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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교리학교/사회교리 강의

사회교리 토크콘서트, 코로나가 준 교훈 (2) 보편성

by 편집장 슈렉요한 2023. 12. 10.

사회교리 토크콘서트 

코로나가 준 교훈 두번째, 보편성

김용태 마태오 신부(대전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의 토크콘서트

2023.12.9.(토) 오후 3시, 대전교구청 명례방에서 열려 

 

대전교구 정의평화위원회는 12월 9일(토) 오후 3시, 10주간 진행된 사회교리학교(제37기)의 대미를 장식하는 토크콘서트를 개최했다. 콘서트의 진행은 10주간의 사회교리학교를 총괄 진행한 대전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인 김용태 마태오 신부가 맡았으며, 기타 공연과 함께, 코로나가 준 세가지 교훈에 대한 이야기를 참석자들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이번 기사는 두번째 교훈에 대한 것이다. 

 

 

 

코로나 3년이 우리에게 준 교훈,

두번째, '보편성' 

 

소돔과 고모라가 망한 이유는?  

창세기에 《소돔과 고모라》이야기가 나옵니다. 의인 10명이 없어서 멸망한 곳이죠. 그런데, 우리나라를 비롯해서 소돔과 고모라보다 더 못한 세상인데 안 망하고 있는 이유는 뭘까요? 그것은 어딘가에 의인 열 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운 사람이 있는 것이죠. 그러니까 우리는 모두 의인 열 명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 안에서 그리스도인의 사명입니다. 오늘 하루 내가 할 수 있는 것,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줄 수 있는 것, 만나는 사람들에게 충실하게 사는 것. 겨자씨 하나의 믿음에 불과하지만, 이것으로 산을 옮기는 것이 하느님입니다.

 

작지만 소중한 것에 최선을 다한다  

그래서 우리는 작지만 이 소중한 것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제자들은 오천 명을 먹일 수 없다는 생각만 합니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하고 이르시니, 제자들은 “그러면 저희가 가서 빵을 이백 데나리온어치나 사다가 그들을 먹이라는 말씀입니까?” 하고 물었다. - 마르코 6, 37)  2백 데나리온라면 2천만 원 정도입니다. 그러나 빵 다섯 개와 물고기 2마리라도 우선 먹을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오천 명을 생각하면 아무 것도 못합니다. 지구 온도를 갑자기 다운 시킬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하는 겁니다.

 



우리는 다 연결되어 있다

코로나가 주는 두 번째 교훈은 보편성입니다. 우리는 다 연결되어 있습니다. 각자도생이라는 그 동안의 삶에는 ‘나만 행복하기’가 있습니다. 저 사람이 불행하든 말든, 하루아침에 참사를 당하든 말든, 오송 지하차도 참사는 너무 황당합니다. 쑥 그냥 지나가면 되는 길에서 사람이 죽었습니다. 늘상 걸어다니는 이태원의 그 길에서 사람이 죽었습니다. 수학여행가던 학생들이 죽었습니다. 전국의 고2 부모님이 다 슬퍼했겠지만, 어떤 사람은 우리 아이 경쟁력이 낮아졌다고 좋아하던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인간성의 상실이지요. 

 

최근 부제 피정 지도 중의 일화

제가 최근 부제 서품을 준비하는 이들을 지도하는 피정 중에 면담하던 일입니다. 박성호라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로 숨진 단원고 2학년5반 학생으로 가톨릭 사제를 꿈꿨던 학생이었습니다. 그런데  부제서품을 준비하는 예비신학생이 바로 그의 친구였습니다. 그러니까 박성호는 그때 안 죽었으면 지금 이순간 ‘부제’가 되었을 겁니다. 바로 그 동기들입니다.

 

자네가 그의 친구인가?  

