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정평위 평화기행단, 대전교구 설정 70주년 기념해 

70주년 맞이한 제주4.3 역사투어

2018.11.10~11(일), 이틀간 제주 평화공원과 학살지역 등 방문


2018.11.10(토) 오전 11시경 촬영


제주 4.3 평화공원 전시관의 첫 순간은 역사의 동굴로 입장하는 것이다. 역사의 동굴이 우리를 맞이하는 까닭은 제주도가  화산활동으로 이루어진 섬이어서, 용암동굴이 굉장히 많기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손색이 없는 천연자연 유산으로서의 동굴이고 또 발 밑으로 뚫리는 수직동굴들도 있다. 하지만 그런 동굴들에는 굉장히 아픈 사연이 숨어있다. 4.3당시 실제로 그런 동굴들에서 제주 양민들이 피난 생활을 했고, 길게는 두 달가량 숨어 살기도 했으며 발각되어 죽음을 면치 못했던 제주의 처참한 기억이 숨어있는 곳이기때문이다. 

"이틀동안 꽤 많이 걸으실 텐데요. 힘드실 때마다  70년전 당시 피난생활하던 제주 사람들의 마음으로 같이 많은 길을 걸어보셨으면 합니다."


2018.11.10(토) 오전 11시경 , 제주다크투어 공동대표 강은주가 직접 가이드가 되어 설명을 시작하고 있다



이는 제주다크투어의 강은주 공동대표가 1박 2일간의 다크투어 가이드를 하면서 시작한 발언이다. '제주다크투어'는 여행사가 아니다. 제주 4.3을 많이 알리고, 4.3해결에 주력하려고 만든 비영리 시민단체이다. 그리고 그 일환으로 다크투어를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기쁘고 즐거운 일만 있는 게 아니고 어둡고 아픈 면이 있듯이, 우리 역사에도 어둡고 슬픈 면이 있습니다. 이런 역사를 직면하고 반복되지 않게끔 하려는 것이 다크투어입니다. 대표적으로 아우슈비츠나 캄보디아 킬링필드 등을 가보는 게 그런 다크투어입니다."


강은주 대표의 발언처럼 천주교 대전교구 정의평화위원회(위원장 김용태 마태오 신부, 도마동 성당 주임, 이하 대전 정평위)는 2018년 11월 10일부터 11일까지 1박 2일간의 일정으로 제주도를 방문했다. 대전교구 설정 70주년을 맞이하는 2018년, 대전정평위는 올해의 특별한 기념사업으로 70주년을 맞이하는 제주 4.3의 현장을 방문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 일정은 2018년 11월 10일(토) 오전 10시부터 시작했다. 참가자는 정춘교 사무국장, 박갑주 대건안드레아, 이요한 등 대전정평위 평신도 위원들과 노은동 성당을 다니는 한 쌍의 부부 등이었다. 그리고 역사의 동굴로 입장하여 가장 먼저 중요하게 우리를 맞이한 것은 누워있는 비석이었다. 그리고 그 비석에는 아무 것도 쓰여있지 않았다. 이른바 백비였다. 



제주 4.3의 전 기간을 통해 화산섬 제주도의 중산간 지대에 산재한 천연동굴들은 주민들에게 천혜의 피신처가 되었다. 그래서 전시관의 모티브를 동굴로 잡고 긴 터널을 들어가며 4.3의 역사적 발걸음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렇게 터널을 통과하면 맞이하는 것은 원형의 천장 아래 누워 있는 비문없는 비석, 즉 '백비'이다. 이름이 없는 것은 4.3이 아직 제대로 된 이름을 얻을 수 없는 역사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백비를 기념관 맨 처음에 놓은 이유가 있다. 올해 4.3 70주년을 맞이하여 정명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다른 이름을 명명하는 게 정명한다는 것인데, '정명'하기가 어려운 이유는 제주 4.3이 장시간에 걸쳐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다. 광주항쟁을 비롯해 다른 사건들은 몇 달사이 혹은 며칠에 걸쳐서 일어난 일이다. 그런데 이것은 무려 7년 7개월 동안 벌어진 일이다. 그리고 초기에는 항쟁의 성격이 굉장히 강했지만 후반으로 가면서 수난사가 너무 크다보니까 사건의 성격을 한 가지로 규명짓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리고 가해자와 피해자가 같이 섞여서 살다보니, '항쟁'이라고 하면, 돌아가신 분들은 우리 돌아가신 가족은 항쟁의 대상인거냐 라는 식의 갈등이 컸다. 


제주 시민사회가 함께 모여 기념사업위원회를 꾸렸지만, 이런 상황에도 초기 항쟁성격이 강하고 7년 7개월이라는 긴 기간동안 존재가 가능했던 것은 민중 전반의 지지가 있기에 가능했다고 보고 4.3 민중항쟁으로 불러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현기영 작가의 발언처럼 "항쟁성격이 크다. 그런데 정명은 더 신중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는 것이다. 어쨌든 성급하게 이름을 지을 필요는 없지만 더욱 충분히 토론하자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래서 언젠가 이 비의 이름을 세우고 이 비를 일으켜 세우리라는 의지를 담은 비이다. 즉 정명(正名)되지 못한 역사인 4.3의 진정한 해결이 이루어지는 날, 비로소 비문이 새겨질 것이며, 누워 있는 비석도 세워질 것이다.


다만, 그렇게 4.3은 아직 그 뒤에 이름이 없고 그냥 [제주 4.3]으로 정의되고 있지만, 국가 공식보고서는 제주4.3사건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백비가 누워있는 곳에는 이처럼 높다란 원형의 천장이 뚫린 형태로 있다.


(계속)


Posted by 대전정평위뉴스 편집장 슈렉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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