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의평화 좋은글

함세웅 신부강론. 민족의 십자가, 우리의 어머니(Ⅱ)

by 편집장 슈렉요한 2017. 1. 10.

민족의 십자가, 우리의 어머니(Ⅱ)


함세웅 신부 (서울대교구 원로사제)


김학순 할머님의 증언


20세 미만의 젊은 여성들을 근로정신대라는 이름으로 징용하거나 좋은 일자리가 있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달콤한 말로 회유하거나 협박, 납치 등의 방법으로 강제로 연행하여 일본군의 성노예로 만든 일제의 만행을 일본군‘위안부’로 기억하고 있지만 아직 그 피해자와 정확한 규모는 아무도 모르고 있습니다.


사실 지금은 많은 이들이‘일본군 성노예’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창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1991년 8월 이제는 고인이 되신 김학순 할머니가 얼굴을 드러내고 처음 자신이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였음을 밝힌 후 세계 곳곳에서 일제의 만행을 증언하여 그 실태가 알려지고 있으며 몇몇 연구자들의 성과로 일부 문서가 발견되었습니다. 피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상습적인 폭행, 구타, 고문, 감시, 협박, 감금 등 글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참혹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1945년 해방된 나라에 돌아왔지만 일제에 의해 받은 수모와 상처는 고스란히 고통과 분노로 남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누구에게도 드러내지 못하고 자신 만의 아픔으로 가지고 살아야 했던 70년의 세월이 더 참혹하고 고통스러웠을 것입니다.


1991년 8월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으로 우리는 모두 분노했고, 그날, 일제에 의해 강제로 연행되었던 꽃같이 아름답고 청초했을 조선의 소녀들을 가슴 아픈 마음으로 새롭게 기억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김학순 할머니와 소녀들이 다시 이 땅에 살아났습니다. 


가정파괴의 주범 침략국 일제

 

재일교포 연구자 김일면은 자신의 저서 「천황의 군대와 조선인위안부(天皇の軍隊と朝鮮人慰安婦, 三一書房1976년)」에서 일본군 성노예는 “한국 민족 쇠망책의 하나로 미혼여성을 위안부로 쓴 것이었다. 민족을 쇠퇴시키기 위해서는 그 민족의 기반이 되는 가정, 그 가정의 기둥이 되는 여성을 파괴시키는 일이 지름길이라고 착안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침략국 일본인들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악의 후손들입니다. 일제는 조선을 강제로 점령하면서 정당성을 찾기 위해 우리 고대사를 조작했고, 민족정기를 말살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동원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일제가 ‘조선사편수회’를 통해 만든 35권의 ‘조선사’입니다. 지금까지 그 자료를 인용하고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 역사학자들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일제의 조선 침략이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아픈 마음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김일면 선생님의 주장은 일제가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인 가정을 파괴하는 수단으로 여성을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침략당한 나라, 매 맞는 나라의 여성으로 태어나 나라와 민족 모두를 대신해 온갖 수모를 겪어야했고 스스로 증거자로 나서 진실 규명에 앞장서야 하는 그분들이 오늘 우리 시대 나라와 민족이 짊어져야 할 고난의 상징, 수치스럽고, 부끄럽고, 고통스럽지만 극복해야 할‘민족의 십자가’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진상규명과 분단 극복을 위한‘구원의 십자가’이기도 합니다. 


일본의 만행을 꾸짖고 있는 ‘평화의 소녀상’


1992년 1월 8일 처음으로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수요집회’가 열렸습니다. 24년이 넘도록 그 집회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할머니들이 수요집회에서 밝힌 일본정부에게 요구하는 사항은 단순합니다.


첫째‘일본군 성노예’범죄에 대해 인정할 것, 둘째 진상을 즉시 규명하고, 셋째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진심으로 공식 사죄할 것, 넷째 피해자들에 대한 법적 배상, 다섯째 일본 역사교과서에 ‘일본군 성노예’ 문제를 기록하여 교육할 것, 여섯째 추모비와 사료관 건립, 일곱째 책임자 처벌입니다.


수요집회가 1,000회째였던 2011년 12월 14일 피해자 할머니들의 인권회복과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평화의 소녀상’을 세웠습니다. 


일본 관료들의 부분적 사과


일본 정부는 1993년 8월 4일 미야자와 내각의 고노 요헤이 내각 관방장관이 1년 8개월 동안 조사에 걸쳐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성과 관헌(官憲) 즉 일본 정부가 그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였다는 점”을 인정하였습니다. 1995년에는 당시 무라야마 총리가 일본의 전쟁범죄를 인정하고 식민지 지배 사죄하였고, 1996년 하시모토 류타로 총리의 사과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사과와는 별도로 일제의 조선 침략은 합법적으로 이루어져 배상이나 보상은 절대 불가하며 1965년 한일기본협약으로 전후 문제는 모두 처리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매국노 이완용의 후예들


2015년 12월 28일 정부는 한일 외교장관 회담 형식을 빌려 일방적으로‘일본군 성노예’ 문제에 대해 일본과 합의사항을 발표했습니다. 일본이 10억엔(약 100억원)을 출자하여 재단을 설립하고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을 철거하기로 했으며 이로써 일본군 성노예 문제는 영구적으로 해결되었다고 했습니다.


