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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평강론과글

[20160321] 독재타파 위한 천주교시국기도회-우리들의 파스카는 고통에 깨어

by 편집장 슈렉요한 2017. 1. 1.

2016년 3월 21일(월)

신종 쿠데타, 신유신독재 타파를 위한 천주교시국기도회

매주 월요일 오후 7시, 광화문광장. 2016년 3월 21일(월)

  

우리들의 파스카는 이웃의 고통에 하느님의 고통에

깨어 함께 지키는 여정이어야



강론 : 황인수 신부(성 바오로 수도회)

"히브리인들의 탈출기 구절이 봉독되고 신비의 말씀들이 풀이되었으니,

어린 양이 어떻게 죽임 당했으며 백성들이 어떻게 구원되었고 파라오가 신비로 인해 어떻게 채찍을 맞았는가가 드러났도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이제 무엇이 새 것이고 무엇이 옛 것인지, 무엇이 영원하고 무엇이 시간 속에 있는지,

무엇이 덧없고 무엇이 무한한지, 무엇이 필멸이고 무엇이 불멸인지를 알아야 하느니,

이것이 바로 파스카의 신비이다.”

 

성주간이 시작되었습니다. 월요일인 오늘 복음은 “파스카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타니아로 가셨다”(요한 12,1)는 말로 시작됩니다. 이제 사흘 후 성 목요일이 되면 우리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고 성찬례를 제정하시는 예수님을 만나게 될 것이고 성 금요일에는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를 올라 생명을 바치시는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드디어 주님의 날이 되면 수난과 죽음의 길을 걸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의 빈 무덤 앞에서 뵙게 될 것입니다.

 

