라, 극단적 희망을 품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슬플 때도 괴로울 때도, 고통스러울 때도, 내가 왜 이 세상에 태어났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때에도, 정의와 평화와 사랑이신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아시고 나에게 구원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우리의 잘못을 다 아시면서도 내가 생활을 개선하고 마음을 돌리고 가슴을 치며 뉘우치고 겸손되이 돌아오면 모든 것을 묻지 않으시는 그런 분이십니다. 이런 하느님을 감히 '아버지'라 부르며 섬기도록 우리에게 사람이 되어 오신 예수 그리스도 주님만을 희망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루에도 수십번 수백번 듣는 '정의, 평화, 사랑, 자비, 구원' 온갖 좋은 말들은 우리가 다양한 인간 군상들 가운데 살아가면서도, 어떤 처지에서도 결코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예수님의 이름에 의지하며 하느님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선으로 이끄시고 바로 잡아 주신다는 굳건한 희망을 품을 때 온전히 이루어지게 됩니다.      
  

 

정의와 평화와 사랑, 그리고 자비와 구원은 하느님의 것이고 하느님께서 손수 이루시는 일입니다. 나의 것,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차지하기 위해 불안해 하거나, 지나치게 자신만만 해서도 안 될 것이며 오히려 이를 이용해 자신을 과시해서도 더더욱 안 될 것입니다. 다만 우리는 하루하루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온갖 불의한 일들, 하느님의 모상을 닮은 인간을 억압하고 인간을 죄로 이끄는 일들 앞에서 '아니오' 라고 외치면서, 모든 것을 바로 잡으시는 하늘과 땅의 주님이신 하느님께 희망을 걸고 기도하며 행동할 때 비로소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극단적 희망의 사람들입니다. 우리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희망은 결코 무너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순교자들이 증명하였고 수많은 성인성녀들이 지금도 증명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정의와 평화에 목마른 비그리스도인들까지도 이 희망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모상을 닮은 사람이기에 모든 곳에서 사람이 있는 곳에는 무너지지 않는 희망이 서있고 그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며 또한 모든 피조물이 하느님께 희망을 거는 구심점이 됩니다. 그 중심에 바로 우리 가톨릭교회가 있습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가 지고 가는 가볍고 편한 멍에는 바로 희망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께로 마음을 돌리고 가슴을 치며 뉘우치고 생활을 개선해 나가면서 그 어떤 절망적 상황과 소식에도 흔들리지 않을 때 정의와 평화와 사랑과 자비와 구원은 그 모습을 세상에 드러내게 될 것입니다. 내가 이루는 업적이나 일이 아니라 바로 하느님 아버지를 통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수행해 나가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실망하거나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말고 이미 약속을 실현해 주신 삼위일체 하느님을 우리 삶의 첫자리에 소중히 모시고 극단적 희망을 품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갑시다. 정의는 그렇게 시작해서 우리의 희망과 믿음과 사랑을 통해 열매맺고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