“자네가 그 친구인가?” “네 그렇습니다.” 딱 그들이 부제가 될만큼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래서 너무 안타깝죠. 그런데 그러거나 말거나, “아! 우리 자식은 경쟁률에서 이롭다”라는 사고방식도 있습니다. 그런 생각으로 많은 사람들이 살아갑니다. 주위의 불행과 죽음에 대해서 별반 그렇게 크게 개의치 않습니다. 지금 이스라엘 지역에서 가자 지구의 팔레스타인 사람들 대학살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홀로코스트라고 유대인이 2차 대전에서 당했던 일들, 나치와 히틀러가 했던 짓을 이스라엘이 그대로 하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러나 각자도생의 삶에서는 그런 게 무의미합니다.

 

강력한 전염성! ... 코로나는 연결을 이야기하고 있다

코로나는 그런 우리들에게 연결을 이야기합니다. 옛날 드라마 다모에서 주인공 남주 이서진이 여주 하지원에게 “아프냐?  나도 아프다.”라고 하는 게 한때 유행했습니다. 사랑하면 아프게 되어 있습니다. 자식이 아프면, 차라리 내가 아픈 게 낫다는게 부모의 심정일 겁니다. 코로나가 이런 심정을 우리에게 알려줬습니다. 우리가 모여 있는 이 자리에 한 명이 코로나에 걸리면 우린 모두 검사를 받아야 합니다. 강력한 전염성. 아프지 말아야 합니다. 상대가 건강해야 나도 건강합니다. 모든 사람은 홀로 존재할 수 없고, 관계를 맺고, 연결되어 살아간다는 보편적 관계성을 코로나가 알려줬습니다.

 

 

 

사람은 커다란 보신각 종과 같다

사람은 커다란 종과 같습니다. 보신각(普信閣) 종과 같습니다.  그 종은 쇳물을 18톤 정도를 부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보신각 종의 어느 상단 부근에 미세한 균열이 갔다고 한다면, 만일 거기에 쇳조각 0.1g이 떨어져 나갔다면, 이러한 미세한 금으로 인해서, 이 종소리는 변합니다. 18톤분의 0.1g만큼 사라지는 게 아니고, 이 소리는 100% 사라집니다. 더 이상 어제의 소리를 낼 수 없습니다. 그래서 0.1g은 18톤 중에 0.1g이 아니고 100%의 가치입니다. 피아니스트에게 오른쪽 새끼 손가락을 잃게 되면, 어제 곡을 다시 치기는 힘듭니다. 

 

사람 한 명은 70억분의 1이 아니다

결국 사람 한 명은 70억 분의 1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다 살리고 싶어합니다. “아버지의 뜻은 내게 맡겨진 사람들을 단 하나도 놓치지 않게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아흔 아홉 마리의 양과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은 99대 1의 싸움이 아니라, 99를 선택하는가, 100을 선택하는가, 즉, 한 마리를 찾아서 100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은 “까짓거 한 마리, 너 같은 거 없어도 돼”라는 식으로 돌아갑니다.

 

너 까짓거 없어도 돼!?

고용주들이 종업원을 해고하면서, 너 없어도 돼라고 하는 것이 바로 그런 식입니다. 한 사람이 죽으면 어제의 우주는 다시 존재하지 않습니다. 보신각 종의 소리는 1g의 미세한 금으로 어제 소리를 낼 수가 없습니다. 보잘 것 없고 하찮게 보일지라도, 어제의 우주는 다시 찾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내 모든 것을 다해서 사랑하는 것, 내 마음과 목숨과 정신과 힘을 다해서 사랑하는 것은 내 이웃을 향한 마음입니다. 재벌이 아니라 가진 것이 없을지라도 세상의 모든 것을 구원하려는 예수님의 마음과 일치하는 겁니다. 저 사람의 죽음은 결국 나의 죽음과 같습니다.