강론을 시작하면서 2세기 중엽에 씌어진 가장 오래된 부활절 강론(사르디스의 멜리톤, ‘부활에 대하여’)의 첫 구절을 읽어드렸습니다. 오늘은 그리스도인들의 삶에서 핵심을 이루는 수난과 죽음과 부활, 즉 파스카에 대하여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초대 교회에서 일부 지역의 그리스도인들은 파스카를 ‘고난, 고통’으로 바라보았습니다. “내가 고난을 겪기 전에 그대들과 함께 이 해방절 음식 나누기를 참으로 간절히 바랐습니다.”(루카 22,15) 파스카는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고통을 겪으신 사건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파스카라는 말이 ‘고통을 겪는다’는 그리스말에서 왔다고 생각했지요. 그리스도의 고통은 고통을 받는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인간은 고통을 겪는 땅이다.” 그 땅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늘이 땅으로 내려와 고통을 겪으십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파스카라고 보았던 겁니다. 사실 그렇지요. 세상을 보면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이 정말 차고도 넘칩니다. 세월호 참사로 고통 받는 부모들, 가족들. 용산에서 강정에서 밀양에서, 자기 땅에서 쫓겨난 사람들, 일터에서 쫓겨난 노동자들, 또 이 땅과 이 세상의 수많은 고통 받는 사람들... 예를 들려면 하루 종일도 부족할 겁니다. 매주 광화문에 모이는 우리들 누구나 이런 질문을 품고 있지 않을까요? 이 고통은 어떻게 된 것일까? 도대체 이것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을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은 고통의 파스카에서 찾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파스카는 본래 ‘고통’에서 온 말이 아니었습니다. 히브리 사람들 말에서 파스카는 ‘건너간다’는 말이라고 하지요. ‘건너간다.’ 과월절, 혹은 유월절이라는 말이 가리키는 뜻이 이것입니다. “해방절 축제 전날, 예수께서는 이 세상에서 아버지께로 건너가야 할 때가 온 것을 아시고 그동안 세상에서 사랑해 온 당신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요한 13,1) 요한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파스카를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모두 네 가지의 파스카가 있습니다. 첫째는 야훼의 파스카입니다. 출애급, 즉 탈출기에 나오는 파스카입니다. 히브리인들을 놓아주지 않으려고 고집 부리는 파라오를 거슬러 하느님께서 이집트의 맏배들을 칠 때, 문설주에 어린 양의 피를 발라놓은 히브리인들의 집은 ‘지나갔다’고 하지요. ‘야훼께서 지나가셨다, 하느님께서 건너가셨다’는 야훼의 파스카입니다. 이들은 야훼의 인도에 따라 홍해 바다를 건너가게 되지요. 파라오의 압제에서 자신들을 해방시켜주신 야훼의 파스카를 이후 히브리인들은 매년 거행하게 됩니다. 유다인들의 파스카입니다. 예수님 역시 유다인으로서 열두 살이 된 이후에는 매년 이 파스카를 지내셨고 서른셋이 되시던 해에 당신의 파스카를 세우셨습니다. 즉, 성목요일에 성체성사를 제정하신 후 체포되시고 수난하시고 고통당하신 다음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파스카입니다. 이제 우리들의 파스카가 있습니다. 예수께서 역사 상 한 번 세우신 당신의 파스카를, 우리는 “그분을 기억하여”(루카 22,19) 매년, 매주, 매일 거행합니다. 교회의 파스카입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교회 안에서 고통의 파스카와 건너감의 파스카가 종합됩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파스카, 즉 고통을 겪으심으로써 건너감, 즉 파스카의 여정을 걸으셨다는 것입니다. 죽음으로 죽음을 건너간다. 나에게서 아버지께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나에게서 이웃 형제 자매들에게로 건너갑니다. 이것을 “죽음(십자가)에 의지하여 죽음(우리 시대의 죽음)을 건너간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이스라엘이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간 홍해 바다, 그 홍해 바다가 죽음이라면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그 죽음의 바다는 세월호가 침몰해 가라앉아 있는 진도의 맹골군도 앞바다이고, 이웃 형제자매들의 고통을 외면하며 “그만해두라, 경제가 나빠진다!” 부르대는 사람들의 마음속입니다. 자식을 잃는 일을 생살이 찢기는 고통, 참척의 고통이라고 부릅니다. 그 고통 앞에서 돈 때문에 입 다물라는 말이 어떻게 나오는 것일까. 이것은 사람으로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요. 세월호 뿐만 아니라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이웃들의 고통 앞에서 이 세상이 보여주는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사람이 사람이 아니게 되었다는 것, 이것은 우리가 사는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사는 게 아니라 실은 죽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오늘부터 우리가 걷게 되는 성주간의 여정, 우리들의 파스카는 깨어 지키는 여정이어야 합니다. 고통 받는 이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는 하느님, 그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우리 곁에 내려오시는 하느님과 함께 이웃들의 고통에, 하느님의 고통에 깨어 함께 지키는 밤이어야 합니다. 강론 시작 때 읽어드린 글의 지은이는 사르디스의 멜리톤이라는 분입니다. 사르디스 교회는 요한묵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 가운데 하나이지요. 요한묵시록의 저자는 사르디스 교회에 이렇게 적어 보냅니다.


“하느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분이 말씀하신다. 나는 네 소행을 알고 있다. 너는 살아 있다지만 이름뿐, 죽어 있다. 깨어나라. 그리고 아직은 남아 있지만 죽어 가는 것을 굳건하게 하여라. 내 하느님 앞에서 네 소행이 완전하다고 보지 않는다.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가르침을 받고 어떻게 들었는지를 떠올려 그것을 굳게 지키고 회개하여라. 만일 깨어 있지 않으면 내가 도둑처럼 나타날 것이다. 너는 내가 언제 나타날지 모를 것이다. 그러나 너 사르디스에 옷을 더럽히지 않은 사람이 몇몇은 있다. 그들은 흰옷을 입고 나와 함께 거닐 것이다. 그럴 자격이 있기 때문이다. 승리하는 이는 이와 같이 흰옷을 차려 입을 것이다. 나는 생명책에서 그의 이름을 지우지 않을 것이고 내 아버지와 아버지의 천사들 앞에서 그의 이름을 안다고 말할 것이다. 귀 있는 자는 영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묵시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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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싸움은 이 땅의 생명을, 식량을, 민주주의를 지키는 일

