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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평화 좋은글

박동호 신부강론. 사마리아 사람의 참된 영성 (루카 10.25-37)

by 편집장 슈렉요한 2017. 1. 10.

사마리아 사람의 참된 영성 (루카 10.25-37)

 

박동호 신부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오늘 복음은 ‘영원한 생명의 길’을 놓고 벌인 예수님과 똑똑한 율법교사가 나눈 대화입니다. 율법교사는 먼저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묻습니다. 율법교사는 예수님의 반문에 “옳게 대답하였습니다.”예수님께서는 그에게“그렇게 하여라. 그러면 네가 살 것이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그 율법교사는 자신의 정당함을 들어내고 싶어서 다시 묻습니다. “그러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하고 말입니다. 이 물음에 예수님께서 비유로 그에게 주신 것은 바로‘사마리아 사람’의 참된 영성입니다.


강도들에게 모든 것을 빼앗기고 두들겨 맞아 초주검이 된 채로 버려진 사람을 보고, 한 쪽에는 사제와 레위가 있고 다른 쪽에는 사마리아 사람이 갈라서 있습니다. 사실 강도들과 초주검이 되어 내버려진 사람이나, 사제와 레위나, 사마리아 사람이나 같은 길 위에, 곧 거룩한 도시인 예루살렘과 예리코를 잇는 길 위에 있습니다. 그들은‘같은 길’을 걷던 이들이었습니다. 이를 우리는‘공동운명’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강도들이 어떤 사람을 초주검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사회적 죄’라 할 수 있습니다. 거룩한 직무를 수행하는 사제와 레위는“그를 보고서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습니다.”


그러나 경멸의 대상이었던 사마리아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우선 가엾은 마음이 들었습니

다. 그 다음 그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상처에 자기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매주었습니다. 그리고 자기 노새에 태워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습니다. 다음날 자기 돈 두 데나리온을 여관주인에게 주며 그 사람을 돌보아 달라고 부탁합니다. 비용이 더 들면 돌아올 때 갚아주겠다는 약속까지 합니다.


자기의 정당함을 드러내려고‘누가 저의 이웃입니까?’고 물은 율법교사에게 예수님께서는‘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는 것’이 정당함의 기준이 된다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50년 전 교종 바오로 6세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폐막하며 오늘 복음의 ‘착한 사마리아 사람’을 보편 교회의 사목 공의회 영성의 모델이라고 밝혔습니다. 지금의 교종 프란치스코는 그 공의회가 “교회의 최근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기 때문에 그 공의회를 기념하며 ‘특별희년’을 보내자고, 그것도 ‘자비의 특별희년’을 보내자고 간곡히 초대하였습니다. 지금이야말로 교회와 교회 가르침의 신뢰성을 특별히 드러낼 때라고 호소합니다.


예수님께서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주는 것, 배고프고 목마르며, 헐벗고 떠돌아 다니며, 병들고 감옥에 갇힌‘가장 작은 사람’에게 해주는 것, 그것이 곧‘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길’이며‘당신에게 해주신 것’이라 가르치시고, 몸소 모범을 보여주시며, 이를 신앙으로 고백하며 교회가 이 땅에 세워진지 2000년이 지났습니다.


이를 다시 확신하고 신앙으로 선포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폐막한 지 50년이 지났습니다. 교종은, 충실한 교회의 사람으로서, 복음의 기쁨과 교회의 가르침을 다시 환기시키며 복음화 사명의 새 국면에 들어선 교회에 안주하지 말고 길을 나서라고 호소하면서 그 자신 모범을 보이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종께서는‘교회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빛이 필요한 곳이면 어느 곳이나, 그것도 우선 변두리에 가 있어야 한다'고 이 땅을 찾아와 권고하셨습니다. 무모한 전쟁으로 인간의 존엄과 인권을 무참히 짓밟힌 일본군‘위안부’피해자 할머니들의 명예와 인권회복을 위해 전쟁범죄를 밝히 드러내고 속죄하며 그 고통을 불가역적으로 만드는 일에, 기억과 성찰의 샘이 되어야 할 역사의 기록을 바로세우는 일에 투신하고 연대하는 선의의 시민과 시민사회단체가 있습니다.