5·16 군사반란으로 독재정권을 만들었던 박정희의 한일기본협약과 똑 같은 수법으로 밀실에서 피해자 할머니들의 의견은 무시한 채 일본과 합의했으니 더는 문제 삼지 말라고 피해자 할머니들과 국민을 협박했습니다. 모두 박근혜정권의 어처구니없는 합의에 대해 분노하였고 젊은이들은 소녀상을 지키기 위해 모여들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정권의 독재적이며 역사에 대한 진지한 성찰 없이 이루어지는 행태에 대해 명확하게 인식해야 합니다.


1945년 일제로부터 해방된 나라에 돌아온 고통받은 그 소녀들을 보호하고 지켜야 할 나라가 없었습니다. 일본 제국주의자들과 그들에 부역했던 친일파, 전범자들을 처벌하지 못한 것입니다. 전후 처리 과정에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었던 일이었으며 우리 모두의 잘못이었습니다. 그들을 처벌하고, 진상을 규명하고, 그 기록을 만들었으면 할머니들의 고통과 상처는 역사적 사실로 규명되고 자료로 정리되어 후대로 전승되었을 것입니다. 해방 70년이 넘도록 일제의 잔혹한 행위조차 기록으로 남기지 못하고 있는 우리 사회공동체는 방관자였으며 어쩌면 공범자들일지도 모릅니다. 


일본이 비웃고 있을 한국 정부의 거짓과 반민주적 행태 


독재자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늘 같은 방법으로 대응합니다.“그런 사실이 없다”, “모르는 일이다”라고. 세상의 고통 받는 사람들에 대해 우리는 간혹 모른 척하고 넘어가거나 일부러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독재는 그렇게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그런 방식에 익숙해진다면 스스로 공범자가 되는 것입니다. 국가가 공권력을 남용하여 무고한 시민에게 폭력을 가하고 감시하고 억압하고 통제하는 사회를 독재국가라 하고 우리는 그러한 시대에 저항하며 민주주의를 만들어 왔습니다. 


한 국가의 국민이 다른 나라의 강압적인 폭력에 의해 일상적으로 수모와 멸시, 차별과 인권 침해를 겪었다면 당연히 그 정부는 국민을 대리해 진실규명과 사과와 재발 방지와 배상을 받는데 앞장서야 합니다. 헌법이 국가와 그 책임을 위임 받은 행정부와 정치권력에게 그 의무를 부여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수립 이후 지금까지 그러한 책임을 다 이행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무능하고 무책임한 정부를 우리는 규탄하고 응징해야 합니다. 


민족의 십자가를 짊어진 할머니들


할머니들의 증언으로 일제 만행에 대한 규탄과 진실 규명을 요구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가난하고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자식을 돌보고 사랑으로 지키려는 어머니의 모습을 봅니다. 빼앗긴 나라, 힘들고 어렵게 종살이 하는 민족을 대신해 강제로 타국으로 끌려가 갖은 욕설과 능멸을 참고 또 참고 겨우 돌아온 고향 땅, 그러나 누구에게도 내색하지 못하고 가슴으로 삼켜야만 했던 그 피울음이 가족과 민족과 나라를 위한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무능하고 무책임한 나라를 바로 세우자고 나의 치부를 드러내고 세상과 맞선 용기는 모든 것을 다 버려야 가능한 어머니의 아름다운 결단입니다.


1945년 해방된 나라에 돌아왔던 소녀,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할머님들을 ‘민족의 십자가, 우리의 어머니’라고 고백합니다. 할머니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길은 일본의 공식적인 사과와 진실규명 그리고 법적 배상일 것입니다. 그 뜻을 성취하기 위해 우리 사회공동체가 먼저 친일파를 단죄하고, 독재자를 몰아내야 합니다. 아름다운 사회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우리 모두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할 때입니다.


하느님! 저희 민족의 시대적 염원과 기도를 들어주십시오. 아멘. 감사합니다




책의 편집자 주 : 1992년 12월 27일(일) 오후 2시 서울 아현동 성당에서 함세웅 신부님과 안충석 신부님 집전으로 일본군‘위안부’할머니들을 위한 첫 미사가 봉헌되었습니다. 피해자 할머니들을 모시고 봉헌된 미사의 주제는 ‘민족의 십자가, 우리의 어머니’였으며 그때를 상기하며 함세웅 신부님께 강론 글을 부탁드렸고 기꺼이 써주셨습니다. 


출처. 한일 일본군‘위안부’ 합의 무효와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천주교전국행동 발행(2016.12.2)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강론 및 교육 자료집 민족의 십자가, 우리의 어머니』17~2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