 

정현찬 미카엘 가톨릭농민회 회장

반갑습니다

세월이 상당히 빠른 것 같습니다. 작년 12월 14일 백남기 농민과 같이 삼만여 명 농민들이 ‘이대로는 도저히 농사짓고 살 수 없다’며 서울에 모여서 박근혜 정권이 쏜 물대포에 맞아 사경을 해매인지 언 4개월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한파에도 불구하고 많은 신부님들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미사를 오늘까지 쭉 진행해 왔습니다.


백남기 농민은 한해 수확을 거두고 서울에 올라왔었고, 지금은 날이 따뜻해서 다시 우리 농민들은 농업을 포기하지 못하고 또 씨앗을 뿌리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백남기 농민은 지금도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습니다. 저희들과 같이 논밭에서 함께 씨앗을 뿌려야할 농민이 이렇게 죽어가고 있고, 또 한국의 농업은 백남기 농민이 보여주듯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바로 이 정권은 살인정권이요, 살인 정책인겁니다.


인간의 탐욕과 인간의 편리함 때문에 인간이 저질러 놓고 인간이 감당하지 못하는 이런 상황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일본의 원전을 봐서 아실 겁니다. 인간이 저질러 놓고도 인간이 감당하지 못하고 접근하지 못하는 상황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 한국의 농촌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아십니까? 그거보다도 몇 배 무서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을 우리 국민들은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건 바로 농촌 진흥청이 올 7월부터 GMO 상용화 계획을 준비 해놓고 있습니다.

GMO 그러면 지금 국민들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습니다. GMO는 GMO를 만들 때 그 안에 어떤 생물을 넣느냐에 따라 다 다릅니다. 지금 GMO는 미국을 중심으로 해서 남미 이런 나라들에서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는데 그 농산물을 제일 많이 수입하는 나라가 우리나라입니다. 그것도 모자라서 우리나라 이 땅에서 GMO를 상용화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GMO는 생물에 살충제와 제초제를 넣는 것입니다. 그러면 벌레도 먹지 않습니다. 그리고 풀이 나질 않습니다. 우리 인간들이 벌레가 먹지 않는 이 콩과 옥수수를 수입해서 먹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 땅에 상용화하려고 하는 것은 잔디와 고추, 쌀입니다.


이 지구상에 아직까지 주곡을 상용하는 나라는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상용을 하면서 바로 쌀을 상용을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벌레도 먹지 않고 풀이나지 않는 이 독한 제초제를 유전자 조작하면서 그 안에 집어넣은 이 쌀을 우리 국민 전체가 먹게 될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 국민들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 지구상에 아무도 행하지 않는 이런 못된 짓을 이 정부가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 국민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생각도 없이 먹을 것 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이 투쟁은 단순하게 백남기 농민 이 한 사람을 위한 투쟁이 아닙니다. 이 싸움을 놓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생명을 지키는 일이요, 이 땅의 생태계를 지키는 일이요, 이 땅의 농업을 지키는 일이요, 이 땅의 식량을 지키는 일이요, 이 땅의 민주주의를 지키는 일이기 때문에 우리의 싸움을 우리의 이 투쟁을 멈출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정부가 행하고 있는 이 모든 것들을 국민들에게 낱낱이 밝혀서 우리 모두가 같이 함께 GMO를 막아내고 이 땅의 먹을거리의 안전성을 지켜낼 것입니다. 이 땅의 모든 국민들이 건강하게 살 권리가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 이것이 바로 많이 가지려고 하고 있고 많이 편하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며, 인간의 탐욕 때문에 바로 이런 재앙이 반듯이 올 것입니다. 그 재앙을 막는 것을 이 정권에게 맡길 것이 아니라 국민들의 힘으로 막아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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