(지난 2015년 12월 28일 일본군‘위안부’관련 한일 외교장관의 졸속 합의로 인해 또 다시 상처받은 피해자 할머니들의 명예와 인권회복을 위해, 일본군‘위안부’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해 신앙인으로서 왜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을 자유롭게 추가하시면 좋겠습니다. - 편집자 주 : 이 부분은 편집과정에서 넣은 것으로 현재 우리 사회 현안 중 가톨릭 신앙인으로서 성찰하고 실천해야 할 내용을 다양하게 언급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특히 일본군‘위안부’문제해결과 관련된 내용을 다루면 좋겠습니다. )


이는 교회와 교회 가르침이 신뢰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할 특별한 은총의 때,

이 땅의 그리스도인이 사마리아 사람의 영성을 행동으로 증명하라는

하느님의 소환장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강도가 아니었습니다.

자기만족과 자기행복 자기 탐욕을 위해

이웃과 사회와 자연의 것을 빼앗고, 때리고, 초주검으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사제와 레위가 아니었습니다. 

자기 할 일만 하겠다며, 사람과 자연의 신음소리에 귀를 막고 외면한 채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버리지 않았습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가엾은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 마음은 목자 없는 양 같은 군중을 보고 가지신 예수님의 마음, 

하느님의 자비와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마음은 그를 행동하게 했습니다. 

그는 초주검이 된 그에게 다가갔습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자기의 기름과 포도주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강도의 폭행으로 입은 상처를 치유하는 데 쏟아 부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자기 노새를 내주어 그를 태우고 자신은 걸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자기 돈을 들였습니다. 

초주검이 된 그가 일어서 자기 길을 씩씩하게 걸어갈 수 있도록

사후조치까지 취했습니다. 

그 일을 위해 여관으로 되돌아오겠다고 약속까지 했습니다. 


그 사마리아 사람의 영성이 우리 교회와 신앙인의 모델입니다.(참된 영성)


우리의 영성은 무엇입니까?

사제와 레위의 영성이 우리의 영성이 아닙니까?

기도하기 위해, 미사를 봉헌하기 위해, 제물을 봉헌하기 위해, 

나의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 하느님의 복을 차지하기 위해, 나의 성공을 위해,

초주검이 된 이웃을‘보고서도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성전을 향해 분주하게 발걸음을 내딛습니다.


그 영성으로 성전을 찾아 우리가 제대에서 봉헌하는 제물은 또 무엇입니까?

그 영성으로 우리가 성전에서 부르는 찬미의 노래는 또 무엇이며 기도는 무엇입니까?


느님이신 그분께서 오늘의 우리에게 다시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너희가 나를 시험하지 않으려거든, 너희가 알고 있는 것이 정당하려면” 

“가서 너도 그에게, 강도한테 초주검이 되어 내다버려진 그에게 이웃이 되어 주어라.”


우리 안에, 우리와 함께 계신 그분께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손에 피가 나도록 문을 두드리며 울부짖고 계십니다. 

“제발, 나를 나가게 이 문 좀 열어 달라!”고 말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사제와 레위처럼 우리가 굳게 닫아놓은 저 교회의 문 안에서,

요새처럼 견고한 이 성 안에서

‘당신은 나가시겠다고 문을 두드리며 문 앞에 서 계신’그분께 등을 돌리고, 

눈을 감고 귀를 막은 채 오로지 하느님 생각에 집중하며, 

우리가 정한 우리만을 위한 우리의 일만을 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사실 우리가 아무리 견고한 요새를 세운다 하더라도

그분을 가둘 수 없습니다. 

그분께서는 강도당한 당신의 벗들에게 달려가

한 사람을 당신 어깨에 들쳐 업고 돌아오시는 분입니다. (자비의 특별희년 그림)

그분께서는 지금 저 문 밖에서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호소하고 계십니다. 

‘문 좀 열어 달라. 멀지 않은 저 곳에 나의 벗들이 초주검이 되어 쓰러져 있다!

여러분이 제발 나와 같이 가서 그들을 도와주라!’고 외치고 계십니다. 


“주님께서는 의로우시어 의로운 일들을 사랑하시니 올곧은 이는 그분의 얼굴을 뵙게 되리라.” 아멘.



책 편집자 주 : 이 글은 2016년 1월 28일(목) 오후 7시 명동대성당에서 봉헌된 <사회적 약자와 함께 하는 미사> 강론 내용입니다. 


출처. 한일 일본군‘위안부’ 합의 무효와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천주교전국행동 발행(2016.12.2)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강론 및 교육 자료집 민족의 십자가, 우리의 어머니』21~2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