 

하느님은 세상을 야박하게 창조하지 않으셨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우리는 한 몸입니다. 한 형제이고, 내 부모님이고, 내 자식이며, 곧 나입니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습니다. 결국 함께 살아야 합니다. 하느님은 세상을 너무 야박하게 창조하지 않으셨습니다. 풍요롭게, 먹고 남게, 오천 명이 먹고 열 두 광주리를 남게 했습니다. 나누기만 하면 됩니다. 이미 있습니다. 내 주위의 가장 작은 이들을 형제처럼, 누이처럼, 몸처럼 여기는 마음, 그 마음 한 가운데에는 형제애. 즉 보편성, 보편적 사랑이 들어있습니다. 이것을 하찮게 여기는 중에 코로나가 이걸 알려줬습니다.

 

이웃사랑이란 보편적 형제애

이웃사랑이란 보편적 형제애입니다. 그러나 “누가 내 이웃입니까?”라고 바리사이가 묻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모두 내 이웃이다. 심지어 내 원수까지도.” 즉 보편적 형제애는 원수까지 사랑하는 것이라고 예수님은 알려주십니다. 보편성, 보편적 형제애, 보편적 감수성을 우리에게 알려준 것이 바로 코로나입니다.  

 

사랑이 좁아터져버리면 그것은 엄청난 폭력이 된다

사랑이 죽으면 폭력이 됩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마더>에서, 주인공 김혜자와 살인사건으로 지목된 모자란 아들이 억울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실상 실체적 진실은 아들이 범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엄마는 유일한 목격자인 고물장수를 죽입니다. 그리고 아들대신 억울하게 감옥에 간 다운증후군 아이를 모른체 하고 구치소에서 나옵니다. 그리고 죄책감을 달래려고 관광버스 안에서 춤을 춥니다. 아들을 끔찍이 사랑합니다. 그런데 그게 다른 이에게 살인이 됩니다. 그래서 사랑이 좁아터져버리면, 그것은 엄청난 폭력이 됩니다. 삼성 이건희의 아들사랑은 백혈병 환자들에 대해선 재난이 됩니다. 자기 자식에게는 수십조 수백조의 재산을 물려주면서, 산재노동자에겐 산재처리도 하지 않는 그런 모습. 이렇게 남의 자식에 대한 사랑이 없다면, 보편성이 없다면 폭력이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모세오경》에는 이웃사랑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자기 민족들에게 한정되어 있으니, 팔레스타인 백성에게는 폭력이 됩니다. 보편성을 잃으면 가혹해집니다. 연결, 보편성, 형제애, 이웃사랑, 코로나로 인해 묵상하게 됩니다. 

 

정태춘의 노래 《서해에서》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이 노래를 생각하면 김대건 신부님이 라파엘호를 타고 인천 제물포에서 상해까지 가시던 모습이 떠오르네요.  (* 1844년 부제품을 받고 조선입국에 성공한 김대건 신부는 사제품을 받기 위해 배 한 척을 구입해 ‘라파엘호’라 이름 짓고 1845년 4월 30일 신자 11명과 함께 제물포항에서 중국 상하이로 향했다.)

 

 

 

 

서해에서... 정태춘 


눈물에 옷자락이 젖어도 갈 길은 머나먼데
고요히 잡아주는 손 있어 서러움을 더해 주나

저 사공이 나를 태우고 노 저어 떠나면
또 다른 나루에 내리면 나는 어디로 가야하나

서해 먼 바다 위론 노을이 비단결처럼 고운데
나 떠나가는 배의 물결은 멀리 멀리 퍼져간다

꿈을 꾸는 저녁 바다에 갈매기 날아가고
섬 마을 아이들의 웃음소리 물결 따라 멀어져 간다

어두워지는 저녁 바다에 섬 그늘 길게 누워도
뱃길에 살랑대는 바람은 잠잘 줄을 모르네

저 사공은 노만 저을 뿐 한 마디 말이 없고
뱃전에 부서지는 파도 소리에 육지 소식 전해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